【인본세상 22 - 사진으로 본 세상】 눈으로 감상하는 스토리콘서트 - 김선영

눈으로 감상하는 스토리콘서트
기억 : 나, 너, 우리의 기억을 노래하다 / 글 김선영 (가야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사진 제공 : 허여정, 김선영, 이송주

인본세상 승인 2023.08.04 11:43 | 최종 수정 2023.08.06 12:41 의견 0

프롤로그

거꾸로 상위 1%를 만나는 24년차 심리치료자입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인과 그 가족에서 시작해서 길을 잃은 청소년, 트라우마 생존자, 호스피스 병동 환자와 그 가족, 의료진들을 만나고 있는 현장가로서 온 가족의 마음자람과 평생발달의 중요함을 전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이자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큰 사건들을 경험할 때마다 좌절하고 슬퍼하지만, 일상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슬퍼할 수 없기에 무엇인가를 해야 했습니다.

2016년 김해에 있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열린 공연에서 한 곡을 연주한 것을 시작으로, ‘기억하기’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부터는 매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스토리콘서트를 열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첫 번째, 나의 기억
한 사람의 경험에 그 사람만의 정서가 묻어서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똑같은 바다를 보고, 매일 밤 아이에게 불러 주거나 들었던 노래 <섬집아기>도 제각각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것은 기억에 함께 저장된 각자의 감정이 있어서입니다.

두 번째, 나와 너의 기억
그 기억을 너(타인)에게 전하여 공감을 얻게 됩니다.

한국인은 세대를 통해 트라우마 유전자가 새겨져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기억해야 할 많은 역사적 사건을 경험해 왔습니다.

프랑스의 민중가요이자 한국에서도 광주를 상징하는 ‘오월의 노래’로 알려진 <Qui A Tue Grand-Maman>를 연주하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우리의 기억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경험이 현재에 재현될 때,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2014년 4월 16일,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공연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공연 무대에는 늘 빈 의자 하나를 놓아둡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이 매년 살아 돌아와서 함께 이 공연을 만들고 관람한다고 생각하고...

네 번째, 기억하기

지금-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기’ 위한 의식(리추얼, Ritual)을 치르는 경험을 통해 또다시 각자의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캐나다 리멤브런스 데이는, 세계에서 발발한 모든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입니다.

제가 수년 전 머물렀던 온타리오주에서는 공휴일이라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이 관련 영상자료를 시청하거나 호밀빵에 물만 먹으면서 그분들에 대해 배우고 존경의 마음을 새기기도 합니다.

팽목항의 공소를 지키던 최도나다 수녀님이 주신 기억목걸이가 나비가 되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이 만든 노란리본 극단의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에서는, 현실과는 달리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한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합니다.

가장 고차원적인 애도의 방식은 유머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슬픔으로만 기억되기를 원치 않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도 전달하기 위해 이 연극을 만들고 있다는 어느 단원의 인터뷰 기사에 숙연해졌었습니다.

그래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슬픔을 애도하는 일에는 국경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 작곡가 이와사키 다이스케의 곡<팽목항의 봄>, 그리고 단원고 故 이다운 군의 유작인 <사랑하는 그대여>를 2014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동현 군이 대학생이 된 2023년에도 공연장에서 불러 주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이 공연은 이어질 것입니다.

 

에필로그

‘기억’이라는 단어보다는 ‘기억하기’라는 표현을 써야 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마냥 슬퍼하고만 있고 싶지는 않아서입니다. 다가올 미래의 과거가 될 오늘입니다. 나,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열정적으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호스피스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삶에서의 상실을 수용하는 애도의 단계로서 부인(Denial), 분노(Anger), 조정 및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억하기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때, 바로 이 단계를 경험할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경험, ‘왜 하필 나에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하다가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기 위해 애를 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되겠지만, 그 슬픔까지도 끌어안는 깊은 애도의 시간을 거쳐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일상에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역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을 때 고단함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선영 교수

◇ 김선영

가야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대한음악심리치료학회 임상음악심리전문가

나맘 심리예술네트워크 대표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