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1 가을의 노래 - 철마는 달리고 싶다

이득수 승인 2021.10.06 18:37 | 최종 수정 2021.10.10 23:24 의견 0
[사진=이득수]

사광리 언덕길 옆 소바탕 소나무 숲(옛날 마을의 소를 매기 위해 일부러 심었다고 함)에 낡은 경운기 한 대가 칡넝쿨을 뒤집어 쓴 채 삭아가고 있습니다.

경운기가 처음 나왔을 시절 넓은 고래뜰을 종횡무진 누볐을 저 경운기는 마치 잠시 세워두었다가 다시 들에 몰고나갈 것처럼 길가에 대어둔 모양입니다. 아직 헤드라이트와 검정색 의자, 녹 쓴 짐칸이 그대로인데 벌써 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모양인데, 마치 휴전선에 멈춰선 열차처럼 ‘나는 아직도 달리고 싶다.’를 외치며 칡넝쿨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저 경운기를 세워둔 농부가 새로 최신식 트랙터를 사서 다시 쓸 일이 없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저 경운기의 단짝 늙은 농부가 이미 뒤쪽에 보이는 황금빛 고래뜰을 넘어 아득한 하늘나라로 떠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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