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토) 오후 4시에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차사모)의 차회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부춘다원(富春茶園)에서 열렸다.
백경동 차회 회장을 비롯해 회원으로는 부춘다원의 여봉호 사장님, 악양면의 신판곤 사장님, 광주에서 오신 김혁태 사장님, 대전에서 오신 김시형 과장님, 그리고 필자 등 모두 6명이었다. 회원은 모두 9명으로 화개제다의 홍순창 상무님과 산청의 김현복 사장님, 그리고 화개제다 앞 남도대교 건너에 사시는 정형두 사장님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여봉호 사장님은 발효차 부문의 명장으로 인정을 받은 분이다. 여 명장님이 차를 내시고, 백 회장님이 저녁으로 찰밥과 떡을 준비해오셨다. 참석한 회원들과 나눠 먹으려고 신 사장님은 비타민 한 박스, 김 사장님은 포도 한 박스, 김 과장님은 만쥬를 갖고 오셨다.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발효차·녹차·구지뽕 열매차·감잎차·대만의 동방미인차·중국차 등 여러 종류의 차를 마셨다. 경기도 용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시며 고향인 악양면의 집을 오가시는 신 사장님은 경제학 특강을 하시듯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오늘 차회가 열린 부춘다원은 여 명장님이 10여 년 전에 지금의 다원 자리에 400평을 사 두셨는데, 화개~하동 구간이 4차선으로 확·포장되면서 도로변이 되면서 좋은 위치가 됐다. 어떤 참석자가 “명장이 됐다는 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을 받은 걸 상징하지 않느냐?”라고 질문을 하였다. 이에 대해 여 명장님은 “그건 아닙니다. 저보다 차를 더 잘 만드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준 덕에 명장을 획득했을 뿐이지 차를 가장 잘 만든다는 건 좀 그렇습니다.”라며, 겸례의 말로 답변을 했다.
다식(茶食)이 정말 풍부했다. 포도와 만쥬, 떡, 찰밥 등이 너무 맛있어 필자는 계속해서 먹었다. 당뇨병으로 단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데 평소 일상생활에 있어서 필자의 절제력은 음식 앞에서는 사라지고 만다. 당뇨가 심해지기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음식에 남보다 먼저 손이 가고 많이 간다.
참석하신 분들이 모두 차를 좋아하는 차인들이다보니, 여 명장님이 우려주시는 대로 차를 마시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필자만큼 차를 즐겨 마시는 분들이어서 공감 범위가 넓었다. 필자도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차를 마신다. 밤에 화장실 갔다가 잠이 오지 않으면 차를 마시고, 새벽에도 잠이 깨면 앉아 차를 마신다.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다보니 차의 인(?)이 몸에 박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필자의 심성과 차가 맞아서 일 것이다.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편인 필자와 차가 궁합상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쓴 「曉茶飮」이란 한시에서도 표현하였듯 “속진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塵慾無從)” 성정이 서로 통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참석하신 분들 모두 필자처럼 차와 기질이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회원이 “우리 모임은 회장님이나 회원들이 어떤 일에 종사하든 수평적인 관계이다”라고 언급하신 것처럼 차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술잔 앞에서는 험한 말이 오가지만, 찻잔 앞에서는 덕담만 오간다”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이날 여러 이야기들 중에 “지난 번 차회 이후 여러 개인적 사정으로 차회를 빠져나간 분들도 언제든 다시 오시면 이전처럼 똑 같이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자”라고 제안을 하자 “동의합니다”라고 참석자들은 답을 했다.
또한 최근 장마로 화개장터가 침수되면서 함께 물을 담은 화개제다와 관련해서는 “지금은 홍 상무님이 정신이 없을 터이니 조금 지나서 한 번 인사를 하자”는 의견에도 모두 동의를 했다.
이날 김혁태 사장님은 오후 6시에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섰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저녁 8시까지 계속해 차를 마시다 자리를 파했다. 김 과장님은 대전까지 바로 운전해서 가신다고 했다. 차 한 잔 마시려고 대전에서 부춘다원까지 오신 것이다. 여 명장님은 참석자들에게 다양한 차를 담아 종이가방을 하나씩 안겼다. 여 명장님의 인정스럽고 너그러운 품이 보였다. 다음 차회를 기약하며 바깥으로 나오니, 언제 강물이 넘쳐 주변을 침수시켰냐는 듯 섬진강이 태연하게 바닥을 드러낸 채 모래만 보였다.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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