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자들은 영리한 게임을 하고 있다.
(중국이 내세우는)평화와 연대라는 화려한 말들을 걷어내면, 2026년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국가들에게 제시하는 핵심 제안은 이것이다 : “우리와 함께라면,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예측 가능한 파트너라는 주장이다.-옮긴이 주). 그러나 그 예측 가능성이라는 약속은 양날의 검이다.
중국을 가장 잘 아는 국가들, 곧 이웃 국가들과 중국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중국을 냉정한 거인으로 인식한다. 중국은 세계 권력의 정점으로 복귀하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으며, 희토류 광물과 영구자석 생산 같은 일부 분야에서의 지배력을 이용하여, 외국 경쟁자들을 압박하고 위협하려는 의지를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국 관료들과 국가 지원을 받는 학자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세계 제조업을 지배해야 할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그들은 보편적 가치보다는 “보편적 안보”를 제공하는 “현실주의적” 국제 질서를 요구한다.
중국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신의 힘을 기꺼이 과시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경제 발전에 대한 확고한 집중 덕분에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이 불안정한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때로는 불안감을 주지만-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중국이 모든 공백을 메우거나, 미국을 대체하여 세계 경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 외교관들은 서구 자유주의 가치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국제 규칙 기반 질서”를 유지하게 위해 제재, 군사 개입, 또는 방위 동맹을 이용하는 서방 정부들을 개탄한다.(곧, 서방이 말하는 ‘규범 기반 질서’는 사실상 자유·인권·민주주의와 같은 서구적 가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뜻-옮긴이 주)
중국이 개방도상국에 제공하는 것은 경제 투자, 대출, 무역, 인프라 건설, 직업 훈련 의 혼합 형태로 익숙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중국의 조건으로 제공된다.(중국은 개발도상국에 경제적 지원과 인프라 투자 패키지를 제공하지만, 그 모든 것이 중국의 이해관계와 조건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옮긴이 주)
중국의 저명한 국제관계 학자들에게는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당선은 세계적인 “담론 전쟁”(narrative war,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담론을 주도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경쟁을 말한다. 국가가 자신의 가치, 규범, 세계관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고, 다른 나라들이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옮긴이 주)에서 승리를 거둘 기회로 보인다. 미국의 정책 변화는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수많은 기뢰를 열어 주었다. 그중 세 가지가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청정 기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대통령 임기 동안 기후 변화와 재생 에너지에 회의적이었다. 재선 이후 그는 친환경 기술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화석 연료 사용을 기피하는 외국 정부를 비난해 왔다. 이미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첨단 배터리 분야의 공급국이자, 친환경 기술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스마트 전력망 구축 전문가인 중국이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글로벌 “담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이다.
다음은 아프리카다.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30% 관세를 부과했으며,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아프리카 성장 및 기회법(African Growth and Opportunity Act) 아래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제공되는 무관세 혜택을 제한하겠다고 위협했다.
바로 그 시점에 중국은 53개 아프리카 국가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확대했다. 그러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에 원자재를 팔고 완제품을 받아오는 불균형한 무역 관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인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와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 인도는 중국에 대한 공동의 경계심에 힘입어 미국과 더욱 가까워졌다. 이러한 경계심은 인도와 중국 군대 간의 국경 충돌로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폄하하고,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했다는 이유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다.
9월에 모디 총리는 중국을 방문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최한 회합에 참석했다. 이 회합은 인도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지역 협력체인 상하이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의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였다.
그러나 중국 학자들은 모디 총리의 중국 포용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모디 총리는 항일전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베이징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다른 외국 정상들과는 달리 참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국으로 향하는 길에 일본을 일부러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과 글로벌 영향력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중국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중국의 위험 회피 성향 외교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분방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시 주석은 즉흥적으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이 더 중요하다.
2025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산 콩과 첨단 반도체를 구매하고 희토류를 판매하는 데 합의한 대가로 관세를 인하했다. 이는 모두 중국에 유리한 거래였다.
시 주석은 트럼프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적인 결과는 트럼프를 덜 필요로 하는 것이다.(to need him less, 여기서는 ‘필요성 감소’라기보다는 ‘의존도를 줄인다’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시진핑의 이상적인 결과는 트럼프라는 변수에 덜 의존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옮긴이 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쇠퇴의 징후로 보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와 함께 추락하거나 그의 문제에 휘말려 몰락하기를 원치 않는다.(to be dragged by him, 여기서는 단순히 ‘그에게 끌려 내려가다’가 아니라, 그와 함께 추락하거나 그의 문제에 휘말려 손해를 입는 것을 뜻한다,-옮긴이 주).
-데이비드 레니(David Rennie), 『The Economist』 지정학 담담 편집자 겸 『The Telegram』 칼럼니스트-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