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
[과학에세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21.01.29 16:29
  • 업데이트 2021.01.3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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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보이트의 'Not even Wrong'과 번역본 '초끈이론의 진실' 표지.

물리학 이론 중에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라는 게 있다. 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의 강력한 후보였다. 이 이론은 만물의 기본입자를 1차원인 끈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진동하는 끈들의 집합이니 결국 우리 우주는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교향곡인 셈이다.

1984년 1차 초끈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론물리학의 물줄기가 바뀌어버렸다. 당시 각광받던 양자장론과 입자물리학이 뒷전으로 밀렸다. 재능 있는 물리학도는 너도 나도 초끈이론에 투신했다. ‘초끈이론 전공이 아니면 이론물리학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95년 에드워드 위튼이 발전된 초끈이론 형식인 M-이론을 창안(제2차 초끈 혁명)하면서 초끈이론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아인슈타인이 실패한 통일장이론의 완성은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그런데 오늘날 네이처, 사이언스, 피지컬 리뷰 레터스 등 권위 있는 과학저널에서 초끈이론 논문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끈이론을 전공하겠다는 대학원생은 웃음거리가 될 정도다. 이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증 불가능한 가설에 기반해 아무런 예측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물리학자들이 초끈이론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홀려 20년 넘게 집단적으로 헛것을 좇은 꼴이 되고 말았다.

초끈이론은 이제 실패한 이론의 전형으로 추락했다. 심지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이라는 조롱까지 받는다. 2006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터 보이트가 초끈이론의 실패와 물리법칙의 통합을 향한 도전을 담은 책 ‘Not Even Wrong’(한글번역판 제목은 초끈이론의 진실)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낫 이븐 롱’은 물리학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말인데, ‘틀렸다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터리’라는 뜻이다.

이 용어의 원조는 ‘파울리 배타원리’로 노벨상을 수상한 볼프강 파울리다.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과 함께 20세기 초 양자역학을 주도했던 파울리는 학술토론장에서 신랄한 비판으로 상대방을 주눅 들게 만들기로 유명했다. 비엔나 서클의 논리실증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파울리는 엄격한 기준으로 타인의 의견을 평가했다. ‘틀렸다’와 ‘완전히 틀렸다’를 자주 사용했는데, 한 번은 젊은 물리학자가 자신의 논문 평가를 부탁했을 때 “이건 틀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It is not even wrong/Das ist nicht einmal flasch)”며 가차 없는 혹평을 가했다고 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음이 확인되면 그 아이디어는 틀린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 아이디어는 심지어 틀리지도 않은, ‘낫 이븐 롱’인 것이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이자 과학계의 팩트체커 마이클 셔머는 최근작 ‘스켑틱-회의주의자의 사고법’에서 파울리의 ‘낫 이븐 롱’을 언급하면서 “이성(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틀린 이론이 다 같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저명한 과학저술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틀림의 상대성’을 인용한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은 틀렸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도 틀렸다(지구는 완벽한 구체가 아니므로). 그러나 당신이 두 주장이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두 집단의 틀린 부분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미국에서 비슷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지 혹은 비판받는다고 해서 진실이 그 중간쯤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촉발하는 ‘틀린 이론’이지만 다른 하나는 검증 불가능한 ‘낫 이븐 롱’인 것이다. 둘 다 틀린 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그냥 틀린 생각이 아니라 아주 크게 틀린 생각이다.

이성의 눈으로 틀림의 상대성을 인식하고 세상을 해석해보자. 지금 ‘검찰총장의 잘못’과 그에 대한 징계 ‘절차의 잘못’ 간의 대립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두 잘못이 같다고 여긴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잘못의 본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낫 이븐 롱’이다.

[과학에세이] 낫 이븐 롱(Not even wrong) /조송현

※ 원문보기국제신문 [과학 에세이] 2021-12-21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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