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 칼럼] 이미지 선거와 정치예능
[조송현 칼럼] 이미지 선거와 정치예능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21.02.07 23:07
  • 업데이트 2021.02.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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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세상 읽기] 1월 27일

현대사회는 정치와 선거가 미디어에 의해 주도되는 미디어 정치, 미디어 선거 시대다. 미디어가 정치인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확산하는 까닭에 미디어 정치는 이미지 정치로, 미디어 선거는 이미지 선거로 불리기도 한다.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의하면 유권자의 투표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 세 가지는 정당, 정책, 후보 이미지이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정책과 정당 요인의 비중이 절대적이었으나 미디어 선거가 본격화하면서 후보 이미지 요인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후보 이미지’는 단순히 외형적 모습이 아니라 해당 정치인의 개성 이미지와 공인으로서의 능력 이미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정치의 본질을 왜곡하는 허상이자 포장이라는 의견과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종합적 인식’이라는 주장이 팽팽하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정치인의 ‘후보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뉴스와 시사토론 같은 하드 뉴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케네디-닉슨의 TV토론 이후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해 뉴스나 인터뷰, 정책토론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그러다 예능 토크쇼 같은 소프트 뉴스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는데, 그렇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빌 클린턴이다.

클린턴은 1992년 경제 이슈를 선점해 대선전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흔히들 평가한다.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의 임팩트가 엄청나게 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클린턴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진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심야 토크쇼인 ‘아르세니오홀 쇼’ 출연이라는 평가도 만만찮다. 클린턴은 당시 파격적으로 색소폰을 들고나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하트 브레이크 호텔’을 멋들어지게 연주,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토크쇼 출연 효과는 인지도 급상승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의 ‘토크쇼 사건’ 이후 미국 정치권에는 ‘토크쇼 캠페인’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후보들이 선거운동으로 정책토론이나 인터뷰 외에 예능 토크쇼를 챙기는 관행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92~2012년 20년간 미국 대선후보의 토크쇼 출연은 총 205회에 이른다. 심야 토크쇼를 비롯해 드라마, 영화 등 예능 프로그램의 정치적 영향력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예능 프로그램이 정치인 이미지 형성과 평가에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유도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낯설지 않다. 1996년 김대중 전 국민회의 총재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에서 투사 이미지를 벗고 살갑고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2009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대선이 있은 2012년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원장이 SBS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에 차례로 출연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홍신 전 의원,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이재명 경기지사, 그리고 최근엔 나경원 전 의원과 박영선 중소벤체기업부 장관 등 정치인의 연예 프로그램 출연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와 관련한 ‘공정성’ ‘형평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조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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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러시가 쉽게 사그라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지 선거 시대에 정치인의 현실적 필요와 ‘정치예능(politainment)’ 상품의 상업성에 대한 방송사 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와 예능을 결합한 정치예능은 연예산업의 한 장르로 규모를 키워가는 추세다.

미디어 정치 혹은 이미지 정치 시대에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막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방송사의 정치예능의 상업화와 정파성을 경계해야 한다.

TV나 라디오 등에 인기 정치인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인을 골라 출연시킨다면 이는 방송의 공공성 외면을 넘어 민주주의의 토대인 선거제도를 허무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정치적 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법·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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