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6) 토정비결 해설 ③필사본 토정비결의 만남과 필사자의 이력 
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46) 토정비결 해설 ③필사본 토정비결의 만남과 필사자의 이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2.15 07:10
  • 업데이트 2021.03.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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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일기 제1247호(2021.2.15)
'토정비결' 김한표 필사본 표지
'토정비결' 김한포 필사본 표지

때는 2010년 가을쯤입니다. 가끔 시를 쓰는 한 퇴직공무원으로서 동학란 훨씬 이전부터 언양고을에서 농사를 짓던 향반의 후손인 자신의 조상과 부산이란 대도시에서 지방자치제의 변화물결에 휩싸인 삶을 필생의 대작 <신불산>으로 써 나가려다 좀체 호흡이 맞지 않아 늘 주저앉고 말아 아직 단 한 페이지의 소설도 쓰지 못한 때입니다. 우연히 서재 한 구석에 아직도 보자기에 싸인 한 뭉텅이의 책에 눈이 가 새삼 보따리를 풀고 한 권 한 권 살피니 문득 누런 한지에 붓글씨로 쓴 <토정비결>이란 필사본이 나왔습니다. 재직 중일 때 가끔 자갈치시장을 거쳐 용두산공원을 돌아 보수동 헌 책방에 들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헌책방에서 한 뭉텅이의 책을 사 미처 펴보지도 못하고 책상 아래 방치했다가 정년퇴직 때 짐을 꾸려 가져온 것인 것 같았습니다.

표지가 누렇게 퇴색한 필사본 <토정비결(土亭秘訣)>은 우선 그 책의 크기가 보통 세로로 약간 긴 <국판>이니 <4.6.>배판이니 황금비율의 직사각형이 아니라 가로세로 각 20센티미터 정도의 정사각형이라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지의 오른쪽에 부터 
 
昭和十七年
소화17년

壬午正月七日終
임오정월7일종
 
十八句土亭秘訣(십팔구토정비결)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맨 오른쪽 <소화 17년>은 일제강점기 일본천황의 연호(年號)로 서기 1942년을 뜻합니다. 또 <임인년 정월 칠일 종>은 1942 소띠해의 정월 초이렛날 필사를 마쳤다는 기록이고  <십팔구 토정비결>은 한 괘에 총 18구(句) 152자로 구성되었다는 뜻이고 , 표지 뒷면에는 <책주 구산 김한포>라는 필사자의 성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전체적으로 해석하면 민간에서 내려오는 18구 <토정비결>을 김해 구산동에 사는 시골선비 김한포라는 분이 그 필사에 몇 년이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1942 임임년 대동아전쟁이 그 종국에 이르러 한반도에는 젊은 청년학생이 <학도병>으로, 젊은 농부들은 <근로보국대>라는 강제징용으로, 또 꽃다운 처녀들은 <정신대>로 황국침략군의 노리개가 되어 저먼 만주와 중국 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호주에 인접한 폴리네시아 여러 섬으로 망국의 한을 품고 떠나가면 다시 소식이 없던 암울한 시절에 금수강산 3천리에는 쌀과 쇠붙이는 물론 군수물자로 조금이라도 쓰임새가 있는 송진과 소뼈까지 공출 당하던 암울한 시절입니다.

'토정비결'의 앞날개 뒤쪽
'토정비결' 김한포 필사본 표지 뒷면

그 시절에 이렇게 긴 글을 필사할 수 있었다면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전설이 어린 구산동의 오랜 세거(世居)지에 살아온 김해김씨의 시골부자로 이제 보국대에 나가기에는 나이가 많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초로의 선비가 약육강식 군국주의의 침탈로 기름진 조국삼천과 유구한 역사를 다 빼앗긴 조국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늙어가는 시골선비로 어쩌지도 못 하고 덧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정체된 자신처럼 꽉 막힌 시절을 한탄하며 차라리 인간의 화복성쇠(禍福盛衰)를 곱씹는 기분으로 이미 희미해지는 시력으로 사나흘 만에 돌아오는 머리가 맑고 컨디션이 좋은 날 하루에 한 괘 정도씩 꾸준히 쓰서 몇 년이나 걸려서 완성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한 선비가 고서를 펼쳐놓고 직접 한자, 한자를 필사하는 필사본은 서양의 활자(活字)식 인쇄가 아직 도입되지 않고 <팔만대장경> 같이 목판에 새기거나 나무로 판 활자로 한지에 도장처럼 찍어내는 영인본(影印本)이 아닌 한 선비가 직접 자신의 공력과 정신을 집중해 한 자, 한 자씩 써가는 소중한 정신력의 소산물입니다. 그래서 아직 출사(出仕)전의 대 선비 이율곡도 파락호인 아버지 이원수를 피해 한양을 유람하며 어디 필사라도 하여 밥을 먹을 데가 없나 헤매던 사실을 어떤 드라마를 통해 본 일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한 시골선비인 필사자 김한포란 분은 3년 뒤 해방조국에서 다문 시골면장자리라도 하나 꿰차고 한 선비로서의 포부를 풀어보았는지 그 말년에 대한 기록은 알 수 없고 이 영인본의 책은 책 뒷날개에 누가 연필로 쓴 기록을 보면 <대구부 동정 2정목 3번지 영광수부>, 그러니까 일제의 압력에 못 이겨 창씨개명까지 한 사람의 수중을 거쳐 고서점을 돌고 돌아 부산보수동 헌 책방에서 이 책벌레의 눈에 띄어 필생의 소장품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연이 가득한 필사본 <토정비결>을 수없이 반복해 읽은 이 후대의 시골선비가 다시 이를 새 시대의 한글에 맞게 번역하고 주변에 알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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