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2 : 봄날은 간다 - 저 처연한 꽃잎들
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2 : 봄날은 간다 - 저 처연한 꽃잎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4.27 07:00
  • 업데이트 2021.05.01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백꽃 [사진 = 이득수]
동백꽃 [사진 = 이득수]

자린고비 자영이 떠나간 지 1년. 아무도 딸 사람이 없는 엉개와 두릅이 아까워 울산의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누님집을 찾았습니다.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안다고 하더니 한 야무진 농부가 떠난 집에는 대가 우거져 두릅나무가 고사하고 마당귀퉁이에 잡초가 우거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화단을 가득히 채운 커다란 동백나무 고목 세 그루였습니다. 바야흐로 무르녹는 봄과 함께 불꽃처럼 타올라 핏빛으로 떨어지는 꽃잎들의 선연한 아름다움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사람이 지독하대도 저승 앞에는 죽어간다더니 꽃이 아름다워도 바람 앞에선 용서가 없는 모양, 그렇게 죽을 목숨을 왜 그리 모질게 살고 저렇게 바람에 흩어질 꽃을 그렇게도 선연히 피웠을까? 그 중에는 송이째로 모가지가 댕강 끊어진 놈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르디원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동백꽃이란 뜻의 <춘희(椿姬)>로 번역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 같습니다. 동백(冬柏)의 춘(椿)자가 봄을 대표하는 나무라기보다는 각혈(咯血)처럼 봄을 앓는다는 뜻을 원작자 알렉산더 뒤마는 진작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절명(絶命)의 순간에 애인의 품에서 각혈을 하면서 죽게 만들었을까요?

인생은 봄처럼 아름답고 봄은 꽃처럼 화려하지만 사람은 죽고 꽃은 떨어지는 법, 그래서 각혈처럼 더 붉디붉은 봄, 한 사내가 떠나간 자리에 그리움과 서러움이 뚝뚝 흐르는 오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