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3) “때가 되면 나도 가벼워질 것이다.”
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3) “때가 되면 나도 가벼워질 것이다.”
  • 진재운 진재운
  • 승인 2021.06.17 15:24
  • 업데이트 2021.06.17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봉채 작가의 우포늪 포토에세이 『지독한 끌림』 표지(부분)

“때가 되면 나도 가벼워질 것이다.”

세계적 사진가이자 우포늪 사진을 찍는 정봉채 작가님이 쓴 책 『지독한 끌림』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 때가 되면 가벼워진다는 것! 과거보다 지금보다 더 가벼워지는 것! 갈 때를 알고, 늘 갈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 무엇이 올라왔는가요? 바빠서 그냥 건너뛰었을 수도 있고, 과일 한 조각, 우유에 토스트 한 조각, 아니면 김치찌개에 소고기 장조림 밥상일 수도 있겠지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모든 음식은 가볍거나 무겁습니다. 많이 먹어도 몸이 가볍게 느껴지는 음식이 있는 반면, 조금만 먹어도 몸이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단순히 소화에 적합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문제겠지요.

여기에 저만의 해석을 하나 곁들이고 싶습니다. 모든 음식은 빛에서 가까울수록 가볍고, 멀어질수록 무겁다는 것입니다. 채소를 특별한 요리 없이 먹으면 몸은 소화에 큰 부담이 없습니다. 하지만 데치는 것은 고사하고 각종 양념에 화학제품을 첨가한 공장 제조과정을 거치고 나온 것을 먹었을 경우 훨씬 무거워집니다. 특히 마트에서 사온 채소에 비해 농약이나 비료 없이 텃밭에서 기른 것을 그대로 먹을 때는 가벼움의 정도가 크게 다릅니다. 여기에 육식은 더 무거워 집니다. 광합성을 한 식물을 뜯어먹어 빛의 농축이 많이 됐지만 반대입니다. 엽록소가 농축이 됐지만 가축들의 대사과정에서 화학작용을 거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요즘은 가축들이 풀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학공정을 거친 공장 사료를 먹습니다. 심지어는 닭의 배설물이나 시멘트 혼합물까지 사료로 먹입니다. 먹는 것이 아예 빛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혼탁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식탁에 오른 육고기를 먹은 몸이 가벼울 리 없습니다. 

모든 음식은 빛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두 빛에서 왔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 채소류, 그것을 에너지로 맺은 과일, 그리고 그런 광합성의 식물을 먹는 동물까지 말입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치도 거슬러 올라가면 다 햇빛바라기인 식물플랑크톤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양제인 등푸른 생선의 오메가3도 결국에는 식물플랑크톤이 생선에 농축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서인지 육식동물이 사냥을 하면 창자부터 가장 먼저 먹습니다. 초식동물의 창자 안에는 아직 소화가 다 되지 않은 풀들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역으로 보면 육식동물은 육식동물을 웬만해선 잘 사냥해서 먹지 않습니다. 사자가 호랑이를 사냥하지 않고 늑대가 여우를 죽이기는 하지만 먹기 위해서 사냥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초식동물이든 육식동물이든 빛과 가장 가까이 하는 음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의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에 농축된 빛과 이 때의 빛은 같은 빛이 아니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습니다. 어쨌든 빛의 존재입니다. 먹는 것이 빛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 우리는 가볍습니다. 이 말을 저만의 방식으로 조금 급진적으로 풀어보면 가볍다는 것은 상쾌하다는 것이고 늘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늙고 병든다는 그 ‘생노병사’의 ‘老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건강하게 자신의 수명을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수명은 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치명적일 정도로 줄고 있습니다. 질병의 고통에서 너무 긴 시간을 신음하며 목숨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빛의 존재지만 빛의 가벼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멀어진 음식에 너무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그렇게 느껴집니다.

어제 저녁 자리에서 30년가량 경찰 생활을 한 시골 친구가 갑자기 임사체험 이야기를 합니다. 그동안 직접 보고 듣는 거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였습니다. 서울대 정현채 교수의 임사체험 관련 책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 입에서 소위 비현실적 초월적 얘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 겨우 빛을 본다. 그것도 소수만이 볼 수 있다. 많은 사자들은 그 빛이 빛인 줄도 모르고 끌려간다. 그런데 우리는 빛을 먹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원래 살아있을 때 빛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