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11) GHB
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11) GHB
  • 최은상 최은상
  • 승인 2021.08.11 06:20
  • 업데이트 2021.08.12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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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B(gamma-hydroxybutyrate)는 카르복실산에 하이드록실기가 붙은 감마하이드록시뷰티르산 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GHB는 중독자들 사이에서 물뽕(액체로 된 히로뽕이라는 뜻)으로 불리지만 필로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GHB는 1874년 러시아 화학자 자이체프(Aleksandr Mikhaylovich Zaytsev)에 의해 처음으로 합성되었다. 1960년 프랑스 신경생물학자 라보리(Henri Laborit) 연구팀은 GHB의 약물학적 특성을 처음으로 보고하였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마취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GHB는 1980년대까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건강식품 가게에서 보디빌더들을 위한 영양보충제로 판매되고 있었다. GHB가 체지방을 낮추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여 근육량을 증가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GHB의 안정성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1990년 미국 FDA는 처방전 없는 GHB의 판매를 금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HB는 노상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Liquid X, George home boy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심지어 집에서 손쉽게 GHB를 제조하는 키트의 개발도 GHB의 남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GHB는 현재 낮 시간 동안 참기 어려운 잠에 빠지고, 밤에는 수면 장애를 보이는 증상(기면발작, narcolepsy)과 화를 내거나 놀랄 때와 같이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 갑자기 근육의 힘이 빠져 마비가 되는 증상(탈력발작, cataplexy)을 줄이는데 사용되고 있다.

감마하이드록시뷰티르산(GHB)

원래 GHB는 분말로 된 물질이지만 용액 형태로 조그만 샴푸 통 같은 데 담겨 판매된다(그림). GHB 용액은 투명하고, 냄새가 없으며 맛이 거의 없다. 한 번에 사용하는 GHB의 양은 약 1~3그램 정도이지만 4~5그램까지 사용할 때도 있다.

GHB는 위나 장의 혈류로 빨리 흡수되어 뇌혈관장벽을 쉽게 통과한다. 약물이 일으키는 심리적, 생리적 효과는 사용한 GHB의 양이 많을수록 증가한다. 대체로 저농도의 GHB는 유포리아나 술에 취했을 때 몸이 풀리는 듯 한 상태를 일으키지만 고농도에서는 강한 진정효과뿐만 아니라 졸음, 메스꺼움, 구토 증상도 나타낸다. 중독자가 GHB를 알코올이나 다른 진정제와 함께 사용하면 호흡 저하, 무의식, 심지어 혼수상태나 발작과 같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파를 분석한 연구에서 고농도의 GHB를 사용한 사람은 전신발작 없이 순간적으로 의식이 소실되었다가 되돌아오는 증상(소발작, absence seizure)과 유사한 반응을 일으킨다. 고농도의 GHB는 진정효과를 나타내기보다 오히려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발작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GHB는 뇌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GHB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와 구조적으로 매우 비슷하여 GABAB 수용체에 직접 작용하거나, GHB 대사체인 가바가 이 수용체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바 수용체가 아닌 GHB 수용체에 직접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GHB와 결합하는 수용체의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온통로가 아닌 대사성 수용체(metabotropic receptor)로 추정되고 주로 해마와 대뇌피질에서 많이 발견된다.

사람의 정서는 대체로 흥분성과 억제성 신경전달이 균형을 이루어 나타난다. 약물과 같은 외부적인 영향으로 균형이 유지되지 못하면 흥분 상태가 커지거나 억제되는 정서 장애가 일어난다. 가바와 같이 억제성 물질로 작용하는 GHB는 뇌 안에서 억제성 신경전달을 강화시켜 진정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하다.

GHB의 진정효과는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여 일어날 수 있다. 인체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곳은 대뇌의 운동피질(motor cortex)이다. 운동피질의 뉴런은 척수로 글루타메이트를 분비하여 골격근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이 움직임은 뇌의 기저핵 회로(basal ganglia circuitry)를 통해 대뇌 피질에서 분비되는 글루타메이트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조절된다.

기저핵 회로는 흑질에서 시작되는 도파민 뉴런이 선조체와 담창구의 가바 뉴런, 시상과 대뇌 피질의 글루타메이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선조체로 분비되는 도파민은 척수를 통해 조절되는 인체의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GHB가 선조체에서 도파민 분비를 감소시키면 척수로 분비되는 글루타메이트 또한 감소되어 사용자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이 풀리는 듯 한 상태를 일으킬 수 있다.

GHB의 반복적인 사용은 의존성과 내성의 증가를 일으킨다. GHB 중독자는 약물을 취하지 않으면 불면증, 불안감, 그리고 떨림과 같은 금단증상을 나타낸다. 중독자가 금단증상으로 인한 디스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해 GHB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환각과 섬망(delirium, 일시적으로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혼란한 정신 상태), 그리고 심리적으로 극도의 동요상태(agitation)를 일으킬 수 있다.

GHB는 2001년 개최된 제 44차 유엔 마약위원회(Commission of Narcotic Drugs, CND)에서 향정신성의약품(향정)으로 분류된 물질이다. 우리나라도 GHB를 향정 ‘라’목의 마약류로 지정하고 있다. GHB를 소지, 유통하거나 사용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의 벌금에 처하고 있지만 GHB를 이용한 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GHB는 케타민, 엑스터시와 함께 주점이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사용하는 데이트 강간 마약(date rape drug)이다. 외국 클럽에서는 G, 지나(Gina), 리퀴드 엑스터시(liquid ecstasy) 등의 은어로 통한다. 인터넷상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범죄를 부추기는 GHB 광고와 판매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GHB 남용의 심각성은 마약을 자신의 유포리아나 환각 트립을 경험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강제하여 성적 착취를 꾀한다는 것이다.

GHB는 약물의 특성상 체내에 잔류하지 않고 24시간 이내에 소변으로 빨리 배출되기 때문에 증거를 찾거나 추적이 어렵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17세 여학생들이 개발한 빨대(Smart Straws)는 GHB와 케타민이 들어있는 음료나 술에 꽂으면 빨대가 파란색으로 변한다. 마약 성분을 감지하는 매니큐어(Undercover Colors)를 바른 손톱을 마약이 들어있는 음료나 술에 담그면 매니큐어의 색깔이 변한다.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사전에 약물을 검출할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국내에서도 GHB의 남용은 버닝썬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로 드러났다. 유흥업소는 의무적으로 클럽 마약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여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관련 법률의 제정과 시행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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