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59) -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무심하면 절로 가까워진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59) -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무심하면 절로 가까워진다.
  • 허섭 허섭
  • 승인 2021.09.16 07:00
  • 업데이트 2021.09.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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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신(蘇漢臣)의 추정희영도(秋庭戱嬰圖)
소한신(蘇漢臣, 북송, 1094~1172) - 추정희영도(秋庭戱嬰圖)

259 -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무심하면 절로 가까워진다.

선(禪)에 이르기를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 잔다.’라고 했으니
시(詩)에 이르기를 ‘눈앞의 경치요, 보통의 말이로다.’ 라고 했으니

대개 지극히 높음은 지극한 평범 속에 깃들어 있고
지극한 어려움은 지극한 평이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무심하면 절로 가까워진다.

  • 禪宗(선종) : 불교의 교파를 크게 둘로 나누면 교리(敎理)를 참구(參究)하는 교종(敎宗)과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종(禪宗)이 있다. 여기서는 교파적인 의미보다는 다음에 나오는 詩旨와 대응을 이루는 단어로 ‘선의 종지(宗旨)’, 즉 ‘선의 가장 큰 요체(要諦), 가르침’ 을 뜻한다. 
  • 饑來喫飯̖倦來眠(기래끽반권래면) :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즉 일상의 생활 그대로인 평상심(平常心)을 강조한 선어(禪語)이다.
  • 詩旨(시지) : 시의 묘지(妙旨), ‘시의 묘한 맛’, ‘시의 참된 경지’ 를 가리키는 말이다. 
  • 景致(경치) : 풍경(風景).
  • 口頭語(구두어) : 일상생활에서 쓰는 보통의 말.
  • 蓋(개) : 대개
  • 極高(극고) : 매우 고상함.
  • 寓(우) : 깃들다. 본래 남에게 의지하여 사는 것을 뜻하나, 여기서는 ‘~에 있다’ 의 뜻.   * 우거(寓居) - 남에게 자신의 주거(住居)를 낮추어 가리키는 말이다.
  • 有意者(유의자) : 의도하는 바가 있는 것, 즉 일부러 기교(技巧)를 부리는 것.
  • 反遠(반원) / 自近(자근) : 도리어 멀어짐 / 저절로 가까워짐.

◈ 『마조록(馬祖錄)』 -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 잔다(饑來喫飯̖倦來眠)

◉ 『직지심경(直指心經)』 93   

祖云(조운) 道不用修(불수용수)요 但莫染汚(단막염오)이니라. 何爲染汚(하위염오)이오.  但有生死心(단유생사심)하야 造作趣向(조작취향)이 皆是染汚(개시염오)이니라. 若欲直會其道(약욕직회기도)인대 平常心(평상심)이 是道(시도)니라. 何謂平常心(하위평상심)고.  無造作(무조작)하며 無是非(무시비)하며 無取捨(무취사)하며 無斷常(무단상)하며 無凡聖(무범성)이라. 故(고)로 經(경)에 云(운)하사대, 非凡夫行(비범부행)이며 非聖賢行(비성현행)이 是菩薩行(시보살행)이라 하시니라. 

- 마조선사가 말씀하였다. “도는 수행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염오(染汚)되지만(더립히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을 염오라 하는가? 다만 생사심이 있어서 조작하여 나아가는 것이 모두 염오다. 만약 곧 바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造作)이 없고 시비(是非)가 없고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斷常)이 없고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범부(凡夫)의 행동도 아니며 성현(聖賢)의 행동도 아닌 것이 보살(菩薩)의 행이니라.’ 라고 하였다.” 

마조(馬祖道一마조도일 709~788) 선사에게는 대주(大珠慧海대주혜해 생졸연대 미상)와 백장(百丈懷海백장회해 720~814)이라는 뛰어난 두 제자가 있었다. 대주는 마조 선사의 즉심(卽心), 돈오(頓悟)의 선(禪)을 체계화시킨 대학자이기도 하다.

누군가 대주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도를 닦는 데 공을 들이십니까?”  “그렇다, 공을 들인다.”  “어떻게 공을 들이시는지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도 백 가지 잡생각을 하고, 잠을 잘 때도 오만 가지 망상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 또 다른 수행자가 대주에게 물었다.
“어떤 불법을 배우면 해탈(解脫)에 이를 수가 있습니까?”  “오직 돈오(頓悟)라는 법문(法門)만이 곧 해탈에 이를 수가 있다.”  “어떤 것이 돈오입니까?”  “쓸데없는 망상(妄想)을 버리고 무소득(無所得)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수행해야 합니까?”  “근본으로 돌아가서 수행을 하거라.”  “무엇이 근본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다. ‘성인(聖人)은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지 않는다. 우인(愚人)은 부처를 찾고 마음을 찾지 않는다. 지인(智人)은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가다듬지 않는다. 우인(愚人)은 몸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다듬지 않는다’ 라고.”

※ 慧海(혜해) : 당나라 때의 승려. 건주(建州, 福建)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주(朱)씨고, 세칭(世稱) 대주화상(大珠和尙) 또는 대주혜해(大珠慧海)로 불린다. 월주(越州, 浙江) 소흥(紹興) 대운사(大雲寺) 도지법사(道智法師)를 따라 출가하여, 처음에는 경교(經敎)를 배워 깨달은 바 있었다. 나중에 여러 지방을 다니다가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했다. 마조가 “제 집의 보장은 돌아보지 않고 내돌아다니면서 무얼 하려느냐?(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什麽)” 고 한 말에 본성을 깨달아 6년 동안 마조를 섬겼다. 누군가 몰래 전달한 제자의『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을 읽은 스승 마조가 “월주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빛이 꿰뚫어 자재하구나.(越州有大珠 圓明光透自在)” 라고 말했다. 이후 사람들이 그를 대주화상(大珠和尙)이라 불렀으니, 오도(悟道)한 뒤 월주로 돌아와 선지(禪旨)를 널리 떨쳤다. 저서에 어록(語錄) 2권과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1권이 있다.

◈ 이러한 마조의 법통은 그의 또 다른 제자 남전(南泉譜願남전보원 748~834)을 거쳐 조주(趙州從諗조주종심 778~897)에 이르러 최고의 선풍(禪風)을 일으키게 되니 ‘평상심(平常心)이 도(道)’ 라는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조주 선사의 화두인 <喫茶去(끽다거)> 와 <茶飯事(다반사)> 라는 말도 모두 이 가풍(家風)에서 나온 말이다.

◉ 『직지심경(直指心經)』 138  

趙州(조주)가 問南泉(문남천)호대 如何是道(여하시도)닛고.  泉云(천운) 平常心(평상심)이 是道(시도)니라.  師云(사운) 還假趣向不(환가취향부)닛가.  泉云(천운) 擬向(의향)에 卽乖(즉괴)니라.  師云(사운) 不擬(불의)하면 如何知是道(여하지시도)닛고.  泉云(천운) 道不屬知不知(도불속지부지)니 知(지)는 是妄覺(시망각)이오, 不知(부지)는 是無記(시무기)라. 若是眞達不擬之道(약시진달불의지도)하면 猶如太虛(유여태허)하야 廓然虛豁(확연허활)하니 豈可强是非耶(기가강시비야)아.  師(사)가 於言下(어언하)에 大悟(대오)하니라. 

- 조주 선사가 남전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심이 도니라.”  “또한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필요로 합니까?”  “향하여 나아가고자하면 곧 어긋나느니라.” “향하여 나아가고자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도를 압니까?”  “도란 알고 알지 못하는 것에 속해 있지 아니하니 안다는 것은 잘못된 깨달음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라. 만약 향하여 나아가지 않는 도를 참으로 통달하면 마치 저 허공과 같아서 시원하게 텅 비었나니 어찌 가히 구태여 시비하겠는가?”  조주 선사가 그 말을 듣자 크게 깨달았다. 

◉ 『무문관(無門關)』제19칙(則)에

南泉因趙州問(남천인조주문) 如何是道(여하시도). 泉云(천운) 平常心是道(평상심시도). 州云(주운) 還可趣向否(환가취향부). 泉云(천운) 擬向卽乖(의향즉괴). 州云(주운) 不擬爭知是道(불의쟁지시도). 泉云(천운) 道不屬知(도불속지), 不屬不知(불속부지). 知是妄覺(지시망각), 不知是無記(부지시무기). 若眞達不擬之道(약시진달불의지도) 猶如太虛廓然洞豁(유여태허확연통활) 豈可强是非耶(기가강시비야).  州於言下頓悟(주어언하돈오).

- 조주 스님이 남전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남전 화상은 ‘평상심이 도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조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면 되겠습니까?” 남전 화상은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곧 어긋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주가 반문했다. “하고자 않는다면 어찌 그것이 도임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남전화상은 말했다. “도는 아는 것에도 모르는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고, 모른다는 것은 멍한 상태일 뿐이다. 만일 진실로‘하고자 함이 없는 도’ 에 이르고자 한다면 허공처럼 확 트일 것이다. 어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겠는가!”  남전 화상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주 스님은 바로 깨달았다.
 

◈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상(上)에

道在邇而求諸遠(도재이이구저원) 事在易而求諸難(사재이이구저난). 

- (세상 사람들은) 도는 가까운 데 있는데 그것을 먼데서 구하고 일은 쉬운 데 있는데 그것을 어려운 데서 찾는다.

◈ 왕양명(陽明 王守仁 1472~1528)의 시

饑來吃飯倦來眠 (기래흘반권래면)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을 자네
唯此修行玄又玄 (유차수행현우현)  오직 이 수행만이 현묘하고 현묘하여
說與世人渾不信 (설여세인혼불신)  세상 사람들은 말해도 믿지를 못해
偏向身外覓神仙 (편향신외멱신선)  엉뚱하게 몸 밖에서 신선을 찾으려 하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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