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60 가을의 길목 - 달하, 달하, 달하, 달하.
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60 가을의 길목 - 달하, 달하, 달하, 달하.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9.21 07:00
  • 업데이트 2021.09.23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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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오늘은 추석이라 가을밤의 달, 그러니까 달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20억 한문문화권의 정신적 모태(母胎) 천자문(千字文)에 보면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日月)성신... >으로 해와 달이 첫 장 아홉 번, 열 번째의 글자로 나옵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과 별무리가 영화나 연극의 이름 없는 조연 외다수(外多數)로 나오는데 비해 해와 달은 이 우주의 구성에 있어 마치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같다는 이야기겠지요.

사실 태양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먹고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하는 유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독보적인 존재로 아무도 그에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그 무엇입니다. 그런가 하면 달은 그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존재지만 지상의 모든 생물의 탄생과 리듬을 조절하는 부드러우면서도 엄숙한 존재로 마치 태양은 가정의 아버지, 달님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괜히 목소리만 컸지 뒷감당을 못 하고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중년의 남편들을 아이들과 손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업은 아내들이 들었다 놓았다 전횡(專橫)하는 시절이 되어 어쩌면 달이 해의 역할을 많이 잠식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명절날 아침 이 멋쩍은 이야기를 왜 하느냐 궁금하겠지만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은 먼저 해를 숭배하는 설날을 만들고 달을 기리는 추석을 정했지요.

그런데 한국의 설이 사실은 태양의 리듬이 아닌 달의 주기에 따르는 짝퉁이라 태양력에 의한 양력설을 쇠어야한다는 일제의 방침으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양력설을 쇠게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이미 구닥다리가 된 구정을 내치지 않고 <설날>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양력설은 마치 데리고 온 자식처럼 신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신정>은 해의 명절, <추석>은 달의 명절, <설날>은 해의 외양에 달의 리듬을 가미한 한국형 명절이 된 것이지요.

또 그것도 모자라 특별히 달에 대한 보너스로 정월대보름이라는 명절도 하나 더 만들었으니 이건 아내를 <안해>로 불러 집안과 자신의 <내 안의 해>로 부르는 한국남성의 지극한 아내사랑의 지혜가 표출된 것입니다. 그러니 저 같은 소심한 남정네가 이렇게 길게 달 또는 아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여러분은 아침에 둥근 보름달처럼 동그란 호박떡을 잡수셨나요? 아니면 반달 같은 어여쁜 송편이라도...

굳이 꿈 많은 청소년이나 음유시인이 아니더라도 밝고 둥글고 넉넉한 보름달이 반갑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 보름달을 가장 잘 활용한 단어가 바로 <달항아리>라는 이름입니다. 가장 아늑하고 고요하면서 가장 빛나고 충만한 백자항아리를 빚어내는 것이 우리 한국인이 저력이라면 그 위에 그런 이름까지 찾아낸 것은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민족성의 백미인 것입니다.

그 달 중의 달, 추석이나 대보름달을 보고 연신 절을 하며 비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비손>만큼 간절한 소원이 어디 있을까요? 그야말로 달항아리에 가득 차듯 올해의 한가위도 모두의 소망이 비는 족족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느 시에선가 너무 밝고 황홀한 달을 보며 <달아, 달하!>라고 좀 격하게 감탄하는 구절이 보았는데 그 투박하고 억센 표현이 오늘 추석을 맞아 참 그럴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래 때늦은 가을장마로 오늘 한가위 달을 구경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녁이 되면 모두들 제 마음 속의 달을 보고 <달아, 달하>를 외치며 무엇이든 가장 절실한 소원을 빌어보시기 바랍니다.

달아, 달하! 달하, 달하!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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