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21) 달에게 박수를 보낸다
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21) 달에게 박수를 보낸다
  • 손현숙 손현숙
  • 승인 2021.09.18 11:19
  • 업데이트 2021.09.2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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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박수를 보낸다
                               손현숙

 

한강을 옆구리에 끼고 달 따라 걸었다
저 달, 컴퍼스로 돌려 그린 듯 환하다
똑 따서 주머니 속에 쏙 넣고 싶다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면 기분 달뜨겠다

온몸이 말초라서 건드리면 자지러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우 헤 헤~
터질 듯한 홍시에 혀를 살살 돌려 댄다
맛있게 침묵하며 오늘을 흘러갈 수 있겠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어도
지금, 저 달 따라 걸으며
저절로 피어서 저절로 웃고 있는 꽃처럼
나 그냥 달에게 박수치고 싶다

고개 숙여 큰절 한번 올려야겠다
어, 하늘이 살짝 기울고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
달은 화답하듯 몸을 낮춰 이지러지다
물결소리 문득 깊다, 가을밤이다

- 2008. 신생. 가을호

<시작메모>

매일, 밤의 강을 걷는다. 달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오늘 나는 무사한가, 묻곤 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만월에는 두 손 곱게 포갠 채 무엇인가를 빈다. 저 달 속에는 누가 사시는가. 그제는 남쪽의 친구에게 소식이 왔다. 달구경 가자~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옆구리에 달을 끼고 함께 걸었다. 만월은 야해, 아니 슬퍼, 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혼자 고개를 꺾어 허공 중에 매달린 차가운 불덩어리에 넋을 놓는다. 혼자 델까 봐, 뒷걸음쳤던 기억. 멀리 달아났던 한 장면. 그런 참 바보 같은 짓을 흉내 내면서도 여전히 달 따라 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아가위 열매가 붉게 익어가는 가을밤. 당신도 달처럼 야하고, 뻔뻔하고, 아름답고, 즐거워도 좋겠다. 추석이니까.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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