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64) - 무엇이든 짙은 것보다 맑은 것이 낫고, 부귀영화의 속됨보다 청빈의 고아함이 낫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64) - 무엇이든 짙은 것보다 맑은 것이 낫고, 부귀영화의 속됨보다 청빈의 고아함이 낫다.
  • 허섭 허섭
  • 승인 2021.09.21 07:00
  • 업데이트 2021.09.23 1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4 조맹부(趙孟부 1254~1322) 추교음마도(秋郊飮馬圖) 26.3+59 북경 고궁박물원
조맹부(趙孟頫, 1254~1322) - 추교음마도(秋郊飮馬圖)

264 - 무엇이든 짙은 것보다 맑은 것이 낫고, 부귀영화의 속됨보다 청빈의 고아함이 낫다.

고관대작의 행렬 속에 청려장 짚은 은사가 섞여 있으면 
한층 고상한 풍취를 더하고

어부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에 고위 고관이 섞여 있으면
도리어 속기만 더할 뿐이다.

실로 알지니, 짙은 것은 맑은 것만 못하고
속된 것은 고아한 것만 못하다.

  • 袞冕(곤면) : 원래는 곤룡포(袞龍袍)와 면류관(冕旒冠)을 말하나, 높은 벼슬아치의 예복(禮服)과 예관(禮冠), 전(轉)하여 고위(高位) 고관(高官)을 의미함.
  • 行中(행중) : 행렬(行列) 중에, 일행(一行) 중에.
  • 著(착) : 들어 있음, 섞여 있음. 정확히 말하자면 ‘곁들이다’ 의 뜻이다.
  • 藜杖的山人(려장적산인) :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은사(隱士).
  • 高風(고풍) : 고상한 풍취(風趣), 즉 고상한 품격.
  • 漁樵路上(어초로상) : 어부(漁夫)와 나무꾼(樵夫)이 다니는 길 위.
  • 袞衣的朝士(곤의적조사) : 예복을 입은 고위 고관.  朝는 조정(朝廷).
  • 轉(전) : 더욱, 한층 더. 도리어, 오히려. 
  • 許多俗氣(허다속기) : 허다한 속된 기운.
  • 濃(농) / 淡(담) : 짙음 / 맑음, 농후(濃厚) / 담백(淡白), 곧 ‘부귀(富貴) / 청렴(淸廉)’ 을 뜻한다.
  • 不勝(불승) / 不如(불여) : ~을 이기지 못함 / ~과 같지 못함, 곧 ‘~함만 못하다’ 는 말이다.
264 조맹부(趙孟부 1254~1322) 욕마도(浴馬圖) 28.1+155.5 左 북경 고궁박물원
조맹부(趙孟頫, 1254~1322) - 욕마도(浴馬圖)(左)
264 조맹부(趙孟부 1254~1322) 욕마도(浴馬圖) 28.1+155.5 右 북경 고궁박물원
조맹부(趙孟頫, 1254~1322) - 욕마도(浴馬圖)(右)

◈ 『채근담』에 나오는 ‘著(착)’ 이라는 글자에 대하여

『채근담』에 나오는 著는 대개 ‘붙을 着(착)’ 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著는 독음(讀音)을 ‘저 / 착’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는데, 著는 着의 본자(本字)이면서 着이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드러날 저 : ‘분명하게 나타내고 드러난다’ 의 뜻으로  ‘책을 쓰고 기록한다’ 는 뜻의  ‘지을 저’ 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저명(著名) 현저(顯著) 저작(著作) 
② 둘 저 : ‘두다, 비축하다(貯)’ 의 뜻으로도 쓰인다.
③ 뜰 저 : 뜰(廷)
④ 붙을 착 :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신을 신는 것’ 을 비롯하여,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내거나 일을 시작하는 것’ ‘정착하다’ 에까지 확장해서 쓰인다.    착상(着想) 착안(着眼) 착수(着手)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著는 ‘지을 저 / 나타낼 저’ 나 ‘붙을 착’ 두 가지로 사용되는데, 着은 오로지 ‘붙을 착’ 으로만 쓰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箸는 ‘젓가락 저’ 로 완전히 별개의 글자이다.

◈ 청려장(靑藜杖)에 대하여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인 명아주의 대로 만든 지팡이.   

명아주의 대로 만든 지팡이를 말한다. 중국 후한 때 사용했다는 것이 기록에 전해지며,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長壽)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청려장을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또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 는 기록이 있고, 민간신앙에서도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귀한 지팡이로 여겼다.

특히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우며, 모양 또한 기품과 품위가 있어 섬세한 가공 과정을 거칠 경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 예부터 환갑을 맞은 노인의 선물용품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50세가 되었을 때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청려장을 가장(家杖)이라 하고, 60세가 되었을 때 마을에서 주는 것을 향장(鄕杖), 70세가 되었을 때 나라에서 주는 것을 국장(國杖), 80세가 되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것을 조장(朝杖)이라고 하여 장수한 노인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짚고 다니던 청려장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92년부터는 ‘노인의 날’ 에 그해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대통령 명의로 나라에서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다. 이처럼 청려장은 전통 장수 용품이자 민속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