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추석빔 - Leeum 김종숙
[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추석빔 - Leeum 김종숙
  • Leeum Leeum
  • 승인 2021.09.21 07:30
  • 업데이트 2021.09.2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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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빔
                            김종숙

나 어릴 적 울 엄마는
이맘때쯤 목욕탕에도 가고 미장원에 들려서 머리도 자르고
신시장 앞에 소라 양품점에서 노란 원피스를 사 입혀 주시면서
주인에게 내년에도 또 입게  한 치수 큰 거로 골라 입혀 달라 해 놓으시고서
어구 어구 우리 신가다 막내딸, 참 이쁘다, 뭘 입혀놔도  귀엽네  라고 하셨다
소매 끝을 두 번 위로 접어서 손을 흔들고 걸어가면  접은 소매 끝이 자꾸 내려오곤 했었다
그땐  콧물도 어찌나 잘 흘렸는지 눈 대대 코대대 라는 말도 귀에 익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명절이 오고 그때마다 엄마는 때때 옷도 운동화도 한 치수 큰 걸로 사 주셨다
설이 지나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두 번 지내고 나면 초승달이 반달이 되어 달리고
여름 지날 무렵 보름달이 뜨면 또 추석이었다

키도 다 크고 늘씬 날씬한 나를 시집보낼 때도 아이 낳고 나면 허리도 어깨도 방방하게 불어난다고  모시적삼과 모시 저고리 두 개를 고슬고슬하게 물갈이해 입으라고 한 치수 크게 만들어 주셨다
팔 남매를 기르신 울 엄마는 무엇이든 가늠 잡아 하셨다
​밥물로 풀을 하고 꼬득꼬득 할 때 손끝으로 말린 모시를 펴고 다림질한 흰모시에 자르르하게 감색 치마를 받쳐 입고 성당에 가면 다들 나만 쳐다본다

​오늘은 종일 서늘하다 내 마음도 그랬다
엄마가 계시면 엄마 추석빔은 내 손으로 지어 입혀 드리면서
엄마,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마끄라 킴이 만든 명품이에요 하고 
자랑도 했을 텐데..
구월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적삼을 입은 내 모습에서 치맛자락 한 손으로 잡고 계방 가시던  엄마를 본다
두루뭉술한 체형에 무엇을 입어도 우아하신 우리 어머니라는 립 서비스를 자주 하는 아이가 퇴근해서 들어오더니 하얀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어머나, 평소에 입고 싶었던 그 옷이다 세련된 손수건까지...
안목 역시 나 닮지 않았다
어머, 베이지, 베이지, 좋네, 좋으네, 참 좋다
엄마처럼 나도 근사하게 감동 언어를 연발했다

아이가 추석빔을 해주었다

<시작노트>
추석안부
그 어느때보다 
마음에 행복 가득 하시고
그 무엇보다
코로나19로부터 
무탈한 추석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芝室 김종숙

◇Leeum 김종숙 시인은

▷2021 한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수상
▷문예마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정회원, 문예마을 정회원
▷시야시야-시선 동인
▷동인지 《여백ㆍ01》 출간
▷대표작 《별들에게 고함》 외 다수
▷기획공연- 다솜우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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