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6) 경주, 천년의 역사가 오롯이 가슴에 흐른다
[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6) 경주, 천년의 역사가 오롯이 가슴에 흐른다
  • 박홍재 박홍재
  • 승인 2021.09.28 11:25
  • 업데이트 2021.09.3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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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둔치 해바라기밭
해를 닮은 해바라기

여행은 갈 곳을 정해 놓고 하나씩 준비하는 방식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찾아가는 방식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첫 번째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그곳에 대한 열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주로 향하는 길은 그나마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이다.

내 고향 기계를 버스로, 자동차로 오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에 들러 역사의 현장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가장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모두가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난 후 남은 친구들이 왔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그 첫 인상이 매우 기억에 남는다. 사진으로도 한 번씩 보면 참 촌뜨기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황성공원으로 간다. 거기에는 소나무 숲이 이룬 사이에 맥문동이 즐비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생활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황성공원 소나무 숲의 맥문동
맥문동

언덕 위에 김유신 장군 동상이 북으로 보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중학교 역사 선생님 말씀이 본래는 남으로 말머리가 되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북으로 돌리라고 해서 돌렸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항상 황성공원을 생각하면 떠오르기도 한다.

푸른 잎과 자줏빛 꽃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 어쩌면 민초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햇빛이 들어오면 그 색이 많이 반짝거린다.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걷는 이의 뒷모습도 함께 담으며 더욱 사진은 살아난다.

경주에는 곳곳에 많은 곳에 볼거리도 만들어 주었다.

교동 곁을 흐르는 남천 둔치에 해바라기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둔치에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모습을 언덕에서 혹은 내려가서 오솔길에서 멀리 연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해바라기는 반 고흐가 그려서 더욱더 사람들에게 친근해져 있다. 노란 잎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동네 이름이 ‘천원동’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해바라기와 자신을 드러내면서 찍고 또 찍는다.

배롱나무 사이 첨성대
황하 코스모스

또 다른 곳 첨성대로 간다. 첨성대만 해도 넘쳐나는 볼거리이지만 그 주위에 퍼져 있는 각가지 꽃밭에 눈길이 간다. 아마도 그 꽃 종류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튤립, 플록스, 황하 코스모스 천인국, 비비추, 도라지, 맨드라미, 핑크뮬리, 접시꽃, 양귀비 등등 수도 없다. 아마도 꽃 이름만도 꽉 차는 기분이다. 특히 백일홍과 어울린 모습도 참 신선하다.

또 건너편에 계림 숲과 반월성, 월지 등 그 둘레에 많은 역사가 살아 숨을 쉬고 있다. 아마도 경주를 구경하려면 한 달도 모자랄 것 같다. 배롱나무와 어울린 모습이 더 멋스럽다. 또 주위 모습과 어울린 첨성대는 본래의 모습에서 더 진화된 모습이다.

서출지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고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사적 138호 서출지에서 연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차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경주를 한 바퀴 돌아본다.  <글, 사진 = 박홍재>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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