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80) - 내가 있음조차 모르거늘 어찌 이 몸뚱이가 나일 수 있으리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80) - 내가 있음조차 모르거늘 어찌 이 몸뚱이가 나일 수 있으리오
  • 허섭 허섭
  • 승인 2021.10.07 07:00
  • 업데이트 2021.10.08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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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대진(戴進 1388~1462) 동천문도도(洞天問道圖) 210.5+83 북경 고궁박물원
대진(戴進, 1388~1462) - 동천문도도(洞天問道圖)

280 - 내가 있음조차 모르거늘 어찌 이 몸뚱이가 나일 수 있으리오

세상 사람들은 오직 나라는 것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까닭에
온갖 기호와 번뇌에 붙들려 벗어나지 못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있음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물건의 귀함을 알리오’ 했으며

또 이르기를,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닌 것을 안다면 번뇌가 어찌 나를 삼키리오’ 했으니

(이는) 참으로 진리를 간파한 말이다.

  • 只(지) : 다만, 오직.
  • 緣(연) : ~ 때문에, ~로 말미암아.  ‘因(까닭 인) / 由(말미암을 유)’ 와 같은 뜻이다.
  • 認得(인득) : 알아차리다, 인식하다.
  • 太眞(태진) : 지나치게 참된 것.
  • 種種(종종) : 갖가지, 온갖. 
  • 嗜好(기호) : 좋아하고 즐기는 것.
  • 前人(전인) : 전대(前代 앞선 시대)의 사람, 고인(古人), 옛 사람.  여기서는 도연명(陶淵明)을 말함.
  • 安(안) : 어찌.  ‘편안할 安’ 자가 ‘어찌’ 라는 부사로도 쓰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 又云(우운) : 또 이르기를, 다시 말하기를.
  • 更(갱) : 다시.  ‘고칠 更경’ 이 ‘다시’ 라는 부사로도 쓰인다.
  • 眞(진) : 진실로, 참으로.  여기서는 ‘진리’ 라는 명사가 아니라 부사로 쓰인 것이다.
  • 破的之言(파적지언) : 진리를 간파(看破)한 말.  여기서 的은 ‘과녁, 목표물’ 이라는 뜻이다.  즉, ‘이치를 꿰뚫은 적중(的中)한 말이다’ 라는 뜻이다.

◈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 중에서

飮酒 十四  - 옛 친구들 나를 반기어

故人賞我趣 (고인상아취)  옛 친구들 나를 반기어
挈壺相與至 (설호상여지)  술병 들고 무리 지어 찾아왔네
班荊坐松下 (반형좌송하)  소나무 아래에 자리 까니
數斟已復醉 (수짐이부취)  몇 잔의 술에 이내 취했네
父老雜亂言 (부노잡난언)  마을 사람들 어지러이 떠들고
觴酌失行次 (상작실행차)  술 따름의 순서도 잊어버렸네
不覺知有我 (불각지유아)  내가 있음조차 알지 못하는데
安知物爲貴 (안지물위귀)  명리 귀한 줄을 어찌 알리 
悠悠迷所留 (유유미소유)  한가로이 마시고 즐기노라니
酒中有深味 (주중유심미)  이 술 단지 속에 세상살이의 깊은 맛(뜻)이 있구나 

◈ ‘나 아(我)’ 자(字)에 대하여

문자학(文字學)에서는 我 자는 대개 무기(武器)의 형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我 자가 <손(手)에 + 창(戈)을 들고 있는 모습> 으로 두 글자의 합체자가 我인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에서는 실제로 칼날이 톱니 모양인 무기 형상으로 나타나 있다. 즉 쇠스랑(삼지창)이 머리 부분에 옆으로 달린 창이다. 이 무기는 상대방을 찌르는 용도보다는 상대방을 내리찍거나 상대방 무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무장을 해제시키는 기능에 적합한 모양새이다. 따라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야 하니 자기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 이라 한다.

물론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하는 것이기에 我는 ‘우리(吾等)’ 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은 상대(敵)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我는 대자적(對自的) 개념으로 쓰이지 즉자적(卽自的) 개념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너가 있기에 나가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상고시대에 있어서 我 자는 항시 상대가 전제되어 있을 때에만 我 자를 썼다는 것이다.

◈ 불교에서 말하는 아만(我慢)에 대하여

아만(我慢)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③ 산스크리트어 ahaṃkāra 상캬 학파에서 설하는 이십오제(二十五諦)의 하나로, 자의식(自意識)을 말함.

사만(四慢) - 4가지 교만한 마음. 

(1) 증상만(增上慢) : 최상의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이미 얻은 것처럼 교만하게 우쭐대는 일
(2) 비하만(卑下慢) : 남보다 훨씬 못한 것을 자기는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 
(3) 아만(我慢)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4) 사만(邪慢) : 덕이 없는 사람이,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 내가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운 글이 ‘바둑아, 바둑아! 이리노 저리노! 철수가 말탔습니다(주인공은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 였는데, 이를 두고 철학이 없는 동물 수준의 교육이라 (바둑이는 개다) 뭇매를 맞고 그 뒤에 나온 교과서는 ‘나, 너, 우리, 우리 나라,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주의 이념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나와 너가 합치면 우리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나나 너보다 우리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우리만 있었는데 우리 안에 어느 날부터 나가 아닌 너가 보일 때 비로소 우리가 나와 너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국가의 기원이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되어 국가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바깥의 너희들을 우리가 정복하여 우리 속에 강제로 편입하여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국가의 기원에 대한 사회계약설이야말로 허구 중의 허구이며 영토정복설이 엄정한 역사적 사실(fact)인 것이다.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 우리인 것이다. '우리we' 와 '우리cage' 는 원래 같은 말이었다.)

나와 너가 하나여서 알고 보니 내가 곧 너이고 너가 곧 나라면 굳이 전쟁이라는 살육(殺戮)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되어야 했을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결혼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이 가장 오래된 문화요 제도임에 틀림없으나 오늘날 가족제도가 위기에 봉착하였음에 반해, 국가라는 괴물은 아직도 개인을 억압하는 엄연한 절대적 권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등장은 정말 일천(日淺)한 역사이나 그 기간에 비해 국가를 절대 이념으로 신봉하는 국가주의는 더욱 맹렬한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근대사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싸운 기록이라면 현대는 가히 민족을 해체한 국가주의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대이며,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는 국가주의를 넘어 세계가 하나가 되는 세계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은 거대 자본이 국가를 무력화시키면서 국가의 경계마저 허물고 전 세계를 무차별 유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단 막가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인류의 역사를 마르크스가 입에서 시작하여 똥구멍까지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니 백분 양보하여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자본주의가 발생하고 발전해온 단계적인 역사상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작금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막가파 자본주의에 맞서 세계 인민이 어떠한 저항을 펼쳐 나갈 것인지, 그리하여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가능할 것인지, 하물며 발길에 나뒹구는 저 돌멩이 하나까지도 생명으로 보는 만물일여(萬物一如)의 ‘제물론(齊物論) - 물활론(物活論)의 시대’ 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는지 ……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부르짖은 천하주의(天下主義)가 가족과 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면,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 라고 갈파(喝破)한 묵자(墨子)야말로 시대의 한계를 넘어 진정 인간을 사랑한 대사상가였으며, 새와 나무와 돌멩이 하나도 다 나와 같은 생명이라 말한 장자(莊子)야말로 태양계 너머의 새로운 우주 시대가 도래(到來)할지라도 영원히 살아남을 진정한 대철학자일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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