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5) 수평선에 대한 두 가지 생각
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5) 수평선에 대한 두 가지 생각
  • 김광석 김광석
  • 승인 2021.10.13 11:38
  • 업데이트 2021.11.1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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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낯설고 어려운 물리학을 동화처럼 들려줄 수 없을까?
『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수평선' 중에서
『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수평선' 중에서

머리 위로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은 언제나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아 보인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보다 높이 떠 있는 구름, 그보다 더 높은 곳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오래전 인류는 이런 상상을 통해 까마득하게 먼 하늘 위 어디쯤 신들이 사는 천상을 믿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은 그 믿음에 대한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향한 여정은 쉽지 않다. 지상의 삶은 자유로운 수직 운동을 허락하지 않기에 도약을 꿈꾸는 자를 예외 없이 추락시킨다. ‘날개’는 지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천상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지만 천상의 ‘날개’는 오로지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된다. 천상의 삶이 ‘영원(eternity)’의 속성을 지닌다지만 살아서 경험할 수는 없다.

반면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은 좀 달라 보인다.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날개’ 같은 도구 없이 쉬지 않고 노를 저어가면 언제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방법이 영원에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곳은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다른 믿음을 만들어 낸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은 누군가에게는 그 경계를 직접 경험하고 싶은 강렬한 동기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영원의 신성함으로 인해 오히려 여정의 의욕을 상쇄시키기도 한다. 하늘을 성스럽게 만든 동력은 살아서 닿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좋든 나쁘든 닿을 수 없는 곳은 이상적 장소나 믿음이 되기 쉽다.

투명 난간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은 관찰자의 눈높이에 따라 위치가 바꾼다.
투명 난간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은 관찰자의 눈높이에 따라 위치가 바뀐다.

이번 여름휴가는 숙소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보냈다. 우연히 발코니 투명 난간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수평선의 높이가 낮아진 것을 발견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가 내 시선의 높이에 따라 바뀐 것이다. 일상의 이 경험을 예사롭지 않은 시선으로 본 사람이 오래전에도 있었다. 11세기 페르시아의 알-비루니(Al-Biruni) 역시 수평선을 내려다본 각도가 관찰자의 눈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를 고민했다. 친구들과 함께 바라본 별과 달은 관측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지점에서 보인다. 왼쪽으로 수 미터 떨어진 친구가 내 앞에 있는 별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목마를 탄 아이에게 달의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지는 않는다. 별과 달처럼 무한히 떨어진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들은 관측자의 작은 위치 이동과 무관하게 여러 개의 평행광선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동하며 별이나 달을 보면 자신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수평선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수평선의 위치도 관찰자의 눈높이와 무관하게 똑같은 위치에서 보여야 한다. 하지만 수평선을 보기 위해서는 정면을 응시하는 직선을 기준으로 시선의 각도를 낮추어야 한다. 눈높이에 따라 수평선을 바라보는 각도도 바뀐다. 따라서 수평선은 무한으로 취급할 만큼 먼 곳에 있지 않다. 그 각을 θ라고 하면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점 S에서 점 A까지 연결한 호의 길이가 된다. ‘알-비루니’는 이런 해석을 통해 지구의 반지름도 추정했다. 인공위성 사진의 존재조차 모르던 그 옛날, 지구의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수평선을 응시한 그의 머릿속에는 고래 등보다 큰 지구의 곡면이 떠올랐을 것이다. 알-비루니에게 수평선은 영원으로 상징되는 신비의 장소나 무한하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평선은 멀리 있기는 하지만 도달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소였던 셈이다. 일상의 시선을 어떤 언어로 풀어내는가에 따라 수평선이라는 대상은 신비스러운 영원이 되기도 하고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실재가 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알-비루니’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각을 이용해 지구의 반경과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페르시아의 알-비루니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각을 이용해 지구의 반경과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그런데, 수평선의 위치를 알려주는 빛의 정보는 믿을만할까? 빛은 물질을 굴절률로 느낀다. 가령, 공기에서 물속으로 들어간 빛은 경계에서 경험한 매질의 다름을 굴절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물질은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지상 위의 공기 역시 분자들로 채워진 기체 상태의 물질이다. 만약 수평선에서 출발한 빛이 관측자의 눈에 도달하는 긴 여정 동안 공기의 물질적 속성이 바뀐다면, 빛은 즉각 그 변화를 감지해 굴절한다. 차가운 바다의 수면으로부터 높아질수록 공기는 쉽게 데워질 수 있다. 높이에 따라 온도가 증가해 공기밀도가 감소하면 빛은 바다 위의 공간을 여러 겹의 이질적인 층이 포개진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빛에게 바다 위 공간은 높이에 따라 굴절률이 점진적으로 작아지는 매질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평선에서 출발한 빛은 휘어진 궤적을 따라 관측자의 눈에 도달한다. 하지만 빛이 지나온 복잡한 사연을 모르는 관측자는 빛이 자신의 눈앞에서 곧장 들어왔다고 착각한다. 만약 높이에 따른 굴절률 변화가 크다면, 먼바다의 배가 하늘에 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높이에 따른 굴절률 변화를 고려하면, 수평선은 알-비루니가 추정한 위치 A보다 조금 더 먼 B로 확장된다. 수평선을 보기 위해 시선을 낮추는 각 역시 θ′́으로 조금 줄어든다.

예를 들어 눈높이 170cm인 사람이 점 E에서 바다를 응시하는 경우, ‘알-비루니’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수평선까지의 거리(점 S에서 점 A까지의 곡선거리)는 대략 4.6km, 수평선을 내려다보는 각 θ는 0.042°다. 반면 높이에 따른 평균적 굴절률 감소를 고려하면 조금 멀어진 수평선 점 B까지의 거리는 5.0km가 되고 내려다보는 각은 θ́′= 0.038°로 줄어든다. 만약, 지상 10m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간다면 수평선은 약 12km까지 확장되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θ́′= 0.093°로 더욱 낮춰야 한다. 좀 더 따져보면, 지구가 완전한 구형에서 벗어난 타원체라는 점과 수평선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광학적 번짐 효과도 있지만, 해당 오차를 극복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꽤 정밀하게 수평선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차가운 수면에서 높아질수록 온도가 증가하는 공기는 수평선에서 출발한 빛이 관측자에게 휘어져 들어오게 만든다. 그 결과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A에서 B로 확장되고, 배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차가운 수면에서 높아질수록 온도가 증가하는 공기는 수평선에서 출발한 빛이 관측자에게 휘어져 들어오게 만든다. 그 결과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A에서 B로 확장되고, 배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분명 인간은 날개를 지니고 태어나지 못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날개를 지니고 있다. 물리학은 이 수학적 상상의 날개를 통해 바다를 품은 지구의 크기뿐만 아니라 태양과 달의 크기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수십억 광년의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은 먼 우주의 풍경을 그려내고, 머리카락 두께의 수만 분의 일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세상 속의 떨림도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려내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을 묘사하는 화가와 시인처럼, 물리학자들에게 수학은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묘사할 수 있는 특이한 언어인 셈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상상은 과학기술을 통해 마침내 현실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도 그들은 풀리지 않는 수식과 씨름하며 이상(李箱) 소설의 마지막 장면 같은 날갯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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