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7) - 인생은 변수의 연속
청년 김도훈의 '나를 찾는 산티아고 순례' (47) - 인생은 변수의 연속
  • 김도훈 기자 김도훈 기자
  • 승인 2021.11.02 07:30
  • 업데이트 2021.11.03 10:3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30일차(2020. 03. 05)
포르토마린(Portomarin)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26km 구간
포르토마린(Portomarin)의 아침 풍경

지난 2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한국의 상황이 나날이 심각해져 갔을 때, 더 나아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코로나 청정구역이었다. 그래서 스페인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고 서울역 방역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와 심각하네. 여긴 완전 평화로운데’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갑자기 확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인생은 늘 알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오늘은 아침부터 필자가 싫어하는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아시아나 항공에서 스페인-한국 직항편을 휴항한다는 카톡을 받게 된 것이다. 어제 지인이 아시아나 항공이 스페인-한국 직항편을 일시 중단한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때도 그저 낙관하고 있었는데, 순례길 막판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굵은 비를 맞으며 걷는 필자. 표정에 근심이 가득하다.

원래의 계획은 순례길 완주 이후 스페인 여행을 한 다음 3월 23일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였는데 어떻게 된 건지 항공권을 부랴부랴 확인해보니 출국 장소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변경되어 있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바뀌면 독일까지는 어떻게 가라는 거지?? 변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으랴, 누구나 그렇듯 마음 평온하게 순탄히 흘러가는 것이 제일 좋은데 순례길 막판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에 아침부터 급 신경이 쓰이면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에서 필자가 항공사에 직접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급히 한국에 있는 사촌 누나에게 SOS를 요청했다. 자초지종 설명과 함께 항공사 연락을 부탁했는데, 아뿔싸 하필 한국시간이 오후 끝자락이라 지금은 상담사 연락이 불가했다. <스페인은 한국보다 시차가 8시간 느리다. 썸머타임 적용 시 7시간 차이> 내일 아침(필자가 자고 있을 시간)에 연락 해 본다고 했지만, 불확실한 상황과 미래로 인해 당장은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몬테로소(Monterroso) 지역을 지나며 발견한 이정표. 이제 78km 남았다!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안’이다. 따라서 이를 떨쳐내기 위해 문의도 넣어 보고 빠르게 대도시 마드리드로 넘어가야 하나는 생각에 항공편을 찾아보는 등 나름 이런저런 신경을 쓰면서 오늘의 여정을 걸어갔는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구간 영적인 기쁨을 느끼는 것은 물 건너갔음을 직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ㅠㅠㅠ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날씨도 안 좋았다. 지금까지 순례길 중에서 가장 굵은 비가 내려 우비와 스패츠 사이로 빗물이 젖어 무릎이 시려올 정도였다. 지난 사리아(Sarria)까진 어떻게 냅다 달렸는지 모를 정도로 걷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는데, 순례길 여운 및 기쁨을 느끼긴커녕 3종 악재(대외적인 혼란, 비 오는 날씨, 처진 기분)를 맞으며 정신없이 힘들게 걸어간 하루였다.

비가 오다 갑자기 해가 뜨는 순례길의 풍광. 목적지가 코 앞이다.

그래도 바에 들러 휴식을 취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한 지금 계속 걱정해봐야 별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생각했는지 오후 들어선 뜬금없이 터진 철현행님의 큰기침 소리에 빵 터져 웃기도 하고 이런저런 롤 이야기를 하면서 밝게 걸어갈 수 있었는데, 거기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은우가 ‘아직 한국 난리다. 이참에 독일 가서 놀고 한국엔 늦게 돌아와라!’ 이야기를 해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발상의 전환과 함께 긍정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는 내내 계속 비 오다가 해 뜨고 비 오다가 해 뜨는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뚫고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도착했다. 오늘 알베르게는 감사하게도 상태도 좋은데다 무엇보다 각자 침대에 커튼까지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혼자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근심 및 머리도 비울 겸 어제에 이어 군주론을 읽기도 하고 일기를 쓰면서 자유 시간을 만끽하였다. 이후 밥을 먹고 마트에 들려 내일 식량 준비까지 마무리한 다음 유랑 카페 및 각종 사이트에 들어가 현재 돌아가는 상황과 정보를 살펴보았는데, 스페인에서 독일로 가는 리프트 항공권을 제공해준다는 글이 보이기도 하고 필자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많아 보여 안심이 되기도 했다.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알베르게 개인 공간에서 독서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필자.

일단은 내일 사촌 누나가 항공사에 연락해본다고 했으니 나름 순조롭게 착착 해결되기를 바라며 자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과 미래. 어떻게 흘러갈지,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잘 풀려나가기를!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순례길 이후론 항공권 외에 일정은 따로 예약한 게 없어서 항공권만 잘 해결된다면 따로 취소 & 위약할 일은 없다는 점이다. <글, 사진 = 김도훈 기자>

<인문학당 달리 청년연구원, 본지 편집부위원장 eoeksgksep1@injurytime.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