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0) - 삶과 죽음의 맥놀이
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0) - 삶과 죽음의 맥놀이
  • 김광석 김광석
  • 승인 2021.11.17 16:57
  • 업데이트 2021.11.19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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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그림으로 읽는 감성물리』
낯설고 어려운 물리학을 동화처럼 들려줄 수 없을까?

소리는 떨림이다. 저음은 떨림의 주기가 길고, 고음은 주기가 짧다. 인간은 1초에 스무 번 정도 떨리는(20Hz) 극저음부터 2만 번까지 빠르게 떨리는 (20,000Hz) 초고음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높이의 음들이 모두 음악이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발성 중에서 선택된 모음과 자음으로 언어가 만들어지듯 음악도 소리의 바다에서 건져낸 특별한 ‘음’으로 구성된다. 라디오 방송 역시 특별한 주파수에서만 들을 수 있다. 언어와 음악 모두 ‘간격’과 ‘선택’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특별한 주파수의 소리를 선택해 만든 ‘음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속 전자도 특별한 주파수만을 지닌 ‘에너지 음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특별한 주파수의 소리를 선택해 만든 ‘음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속 전자도 특별한 주파수만을 지닌 ‘에너지 음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미시세계도 그렇다. 확률이라는 기이한 속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전자도 파도의 모습으로 출렁이는 파동이다. 전자의 떨림 주파수가 작으면 에너지가 작고 주파수가 크면 에너지도 크다. 선택된 소리 주파수로 구성된 ‘음의 계단’처럼, 전자도 특별한 주파수로 구성된 에너지의 계단을 지니고 있다. 음계가 E4(329.63Hz)와 F4(349.23Hz) 사이의 소리를 허락하지 않듯 원자 속 전자도 에너지 ‘간격’을 뛰어넘어야 하는 건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원자 속 전자도 음악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기타의 가장 굵은 줄은 E2로, 다음 줄은 A2로 조율된다. E2 줄의 다섯 번째 칸을 누르면 두 번째 줄의 A2 음과 같다.
기타의 가장 굵은 줄은 E2로, 다음 줄은 A2로 조율된다.
E2 줄의 다섯 번째 칸을 누르면 두 번째 줄의 A2 음과 같다.

노래는 피아노 건반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음들에 목소리를 맞출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소리를 낼 수 있는 물체 역시 악기가 되기 위해 조율이 필요하다. 기타의 제일 굵은 줄은 E2(82.41Hz)이고, 다음 줄은 A2(110.00Hz)이다. E2와 A2는 피아노 맨 왼쪽에서부터 나열된 음계를 올라가다 만나는 2번째 ‘미’와 2번째 ‘라’를 의미한다. 기준이 되는 ‘도’는 C4(261.63Hz)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E2 음의 줄을 정확히 조율한 후 다섯 번째 칸에 손가락을 짚고 튕겨도 A2 음이 만들어진다. 즉, 다음 줄을 그냥 튕겨서 내는 A2와 같아야 한다. 만약 두 음이 다르다면 A2 줄은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은 기타 머리 부분에 연결된 줄감개를 돌리면 된다. 줄감개는 줄을 느슨하게 풀거나 뻣뻣하게 조여 줄의 장력 변화로 음을 조절한다.

절대음감의 예민한 귀를 지니고 있다면 각각의 줄을 따로 조율할 수 있지만, 미세한 음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초보자는 ‘맥놀이’ 현상을 이용하면 된다. 가령, 기준이 되는 가장 굵은 줄에 손가락을 눌러서 만들어 낸 A2(110Hz) 음과 그 음과 미묘하게 다른 A2스러운 114Hz의 두 번째 줄을 동시에 튕기는 경우, 두 음이 합쳐져 만들어진 소리는 세기가 커졌다 작아지는 맥놀이 현상을 보인다. 음에 둔감한 사람의 관점에서는 두 음을 따로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하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두 음을 동시에 들으면 소리의 세기가 울렁거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 줄의 다섯 번째 칸을 짚어서 발생한 A2(110Hz) 음이 조율이 안된 두 번째 줄의 114Hz와 합해지면 ‘맥놀이’를 일으킨다. 즉, 소리 세기가 커졌다 작아지는 주기적 울렁임을 보인다.
첫 번째 줄의 다섯 번째 칸을 짚어서 발생한 A2(110Hz) 음이 조율이 안 된 두 번째 줄의 114Hz와 합해지면 ‘맥놀이’를 일으킨다.
즉, 소리 세기가 커졌다 작아지는 주기적 울렁임을 보인다.

맥놀이의 주기는 두 음의 차이에 반비례한다. 즉, 두 음의 주파수 간격이 크면 울렁거리는 주기가 짧고 음이 미세하게 다른 경우는 울렁거리는 주기가 상대적으로 길다. 만약 두 줄의 음이 완전하게 일치하면 맥놀이 주기가 무한대가 된다. 즉, 울렁임이 사라진다. 따라서, 처음 두 음이 터무니없이 달라 울렁거림의 주기가 아주 짧게 들리다 조율을 통해 음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점차 울렁거림의 주기가 길어지고, 두 음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순간 울렁거림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맥놀이는 완전한 일치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미완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징표인 셈이다.

두 음의 차이가 인간의 귀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게 달라 하나의 음으로 취급되는 것처럼, 원자 속 전자도 두 에너지의 간격이 너무 좁아 측정 장치가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의 에너지 준위로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전자도 맥놀이를 이용해 두 에너지의 미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까? 하지만 두 개의 기타 줄을 동시에 튕기는 것처럼 전자가 두 개의 에너지 준위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두 개의 건반이나 기타 줄같이 두 개의 에너지만이 허락된 전자를 지닌 실험 장치를 고양이와 함께 상자 속에 설치하자. 만약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으면 장치와 연결된 독가스 병이 깨지면서 고양이는 죽는다. 또한, 고양이 목에 달린 전자 방울은 고양이의 심장 박동이 멈춘 것을 감지해 A2 음에서 아주 조금 어긋난 기괴한 ‘죽음의 음’을 발생한다. 반면, 전자가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있으면 독가스가 병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은 정확한 A2 음으로 생존을 알린다. 하지만 상자가 완벽한 방음 장치를 지닌 탓에 외부에 있는 관측자는 상자를 열기 전에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따라서 전자의 에너지 준위도 고양이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양자역학은 두 개의 가능성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존재하는 확률적 공존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상자를 열면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어 있을 뿐이다. 상자를 열어 죽어 있는 고양이의 죽음을 확인한 뒤, 다시 상자를 닫는다고 해서 죽은 고양이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상자는 단 한 번만 열어야 한다.

전자의 확률적 에너지 선택에 따라 고양이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고 미세하게 다른 음을 내는 상자를 콘서트 관객처럼 아주 많이 준비한 후, 동시에 열면 삶과 죽음의 음이 합쳐져 울렁거리는 ‘양자 맥놀이’를 들을 수 있다.
전자의 확률적 에너지 선택에 따라 고양이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고 미세하게
다른 음을 내는 상자를 콘서트 객처럼 아주 많이 준비한 후, 동시에 열면
삶과 죽음의 음이 합쳐져 울렁거리는 ‘양자 맥놀이’를 들을 수 있다.

동일한 조건을 지닌 상자를 아주 많이 준비하면 된다. 통계물리학에서는 이렇게 똑같은 조건을 지닌 상자 집단을 ‘앙상블’이라고 부른다. 현악 앙상블 콘서트처럼 앙상블은 프랑스어로 ‘함께’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통계물리학에서는 확률을 검증하기 위해 준비된 여러 개의 동일 집단을 의미한다. 이제 똑같은 조건을 지닌 무수히 많은 상자를 콘서트 관람객처럼 올림픽 경기장에 가득 채운 후 동시에 열어 보자. 어떤 상자에서는 전자가 낮은 에너지에 머물고 있어 고양이가 살아 있다. ‘삶의 A2 음’이 들려온다. 하지만 다른 상자에서는 전자가 높은 에너지로 올라가 고양이를 죽게 했다. 그 상자에서는 A2 음에서 어긋나 듣기도 불편한 ‘죽음의 음’이 울리고 있다. 운집한 관람객들과 함께 열정적인 음악 콘서트가 열렸던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이제 삶과 죽음의 음이 뒤섞인 맥놀이가 울려 퍼질 것이다.

확률적 두 상태의 공존은 한 개의 상자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충분히 많은 수로 구성된 앙상블에서는 맥놀이로 드러날 수 있다. 학생 시절 전자의 앙상블이 만드는 ‘양자 맥놀이’를 어두운 실험실에서 처음 측정하던 순간 나는 삶과 죽음의 맥놀이를 떠올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를 경험한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기뻐하고 슬퍼한다. 살아남고 죽는다. 만약 인간 삶이 신들의 도박을 위한 앙상블이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운수의 맥놀이일까? 적어도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미시세계에서는 그렇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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