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4) 상상의 수
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14) 상상의 수
  • 김광석 김광석
  • 승인 2021.12.23 12:32
  • 업데이트 2021.12.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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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살 같은 직선으로 시간을 표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난날의 추억이나 다가올 소중한 날을 하나의 직선 위에 점을 찍어 구분할 수 있다. 현재를 0이라고 한다면 과거는 음수가 되고 미래는 양수가 된다. 수직선 위 0과 1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점이 있다. 수학에선 정수 0과 1 사이에는 분수로 표현되는 유리수 (1/3 = 0.33333…)와 불규칙한 수를 쉬지 않고 만들어 내는 무리수 (= 1.414…)의 점들로 직선을 빈틈없이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실재의 순간들을 실수 축 위의 점들에 대응시킨다면 우리는 무한히 많은 순간의 점들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과거는 음수, 현재는 0, 미래는 양수처럼 시간의 모든 순간을 수에 대응시키면 지나온 역사는 실수처럼 촘촘한 연속의 선분이 된다. 반면, 정사각형 면적이 –1인 변의 길이는 실수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런 수는 실재적이지 않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다. 인간은 실재적인 세상을 살아가지만 실재적이니 않은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과거는 음수, 현재는 0, 미래는 양수처럼 시간의 모든 순간을 수에 대응시키면 지나온 역사는 실수처럼 촘촘한 연속의 선분이 된다. 반면, 정사각형 면적이 –1인 변의 길이는 실수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런 수는 실재적이지 않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다. 인간은 실재적인 세상을 살아가지만 실재적이지 않은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셈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처음 거북이 같이 더하기나 빼기를 하다 어느 순간 토끼처럼 빠르게 뛰어넘는 곱셈을 한다. 예를 들어 거북이의 6을 향한 길고 고지식한 여정에 비해 토끼는 2칸을 한 걸음으로 세 번의 깡충 뛰기로 6에 도달한다(2 × 3 = 6). 또한, 토끼의 깡충 뛰기 곱셈은 과거 음의 시간 어딘가에 놓인 추억을 회상하는 데도 효율적이다. 과거를 향한 2칸을 세 번만 하면 재빠르게 6년 전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다(-2 × 3 = -6). 그러면 (-2) ×(-3)은 어떨까? 이 연산은 기이하게도 시선은 과거를 향하고 있지만 깡충 뛰기는 시선의 반대 방향, 즉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래를 등진 채 2년 전 과거를 바라보며 뒤로 세 번 걷는 상황이다 (-2 × -3 = 6). 비슷한 방식으로, 양과 음의 유리수나 무리수의 곱셈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제 수의 사칙연산은 실수(real number) 시간 축 위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순간들을 넘나드는 여정이 된다. 역사는 실수의 시간축 위에 촘촘하게 남겨진 연속의 선분이다.

인간은 실재적 세상을 살아가지만 상상을 통해 실재를 넘어설 수 있다. 수학에서도 ‘상상의 수(imaginary number)’를 이용하면 ‘실수’를 벗어난 기이한 연산을 할 수 있다. 제곱해서 음이 되는 수를 ‘허수’라 하는데 imaginary의 첫 번째 영문 알파벳 i로 표기한다. 면적이 –1이 되는 정사각형 변의 길이는 무엇일까? 그런 도형은 실재적이지 않고 제곱해서 –1이 되는 실수(real number)는 없다. 그들은 모두 실재적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일단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고 가정한 뒤 +i 혹은 –i가 답이라고 하자. 단순히 존재를 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수학자들은 상상의 수가 존재하는 세상이 놀랍고 신비로운 특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 존재들을 간과할 수 없듯, 실재적인 실수를 넘어선 상상의 수를 통해 수학과 과학은 물질적 세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

실재하는 실수(수평축)와 상상의 허수(수직축)로 구성된 2차원적 수를 복소수라 한다.
실재하는 실수(수평축)와 상상의 허수(수직축)로 구성된 2차원적 수를 복소수라 한다.

실재적인 실수축을 지상 위의 수평축으로 비유하면, 허수 i는 지상의 삶에서 벗어난 수직축 위에 존재한다. 양의 허수들은 천상을 향하고 있는 반면 음의 허수는 지면 아래 어두운 심연으로 내려간다. 예를 들어, +i는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현재의 0에서 천상의 1만큼 위치한 구원을 꿈꾸는 것이다. 반면, -i는 땅 아래 1만큼의 깊은 절망이다. 1+i는 미래의 지상의 삶에서 여전히 품고 있는 천상을 향한 믿음이고 –1-i는 과거의 삶에서 지니고 있었던 깊은 절망이다. 실재적인 지상의 수평적 실수와 천상과 지옥을 오가는 수직적 허수로 구성된 복잡한 수를 복소수(complex number)라 한다. 실수가 1차원적 직선으로 표현된다면 실수에 상상의 수가 추가된 복소수는 2차원의 평면으로 표현된다. 1차원적 선의 궤적을 남기는 개미의 삶처럼 인간은 단순히 시간의 화살 위를 오가는 1차원적 삶을 살지 않는다. 사유하는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며 실재와 추상이 혼재한 2차원의 평면을 살아간다.

그런데 +i와 –i는 왜 제곱하면 –1이 되는 것일까? 비록 제곱하면 –1이 된다는 가정을 통해 등장하기는 했지만 2차원적 평면 위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자. 2차원적 복소수 평면에서 +i와 -i는 모두 같은 반경 1을 지니고 있다. 대신 둘은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 위치의 다름을 각으로 표현하면 +i는 90도 –i는 –90도(혹은 270도)다. i와 i를 곱해 –1로 옮겨가는 모습은 지상의 지금 이 순간, 천상을 향한 희망의 제곱이 지상의 과거 –1로 회전해 가는 이미지를 준다. 실수의 곱셈은 깡충 뛰기를 통해 1차원적 직선을 오가는 여정이지만 상상의 수가 포함된 2차원적 복소수 세상의 곱셈은 어딘가 순환의 속성이 있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영감을 받아 복소수 곱셈의 특이한 회귀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두 복소수의 곱셈은 반지름은 곱하고, 각은 더한다. +i나 –i처럼 반지름이 1인 경우에는 여러 번 곱을 해도 반지름의 변화는 없고 단지 각만 더해진다. 그러므로 +i의 제곱은 반지름이 1인 원의 90도 지점에서 180도로 회전한다. 따라서, +i의 제곱은 음수 –1이다. 연습을 위해 –i를 제곱해 보자. 반지름 1의 원 위에서 270도의 두 배인 540도로 회전하게 된다. 540도는 원을 한 바퀴 돈 360도에서 다시 180도를 더 가는 것이므로 –1로 안착한다.

반지름 1인 원 위의 45도 각도에 존재하는 (1+i)/√2를 제곱하면 90도 지점의 i가 된다.
반지름 1인 원 위의 45도 각도에 존재하는 (1+i)/√2를 제곱하면 90도 지점의 i가 된다.

위의 내용을 이해했다면 조금 난이도가 있는 (1+i)/ 2의 제곱을 해보자. 이 복소수는 실수축에서 45도 떨어진 반지름 1의 원 위에 있다. 복소수 곱셈의 규칙에 따라 제곱을 하면 반지름 1의 제곱은 여전히 1, 각 45도의 2배는 90도다. 따라서 i가 된다. 확인을 위해 (1+i)/2곱하기 (1+i)/2를 계산해 네 개의 항을 정돈해 보면 정말 i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제곱을 하면 어떨까?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반지름 1의 원 위에 있고 45도의 3배인 135도 지점에 도착한다. 즉, (-1+i)/2 . 실수의 곱셈은 지상 위의 삶을 닮은 직선 위에서만 이동하는 반면, 지상과 천상이 혼재된 복소수 세상의 곱셈은 천상, 지상, 심연,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순환하는 회귀적 여정을 반복하는 셈이다.

지상의 실수축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는 (1+i)/√2와 (1-i)/√2를 곱하면 지상의 1로 돌아온다.
지상의 실수축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는 (1+i)/√2와 (1-i)/√2를 곱하면 지상의 1로 돌아온다.

실수축을 기준으로 대칭적 위치에 있는 (1+i)/2 와 (1-i)/2의 관계도 흥미롭다. 둘은 호수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나르시스처럼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 둘을 곱하면 어떻게 될까? (1+i)/2는 각이 45도이지만 (1-i)/2는 각이 –45도다. 두 복소수의 각은 크기는 같고 부호만 다르다. 반지름은 곱해도 변함없는 1이다. 곱을 통해 음양의 각은 상쇄되어 0도가 된다. 따라서, 지상의 실수축 위 1로 돌아오게 된다. 미래의 지상(실수)에서 천상의 희망(양의 허수)과 심연의 절망(음의 허수)이 만나 다시 지상에서 하나의 생명, 하나의 삶, 하나의 사랑으로 드러나는 1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일까?

반지름이 1보다 큰 복소수를 여러 번 곱하면 회전하며 반지름이 점점 커진다. 반면, 반지름이 1보다 작은 복소수는 여러 번 곱할수록 반지름이 줄어들면서 0으로 다가간다.
반지름이 1보다 큰 복소수를 여러 번 곱하면 회전하며 반지름이 점점 커진다. 반면, 반지름이 1보다 작은 복소수는 여러 번 곱할수록 반지름이 줄어들면서 0으로 다가간다.

반경이 1보다 큰 복소수 자신을 반복해서 곱하는 경우는 나선형으로 회귀하며 원의 반경이 커지는 모습을 보인다. 반경이 1보다 작은 복소수는 나선형으로 회귀하며 반경이 점점 작아져 0으로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현자는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원을 벗어난 복소수 평면 위의 영원한 소멸 혹은 영원한 발산으로 가는 것일까?

이처럼 복소수는 실재와 상상이 혼재된 차원에서의 회귀 이미지를 제공한다. 고대 인류는 원형의 건축물과 순환하는 달력을 구성해 신성한 회귀의 개념을 내재시켰지만 지금 같은 첨단 시대에는 복소수 개념을 활용한 현대 조형물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물리학에서는 진동, 파동의 속성을 지닌 빛과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복소수를 사용한다. 레이저 빛을 사용해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홀로그램의 조건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복소수가 필요하다. 관측 이전에,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양자파동 역시 복소수로 표현된다. 이제 예술가들도 진부한 실수 개념에서 벗어나 복소수를 모티브로 활용한 문학이나 미술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미래의 예술가들은 원자나 분자를 사용한 나노 스케일의 예술작품을 만들지도 모른다. 미술 평론가도 상상의 수와 양자물리를 공부해야 할지 모른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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