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3)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4장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대하소설 「신불산」(13)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4장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1.13 07:00
  • 업데이트 2022.01.14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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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균

4.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②다시 돌아온 기출이, 끝님이의 기쁨 

팔월대보름씨름판에서 치만이와 끝님이, 순님이를 만나고 석암선생을 뵈 온 며칠 뒤였다. 비록 낯선 땅에서 온 홀어머니가 올망졸망 5남매를 키우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살림에 유복자신세였지만 다시 어미 품에 살게 되니 무밥, 시락밥이 달았다.

또 늘 막내를 챙기는 귀남이 누나의 품이 포근하고 무지막지 억센 손위의 두 형의 걸걸한 목소리도 듣다보니 익숙하고 눈만 반질반질 말없는 큰형 선출이도 기출이에게 만은 그냥 기껍게 대하는 눈치였다.

아침숟갈을 놓고 누나와 두 형이 각기 밥벌이를 위해 더부살이하는 집으로 떠난 뒤 금방 아랫목에 드러눕는 큰형 선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은 또 무엇을 하나, 어떻게 하루해를 보낼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시는 한문을 알려고도 배우려고도 말고 호방댁 아기씨들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는 석암선생의 엄명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띠는데 사립 밖에서 장터거리 솜집아재가 기출아, 소리치며 삽짝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황급히 마당으로 나서는 기출이를 보고 뜻밖에도 솜집아재의 등 뒤에 섰던 치만이가 빙긋 웃으며 튀어나와 다짜고짜 기출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기 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의아한 표정의 기출이에게 그 제서야 솜집아재가 이제 호방나리의 화가 풀려 다시 기출이를 부른다고 설명을 했다.

 

기출이가 근 한 달 만에 호방댁 대문을 들어서자 에헴에헴 헛기침을 하던 호방나리는

“왔나?”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머리를 쓸어주며 집을 나갔고 기출이를 다시 불러오게 한 석암선생은 정작 자신은 모르는 일처럼 그냥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정작 신이 난 건 끝님이었다. 처음 안채에서 문을 빼꼼 열고 넌지시 바라보던 끝님이는 석암선생이 강 건너 사가로 돌아가기 바쁘게 사랑으로 건너와 기출이의 손을 잡아끌었고 호방댁이 그 무슨 짓이냐고 나무래도 개의치 않았다. 기출이가 제 집으로 돌아가고 치만이가 다시 말수가 줄고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자 울 아버지가 마지못해 다시 불렀다고 설명을 하며 은근한 눈빛으로 오래오래 기출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멋쩍은 기출이와 달리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단지 기출이가 다시 돌아온 것만이 끝님이의 관심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렇게 네 살 아래의 사내 아이를 향한 그녀의 조숙한 집착이 자꾸만 굳어져갔다.

 

그렇게 또 두 해나 지난 기출이가 열두 살이 된 초여름 장마가 한창인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퍼붓기 시작한 빗줄기가 줄어들 염을 않아 강 건너 석암선생이 건너오지 않으니 치만이와 기출이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 실없는 장난을 걸거나 헤실헤실 웃다 점심상을 내자마자 덩치 큰 치만이는 벌렁 드러누워 배를 씰룩거리며 잠이 들었다. 심심해진 기출이가 혼자 천정을 바라보며 그 지난봄 허겁지겁 논실마을의 어중개비 선비한테 시집을 간 귀남이 누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로서는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기와집의 젖먹이를 보러 다니던 귀남이 누나가 하루는 대낮에 어머니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성이 나서 파랗게 질린 팔대장승 같은 어머니는 자신에 비해 조막막한 딸년을 방구석으로 몰아넣자마자 사정없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패대기를 쳐댔다.

“어미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으면 알아서 몸을 사려야지 다 큰 기집년이 제 몸 하나 간수를 못하는 것이 우째 사람새끼가? 인자 우짤 기고? 차라리 이 길로 나가 푸렁바우나 용당수에 빠져죽어라. 이 바보 같은 년아!”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외동딸, 자신이 지리산 깊은 숲속에서 일찍 어미를 여의고 사내처럼 거칠게 자라나 제대로 격식을 갖추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작수성례(酌水成禮),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봉당골의 그 외진 오두막에서 시어머니 차꼴댁이 시키는 대로 키가 조그맣고 눈만 반들거리는 사내, 그렇지만 오라비 곰쇠의 말처럼 얼굴이 희고 성질이 유하고 손이 부드러운 사내 복성이에게 시집을 가기보다는 공짜로 몸을 열어주고 말았지만 그 한 많은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도 더 허무하게 몸을 망친 것이었다. 비록 그 등골이 휘는 가난을 조금도 물리치지 못한 채 한 탯줄에 오남매를 낳았고 오로지 제 딸 하나만은 제대로 건사하여 여자답게, 외동딸답게 아롱다롱 잘 꾸며 시집보내고 싶은 꿈 하나를 마치 시어머니 차꼴댁이 외아들 복성이 장가들일 꿈에 목숨을 걸었듯이 자신도 귀남이를 잘 갖추어 시집보낼 일에 목을 걸었는데 말이었다.

ⓒ서상균

백주대낮에 그렇게 허무하게 몸을 버리다니, 그렇게 쉽사리 당하고 말다니, 생각할수록 분이 치미는 것이었다. 물론 귀남이는 귀남이대로 변명 아닌 변명, 하소연이 없을 리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고뿔이 심해 종일을 보채던 젖먹이가 잠이 들어 겨우 허리에서 떼어내어 자리에 눕히고 홑이불을 덮어준 뒤 하도 피곤한지라 자신도 잠시 옆에 누웠다고 했다. 갑자기 아기가 소스라치게 우는 소리에 잠이 깨자 가슴 위를 바윗덩이 같은 무엇이 찍어 누르며 아랫도리가 찢어질 듯 아픔이 몰려왔다고 했다. 바로 한 살 밑의 주인집 도령이었고 이미 일은 당하고 난 후였다.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귀남이의 비명소리들 듣고서인지 이내 주인마님과 큰며느리와 머슴까지 몰려와 난리가 나고 한 식경도 못 되어 온 동네에 소문이 퍼져 복걸에서 빨래를 하던 올케 곰쇠댁이 새파란 얼굴로 앞새메로 달려와 전하는 말을 듣고 후다닥 기와집으로 달려간 서촌댁이 귀남이를 솔개가 병아리 채듯 채어온 것이었다.

귀남이가 무어라고 해도 자꾸만 패악을 치며 악을 쓰던 어미가 어느 순간 딸을 가슴에 품고 등을 두들기자 비로소 귀남이는 와아, 울음을 터뜨리며 오랫동안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었고 그 들썩거림은 이내 어미에게 전파되어 모녀가 오후 내내 장단이라도 맞추는 듯 같은 흔들림으로 들썩거리며 울었다.

 

그 북새통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방댁으로 돌아와 다시 치만이와 끝님이, 순님이와 어울리느라고 누나의 일을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었는데 한 보름이나 지나 석암선생이 내일 네 누나가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들고 강을 건너왔다. 아울러 기출이더러 어머니가 내일은 꼭 건너오란다는 기별도 전해왔다.

그렇게 별안간 시집을 가는 것 치고는 잔치도 제법 그럴 듯이 벌이고 음식도 잘 차린 폭이었다. 혼수비용, 잔치비용과 약간의 위로금 모두가 기와집에서 상당한 돈을 내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0리 떨어진 양산 하북 논꼴에 산다는 신랑도 키가 크고 얼굴이 허여멀쑥했다. 누구네 딸이 몸을 버렸다고 한 번 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질 만한 삼이웃에는 아예 시집갈 엄두도 못 낼 뿐더러 이미 몸값이 반값이 아니라 똥값이 되어 아무도 데려가려고도 않는 판이라 통도사 가까운 삼수에서 이사 온 삼수댁의 중매로 제 친정 쪽의 스물여덟 노총각과 맺어졌으니 무려 열한 살 차이였다.

열일곱 꽃다운 처녀를 그렇게 쉽사리 내어준다면 단지 친정이 가난하다는 것 말고도 어떤 약점이나 사단이 있으리란 짐작이야 누구나 다 하련만 신랑 쪽에서는 이외로 아무 까탈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응하는 것이 그쪽에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 말고도 상당한 내막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서촌댁 역시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둘러 치른 혼사라 당연히 약간의 뒤탈이 있기 마련이긴 하지만 그 가냘프고 착하기만 한 누나 귀남이, 이제 시집을 가 누님이 된 귀남이의 팔자 역시 녹록하지 않은 것이었던지 하북면 촌구석에서는 제법 알아준다는 옛 벼슬아치가 낙향한 향반(鄕班) 경주 최씨, 아니 이제 벼슬도 살림도 학문도 거의 소멸되어 토반(土班)을 지나 그저 상놈이나 면한 잔반(殘班)꼴의 집안이지만 당당하게 양반행세를 하며 토지가 넓어 논골(畓谷)로 불려 밥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중신아비의 말은 완전 거짓으로 허울 좋은 양반 이름 외에는 제대로 된 땅 한 조각도 없이 하루하루 솥을 달아매지 않을 궁리를 하여야 할 형편이었다.

게다가 매형이 되는 이가 신수만 훤했지 농사도, 장사도 할 줄 모르는 반 벙거지로 이미 과거마저 폐지된 마당이긴 하지만 공부머리도 시원찮아 아무것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십 전후로 을사늑약 무렵 혼자 비분강개, 얼마 남지 않은 가산의 일부를 들고 세상바깥을 돌고 온다며 나간 것이 폐병쟁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말도 돌았고 폐병이 아닌 아편쟁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편치 않고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 판에 누이는 이듬해 정초에 곧바로 사내아이를 낳았다. 딱 한 번 본 그 아이가 벌써 백일을 지나고 다섯 달이 지났을 것이었다. 제 어미를 닮아 갸름한 얼굴에 늘 방실거리던 그 천진한 웃음을 떠올리며 기출이가 입가에 빙긋 웃음을 떠올리는데 누가 톡톡 여닫이문을 두드렸다.

“자나? 여게도 전부 다 자나?”

끝님이의 목소리였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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