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0)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5장 너무 이른 사랑과 염막집 염분이
대하소설 「신불산」(20)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5장 너무 이른 사랑과 염막집 염분이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1.20 07:00
  • 업데이트 2022.01.23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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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무 이른 사랑과 염막집 염분이 ⑤시루섬의 염막아낙

그랬다. 지지난해 추석뒤끝에, 아니 불각 중에 일어난 끝님이와의 사랑놀이뒤끝에 모호방에 쫓겨 덕천역고개를 넘고 방터와 새뜰을 건너고 내원사 앞 용연을 지나 석계장에서 장국밥 한 그릇을 사먹고는 다시 양산읍을 지나 다방리, 사송리, 외송리를 거쳐 작장부락, 범어사절 앞 부락 팔송정을 지나 남산리, 구서리를 거쳐 동래부에서 기찰을 돌던 종점이라는 기찰마을, 온천장 앞 주막의 봉놋방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잤다.

그 이튿날 다시 동래읍성과 하마정을 거쳐 부산포왜관에 늘어선 시꺼먼 일본식 기와집 점포를 지나 복병산어름의 큰 장터인 대청마루를 지나 마침내 남빈매립공사가 한창인 자갈치에 도착하였다.

상투머리도 아니고 단발도 아닌 이상한 머리 꼴에다 사내라는 것들이 치마를 입고 그 속에는 속곳이 아닌 훈도시라는 헝겊 한 조각만 질끈 동여매고 더러 부채를 들고 간혹 닙본도라는 커다랗고 윤이 번쩍번쩍 나는 칼을 차고 하나같이 이마를 쳐들고 침을 찍찍 뱉으며 게다짝을 질질 끌고 다니는 왜인들을 구경하거나 온갖 물건이 넘쳐나는 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며칠을 보냈다.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절영도로 건너가 영도할매사당에서 막연히 기도를 하다 문득 언양에 두고 온 어머니와 어디선가 지기를 못 잊어 만날 훌쩍거릴 끝님이가 생각나 억장이 무너지기도 했다.

염소가 못 먹는 것이 너무 높아 못 먹는 하늘 하고 너무 여물어 못 먹는 돌뿐이듯이 부산장에 안 파는 것이라고는 처녀붕알뿐이라는 그 너른 장터를 돌아다녀도 사람이 제 밑천을 버리지 못 하는 법이라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강원도 찬 바닷가에서 배를 타거나 덕장 일을 할 때 만지던 마른 명태와 오징어요, 태백산 깊은 숲에서 몇 해를 씨름하던 숯이며 장작과 숯 기름 목초 액뿐이라는 생각에 절로 비시시 웃기도 했다.

그러다 내친 김에 구경이라도 실컷 하자며 방금이라도 바다로 쏟아질 것만 같은 엄청나게 큰 바위를 머리로 매달고 엎드린 거대한 코끼리 같이 생긴 천마산의 아랫도리를 빙 돌아 일인들이 벌거벗고 바닷물에 목욕을 한다는 송도해수욕장까지 돌아보고 마침내 수중의 노자가 달랑달랑 할 지경이 되자 한창 공사 중이던 남빈매립공사장의 십장을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했다.

그러자 아래위를 한참이나 훑어보던 십장이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물어봐 무심결에 열다섯이라고 대답하자 나이가 어리다면서 퇴짜를 놓았다.

‘아차, 큰일이구나. 이제 밥값도 달랑거리는데’

고민을 하던 그는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처음 물어보았던 절영도쪽 나루에서 제일 먼 서쪽 끝의 법수천 끄트머리 자갈밭의 십장을 찾아가 이번에는 나이가 열여덟이라고 말하자 당장이라도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삽질도 하고 가대기로 물건도 나르면서 며칠을 지난 어느 날 일이 끝나고 숙소에서 술추렴을 하다 자신보다 너덧 살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전라도 사내에게서 묘한 제안을 받았다. 이렇게 온종일 죽도록 땀 흘리고 일해도 함바집 밥값주고 저녁에 탁배기 한 잔 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어 저 미도리정에 있는 조선여자는 물론 왜놈계집이랑 살꽂이도 한 번 못 할 판이면 차라리 자기의 고향 전라도 하의도라는 곳에 가서 인근의 소금밭에서 염부일이나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면서 같이 전라도로 가자는 것이었다.

객지에 나와서 남의 말 다 믿는 것이 아닌 바 그렇게 귀가 얇아서는 제 수중의 돈은 물론 가진 것이라면 보따리 째 몽땅 털리고 만다는 것을 벌써 5년간이나 강원도바닷가와 산중을 돌아다닌 그가 모를 리 없었지만 피치 못해 또 몇 핸가 객지를 떠돌아야 할 팔자라면 이왕이면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낯선 전라도 땅이라도 밟아보자면서 다음 임금 날을 기다려 둘이 길을 나섰다.

첫날은 부산에서 통영으로, 다음은 남해를 거쳐 고흥땅 녹동항에서, 그 다음날을 완도진도를 돌아 사흘 만에 목포항에 도착할 때까지 기출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 눈 밑에 새까만 점 하나가 있는 사내에게서 지겹게도 계집이야기, 오입이야기를 듣는 일이었다. 누구에겐가 들은 전라도 사람은 호색(好色)한다는 말처럼 날이면 날마다 이 계집, 저 계집과 그 살꽂이를 한 이야기뿐이라

“지발 그만 좀 하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분이지, 그 콤콤하게 멸치젓 냄새나는 이야기는 우째 대가리만 있고 당최 꼬랑대기가 없소?”

오만상을 찌푸리자 마침내 제풀에 지쳤는지 이제 경상도 사람 자네가 전라도 하고는 색다른 그 살꽂이 이야기를 좀 해보라는 말에 기출이는

“내가 뭐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지만 우리 언양쪽 사람들은 그 살꽃이를 <꼬배>라고 하지요.”

말하자 사내는

“허어, 그거 참 경상도나 전라도나 사내랑 계집이랑 거시기 하는 것은 꼭 같은 것이로구나. 전라도 사내가 살에다 꽂은 거나 경상도 사내가 배에다 꽂는 거나 그게 그거지 하하하.”

유쾌하게 웃으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경상도 여자를 만나 그 살꽃이가 아닌 꼬배라는 것을 한 번 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흘을 꼬박 거시기 이야기로 때운 그들은 한 번 소금밭에 들어가면 좀체 나오기 힘들다는 마지막 육지인 목포선창가의 색주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대충 소세를 마친 기출이가 방바닥에 드러눕기 바쁘게 옆방에서 전라도 사내가 좀 전까지 술시중을 들던 스무 남은 살 되는 처자와 방금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수캐 부랄 앓는 소리를 뿜어댔다.

그는 속이 좋지 않다면서 겨우 빠져나온 만큼 일부러 코고는 소리를 내며 벌써 잠이 든 척을 했다. 나이를 높여 저도 스무 살이라고는 했지만 창망 중에 치른 끝님이와의 신랑각시놀음 말고는 여자를 안아본 일도 없었을 뿐더러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제 아비의 핍박을 받고 훌쩍거리며 자신을 찾거나 원망할 끝님이를 생각하면 도무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목포 부둣가에서 이틀을 묵고 그들은 각각 소금막의 주인을 만나 헤어지게 되었는데 전라도 사내는 중의도란 섬으로 기출이는 시루섬 즉 증도라고 불리는 섬으로 가게 되었다.

소금밭이라면 밑도 끝도 없이 넓디넓은 소금밭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쪽에는 고깃배가 나드는 포구도 있고 주막도 있고 해송 몇 그루가 서있는 작은 산도 있었다. 기출이가 쌀 다섯 가마니 값을 받고 한 해 동안 일하기로 하고 들어간 집이 바로 사내는 염전을 가꾸며 가끔 바다로 나가 조기나 민어는 물론 문어나 주꾸미를 잡기도 하고 아낙도 집안 살림 틈틈이 염전일도 돕기도 하고 가끔씩 들리는 염부나 고깃배의 어부에게 홍어회나 가오리탕은 물론 소라나 전복, 멍게안주로 막걸리도 팔기도 하고 콧구멍한 방이 세 개나 있는 나지막한 별채의 하숙을 치거나 밥장사를 하는 집이었다.

평생을 바닷가에 살아서인지 처음엔 도무지 그 표정을 보고 기분을 알 수 없는 새까맣고 깡마른 얼굴 말고는 별 특징도 없는 그들 부부는 특별히 까다롭지도 않았고 수차를 돌리거나 삽질로 소금을 모아 퍼 담는 일도 매일 반복해 지루하기는 해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파란 바다와 시꺼먼 갯벌, 자주 흐리는 하늘과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밭과 소금막의 내외와 아직 코흘리개인 사내아이 위로 네 딸밖에는 더는 만날 사람도 없고 말상대는 더더욱 없어 눈을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짐승 같은 세월이 천천히 흘러갔다. 별달리 바쁜 일도 애달픈 일도 없는 그 역시 뚜벅뚜벅 황소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버든의 초가삼간에 남은 홀어머니와 약골선출이형님이나 출처도 생사도 모르는 끝님이를 잊기에는 딱 그만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 반년이 지나자 또 다시 성가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쩌다 주인 사내가 낙지나 문어를 잡는다고 배를 타고 나간 밤이면 곤히 잘 자는 기출이이 방에 이제 서른 서넛이나 됨직한 주인 아낙이 탁주 주전자에 낙지 안주를 들고 찾아와 바람소리가 무섭다며 이 외진 섬에 사내라고는 기출이 너밖에 더 있느냐며 손을 더듬으며 슬슬 추근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명색 사내로 태어나 제 스스로 계집을 후리기는커녕 오징어를 잡던 강원도의 주막이나 태백산의 숯막은물론 어쩌다 합방을 이룬 끝님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내와 계집에게 거꾸로 희롱을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닌 그로서는 그 때마다 헛기침을 하며 물러나거나 갑자기 배가 싸르르 해 측간에 간다면서 슬쩍슬쩍 모면하였다.

숯막의 어떤 중늙은이에게서 들은 흑안다접(黑顔多接)이란 말처럼 얼굴 검은 여인네가 유독 사내를 밝힌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닌지 작달막한 체구에 수더분한 얼굴의 눈도 코도 다 그만그만한 아낙은 그렇게 말수도 많지 않으면서 그저 그 검은 얼굴보다 한층 더 검은 눈을 반짝이며 손이나 팔뚝은 물론 입술이나 엉덩이로 툭툭 건드리거나 비벼대 소금기가 간간한 땀 냄새와 함께 뭉클뭉클 미끄러운 촉감이 바늘로 찌르듯이 순식간에 그의 사내를 자극하기가 예사였지만 그는 용케도 잘 버텨냈다.

 

그러나 정작 기출이가 고민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염막집 큰 딸로 같은 열다섯의 동갑내기 염분이었다. 이것도 무슨 조화인지 악연인지 한 때 그가 의탁했던 모 호방네와 꼭 같이 1남 4녀를 둔 그 집에는 큰딸 염분이, 즉 소금기를 필두로 소금 꽃 염화, 소금밭 염전이, 소금 맛 염미, 네 자매가 각각 열다섯에서 아홉 살까지 두 살 터울이었고 한참 떨어져 다섯 살짜리 외아들의 이름은 아예 염막, 즉 소금막이었다.

그런데 간혹 같이 밥을 먹거나 우물가에서 만나면 오빠, 오빠 부르며 목덜미가 빨개지며 부끄럼을 타는 그 애는 열여덟이라고 나이를 속인 기출이와 동갑이면서도 마치 친오빠라도 되는 것처럼 공손하기가 짝이 없었는데 기출이도 그 순진한 모습이 과히 싫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와 갯벌과 염전밖에 없는 그곳에도 이팔청춘은 역시나 봄꽃처럼 때맞추어 피는 것인지 그 늘 가뭇한 소금밭 딸의 얼굴에도 보일 듯 말듯 작은 여드름 몇 개가 소금 꽃처럼 돋아났고 기출이에게 뜨거운 홍어탕을 들고 와 조심스레 상위에 얹느라 허리를 굽히다 드러난 가슴팍에서 이제 막 녹두알만한 젖꼭지를 매단 분홍빛의 작고 봉긋한 젖무덤을 보고 만 것이었다. 그날 그 삭막한 소금 천지에 온 이후 기출이는 비로소 가슴속에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오며 아랫도리에 후끈한 기운이 번개처럼 찌르르 훑고 가기도 했다.

 

간혹 염분이가 제 동생 염화를 데리고 육지이야기를 듣느라고 기출이의 쪽방에 들어오는 날이면 염막여편네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어린동생 염막이를 보지 않는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어느 하루는 마침 염화가 측간에 가고 기출이와 염분이가 이불 밑에 같이 발을 넣고 마주 앉아 무어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득달같이 달려든 어미가 곧바로 머리채를 잡고 끌고나가 개잡듯이 딸을 잡아 밤새 훌쩍이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기출이가 섬으로 들어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소금막은 비교적 조용한 철이라 염막집 사내는 밤에 해바라기로 낙지를 잡는다면서, 한몫 단단히 잡으려면 밤을 새우고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잡을 거라면서 저녁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기출이도 같이 따라 나서려니 밤바다가 위험하다면서 굳이 말렸다.

드넓은 소금밭이 달빛에 희게 부서지는 한밤중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오래 뒤척이다 자정이 가까워 겨우 잠이든 기출이의 방을 누가 슬며시 열고 들어갔다. 풀어 젖힌 머리채가 바람에 나부끼고 통통한 몸매에 가슴의 윤곽이 유난히 두드러진 중년의 여자였다. 그리고는 치마저고리를 벗고 새우처럼 웅크려 잠든 방주인의 옆에 누워 한참이나 숨을 고르며 스며든 달빛에 비친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기를 한참 후 마침내 고쟁이까지 훌훌 벗어던지더니 상대방의 품을 파고들었다.

“...?”

기출이가 깜짝 놀라

“누고? 끝님이가?”

“어어, 누고? 이기 누고?”

방금 꿈속에서 끝님이와 나뒹구는 꿈을 꾸다 어느 새 깊은 나락에 떨어지다 어느 새 손발이 꽁꽁 묶인 채로 끝님이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는 꿈을 꾸다 문득 뭉클하게 전해지는 여인의 촉감에 불식간에 끌어안던 기출이가 깜짝 놀라 품안의 여자를 밀어내었다. 뭉클거리면서 끈적거리는 농익은 땀 냄새가 수밀도(水蜜桃)처럼 통통하고 발그레하며 촉촉한 끝님이의 살 냄새가 아닌 중년여인의 것이었다. 황급히 일어나려는데

“기출아! 기출아, 기출아...”

방금 숨이 넘어갈 듯 질퍽하고도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아지매, 이라면 안 돼요. 아지매 나이가 몇이요?”

“기출아, 기출아...”

늘 소금을 만지고 물에 젖어 사내처럼 투박한 손이 기출이의 등을 훑어 내려와 엉덩이를 잡더니 그 뒤쪽으로 넘어왔다. 대경실색하여 뿌리치는 손끝에 꺼칠한 무엇이 만져져 황급히 손을 뺐다. 오남매를 낳은 발가벗은 여인의 거웃인 모양이었다. 후다닥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려는데 물컹, 이번에는 그의 사타구니로 손 하나가 쑤욱 쳐들어오더니 훌러덩 바지를 벗기며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다. 이러면 안 된다. 뭔가 큰일을 당할 것만 같은 예감에 재빨리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불이라도 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온몸을 뒤 트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아니! 이 썩어질 연놈을 좀 보더라고?”

쾅, 방문이 열리며 낙지잡이 횃불이 그 민망한 방안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에라이, 이 더러운 잡것들?”

이어 횃불이 몽둥이가 되어 알몸이 된 여자와 반쯤 벗은 사내를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내겐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여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나만 보면 손을 잡으려하고 잠을 자려하고 그럴 때마다 왜 늙은 사내들이 나타나 패악을 부리고 손찌검을 하는 것일까?

입술이 터지고 눈두덩이 퉁퉁 부은 기출이가 주막으로 끌려와 두 손이 꽁꽁 묶여 염막주인 앞에 무릎 꿀린 채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어딘가로 쫓겨나면서 다시는 이 바닥에 나타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기출이와는 반대로 염막여편네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대충 앞섶을 가리고 나타난 그녀는 이 막막한 섬에서 소금쟁이 아니면 뱃놈들의 술심부름이나 하기는 싫다, 이판에 저 젊은이와 팔자를 고쳐 육지로 나가 나도 남들처럼 호강하며 살고 싶다고 도로 패악을 쳤다. 그러자 사내는

“에라이, 늙어나 젊으나 사내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이 쳐 죽일 년아, 시집이라고 와서 자식을 다섯이나 낳고도 그런 마음이면 도대체 저 아이들은 나 혼자 어떡하란 말이냐고, 그럼 저 다섯 아이들도 업고 지고 몽땅 데려가라면서 실실 웃는 것이 전혀 심각하지도 않고 걱정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러자 여편네는 또 무슨 신세타령을 늘어놓으며 죽는 소리를 하고 사내는 또 슬쩍 눙치며 뒤집어씌우고 그렇게 연놈들은 아귀가 척척 맞았다.

 

딱한 것은 기출이었다. 처음 염막주인의 서슬 푸른 기세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묶인 후로 꼼짝달싹 못 하고 낙지를 잡는 갈고리로 목줄을 끊어 버린다는 온갖 협박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이어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제 조석으로 밥을 챙겨주는 제 어미 뻘에게 엉겨 붙는 싸가지 없는 것은 아예 그 싹수인 거시기를 잘라야한다는 데는 한동안 머리가 하얗게 비벼 부들부들 떨어야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깨었는지 막내 염막이가 우는 소리에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리며 달래는 염분이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보나마나 다섯 아이의 눈동자 열 개가 주막 안을 쏘아보고 있을 터, 사내가 조그만 것들은 잠이나 자라면서 왝 고함을 지르더니 주막의 불을 꺼버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침묵이 흐르니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멀리 첫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릴 때쯤 마침내 그들 셋은 그 황당한 소동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우선 염막집마누라는 우선 다섯 아이를 돌봐야 되고 또 그간 살아온 정, 같이 고생하며 염전을 이룬 공을 보아 용서해달라는 여편네의 눈물어린 호소로 사내가 불문에 붙이기로 종결지었다.

남은 것은 기출이의 문제인데 사내가 여편네를 용서했으니 더 이상 다그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같이 지낼 수도 없으니 날이 밝는 대로 섬을 떠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손이 풀리고 물도 한 사발 마셔 정신이 좀 돌아온 기출이가 그렇다면 자신도 목포든 어디든 나가서 일감을 구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데 벌써 열 달이나 지난 품삯은 어떨 것이냐고 물어보자 사내는 다시 화를 벌컥 내며, 이 쥐 부랄 만 한 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다시 콩밥을 좀 먹어봐야 알겠냐며 역정을 내었다.

그렇게 한동안 밀고 당기다 삯을 주지는 못 하지만 목포로 나가는 품삯과 한 사나흘 묵고 새길 잔돈 몇 푼을 주기로 하고 일 년 가까운 머슴살이의 계산이 끝났다. 다시 올 일이나 그럴 염도 없었지만 다시는 이 섬에는 오지 않는다는 조건도 있었다.

날이 밝자 아직도 눈두덩이 퉁퉁 붓고 왼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모양새로 기출이는 목포행의 통통배에 올랐고 염막주인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며 돌아섰다.

 

참으로 한심한 인생에 기박한 팔자로고, 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고? 이직 열다섯 살의 애늙은이가 멀어져가는 섬을 보며 땅이 꺼져라, 뱃전이 무너져라 한숨을 내쉬는데

“오빠!”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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