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1) 음의 온도
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21) 음의 온도
  • 김광석 김광석
  • 승인 2022.02.18 10:00
  • 업데이트 2022.02.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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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떨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면 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유사 과학자들은 ‘열’을 ‘기(氣)’와 혼용해 사용하기도 한다. ‘열기(熱氣)’라는 단어는 이미 일상의 언어 속에서 거부감 없이 사용되고 있다. 열은 작은 열 알갱이가 뭉쳐진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열은 단지 에너지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팔을 잡을 수 있어도 그의 사랑을 만질 수는 없다. 빠르게 움직이는 공은 구체적 물질로 존재하지만, 공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운동에너지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열도 물질을 구성하는 수많은 분자 운동에 기인하지만, 분자들의 운동에너지가 물질적 대상은 아니다.

몸으로 열의 뜨겁고 차가움을 느끼듯, 실험 물리학자들도 ‘열’을 가늠할 수 있는 온도계를 만들었다. 장치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기계의 눈금이 알려주는 ‘온도’는 ‘열’을 대변하는 단위가 되었다. 그래서 온도가 열에 비례하는 양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온도가 열을 대변하는 값이라는 생각은 감각경험이 가능한 적당한 온도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첨단 장비로 구현되는 극저온에서는 모순적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열을 에너지라는 단어로 바꿔 보면 온도는 에너지에 비례하는 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다면 절대 0도(섭씨 –273도)에서는 열이나 에너지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아무런 미동도 없을 것 같은 절대 0도에서도 물질 속 전자는 유한한 에너지를 지니며 꿈틀거린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일푼이라도 열정마저 얼어붙게 할 수는 없다. 온도는 에너지의 절대적 크기와 무관하다. 온도는 에너지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처음 영국에 갔던 어느 여름날 우박을 경험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나라였지만 대낮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의 무게감을 느껴본 적은 있었지만, 우박은 그야말로 흉기였다. 작은 우박도 창문을 긁거나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홍차의 하얀 김 속의 수많은 분자도 우박처럼 내 입술을 두드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공기가 지닌 열의 실체는 스쿼시 경기장의 공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분자들의 운동에너지다. 벽에 손을 대면 진동을 통해 공의 운동을 느낄 수 있듯, 홍차의 열은 분자의 충돌로 전해지는 운동에너지다. 액체나 고체의 열은 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운 응원단들의 격한 몸짓을 닮았다.

그런데, 분자들의 운동 속에는 다양한 경우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너무 빠르고 다른 어떤 것은 느리다. 빨랐던 것이 느려지고 느렸던 것이 다시 빨라질 수도 있다. 각각의 다양한 빠름은 쉬지 않고 변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평균 운동에너지로 열을 느낀다. 따라서, 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계가 필요하다. 특히, 통계물리학은 온도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대표적인 예로 음(-)의 온도가 있다. 온도가 음의 값을 지니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명령에 대한 복종은 음의 에너지를, 저항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명령에 대한 복종은 음의 에너지를, 저항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통계적 온도는 열이나 에너지 값 자체보다, 열에너지 변화에 따른 집단 구성 요소들의 정렬된(ordered) 혹은 비정렬된(disordered) 상태의 변화에 주목한다. order라는 영어 단어는 ‘정렬하다’의 의미도 있지만, ‘명령하다’의 뜻도 있다. ‘명령’과 ‘정렬’은 각각 권력자와 피권력자에 해당되는 단어이며, ‘정렬’은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정렬되는 정도는 권력자의 ‘명령’에 대한 피권력자의 ‘복종’ 정도와 관련이 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월요일 아침마다 조회가 있었다. 운동장에 전교생을 모아 놓고 학년과 반별로 줄을 맞춰 세웠다. 줄을 맞추지 못하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반장이 돌아다니며 학급의 줄을 맞췄다. 그렇게 수백 명의 전교생이 모두 줄을 맞추고 나면 무서운 주임 선생님의 호령이 울려 퍼졌다.

“전체 앞으로 나란히!”

“전체 차려!”

“전체 열중 쉬어!”

정렬의 정도를 확인받고 나면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명령’에 의해 ‘정렬’되어야 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러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모인 연병장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곳의 ‘명령’은 더욱 강도 높은 ‘정렬’을 요구했다. 조교가 말을 하는 동안 자세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혹독한 얼차려가 가해졌다. 힘든 얼차려를 몇 번 받고 나면 훈련병 모두는 얼어붙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더운 여름이었지만 그 순간은 분명 싸늘하고 차갑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명령’에 ‘정렬’된 훈련병 집단의 온도는 분명 극저온이었다.

통계적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엔트로피’라는 두 가지 물리량이 필요하다. 우선 ‘정렬’의 정도를 ‘에너지’로 변환해보자.

“시키는 대로 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무서운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저항’을 고려해 보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0의 에너지라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복종은 음의 에너지(-E)에 해당한다. 무리한 명령에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 반면, 호통치는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을 돌려 침묵한 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감추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주먹을 움켜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저항’을 위해서는 양의 에너지(+E)가 필요하다.

명령에 대해 10명의 구성원이 모두 복종하는 경우의 수는 1가지, 1명이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10가지가 존재한다.
명령에 대해 10명의 구성원이 모두 복종하는 경우의 수는 1가지, 1명이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10가지가 존재한다.

통계적으로 엔트로피는 집단 구성원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경우의 수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명령에 대해 ‘복종’과 ‘저항’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10명의 구성원이 응답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구성원 10명이 모두 복종하는 경우나 모두 반항하는 경우의 수는 쉽게 알 수 있다. 모두 한 가지 경우만 존재한다. 집단의 총에너지는 각각 최소 –10E와 최대 +10E가 된다. 딱 1명만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10명의 구성원 각자에게 이름을 붙여보면 감이 온다. 처음 용기를 내 저항할 그가 재석이가 될 수도 있지만, 명수가 될 수도 있다. 1명이 저항할 경우의 수는 10가지가 존재한다. 총에너지는 복종하는 9명의 –9E에 저항하는 한 명의 +E를 더해 –8E가 된다.

3명이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몇 가지일까? 이제 수학적 감각이 필요하다. 일단 10명 중에서 저항하는 세 명을 한 명씩 차례차례 고르는 상황을 먼저 생각해 보자. 첫 번째로 저항하는 이로 10명 중 1명을 고르는 방법은 10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에서 1명을 골랐으니 두 번째 저항하는 이를 고르는 경우의 수는 남은 9명 중 한 명을 고르는 9가지가 존재한다. 같은 방식으로 세 번째 저항하는 이를 고르는 경우의 수는 8가지가 가능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각각의 과정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경우가 된다. 따라서 10명 중에서 저항하는 세 명을 한 명씩 차례차례 고르는 경우의 수는 10×9×8.

10명 중 3명이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120 가지가 가능하다.
10명 중 3명이 저항하는 경우의 수는 120 가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10명 중 3명을 고르는 경우의 수다. 3명이 어떤 순서로 있든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10×9×8의 곱셈 속에 숨겨진 선택된 3명의 순서를 바꾸는 경우의 수를 제거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방식을 이해했다면 3명을 차례로 세우는 경우의 수는 3×2×1. 이제 처음 구한 10×9×8에서 3×2×1를 나누면 된다. 이 지점에서 수학적 감이 없는 학생들은 왜 10×9×8에서3×2×1를 빼지 않고 나누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10×9×8의 곱셈 속에 존재하는 3명의 순서를 바꾸는 경우를 무력화시키려면 나눠서 1로 만들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10명의 구성원 각각이 선택한 ‘복종’과 ‘저항’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총에너지와 경우의 수에 대응하는 엔트로피를 얻을 수 있다. 집단의 총에너지는 모두가 복종한 최소 에너지 –10E에서부터 모두가 저항하는 최대 +10E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각각의 총에너지에 따라 경우에 수에 대응되는 엔트로피도 분포한다.

저항 인원수 혹은 집단의 총에너지에 따른 다양한 경우의 수와 엔트로피 분포의 기울기를 통해 통계적 온도를 얻을 수 있다. 다수가 저항하는 조직은 음의 온도를 지닌다.
저항 인원수 혹은 집단의 총에너지에 따른 다양한 경우의 수와 엔트로피 분포의 기울기를 통해 통계적 온도를 얻을 수 있다. 다수가 저항하는 조직은 음의 온도를 지닌다.

열역학적으로 온도(T)는 에너지 변화(∆E)에 따른 엔트로피의 변화(∆S)로 얻을 수 있다(1/T=∆S/∆E). 에너지 변화(∆E)에 따라 경우의 수 혹은 엔트로피의 변화가 다르다는 것은 통계물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까? 권력자의 명령에 얼어붙어 모두가 복종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처음 용기 낸 한 명의 ‘저항’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없음’이 ‘있음’이 되는 그 처음 한 명에 의해 새로운 경우의 수는 가파르게 증가한다. 즉, ∆S/∆E는 가파르고 온도는 낮다. 경기가 침체되어 온도가 낮은 사회도 처음 시작된 ‘혁신’에 의해 가능성의 가지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반면, 에너지가 변화해도 엔트로피가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는 사회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새로운 저항의 목소리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다. 아무리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해도 세상은 관심을 주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의 가지 수는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 즉, ∆S/∆E의 기울기는 완만하고 온도는 높다. 이렇게 온도가 높은 사회는 기회를 늘려달라는 변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라는 삼엄한 권력자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을 그려냈지만, 올더스 헉슬리는 소설 『Brave New World』에서 세상을 통제하는 색다른 방식을 묘사했다. 각자가 지닌 다양한 욕망이 충족되는 미래 세상의 개인은 쾌락에만 몰입되어 정작 가장 중요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인지할 안목과 의욕이 상실된다. 개인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 것 같지만 사회의 개인들은 모래처럼 결집력이 없어 권력에 대항할 힘을 모을 수 없다. 권력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저항’이 반으로 양분된 사회는 균형이 아닌 혼돈이다. 개인과 개인은 와해되고 분열되어 있다. 가장 경우의 수가 많은 최대 엔트로피의 상태지만 그 누구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삭막한 세상이다. 에너지를 짜내어 외쳐도 가능성의 기회는 늘지 않는다. 즉, ∆S/∆E의 기울기는 0이고, 통계적 온도는 무한대다. 소수의 지배자는 다수로 부터 그렇게 자신의 권력을 지켜낼 수 있다. 현실 속 빅브라더의 전략은 통계물리적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민중은 폭력적 독재자가 만든 극저온이나 교활한 권력이 조장한 무한의 온도 구간을 벗어나 음(-)의 온도를 만들 수 있다.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저항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과정은 분명 고단한 과정이다. 권력은 순응의 인원이 소수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항의 인원수를 늘리는 과정은 에너지 증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에너지가 증가할수록 경우의 수와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혁명의 과정은 그렇게 좌절이 동반된다. 그 과정의 ∆S/∆E 기울기는 음수다. 따라서 온도는 음수다. 다수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변화를 요구했던 그 시절 대한민국은 음의 온도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김광석 교수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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