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35) 〈그날이 오면〉의 ‘그날’은? ①심훈과 모윤숙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35) 〈그날이 오면〉의 ‘그날’은? ①심훈과 모윤숙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2.03.16 11:17
  • 업데이트 2022.03.18 20:3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훈과 모윤숙

우리는 더불어 산다. 개인의 삶은 이웃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개인의 노력이나 힘만으로 삶의 질을 높이거나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이 좋은 예이다. 나아가 지구촌에 살고 있는 지금, 생판 관계없는 외국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주가가 급락해 개인의 금융자산이 줄어든다. 금융자산이 줄어든 주식 보유자는 소비를 줄인다. 그래서 주변 소상공인의 매출은 떨어진다.

이웃의 범위는 우주로 확대된다. 공룡이 지구상에서 절멸한 것은 공룡 탓이 아니다.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더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면? 확률은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충돌하면 개인 삶의 질 운운은 사치가 되고, 아예 인류가 지구상에 생존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 전체는 이웃의 덕이다. 먹고 사는 문제, 곧 생업 자체가 이웃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뿐 아니라 교육, 치안, 교통 통신 그리고 문화생활 모두는 이웃 덕으로 누리는 것이다. 이웃이 없으면 전기는 물론 촛불조차 밝힐 수 없다. 이처럼 이웃은 개인의 삶에 절대적인 필요조건이지만, 행복한 삶에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때는 개인 행복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여 이웃은 개인의 삶에 ‘양날의 칼’ 속성을 지닌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3.1.-

 

심훈(1901~1936)은 제일고보 재학 중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다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4개월간 복역했다. <그날이 오면>은 3·1운동 11주년을 맞아 쓴 시이다. 치열한 저항성이 뚝뚝 묻어난다. 세계적으로 저항시의 압권으로 평가 받는다. 일제의 검열에 걸려 활자화되지 못했다가 해방 후 1949년 시집 『그날이 오면』의 표제시로 실렸다.

중일전쟁(1937~1945)년 발발 후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했다. 1938년에는 조선에서 지원병제를 실시했다. 시인 모윤숙(1910~1990)은 조선임전보국단부인대의 간부로서 다음과 같은 시국 연설을 했다.

 

우리는 높이 펄럭이는 일장기 밑으로 모입시다. 쌀도, 나무도, 옷도 다 아끼십시오. 나라를 위해서 아끼십시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목숨만은 아까지 맙시다. 아들의 생명을 다 바치고 나서 우리 여성마저 나오라거든 생명을 폭탄으로 바꿔 전쟁마당에 쓸모 있게 던집시다.
- <여성도 전사다>의 일부 -

 

심훈은 1936년 35세를 일기로 애석하게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며 기뻐할 ‘그날’, 기쁨에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한이 남지 않을 ‘그날’이 오기 9년 전이었다. 그러나 일제 사슬에서의 해방과 대한민국의 독립이 자신의 몸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둥둥 치며 광복을 환호하는 행렬에 앞장설 ‘그날’이었을까?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배반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프랑스 임시정부 최고지도자 드골의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리 방침이다. 우리의 독립군에 해당하는 레지스탕스는 해방 전후에 나치 부역자 8천~1만 명을 약식 처형했다. 그리고 드골 임시정부는 부역자재판소와 공민재판소를 통해 7037명의 부역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그중 791명을 처형했다. 또한 4만 여명에게는 징역형을 내렸고, 5만 여 명에게는 공민권을 박탈했다.

특히 가장 높게 청산한 곳은 언론과 문학계였다. 나치에 부역한 신문들은 폐간시켰고, 부역 문인들에겐 발표금지령을 내렸다. 이처럼 프랑스공화국의 ‘똘레랑스’(관용)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는 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청산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너와 나, 우리의 이웃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은 어떠했는가?<계속>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