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8)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 보기보다 깔끔한 돼지
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18)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 보기보다 깔끔한 돼지
  • 김 해창 김 해창
  • 승인 2022.05.02 06:40
  • 업데이트 2022.05.05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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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오늘은 서로 농(弄)을 하기로 합시다.” “내가 보기에 대사는 돼지로 보이는 구려.”
”제가 보기에 전하께옵서는 부처님으로 보이십니다.”
“아니, 농을 하기로 해놓고 어찌 칭찬을 한단 말이요.”
“아닙니다. 전하,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입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다.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 불안건불의(佛眼見佛矣)’ 또는 ‘불안돈목(佛眼豚目)’. 이 말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나오는 데 ‘세상 만물을 부처의 눈으로 보면 다 부처 같이 보이고, 돼지의 눈으로 보면 다 돼지 같이 보인다’는 말이다. 음력 사월 초파일(올해는 5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생각하다 문득 이 고사가 떠올랐다. 그런데 돼지 입장에서 보면 억울함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잘 알고 보면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멧돼지과에 속하는 잡식성 가축인 돼지는 옛이름인 ‘돝’ 또는 ‘도야지’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의 멧돼지에서 유래됐다고 적혀 있다. 『삼국지』 부여조에 저가(猪加)라는 관직 명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의 역사는 약 2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희생으로 돼지를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굿이나 고사 등을 지낼 때 돼지머리를 제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최근 JTBC TV프로그램 ‘뜨거운 싱어즈’에서 연예인 합창단을 시작하면서 돼지머리 모양을 한 떡으로 고사를 지내는 모습이 신선했다. 한자 ‘집가(家)’를 풀어보면 갓머리(宀)변 아래 ‘돼지(시:豕)’가 들어 있다. 예전에 집에 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돼지를 길렀던 데서 나온 글자라는 말도 있다. 

백과사전에 소개된 재래종 돼지는 흑색으로 몸이 작고 주둥이가 길며 체질이 강건해 질병에 잘 견딘다. 돼지는 잡식성 동물이어서 뭐든지 잘 먹고 생후 8~10개월부터 10년 정도 번식하는데 임신기간이 114일이어서 연중 번식이 가능하다. 대개 한배에 6~12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어미돼지는 새끼돼지의 젖을 뗀 뒤 7~10일이 지나면 다시 발정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하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제주도나 남부지방의 산간의 경사진 땅에 이층 목책을 만들어 윗칸은 측간으로, 아랫칸은 돼지우리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특히 인분을 먹여 키운 제주똥돼지는 생명순환의 원리에 충실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토종돼지는 1960년대 정부가 외국종을 다량 보급시킨 바람에 멸종 직전까지 갔다가 1983년 수원 축산시험장에서 ‘유전자 역추적 작업’을 벌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돼지에 관한 부정적 속설이나 속담 등이다.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라는 속담이나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처럼 돼지는 더럽고 우둔한 동물로 여겨진다. 게다가 성경에 예수님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나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들을 쫒아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한 이적에서는 돼지가 사악한 동물로 각인된다. 반면에 ‘돼지꼬리를 먹으면 글씨를 잘 쓴다’거나 ‘산모가 돼지발을 삶아먹으면 젖이 많이 난다’는 좋은 속설도 있다. ‘돼지꿈=재물’인 이유는 돼지를 지칭하는 한자음이 ‘돈(豚)’이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그래서 돼지는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어릴 적 동전으로 가득찬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를 때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가. 

옛날에는 귀천을 넘어 자기 아이들을 남에게 이를 때 ‘우리집 돼지’라는 의미인 ‘가돈(家豚)’, ‘돈아(豚兒)’ ‘미돈(迷豚)’ 으로 불렀다. 행실이 좋지 않은 아이를 ‘풀어놓은 돼지’라는 의미로 ‘방돈(放豚)’이라 불렀다. ‘계돈동사(鷄豚同社)’라는 사자성어는 시골 돼지우리에서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고향사람끼리의 친목을 이르는 말이다. ‘신급돈어(信及豚魚’는 돼지나 물고기조차 감동시킬 정도로 신의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지저분함의 대명사이기도 한 돼지.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못해 체내의 모든 수분을 소변으로 배설한다. 그렇지만 돼지는 소나 닭보다 더 깨끗한 동물이다. 돼지는 그 조상인 멧돼지 때부터 후각이 발달되어서 사료·사육자·새끼·대소변 등을 구별할 수 있다. 돼지는 자신이 누울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한다. 한편 어미 돼지와 새끼를 한 우리에서 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미가 새끼 돼지를 위해 먹이를 양보하기에 살이 많이 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 돼지의 눈물겨운 모성!

[사진 출처 : 일본동물권센터]

일본 동물권센터(https://www.hopeforanimals.org/pig/405)는 홈페이지에 ‘원래 돼지의  모습을 아세요?’라는 제목으로 돼지의 생태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돼지는 자연계에서는 모계 중심의 사회적인 동물이다. 30마리 정도의 동료를 인식해 기억할 수 있고, 코와 코를 비비며 인사를 나누며 20 종류 정도의 울음소리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일부 돼지는 암컷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돼지는 호기심이 왕성한 동물이다. 장난감이 되는 잔가지나 새 날개 등을 발견하면 장시간 그것을 갖고 계속 놀기도 한다. 진흙 뒤집어쓰기나 일광욕을 좋아하는데 이는 신체의 병균이나 기생충을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돼지는 무리에 같은 시기에 출산한 돼지가 있는 경우 새끼 키우기를 공동으로 하기도 한다. 돼지는 매우 위생적인 동물로 배변·배뇨 장소와 잠자리를 구분한다. 

돼지는 침팬지와 거의 같은 수준의 영리한 동물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한 연구자는 돼지가 컴퓨터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여 단순한 매칭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도널드 블룸 교수는 돼지는 개보다 세련된 인지능력을 갖고 있으며, 3살짜리 아이보다 영리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돼지도 다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공장형 축산으로 우리에게 돼지는 한갓 맛난 삼겹살 육고기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돼지는 어쩌다가 우리 밥상과 술상에 매일 오르게 되었을까』(2021)는 2020년 말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약 1160만 마리이며, 2018년 말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먹는 돼지고기 양은 27kg로 소고기(12.7kg), 닭고기(14.2kg)에 비해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라고 소개한다.

우리나라 동물권보호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https://www.ekara.org/activity/farm/read/15588)는 국내 99%의 돼지들이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사육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돼지들은 밀집사육 스트레스로 서로 물어뜯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빨과 꼬리가 잘리고, 수퇘지들은 냄새 제거를 이유로 마취도 없이 거세당한다. 어미돼지는 몸조차 돌리기 힘든 금속 우리인 스톨(stall)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평생 반복한다. 돼지들은 분뇨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로 가득한 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맡지 못하고 평생 흙 한번 밟지 못하고 결국 도살된다.

우리 국민 대다수도 농장동물 복지를 개선하고 공장식 축산을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7.2%가 공장식 축산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거나 종식시켜야 한다고 응답했다. 농장동물 중 사육환경 등 복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축종에 대한 응답은 돼지가 80.6%로 가장 높았다(뉴스1, 2021년 11월 17일). 

돼지를 한낱 고깃덩어리로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생명이 있는 동물로 보아야 한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진짜 돼지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