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26)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⑧
대하소설 「신불산」(126)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11 07:00
  • 업데이트 2022.05.13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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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말리별곡1⑧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 이튿날 새 며느리 화천댁이 시집와서 처음 아침밥을 하기 위해 부엌에 들어간 뒤였다. 시어머니 조동댁과 다섯 명의 시누이가 어쩌나 보려고 문구멍에 눈을 박고 숨소리를 죽일 때였다. 미처 문구멍에 제대로 눈을 맞추기도 전에 쨍그랑, 부엌 앞에서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물을 길러 부엌문을 나서던 새 며느리가 큰 대자로 넘어지면서 커다란 물동이가 박살난 것이었다. 조동댁이 시집오기 전 이불마을에 살던 시어머니가 그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부엌살림의 상징이자 가보가 산산 조각난 것이었다. 

놀란 신랑 갑생씨와 다섯 시누이가 범처럼 무섭고 여우처럼 까다로운 조동댁이 어떻게 난리굿을 벌릴지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조동댁이 성큼 사랑방을 나서며

“야야, 자부야, 이 우얄라꼬...”

뭔가 혼쭐을 내려 말문을 여는 순간

“‘허, 그거 참, 이기 와 여 있노?”

아무렇지도 않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난 새 며느리가 여러 개로 박살난 옹기조각 사이로 곡식을 널 때 쓰는 밀게를 하나 집어 들어 마당귀퉁이로 툭 던져버리고는 손을 툭툭 털며

“희한하네, 이기 와 여게 와 거 있노? 아아들이 장난을 쳤나?”

마치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거기에 밀게가 있은 것이 잘못인 것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무거나 들고 놀다 던져버리는 아이들이 장본인이라는 말에 아이 달린 딸들이 숨소리를 못 내고 조동댁의 얼굴만 바라보고 기가 막힌 조동댁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한참이니 골똘히 생각하는데 

“어영차!”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새 며느리가 떡을 찌거나 술밥을 할 때, 아니면 정지에서 여인네들이 은밀히 목욕을 할 때나 쓰는 커다란 옹기 통 사구를 이고 나왔다.

“아이구, 야야, 니 우짤라꼬 그 큰 사구를 이고 나오노?”

억장이 무너져 꾸중도 못 하고 다급히 묻는 조동댁에게

“아니, 어무이, 식구가 여남은도 넘는데 물도 이 정도는 떠 와야지요.”

하면서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사립문 앞에서 또 한 번 비틀하자 보는 사람 모두 가슴이 철렁하는데 

“잠깐!”

하고 황급히 달려간 갑생씨가 제 아내가 인 사구를 받아들고 옹달샘으로 향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운다고 초가지붕의 이엉 속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마당귀퉁이와 장독간너머의 텃밭을 쪼아대던 참새들이 잠잠해지고 노란 아침햇살이 사립가의 엉개나무와 감나무를 비추다 마침내 마당에 가득 찬 늦은 아침에야 우여곡절 끝에 사랑채로 아침상이 배달되었다. 순간 밥상을 한 번 살펴본 조동댁이 단숨에

“야야!”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며느리를 불러 세웠다.

“마 그냥 묵자. 배고픈데...”

숟가락질이 바쁜 영감을 모른 채 하고 

“이기 뭐꼬? 너거 집에서는 밥상을 이래 채리나?”
“와요, 어무이? 밥 있고 국 있고 김치 있고 숟가락 있고 마 이래 채리다 묵으면 되는 거 아잉교?”
“이 봐라. 여자는 자고로 나매가 짚북데기니 솔 이파리를 갖다 조도 보들보들 야들야들 찌지고 굽고 볶고 무치고 버무리고 묵기 좋게 간을 맞추어 음석을 만들어내야 되는 기라. 그라고 같은 음석이라도 보기 좋고 깨끗하고 얌전하게 담아야지.”
“...”

왼손으로 간장종지를 잡고 오른손 검지로 테두리를 훑어 깔끔하게 닦아 보이더니 게으른 백정 놈 고기 썰듯 숭덩숭덩 대충대충 비뚤비뚤 커다랗게 썬 배추김치, 무김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평소에 무슨 보물처럼 아끼느라고 장에서 횟감을 사오거나 남편이 열무김치를 비빌 때나 접시바닥에 붙을 정도로 조금씩 떠오는 고추장을 접시 가에 널널하게  퍼지도록 퍼 온 것을 보고

“아이고 손도 크다. 무슨 도둑놈 손도 아이고?”
“어무이, 거기 무신 말잉교?”
“오냐, 잘 한다. 그래 너거 집에서는 이래밖에 안 가르치더나? 명색 시집온다며 요 따우로 배우고 왔나?”
“와요, 지가 우쨌긴데요?”
“음식이라는 것은 조목조목 연하고 간 맞게 해서 천천히 야금야금 맛있게 묵어야 살이 되는 거지. 이기 뭐 소여물 믹이는 거도 아이고 말이다.”  
“이이구, 어무이 별말씀을요. 거기 다 배부른 소리지요. 배가 고파보소 안 맛있는 음석도 없고 천천히 묵을 택도 없지요. 밥이 적어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판에 죽이든 밥이든 나물이든 그저 묵을 것만 있으문 쇳바닥이 딴스를 하지요. 또 농사꾼이 콩팔이 새삼육이라고 꽁창꽁창 따지고 밥을 묵으면 그 바쁜 농사일은 누가 하겠능교?”
“아이구, 말도 잘 하네. 명촌땅에 변호사가 났네. 아니, 이 버르장머리 없는 화상하고는! 그래 시어마시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기어이 꽁창꽁창 말대꾸로 해야 되겠나? 아이구, 참 화천땅에 변호사가 명촌구석에 시어마시를 잡는구나, 잡는구나!”

억장이 무너져 볼멘소리를 내지르고 시아버지와 시누이들이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숨을 죽이고 쳐다봤지만 새 며느리는 스스럼없이 부엌에 들어가 급한 데로 밥 한 술을 입에 떠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숭늉을 떠 다시 사랑채로 오고 있었다.

ⓒ서상균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자 새신랑 갑생씨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머니 조동댁 주위를 맴돌더니

“어무이 새 사람 데리고 산소 갔다오께요.”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몰라. 새 사람인지, 원수덩어린지 니 알아서 해라. 그라고 화천땅 변호사를 데려와서 시어마시가 죽게 되었다고 조상님께도 고해라!”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조동댁이 고개를 외로 꼬았지만 갑생씨는 제 빨리 누이들에게 눈짓을 보내 약간의 음식과 술 주전자를 챙기고 돗자리를 둘레매고 대밭 뒤를 돌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뒷산으로 올랐다. 평지에서 절을 하는데도 어설펐던 새댁은 산소 앞 비탈진 잔디밭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듯 뒤뚱거리며 새 며느리가 된 신고를 마치자 넉넉하게 가져간 막걸리로 두 매제와 천천히 음복을 하고 산을 내려왔다.

아침상을 내다 북새통이 벌어진 것을 본 큰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말자 부엌으로 들어와 제 여동생 넷을 부르더니 하나는 콩나물대가리를 따게 하고 하나는 물을 길러오게 하고 또 하나는 쌀을 씻어 안치게 하고 법석을 떨었다. 이윽고 잔치에 먹고 남은 나물과 지짐, 부각, 튀각에 새로 썬 동치미와 배추김치를 예의 커다란 사구에 담더니 

“야, 소두배이 끄떡거리는 것 좀 봐라. 인자 김을 빼고 뜸을 들이야지. 야, 셋째야, 니는 나이 열일곱 살에 소두배이운전수도 그래 밖에 못 하나?”

하며 솥뚜껑을 열어젖히더니 이내 옆에서 역시 쇠쇠 소리를 내며 끓는 백철 솥의 뚜껑을 열고 잔치 때 쓰고 남은 쇠고기국에 콩나물과 물을 넣고 양을 늘린 국을 대여섯 그릇 본때 있게 퍼고 아이들과 여자들의 몫은 커다란 양푼에 담았다. 이윽고 밥에 뜸이 들자 하얀 쌀밥을 주걱채로 반찬이 담긴 사구에 퍼 담아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고 커다란 주걱으로 이리저리 휘저어 비벼서 역시 어른들과 아이들의 몫으로 나누어 퍼 상을 보더니 

“올케야, 사랑채에 상 들고 가거라. 엄마가 뭐라 캐도 절대로 말대꾸하지 말고...”

당부를 하더니

“이 년의 가시나야, 주게 쫌 빨지마라. 여자가 주게 끝에 밥을 빨면 삼대로 빌어쳐묵는다 카더라.”

하면서 마악 주걱 끝에 눌러 붙은 노랗게 익은 밥과 달랑거리는 콩나물대가리를 맛있게 빨아먹는 열한 살 막내여동생의 손목을 탁 쳤다.

 

그렇게 점심을 잘 넘긴 큰 시누이는 이번에는 또 오후를 잘 넘길 궁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길천으로 시집간 둘째는 생긴 것이나 성질머리가 꼭 심술궂은 제 어미를 빼닮아 단 한 번도 동생들에게 곰살맞게 군 일이 없었는데 저도 시집을 가 아이를 낳고 사나운 시어머니, 우악스런 술고래 남편과 까다로운 시누이들에게 시달리다보니 친정동생의 아내인 올케에게는 어떤 안타까움이나 걱정되는 마음이 생긴 모양인지 고분고분 잘 따랐다.

술이 떨어져 읍내술도가의 막걸리를 한 말 사오게 하고 닭을 한 마리 잡아 잘게 쪼아 국을 끓이고 뒤란의 움에서 무를 꺼내 무나물도 볶아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을 차리고는 네 여동생들을 내보내 사광리와 명촌본마을을 집집이 돌며 늙고 젊은 아낙들을 불러왔다. 그렇게 국밥을 넉넉히 나누어먹고 마침내 갑생씨의 아내는 친정마을 이름을 따 화천댁이라는 택호(宅號)가 주어지며 명촌마을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오후 늦도록 손님을 치르고 사랑채의 어른들에게도 닭국으로 저녁을 올리고 남은 국물로 아이들과 사위들과 넉넉하게 저녁식사와 술추렴을 마시고 내일이면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모두들 씻고 각자의 잠자리에 드는데 부엌에서 문득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큰방에 누웠던 큰딸이 살며시 내다보았다. 낮에 화천댁이 택호를 받은 갑생이처가 배가 고파 잠이 안 오는지 혼자 부엌바닥에 상을 펴고 김치 한 보시기와 커다란 양재기에 건더기가 별로 없는 다 졸린 국을 퍼 담더니 큰 솥에 남겨둔 밥을 양재기째 들고 오더니 한 그릇도 훨씬 넘게 아예 주걱으로 퍼 국양재기에 담았다.

“...?”

어쩌나 보자고 침을 삼키며 큰 딸이 내다보는데 누가 옆구리를 푹 찔렀다. 둘째딸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째를 비롯한 다섯 자매 전부가 숨을 죽이고 내다보고 있었고 아래채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으로 보아 두 사위들도 귀를 쫑긋하는 모양이었고 사랑방의 노인네들도 자지 않는지 문이 빠끔하게 열리더니 시어머니가 조용조용 걸어와 부엌문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지 새신랑 갑생씨만이 초저녁에 벌써 일합(一合)의 방사를 치르고 나가떨어졌는지 혼자 잠들어 코를 고는 소리가 문밖으로 새고 있었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모두들 자신을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화천댁은 숟가락으로 두어 번 국에 만 밥을 퍼 먹다 성이 차지 않는지 양푼 째로 몇 모금 들이마시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살강에서 간장종지를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국이 싱거운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숟갈로 두어 번 간장을 떠 넣고 다시 양푼이 째로 몇 모금 마시던 화천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짠 모양이었다. 이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물독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 떠오더니 국밥에다 부어버렸다.

“...!”

모두들 눈이 뚱그레졌다. 세상천지에 더운 국밥에 찬물을 섞어서 먹는 경우가 다 있다니! 듣도 보도 못한 광경에 모두 아연실색하는데 한참이나 후루룩거리며 국밥을 먹던 화천댁이 숟가락을 멈추고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싱거운 모양이었다. 이윽고 양재기에 배추김치를 몇 술갈 떠 넣더니 이번에는 단숨에 그 많은 국밥을 입안에 우겨넣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휴우, 커다랗게 소리를 내며 트림을 했다.

“아이구 큰 일 났다. 저기 사람이가, 소가? 이건 뭐 며느리를 본 것이 아이라 소를 키우는구나! 아이고, 이 일을 우짜꼬?”

가슴을 탕탕 치며 돌아서는 조동댁을 보면서 큰딸의 가슴도 철렁했다. 까다롭고 사납고 심술궂고 야무진 시어머니와 눈치 없이 단순하고 순수하며 덩치만 커다란 맏며느리와의 한 평생이 걱정도 보통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을 엿보는지, 시어머니의 탄식이 늘어지는지도 모르고 화천댁은 기명 통에 그릇들을 담그고 천천히 달빛이 교교한 축담 앞을 걸어 신랑이 잠든 작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이제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큰 딸, 둘 째 딸이 오늘아침은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화천댁이 아침상을 들고 간 사랑방을 초조하게 바라보는데

“야야, 자부야!”

걱정대로 조동댁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섯 딸과 두 사위, 아무 것도 모르고 아이 다섯까지 덩달아 숨을 죽이고 사랑채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세상에, 시아부지 앞에서, 그것도 밥상을 들고서 거기 무슨 짓이고? 염치도 없이 참을성도 없이...”
“야, 어무이 속이 안 좋아 거기 뭐 우짜다가 보이...”

말을 흐렸다. 아마도 밥상을 내다 방귀라도 뀐 모양이었다. 순간 간밤에 부엌에서 양푼 째 국밥을 아구아구 퍼먹던 모습이 떠오른 큰딸은 어머니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났겠다고 생각하는데 아닐까 다를까

“거기 우째 속이 안 좋아 나는 소리고? 염치도 없이 나오는 데로 처지른 소리지? 니는 여자라 커는 기 니 집 구석에서는 배우기로 그렇게 배웠나?”

조동댁의 목소리가 한결 고조되는데

“아이고 어무이도, 사람이 덩치가 크면 소리도 좀 클 수가 있겠지요. 우짜다가 며느리가 까스 좀 흘리 뿐 거 가지고 별말씀도 다 하십니다.”

시큰둥하게 받아넘기자

“그래, 니 잘났다! 니가 인간이가 소가? 아이문 소 새끼가?”

가슴을 탕탕 치는데

“아이구 얄궂어라. 어무이는 그라문 내가 방구를 참다가 속에 노랑 병이라도 걸려서 죽으면 좋겠능교?”

도로 대드는 것이었다. 순간 따앙, 마침내 참다못한 시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밥상을 내리치자 부리나케 마당을 가로질러 간 갑생씨가 제 처를 부엌으로 끌고 갔다.

 

화천댁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걸 확인하고 큰딸이 갑생씨를 대밭으로 불러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