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2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⑨
대하소설 「신불산」(12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⑨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12 07:00
  • 업데이트 2022.05.13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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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말리별곡1⑨

화천댁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걸 확인하고 큰딸이 갑생씨를 대밭으로 불러냈다.

“오빠, 우짜겠능교?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라고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고 별별 경우도 다 있다카지요. 그래도 사람은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산다고 다 지 복대로, 팔자대로 만나면 만나는 대로 살아야 되는 기라. 우리가 시집갈 때 어무이가 ‘시집살이는 봉사 3년, 귀머거리 먹보 3년, 버부리 3년이라 캤는데 인자 오빠가 여자맨시로 봉사에 먹보에 버부리 3년을 살아야 되겠심더. 그래야 집안 꼴이 되겠다. 그리고 봉사, 먹보, 버부리처럼 안 보고 안 듣고 말 안 하는 것아 다 중요하지만 특히 집안이 편할라카면 거 말 안 하는 버부리 3년을 잘 지켜야 됨데이. 사랑방에서 한 어무이 말을 부엌에 있는 올케한테 전해서도 안 되고 작은 방에서 자면서 올케가 하는 말을 절대로 사랑방의 어무이한테 해서도 안 됨데이. 잘 알았제? 내사 마 오빠 니가 걱정이 되서 오늘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이제 손님들이 다 떠나고 시부모와 아들내외 그리고 세 딸만 남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두 사내는 이제 좀 큰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조용 살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야무치고 사나운 시어머니와 굼뜨고 단순한 며느리의 필사적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야무지게 하는 일도 없이 매사에 어설프면서 공손하거나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건들건들 살아가는 며느리가 도무지 탐탁하지가 않고 더욱이 아무리 급해도 바쁜 일리라고 없는 천하태평에 복장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느리의 입장에서 보면 뭐 그리 대단한 집안이거나 넉넉한 부자도 아니면서 온갖 일에 격식을 차리고 멋을 부리고 까다롭게 구는 시어머니가 도무지 맘에 들지 않고 불편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두 남자와 세 딸들이 보기에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듯 폭발직전의 긴장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결국 시어머니 조동댁의 며느리 화천댁에 대한 지청구가 험담이 되고 마침내 악담으로 변해가 점점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처음에는 덩치가 크고 많이 먹는다고 <소 같은 년>으로 불리다 버릇이 없다고 <못 된 년>, 아는 게 없다고 <못 배운 년>, 솜씨가 없다고 <등신 같은 년>에서 솜씨가 없어도 너무너무 없다고 <손에 흔디 난 년>이 되기도 하고 시어머니의 말에 꼬박꼬박 잘도 대꾸를 한다고 <변호사 같은 년>으로 몰리다 날마다 시어머니의 복장을 뒤집는다고 <사람 잡아 먹을 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렇든 말든 덩치가 커다란 화천댁은 그 때 그 때 나오는 대로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별로 노여움을 타는 기색도 없이 씨익 웃어넘기며 늘 당당한 것이 더 한층 조동댁의 화를 돋우고 염장을 질렀다.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며 좋아했던 큰 아들 갑생씨가 그렇게 철없는 제 아내를 나무라거나 다독거리기는커녕 잠자코 말이 없거나 슬쩍슬쩍 아내의 편을 드는 팔불출이 짓을 하는 것이 더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하도 답답해서 ‘이 더러운 종내기야, 이 애미가 니를 우째 길렀는데 이러느냐?’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셈인지 갑생씨는 어미와 눈을 맞추기도 겁내며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바로 두 사람의 금슬이 엄청 좋은 것이었다. 제 아내가 그렇게 하루 종일 온 집안에 분란을 일으켜도 원망을 하기는커녕 그저 허파에 바람이라도 든 사람처럼 늘 입이 헤벌쭉해 바라보다가는 저녁상을 물리기 무섭게 설거지도 채 끝내지 못 한 사람을 소 몰듯이 제방으로 끌고 가고는 이내 불을 끄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리 꿀이 흐르고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소처럼 덩치만 크고 맵시도, 말씨도 살가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내 같은 여자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그렇게 통 맥을 못 추는 것은 굼벵이가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저 소 같은 년이 그래도 제 서방을 녹이는 구미호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다 들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비록 한 집에 미생전의 딸을 셋이나 키우기는 하지만 아직 쉰이 안 되어 어쩌다 곱상하고 점잖은 남편의 손이 닿거나 눈이 마주치면 등골이 찌르르한 조동댁은 저녁마다 불이 꺼진 며느리의 깜깜한 방문을 쳐다보는 순간 무엇에 얹힌 듯 가슴이 막히면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견디다 못 해 하루는 

“저, 갑생이아부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며 슬며시 손을 내밀었지만

“이 사람이 와 이라노? 이라다가 며느리라도 들으면 우짤라꼬? 이 사람아, 인자 며느리까지 본 어른이 되고 손주가 다섯이나 되먼 좀 점잔해라. 곱게 좀 늙어라!”

괜한 타박을 하면서 손부끄럽게 팔을 탁 쳤다.
 

또 하루는 견디다 못 해 측간에 가는 척하고 밖으로 나와 새파란 물이끼위로 하얗게 무서리가 내려앉으며 반짝이는 마당을 지나 며느리가 자는 작은방 앞에서 귀를 쫑긋할 때였다.   푸우푸우 방금 숨이 넘어가는 사내의 가쁜 호흡에 이어 철벅철벅 물기가 촉촉한 풋보리를 찧는 방아소리에 묻혀 무어라고 홍알거리며 다급하게 호소하는 여자의 앓는 소리가 온방에 가득했다.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나고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어 승천을 하며 산과 바다가 서로 부딪히고 맹세하는 그런 난리 굿판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이윽고 푸우,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나동그라지는 소리, 낮게 키득대는 아낙의 목소리와 함께 방안이 조용해지자 홧홧해진 가슴을 안고 제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시어머니심술은 빚을 내어 꾸어 와도 반드시 부린다고 이튿날부터 조동댁이 본격적으로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아들내외가 제 방에 들어가 불을 끈 지 2, 2, 3분이 지나 하마 둘이 옷을 벗고 입을 맞추고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리라 싶은 순간

“야, 자부야, 자부야!”

일부러 커다랗게 며느리를 부르고 방문을 열고 한참이나 기다려 부스럭거리며 다시 옷을 입은 며느리가 나오면

“너거 아부지 자리끼 떨어졌다. 물 떠오너라!”

자신이 슬며시 마셔버린 물그릇을 내 주거나

“방바닥이 와 이래 배기노? 이불 새로 깔아봐라.”

하며 부아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난이나 심술도 하루 이틀이지 마침내 화가 난 며느리가

“어무이는 손이 없능교? 이불 까는 거는 알아서 하지요?”
“어무이는 정지에 물독 있는 거를 모르능교? 정지 가는 길을 모르능교?”

그 정도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피하다 그래도 되지 않자

“어무이는 젊은 사람들 자는데 무슨 심술잉교? 그라다가 아들손자 못 안아보면 우짤라꼬 그라능교? 세상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며느리 잠자리를 훼방 놓는 법이 어딨능교?”

당돌하게 도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조동댁이 

“아들아, 야 갑생아, 불출이 같은 종내기야!”

이제 방문까지 두드리며 불러대다

“어무이는 참 너무 하십니다. 우리가 뭘 잘못 했능교?”

며느리 화천댁이 따지면

“나는 마 니 안 불렀다. 우리 아들 불렀다. 니는 마 처박히서 잠이나 자라!”

면서 기어이 아들을 불러내었다.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갑생씨가

“어무이, 이랄 끼면 장개는 마러 보냈능교? 차라리 우리를 살림을 내주소.”

눈을 부라리며 대들자 이제 마지막 작전으로 들어갔다.

ⓒ서상균

이튿날 보름달이 훤한 초저녁이었다. 그날도 영락없이 며느리의 방문을 두드리며

“아들아, 야 갑생아, 불출이 같은 종내기야!”

불러대도 이제 이골이 난 방안에서는 아예 대답도 기척도 없었다. 그 때 

“야, 이 더러번 종내기야, 니는 하는 궁가리가 생기니까 나온 궁가리는 처다도 안 보나? 이 불효막심한 자식아!”

조동댁이 입에도 차마 담지 못 할 욕을 퍼붓더니 이어

“이 불효막심한 호랑말코 같은 놈아, 내가 니를 놓았다고 미역국을 쳐 묵느니 차라리 봉태기나 하나 더 삼았을 낀데. 이 기집밑구멍에 빠진 얼빠진 종내기야!”

점점 수위가 높아지더니 마침내 표적을 바꿔

“밥도 하나 지대로 못 하고 물도오나 깨고 하는 년이 염병할 지 서방하고는 죽고 몬 살고 지랄이야. 이 년아, 아무리 지 서방이라캐도 손만 내밀면 죽자살자 사타리 벌리고 궁가리 벌시주는 천치바보가 어딨노? 이년아, 여편네가 제 속셈도 있고 몸도 사릴 줄 알아야지. 여자가 사내 주라는 대로 다 벌시주면 아를 한 축이나 놀끼가? 스물 이로 놓을 끼가!”

바락바락 악을 쓰는데

“엄마...”

견디다 못 한 세 딸들이 손목을 잡고 사랑채로 끌었다. 힘에 부쳐 질질 끌려가면서도

“이년들아, 너거도 여자니까 잘 들어라. 천하만물 모든 짐승에게 뽕 뚤린 걸 다 구무라 하고 굳이 사람, 그것도 여자의 거시기만 궁가리라 카는 거는 그 만큼 중하고 귀하니까 오다싸고 애끼라는 뜻이다. 또 온갖 짐승은 다 다리를 벌린다카고 사람, 그것도 여자가 남자 앞에 다리를 벌리는 것을 벌신다 카는 기라. 나는 그래 배웠다. 명심해라, 이년들아!”

참으로 해괴한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순간

“니 지금 앤아들 데리고 무슨 소리 하는 것고!”

타앙 방문이 열리면서 성난 목소리와 함께 목침이 하나 마당으로 굴러 나왔다. 손에 숟가락이 없어서 닿는 데로 던진 모양이었다. 조동댁이 사색이 되어 방에 들어가고 집안천체에 불이 꺼졌다.

 

여우같은 시어머니와 곰같은 며느리가 끝없이 찌그럭거리는 가운데 하루하루가 가고 철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새침한 얼굴에 심술이 많은 두 시누이와 둥근 얼굴과 순한 성격의 막내도 시집을 가고 마침내 등말리의 높다란 초가집엔 조동댁내와와 아들 화천댁내와 그리고 두 사내아이들만 남았다.

어려서부터 목수 일을 배운 갑생씨는 농사일이 익숙하지 않아 추석을 쇠고 나면 집을 나가 이곳저곳 집짓는 곳으로 전전했다. 때로 자신이 집짓기전체를 오롯이 떠맡는 도목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새 절을 짓거나 묵은 사찰을 중건하는 큰 공사장에서 몇 년이나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한해 한두 번이었고 날이 눅어 접착용 아교가 붙지 않는 장마철이 아니고는 고작 2,3일 묵고 가는 정도였다. 

생각 같아서는 일 년 내내 집안에 머물게 하여 아들의 살가운 효도도 받아보고 며느리도 좀 시집 살리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 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농토가 옥토가 아닌 층층 논 비탈 밭에다가 식구 중에 누구하나 농사를 잘 짓는 사람도 없어 아예 일 년 먹을 양도(糧道)도 안 되는 데다 소소한 살림살이는 물론 그간 세 여동생을 여의는 일에 갑생씨의 대목일로 번 돈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집에 돌아와 한 보름 머물다가는 이 장마철이 시어머니 조동댁과 며느리 화천댁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였다.

“아부지, 어무이 지 왔심니더.”

주야장창 메고 다니는 연장망태에서 쇠고기 몇 근과 소주, 그리고 약간의 돈을 꺼내주고 제 방으로 건너가면 장마가 끝나 일터로 돌아가기 까지 여간해서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기도 힘들었다. 

조동댁으로서야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던 금쪽같은 아들이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남편 조동박손이나 아들 화천박손의 박씨집안 사내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인물이 훤해 아낙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는 정작 다정한 말 한 마디가 없이 제 계집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지 참으로 야박했지만 차마 이전처럼 다시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낼 수도 없었고 초저녁부터 불 꺼진 문 앞을 서성거릴 수도 없었다. 싸우다, 싸우다 간이 커질 대로 커져 이제 점점 조심성도 없고 못 하는 말도 없는 덩치가 태산 같은 며느리와 맞서기도 은근히 기가 죽는 것이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그래서 조동댁이 택한 방법은 애먼 손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