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28)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⑩
대하소설 「신불산」(128)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⑩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13 07:00
  • 업데이트 2022.05.14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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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말리별곡1⑩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그래서 조동댁이 택한 방법은 애먼 손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아직 고부간의 갈등이 한창이던 결혼이듬해 첫 아이 용진이가 태어났다. 가뜩이나 물체가 느린 판에 아이를 뱄다는 핑계로 시아버지의 물심부름을 비롯해 온갖 일에 게으름을 부리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묵살해버리기 일쑤라 어느 듯 며느리 화천댁은 제껴 놓고 시집 안 간 세 딸, 그중에서 마음이 여린 막내딸만 죽어나던 시절이었다.

“어이쿠야! 이기 뭐꼬?”
“에그머니나, 에그머니나!”

산실에서 아이를 받아 우선 고추를 확인하고 

“야, 아들이다!”

조동댁이 환성을 지르고 딸 셋도 각각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고 막내가 재빨리 사랑방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아부지, 아들입니더.”

전하고 세숫대야에 끓인 물을 떠 가 탯줄을 잘라내고 몸을 씻고 닦으면서 할머니 조동댁이 깜짝 놀라 아이를 떨어뜨릴  번했다. 우선 아이가 너무 작았고 얼굴에 주름이 조골조골 했다.

“이거 난쟁이아이가? 아아가 와 이래 작노?”
“그런데 저 눈 좀 봐라! 코 하고!”

4모녀가 동시에 입을 딱 벌렸다. 보통 아이의 반도 채 되지 않을 덩치의 갓난아이는 주먹보다도 작은 얼굴한가운데 누가 봐도 숨이 콱 막힐 정도로 섬뜩하게 큰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보통 아이들이 태어나면 한참이 지나 바깥세상이 눈부신  듯 조심스레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처음부터 눈을 뜨고 태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 아래도 정말 크고 우뚝한 코가 솟아있고 거기다 머리숱이 새까맸다.

“세상을 살다보니 보다보다 이런 희한한 아이는 첨 본다.”

세 딸들에게 들으란 듯이 지껄인 조동댁은

“덩치는 산만 한 기 아는 와 저래 쥐새끼만 하게 놓노? 나는 아를 쥐 낳는다는 말을 여러 분 들어봐도 정작 내 며느리가 그럴 줄은 몰랐다.”

한숨을 푹 쉬었다.

“좌우간 시집오던 그 날부터 재수가 없더마는 기어이 아아까지 쥐를 놓고 지랄이네. 농사도 정지일도 지대로 하는 것이라고는 없이 꼴에 여자라고 날마다 서방을 방구석에 몰아넣고 초지녁부터 불을 끄고 밤새도록 지랄법석을 떨더니 겨우 눈만 빠끔하고 조막디만 한 아를 쥐 놓고 마나? 계집이 천하에 재수가 없으니 그렇지. 깨알밪은 성질에 서방이나 밝히는 음탕한 계집, 그 더러운 년의 더러운 궁가리에서 싸지른 아가 그 모양이지. 에이 더러운 궁가리에서 나온 새끼!”

슬그머니 아이를 내려놓고 사랑채로 건너갔다. 두 딸도 어미를 따라 방을 나가자 산고로 흘린 땀방울이 질척한 얼굴에 다시 기가 막혀 울먹울먹 하는 산모 화천댁에게 이제 열세 살의 막내딸이

“새야, 월깨새이야, 고만 울어라. 내 얼른 첫 밥 끓여 오께.”

아이를 내려놓고 나가려다 

“봐라. 아들이다. 눈도 코도 다 커서 나중에 한 가닥 할 끼다. 새야 니는 아무소리 하지 말고 있어라. 오빠가 오면 좋다 할 끼다.”

다독거리고 나가면서 한참이나 걸려 소반에 미역국과 밥, 물, 김치와 간장종지를 차려 왔다.

“자, 천천히 무라. 우선 물부터 마시고.”
“그래. 액시야, 고맙다. 니는 우째 어무이를 안 닮고 마음이 그래 착하노? 낸주게 니 시집갈 때 내 잘 해주께.”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화천댁이 손을 잡았다.

ⓒ서상균

“허허 그놈 코 좀 봐라. 그야말로 태산준령(泰山峻嶺)이로다. 우째 이리 우뚝 하노? 과연 사내중의 사내로다. 또 이 화등잔 같은 눈 좀 보소. 과연 형형하기가 진시황을 박살내려던 창해역사(蒼海力士)의 눈빛인가? 아니지, 아니지. 머리끝이 곧추 서던 자객(刺客) 형가(荊軻)의 기백일세. 기골이 장대하고 안광이 형형하니 천하의 기재로다. 태산북두(泰山北斗)가 나왔도다!”

처음부터 아내 조동댁의 볼멘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인지 그날 저녁 큰 채 마루에 앉아 산실에서 건네받은 아이를 한참이나 들어다보던 시할아버지가 짧은 학문에 딴은 온갖 문자를 다 끌어와 아이를 칭찬했지만

“영감은 마 어지간히 아를 오다싸소! 그 조막만 한 얼굴이 태산준령은 무슨 태산준령이요? 축담 밑에 강생이가 다 웃겠소. 그라고 저 눈만 빠끔한 얼굴이 무슨 창랑역사에 형가란 말이요? 그라고 같은 말이라도 천하의 영웅호걸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자객들을 들먹이시오? 우리 얼라가 천하의 반역자가 되어야만 좋겠소?”

과연 양반집 딸이라서인지 아니면 남편을 평소 지극정성으로 대해서인지 단단히 삐친 사람치고는 점잖게 말했다. 

“아니, 이 사람 좀 보소. 몸이 천량이면 눈이 구 백량이라 는 말이 있잖소? 이게 다 눈, 특히 사내에게는 눈에 빛이 있어야 된다는 말인데 내가 이제야 내 손자, 내 핏줄에서 그 구백 량짜리 눈을 보아 흔감하기가 짝이 없지 않소?”
“영감, 나는 아이요. 저기 눈볼댄가 열긴가 그 뭐 눈 큰 고기, 짐승의 눈이지, 어디 인간의 눈이요? 또 저 얼굴 반, 코 반의 딱 볼가진 얼굴에 화등잔 같은 눈을 보소. 저기 한 마디로 딱부리가 아이고 뭐란 말이요? 나는 저 아이가 정이 안 가고 싫은데 영감은 그리도 좋소? 나는 저 아이가 정말로 숭시럽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할머니는 다시 아이를 안아주지도 않고 궁금해서 들어다보는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친정으로 아이를 보러온 딸들에게

“니 올캔가 나발인가 깨알받고 솜씨 없고 짭짤찮고 대통 맞고 재수 없고 덩치만 태산 같은 년이 아는 조막만 한 쥐를 놨다. 거기 모두 시어마시 무시하고 지 서방만 좋아하는 오줄없는 년의 재수 없는 궁가리로 놔서 그렇다. 아이고, 저게 어데 아아가, 사람새끼가? 그냥 눈만 빠끔한 딱부리새끼지, 더러운 궁가리로 나온 딱부리새끼지!”

이렇게 온 동네에 딱부리새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조그맣게 태어난 아이는 젖을 빠는 것도, 살이 붙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영 시원찮고 더디었다. 거기에다 유독 울음소리가 크고 한 번씩 방금 숨이라도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바람에 가뜩이나 심술이 난 할머니 조동댁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어미인 화천댁은 그 덩치 값을 하는지 시어머니의 못마땅함과 괄시에도 아무 내색 없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혼자 흐뭇한 마음이 되어 벌쭉벌쭉 웃었는데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일 때나 업고 있을 때나 영판 기둥나무에 파리가 앉은 점 복(卜)자 형상이었다.

그런 모습마저 밸이 꼬였는지 조동댁은 

“그렇게 딱부리 같은 새끼나 들여다보다 농사를 망치면 긴긴 삼동을 일곱 식구가 뭐 묵고 살 끼고? 그 까짓 조막디만 한 아새끼를 들여다본다고 밥이 생기나, 돈이 생기냐?”
 다그쳤다.

 

결국 화천댁은 몸을 푼 지 3칠일이 채 안 되어 시어머니의 손에 등이 떠밀려 비록 한여름은 지났지만 마치 바늘 끝으로 찌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따가운 가을볕을 맞으며 들로 나섰다. 심술궂기가 어미보다 더한 두 시누이를 제한 막내누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따라나섰지만 

“이년아, 남이 장에 가니까 자기도 거름 지고 장에 간다더니 니는 미쳤다고 그 시근머리 없는 월깨를 따라 들에 나가노? 썩 들어오너라. 얼굴 꺼실면 시집도 못 간다!”
 대문 앞에서 돌려세웠다. 
 

옛 말에 봄바람은 포근하고 따스하고 마음까지 상쾌해져 딸에게 쏘이게 하고 따갑고 얼굴이 타는 가을볕은 며느리를 쏘이게 한다고 했다. 또 돌담이나 도랑둑에 난 가시덩굴인 잎이 아이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환삼(丸蔘)도 굳이 며느리배꼽풀이라 부르고 또 그 비슷한 동그란 가시덩굴도 며느리밑씻개풀이라는 참으로 부르기도 민망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시어머니심술이라더니 명색 양반집 딸로 기울어가는 선비집안의 훤한 도령을 만나 어떻게나 집안을 일으키려 그 거친 등말리 언덕에서 주야로 일하던 부지런하고 착하던 새댁은 이제 아직 산후조리가 덜 되어 얼굴이 푸석푸석한 며느리를 들로 내쫓는 표독한 시어머니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5개월도 넘은 음력설 하루 전에야 설을 쐬러 집에 온 갑생씨가 처음 아이를 대면하게 되었다. 비록 운문재 너머 청도 금천면의 어느 암자의 공사를 맡아 집에 올 수는 없었지만 인편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항렬에 따라 이름까지 지어준 것을 들은 모양으로

“아이구 우리 아들 용진이, 어디 보자...”

아이를 들어 올리던 갑생씨의 목소리가 뚝 끊어지고 ‘당신 고생 많았제?’ 아내에게 하려고 준비했던 말도 그냥 삭히고 말았다. 

조그만 얼굴의 절반이나 되게 우뚝 솟은 코며 화등잔만 한 두 눈이 아무리 아비의 눈이지만 뭔가 이상했던 것이었다. 성장이 빠른 아이라면 이제 뒤집기는 물론 등밀이, 배밀이를 해야 할 달수에도 그 조그만 아이는 뒤집을 엄두도 내지 않고 유독 검은 얼굴의 반질반질한 눈으로 유심히 제 아비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아이를 내려놓은 갑생씨는 연장망태를 열고 산모를 위해 준비한 미역과 광어를 꺼내 마루에 놓고 그간 벌어온 얼마간의 돈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설을 지나 대보름을 쐬고 갑생씨는 떠나갔고 갑생씨가 준 돈으로 그간에 혼담이 오가던 이웃동네 청년과 세 째 딸의 혼담을 마무리 지어 음력 삼월 초하룻날 혼사를 치렀다.

이제 며느리를 부려먹는 재미로 집안일도 손을 놓고 그저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인 며느리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면박을 주는데 재미를 붙인 조동댁은 아예 들에 나갈 염을 내지 않았다. 어쩌다 막내 시누이가 가끔 따라나서기는 하지만 덩치만 컸지 제법 밥술이나 뜨는 친정에서 들일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어 그야말로 농사일에는 솜씨도, 눈치도, 눈썰미도, 요령도 없는 화천댁의 농사는 해마다 소출이 줄어들고 논밭도 자꾸만 황폐해 이제 양식까지 일부를 갑생씨가 벌어온 돈으로 팔아다 먹어야 했지만 무엇 하나 애달픈 일도 없는 화천댁은 늘 덤덤할 뿐이었다. 
 

그렇게 또 이태가 지나자 네 째 딸이 궁근정의 역시 밥술이나 뜨는 농사꾼에게 시집을 가고 또 이태가 지나 화천댁의 유일한 버팀돌이자 말동무인 막내시누이마저도 너무 표독한 제 어미보다는 눈치 없이 사람만 좋은 올케언니와 너무나 몸이 약하고 성장이 더뎌 늘 애를 태우던 조카가 안타까워 손수건에 눈물을 찍어내며 돌아보며, 돌아보며 등말리언덕에서 길천마을과 지화리를 넘고 태화강을 건너 능산마을의 뒷산을 돌아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후미진 안동네인 <모단>이라고 불리는 못안동내 지내리(池內里)로 시집을 가고 화천댁은 두 번째 아이를 가졌다.

또 아들이었다. 덩치도 정상이고 눈도 코도 다 오목조목 잘 생긴 반듯한 아이였지만 여태껏 누이동생 다섯을 시집보내느라 단 한 달도 쉬어보지 못한 아비 갑생씨는 이번에도 백일이 훨씬 지난 추석안날에야 아이와 대면할 수 있었다. 그새 벌써 여섯 살에 접어들었지만 집안의 종손인 큰 아들 용진이는 이제 겨우 돌잡이나 되어 보이는 덩치에 간신히 집안이나 돌아다닐 정도였고 묻는 말이 아니면 말도 없고 늘 혼자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얼굴을 찌푸리거나 가끔 혼자 히죽히죽 웃는 정도였다. 

평소에 그렇게 모진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남편인 자신을 만나도 무엇을 외어 바치거나 하소연을 하는 일도 없이 그저 덤덤한 아내가 대견하고 그런 아내를 챙기지도 못 하고 늘 떠나 있는 자신이 미안하기도 해서 갑생씨는 이제 누이들도 다 시집보낸 판에 한 해 겨울만 잘 넘기면서 돈을 벌면 아내인 화천댁과 두 아이를 암자를 짓는 청도금천면의 가까운 마을에 셋집이라도 얻어 살림을 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황폐해져 도무지 양도에 미치지 못 하는 농사일과 두 아이를 돌보고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시어머니의 모진 괄시를 받는 말없는 아내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것이었다. 여태 팔아 보태던 양식 값이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고 단지 노부모를 홀로 두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도 지척인 길천을 비롯 이삼십 리 안팎에 다섯이나 되는 딸네들, 특히 어머니 조동댁과 생김새도 심술도 의논도 척척 맞는 세 딸이 있어 그도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결심한 갑생씨가 용진이, 수진이의 어미인 화천댁에게 ‘비록 힘들겠지만 이번 설 안만 잘 견디면 어떻게든 따로 살림을 나겠다.’고 말하고 다시 금천면 현장으로 떠난 뒤였다. 
 
다시 설날이 돌아오기 전에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시어머니 조동댁이 며느리 화천댁을 집에서 쫓아내고 만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