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29)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⑪
대하소설 「신불산」(129)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⑪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14 07:00
  • 업데이트 2022.05.15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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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말리별곡1⑪

다시 설날이 돌아오기 전에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시어머니 조동댁이 며느리 화천댁을 집에서 쫓아내고 만 것이었다.
 
며느리를 친정 화천마을로 쫓아낸 후 첫 명절인 설 안날 마침내 갑생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인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오는 길에 들었는지 집에 들어서는 모습이 어딘가 다급하고 들뜬 표정으로

“아부지, 어무이 지 왔심니더.”

평소에 큰절을 하던 것과 달리사랑방문을 열고 꾸뻑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보시게. 이 사람아, 내가 왔네. 용진애미!”

안채의 큰방 문을 열어보던 갑생씨가 사람이 사는 온기라고는 없는 싸늘한 기운에 기겁을 하고 마당으로 물러서다 낯선 사람을 보고 겨우 걸음마를 떼며 엉금엄금 다가오는 수진이를 안아 올리며 옆에서 우두커니 쳐다보는 큰애에게

“용진아, 니 엄마는, 니 엄마는 어데 갔노?”

묻는데 그 어린 것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엄마, 저어기 하아와천!”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켰다. 처가가 있는 화천방향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갑생씨가

“어무이, 어무이! 이기 우째 된 기요?”

버럭 고함을 지르자

“와? 무슨 화적떼가 쳐들어 왔나? 와 이래 시끄럽노!”

조동댁이 도로 눈을 부라리며 나왔다. 단단히 각오를 한 모양이었다.

“니 마누라 찾제? 그 <못 배운 년>에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은 친정에 보냈다. 당최 사람이 사람 같아야 한집에 살제? 인자 그년은 우리하고는 넘이다. 니도 그래 알고 맘 단단히 묵어라.”
“넘이든 내쫓든 남편인 지가 해야 되지요, 와 어무이가 내쫓고 난링교? 지도 없는 판에...”
“야가 시방 머라 카노? 니가 시방 이 에미를 교육시킨단 말인가?”
“마, 치우소. 내 안 봐도 다 암더. 괜히 사람 내쫓는 것도 부족해 또 지한테 시비 걸지 말고 가만 계시소. 내 이 길로 가서 아아들 어마이 데꼬 올 끼요.”
“뭐라꼬! 안 된다, 안 돼! 내 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은 안 된다. 시부모 무시하고 지 자식 팽개치고 나간 년이 두 번 다시 이 집에 들어오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조동댁이 사립문을 막았다. 입가에 침이 보글보글 했다.

“우쨌기나 그 사람 데꼬와서 어무이랑 지랑 삼자대면해서 자초지종이나 들어보아야지요. 누가 뭐라 캐도 그 사람은 지 내자에 저 아아들 에미가 아잉교? 비키소. 내 화천 처가에 가서 그 사람 데꼬 올끼요!”
“뭐라 카노? 이 노무 종내기가! 한 동안 잠잠하디 또 본병이 도졌나? 이 더러번 종내기야, 그래 하는 궁가리가 생기니 인자 나온 궁가리는 생각도 안 나나? 이 에미는 복장이 터져 죽어도 좋단 말이가!‘

허옇게 눈을 뒤집혀 발악을 하는 조동댁을 

“마, 비키소. 내 화천에 갔다올 끼요!”

슬쩍 밀어낸 갑생씨가 후다닥 화천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서상균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어무이, 아부지! 지가 갔다 왔심더. 얼라들 에미 데꼬 왔심더. 어무이 며느리 데꼬 왔심더!”

갑생씨가 커다랗게 소리치자 후다닥 튀어나온 조동댁이

“아니, 이년이! 이년아, 니가 어데라고 이 집에 나타나노? 이년아!”

버럭 고함을 지르며 옷 보퉁이를 들고 갑생씨의 등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화천댁을 향해 돌진했다. 방금 머리채라도 쥐어뜯을 행세였다.

“와 이라능교?”

막아서는 갑생씨의 불그레한 얼굴에 여기 저기 긁힌 자국이 보였다. 처가에서 처남들이랑 드잡이라도 한 모양이었고 같이 술을 마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했다.

“가거라. 존 말 할 때 내 집에서 가거라. 내 아들의 낯을 봐서 고이 보내줄 때 돌아가거라!”

저지당한 조동댁이 악을 쓰는 사이에 주춤주춤 다가간 큰 애가 어미의 치마폭에 매달리자 옷 보퉁이를 땅에 놓고 한참이나 안아보던 화천댁이 아이를 땅에 놓고 이번에는 흘낏흘낏 쳐다보는 돌잡이를 안아 올리며 두 눈 가득히 고인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어무이, 지가 잘못 했심더. 한 분만 용서하이소.”

푹 고개를 숙였지만

“뭐라꼬? 안 된다! 이년아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들은 척도 않고 돌아서더니 후다닥 측간으로 뛰어 들어가 똥바가지 하나 가득 똥물을 떠들고 오더니

“와 이라능교? 참말로!”

역정을 내는 갑생씨에게 저지당하며

“이년아, 똥바가지 덮어쓰기 전에 당장 가거라! 그라고 그 더러운 손으로 알라들 만지지 마라. 어서 놓아라!”

악을 쓰자

“어무이, 천륜을 우째 끊능교? 야들은 내가 논 내 새끼들 아잉교?”
“뭐라? 우리 백씨집 핏줄이 아닌 니년의 새끼라꼬? 좋다 그 더러운 궁가리로 싸지른 새끼들도 다 데꼬 가거라. 그 까짓 것 흔해 빠진 것이 계집인데 장개는 다시 보내면 되고 아아도 재불 놓으면 되지. 어서 아들 데꼬 가거라! 니집에 가거라!”

갑생씨가 똥바가지를 도로 갖다놓고 오는 동안에 대문간에 주저앉아 또 한참을 패악을 쳤다. 그 사이 단대목에 벌어진 이 희한한 구경거리를 등말리의 이웃들이 담 너머로 흘낏흘낏 바라보기고 하고 철없는 아이들은 화천댁의 등 뒤로 비잉 둘러서서 바라보기도 하고 여남은 살 되는 놈들은 제집에서 현장까지 몇 번이나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살판이나 난 듯 했고 사광리언덕의 늙은 도래솔 뒤로도 사람의 그림자가 거뭇거뭇 비치는 것으로 보아 명촌본동네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온 모양이었다. 이윽고

“오냐, 이 불효막심한 종내기야! 그래 낳아주고 젖 믹이고 키어준 에미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저 <못 배운 년>에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이나 챙기는 덜 떨어진 놈아, 자식도 아닌 원수 같은 종내기야! 그래 하는 궁가리 생기니까 나온 궁가리는 쳐다도 안 본다꼬, 그래 너거끼리 잘 묵고 잘 살아라. 무거분 절 떠나느니 개갑은 중 떠난다고 내가 이 집구석 떠나면 될 꺼 아이가!”

어느새 옷 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어무이, 와 또 이라능교? 좀 진정하이소!”
“놔라, 이 종내기야! 니는 인자 이 에미 내삐고 저 년하고 살면 될 꺼 아이가!”

모자가 밀고당기는데

“이기 뭐꼬? 설대목에 집안꼬라지 좋다!”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가장인 조동 백손이 나온 것이었다. 순간 드잡이라도 할 듯 악을 쓰던 모자가 동시에 멈칫하자

“야야, 용진이애비야!”

낮은 목소리로 불러 귀에다 대고

“우쨌 끼나 제사는 모셔야 안 되겠나?  내가 못 나서 저 드센 너 어미와 산 것이 잘못이지. 갈가마구도 울고 간다는 이 메마른 등말리를 갈아 칠남매를 키운 니 에미 잘못은 아니다. 우쨌기나 제사는 모셔야 조상들 볼 면목이 있을 끼 아이가?”

간곡하게 말했다.

“아부지, 그럼 저 사람은요?”
“우짜겠노? 그건 설 시고 나서 생각해보자.”
“...”

한참이나 침묵이 흘렀다. 차츰 심심해진 구경꾼들도 비로소 추위를 느끼고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이 둘을 어미에게 떼어내어 할아버지가 들어간 사랑방으로 보낸 갑생씨가 옷 보퉁이를 든 화천댁에게 무어라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더니 돌아선 두 사람이 다시 아랫마을 명촌을 지나 화천을 향해 덕고개를 돌아 광대고개를 넘어갔다.

멀쩡한 며느리를 쫓아낸  조동댁이 겨우겨우 차린 음식으로 설 제사를 지내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조동박손과 갑생씨 옆에 이제 여덟 살이 되는 용진이도 같이 절을 했는데 명색 의흥 백씨네의 장손인 이 아이는 도무지 키가 자라지 않아 겨우 걸음마를 떼어놓는 동생 수진이보다 조금 큰 정도의 덩치에 새까만 얼굴의 조막만한 이마만 반질반질하게 빛이 났다.
 

초하룻날 오전에 갑생씨가 술 주전자와 지짐 소쿠리를 들고 그 뒤로 조동박손이 천천히 걸어 산소에 갔지만 모진 아내와 어미 탓에 애먼 며느리와 아내를 친정으로 보낸 부자간은 아무런 신명도 나지 않고 서로 간에 대화도 없었다. 처음 똥개 워리와 함께 뒤를 따르던 용진이가 고갯길이 힘에 겨운지 점점 뒤 처지다 마침내 멈춰서고 위리만 산소에 따라오는 것을 본 갑생씨는 괜히 애꿎은 개만 옆구리를 내질러 정초부터 깨갱깨갱 개짓는 소리가 진동한다고 조동박손이 눈살을 찌푸렸다.
 
산소에 다녀온 부자는 조동댁이 끓여온 떡국을 외면하고 각각 사랑채와 큰 채의 자기 방에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 졸지에 아내를 내보낸 갑생씨는 해마다 마을의 어른들에게 드리는 세배 갈 마음이 없었고 조동백손도 어수선한 집안분위기로 손님 맞을 기분이 아닌 것이었다. 안 그래도 명촌 김씨 집성촌 양반동네에 몇 집 안 되는 타성붙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홀대를 늘 받기마련인 처지에 이렇게 콩가루 집안이 되었으니 동네가 다 남세스러운 판이었다. 눈치를 보느라고 용진이 조차 숟가락을 대지 않는 밥상에 아장거리며 다가선 수진이가 손을 내밀어 찰떡을 집자 용진이도 재빨리 숟가락을 들고 떡국을 퍼먹기 시작했다. 순간

“이 더러운 궁가리에서 나온 새끼들이 지 에미 닮아 처묵는 것은 더럽기도 처먹고 지랄이야.”

홱 밥상을 밀어내는 조동댁을 보며

“잘 한다. 멀쩡한 에미 쫓아내더니 인자 아아새끼들까지 다 굶겨죽일 작정이구나!”

조동박손이 버럭 역정을 내자 두 아이와 조동댁이 순식간에 멈칫하며 온 방안이 살얼음판이 되더니 이내 와아 하고 수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아랫목의 할아버지의 품을 지신지신 파고들었다.

“아아들이 무슨 죄가 있노? 우째 했길래 아아들이 지 할매를 겁을 내어 할배 품에 안긴단 말이고?”

쯧쯧 혀를 차자

“보소, 용진이 할배요. 지가 이 녘이 숟가락을 안 들어서 역정이 났지 우째 저 아아들이 미워서 그랬겠능교? 지발 이리 와서 떡국이라도 한 술 좀 드이소. 가장이, 아니 가군(家君)이 숟가락을 안 드는데 우째 알라들이 밥을 묵겠능교.”

다소곳이 말하는 눈길이 애련하다 못 해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판이었다. 그렇게 표독한 성정이 남편에게만은 늘 명주고름처럼 또 봄눈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아이구, 열녀 났네. 당신은 다 늙은 처지에 우째 이적지 서방만 알고 자석들, 손자들은 모리노?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이 자기 논 수통에 물들어가는 거 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라는 소리도 못 들어봤는가? 이 늙은 기 묵으면 얼마나 처 묵고 천년만년 살 끼라꼬 며느리 내 보내고 두 손자 굶는 판에 지 입에 밥을 떠넣겠노?”

“그러니까 갑생이 아부지 이 녘이 먼저 수저를 드시란 말이요. 그라문 내가 이 알라들 밥을 먹이지요.”

남편에게는 화는커녕 고성도 내지 않는 모습에 기가 찬지

“야야, 용진이 애비야!”

방문을 열고 큰 채를 향해 조동백손이 커다랗게 여러 번 소리를 치자 빼꼼이 방문이 열렸다.

“애비야, 이리 오너라. 사람이 세상을 다 삐끼도 밥 삐끼고는 못 산다!”

커다랗게 소리쳐도 기척이 없자

“애비야, 내 목소리가 안 들린단 말이가?”

버럭 역정을 내자 갑생씨가 천천히 고무신을 끌며 건너오더니 할아버지에게 달라붙은 수진이를 때내어 밥상 앞에 앉혔다. 부자가 말 한마디도 없이 깨작거리며 점심을 먹는데 조그만 용진이는 떡국과 떡, 탕국과 산적을 아구아구 먹더니 곶감과 대추를 주먹 가득 쥐고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댔다. 방금 불호령을 내릴 듯 날카로운 조동댁의 눈길에 민망스러운 갑생씨의 눈길이 스치자 조동댁이 멈칫했고 

“할멈은 가서 탁주나 좀 가져오소. 원 명절이 명절 맛이 나야지...”

조동백손의 말에 조동댁이 한숨을 몰아쉬며 부엌으로 나갔다. 

“할 수 없지. 사람이 없으면 부자간에라도 마셔야지. 야야, 애비야, 이리 오너라.”

탁주 한 잔 씩을 앞에 놓았지만 도무지 신명도 나지 않고 잔도 비지 않았다. 한참 만에 먹던 자리에 그냥 드러누워 술상 다리를 잡고 잠이 든 수진이를 안고 갑생씨가 큰 채로 건너가고 말았다.

 

정월 초이튿날, 아침상을 물리자말자 갑생씨가 연장망태를 둘러매고 마당으로 나서며

“아부지, 어무이, 지는 그만 현장으로 갈랍니더. 날씨 추운데 몸조심 하이소.”

인사를 하는데 ...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