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02) 찻잎 따고 차 만드는 작업 돕는 차인(茶人)들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02) 찻잎 따고 차 만드는 작업 돕는 차인(茶人)들
  • 조해훈 기자 조해훈 기자
  • 승인 2022.05.14 11:26
  • 업데이트 2022.05.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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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사랑' 백경동 회장과 '학사재' 허섭 관장 일꾼 자처
오전에 차산 올라가 오후 5시까지 땡볕아래 찻잎 따
목압서사 내려와 두 사람 교대로 아홉 번 덖고 비벼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드는 일을 도우러 차인(茶人)들이 왔다.

귀한 분들이다. 필자와 함께 차회(茶會)를 하는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백경동(56) 회장과 서울에서 고교 국어교사를 지낸 허섭(60) 선생이다. 단행본 2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는 허섭 선생은 현재 서울에서 ‘학사재’라고 하는 인문학 도서관 겸 인문학 강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각종 강의를 진행하며 차(茶) 강의도 몇 차례 가졌다고 했다.

필자가 속한 차회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백경동 회장이 필자의 차산에서 차를 따는 모습. [사진=조해훈]
필자가 속한 차회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백경동 회장이 필자의 차산에서 차를 따는 모습. [사진=조해훈]

필자의 목압서사(木鴨書舍)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진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백 회장은 목압서사가 있는 이곳 화개골짝의 화개중학교 옆 법하마을 출신이며, 허 선생은 경남 합천 출신이다.

목압서사 연빙재(淵氷齋)에서 함께 차를 마신 후 필자를 포함한 세 사람은 차산으로 올라갔다. 세 사람은 각자 흩어져 찻잎을 따기로 했다. “가능하면 1창(槍) 1기(旗)로 따시라”고 주문했다. 두 사람은 원두막이 있는 인근에서 찻잎을 따고, 필자는 차밭 전체를 돌아다니며 땄다. 찻잎을 따는 게 쉬워보여도 고된 노동이다. 게다가 필자의 차밭은 평지가 아니라 경사가 진 산비탈이다. 그래서 앉아서 찻잎을 따는 게 아니라 서서 옮겨 다니며 찻잎을 따야 하는 환경이어서 더 힘들다. 햇빛까지 쨍쨍해 땀이 줄줄 흘렀다.

서울에서 공부 공간인 '학사재'를 운영하고 있는 허섭 선생이 필자의 차산에서 차를 따는 모습. [사진=조해훈]
서울에서 공부 공간인 '학사재'를 운영하고 있는 허섭 선생이 필자의 차산에서 차를 따는 모습. [사진=조해훈]

필자는 차밭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찻잎을 딸 수 있도록 차밭에 길을 내어놓았다. 두 사람은 차밭 사이의 이 길을 따라 다니며 찻잎을 땄다.

벌써 차밭에 풀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억새도 곳곳에서 엄청 자라고 있었다. 필자는 차산을 돌아다니면서 손으로 풀과 억새, 가시 등을 뜯었다. 낫을 가져 오지 않았던 것이다. 낫이 있더라도 차나무 사이에 자라난 풀과 억새 등은 손으로 뽑거나 뜯는다. 물론 오른쪽 팔목이 엄청 아프다.

찻잎을 따다 원두막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백경동(왼쪽) 회장과 허섭 선생. [사진=조해훈]
찻잎을 따다 원두막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백경동(왼쪽) 회장과 허섭 선생. [사진=조해훈]

2시간 넘게 찻잎을 따다 필자가 “날씨도 덥고 하니 원두막에서 좀 쉬었다 하시죠?”라고 권했다. 그리하여 원두막에 모여 퍼질고 앉았다.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다 보니 벌써 낮12가 되었다. 각자 조금씩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나눠 먹으며 쉬었다. 백 회장은 떡 등을 가져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찻잎을 땄다. 필자는 여전히 차산을 돌아다니면서 풀을 뽑고 차밭 정리를 했다. 보이는 대로 풀과 억새, 가시 등을 제거하지 않으면 금방 자라 한꺼번에 하려면 무척 힘이 든다. 그렇게 각자 찻잎을 따는 등 일을 하다가 오후 5시 무렵 필자가 “차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지금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를 포함한 세 사람은 목압서사로 내려왔다.

차산에서 따온 찻잎을 목압서사 차 작업장에서 덖고 있는 백경동 '차사랑' 회장. [사진=조해훈]
차산에서 따온 찻잎을 목압서사 차 작업장에서 덖고 있는 백경동 '차사랑' 회장. 왼쪽이 허 선생. [사진=조해훈]

두 사람이 주로 찻잎을 땄고 필자는 차밭 정리를 하였으니 당연히 찻잎이 거의 없었다. 간단하게 뭘 좀 먹고 ‘손 덖음차’(手製茶)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했다. 백 회장께서 빨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야 했다. 그는 어제 오전 9시부터 24시간 근무를 한 후 아침 9시에 퇴근해 바로 목압서사로 온 것이었다. 쉬지도 못했으니 빨리 작업을 끝내고 귀가해 쉬어야 했다.

필자가 먼저 차솥을 씻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따온 찻잎을 정리했다. 잘못 딴 잎이나 티끌 등이 섞여 있으면 골라내야 한다. 필자가 불을 올려 찻잎을 덖을 정도의 온도가 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온도가 300도가 넘었다고 생각이 되자 찻잎을 솥에 부었다. “지지직” 소리가 났다. 백 회장이 먼저 찻잎을 덖었다. 그는 지난해에 다른 곳에서 차를 두 차례나 덖었다고 했다. 힘이 들자 허 선생과 교대를 했다.

덖은 찻잎을 비비는 허섭(오른쪽) 선생과 백경동 회장. [사진=조해훈]
덖은 찻잎을 비비는 허섭(오른쪽) 선생과 백경동 회장. [사진=조해훈]

첫 덖음에서 어느 정도 찻잎이 숨이 죽자 빠른 동작으로 김이 나는 잎을 채반에 들어냈다. 얼른 채반 위에 찻잎을 흩었다. 양손으로 들었다가 툴툴 떨면서 흩뿌렸다. 그런 동작을 몇 번 반복하다가 찻잎의 열기가 사라졌다고 생각되자 이제 잎을 비볐다. 첫 비비기에서 야무지게 비려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비빈 찻잎을 다시 뭉쳐서 한 번 더 비볐다.

비빌 때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므로 역시 땀이 나고 손목이 아프다. ‘이 정도면 그런대로 비벼졌다’라는 생각이 들자 찻잎을 다시 솥에 넣었다. 첫 덖음과 같은 동작으로 두 사람이 교대로 비볐다. 그런 다음 찻잎을 채반에 들어내 첫 번째와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비볐다. 두 번째 비빌 때 ‘비비는 동작을 여기서 마무리 한다’라는 마음으로 야무지게 해야 한다. 두 번째 비빈 다음 다시 찻잎을 솥에 넣었다. 세 번째 덖은 다음 다시 찻잎을 채반 위에 올려 세 번째 비볐다.

밤에 만들 발효차용 찻잎을 비비는 백 회장. [사진=조해훈]
목압서사 차 작업장에서 밤에 만들 발효차용 찻잎을 비비는 백 회장(오른쪽)과 허 선생. [사진=조해훈]

그렇게 같은 방법으로 아홉 번 덖었다. 불 조절은 필자가 했다. 이제 아홉 차례 덖은 차를 건조시켜야 한다. 백 회장은 집으로 가야 했다. 차솥의 열기를 이용해 건조시키기로 했다. 백 회장은 그런데 발효차를 만들려고 준비 해놓은 찻잎을 비비기 시작했다. 허 선생도 거들었다. 백 회장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하동읍에 있는 집으로 출발했다.

‘시야게’(맛내기)는 내일 아침에 필자가 해 차를 완성시키기로 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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