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35) 뒤늦은 양자선택
김광석 교수의 감성물리 (35) 뒤늦은 양자선택
  • 김광석 김광석
  • 승인 2022.05.29 11:21
  • 업데이트 2022.05.30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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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해 선택한 길이지만 막상 그 길에서 마주해야 하는 것은 기대와 다른 실망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의 현실이 외면하고 싶을 만큼 너무 힘이 드는 경우, 마음은 급기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려고 한다. 지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선택을 바꾸는 것이다.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새로운 원인으로 교체해 인과론에 의해 현재를 바꾸고 싶은 것이다. 가정법 과거는 불행한 현재를 바꾸기 위해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시점을 향해 새로운 인과적 여정을 시작한다.

If I had money, I would be happy.

나는 현재 불행하다. 내 불행의 원인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돈을 벌었다. 이제 새롭게 설정된 과거의 원인은 인과론이라는 운명적 법칙에 의해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운 결과를 만드는 여정을 시작한다. 현재에서 미래를 향한 의지는 will을 쓰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과거에서 현재를 향하는 의지는 would를 쓴다. 이제 가상의 과거에 대체된 원인은 현재의 시점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정작 이런 가정법 표현을 하는 본인은 알고 있다. 비록 상상 속에서 간절하게 만들어 낸 새로운 역사지만 그것은 이미 죽어 버린 다른 우주 같은 것이라는 것을. 현실에서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또 다른 가능성의 우주는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택받지 않고 버려진 우주가 여전히 존재하고 현재의 뒤늦은 선택도 어쩌면 과거를 바꾸어 현재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른다.

이상한 양자 나라의 여왕은 앨리스에게 재미있는 게임 하나를 설명해 줬다. 우선은 양자 나라 청년 한 명을 갈림길 앞에 서 있게 했다. 두 개의 길에는 1년에 걸쳐 살아갈 운명적 여정이 치밀하게 계획되었다. 초기 조건으로부터 궤적을 예측하는 것처럼 그 길에서의 모든 삶은 드라마 각본처럼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둘 중 하나의 길은 너무 험난하고 고단해 항상 실패와 좌절로 이끄는 길이었다. 다른 하나의 길은 의외로 도와주는 이도 많고, 운이 좋아서 노력 이상의 결실을 맺고 성공으로 이끌도록 만들어졌다.

1년 후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 중 어떤 것을 경험할지는 처음 갈림길에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여왕은 똑같은 갈림길 여정 세트 천 개를 만들어 천 명의 청년들을 각각의 갈림길 앞에서 선택하게 했다. 즉, 통계적 표본 조사를 위한 ‘앙상블’을 만든 것이다. 또한 이상한 양자 나라의 청년들은 전자나 광자처럼 서로가 구분할 수 없이 모두 똑같다. 여왕은 그들의 개성을 모두 제거해 획일화시킨 것이었다. 당연히 청년들은 어떤 길이 성공과 실패의 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여왕은 두 길의 마지막 길목에서 청년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계획된 성공의 길 마지막에는 언제나 환희와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의 청년들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실패의 길 마지막에는 연이은 좌절로 풀이 죽은 청년들이 보였다. 계획된 실패와 성공의 길 모두 훌륭하게 작동하는 것이었다. 즉, 실패의 길을 걸어오며 성공하거나, 성공의 길을 걸어오다 실패를 하는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앨리스는 여왕에게 말했다.

“역시 1년 전 갈림길의 선택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군요.”

“결과가 너무 뻔한 게임 아닌가요?”

여왕이 대답했다.

“아니야, 지금부터 재미있어.”

여왕은 다시 천 개의 세트와 천 명의 똑같은 청년을 갈림길에서 출발시켰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그들의 여정이 끝날 무렵 특이한 공간을 두 길이 교차하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여왕은 앨리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번 게임의 경우에는 청년들은 자신이 가던 길을 계속 걸어 왔었지. 마지막 도착점에 두 길이 엇갈려 있긴 해도 그건 별로 의미가 없었어. 자신이 가던 길과 가야 할 길이 분명했거든. 성공의 길을 걸어오던 녀석은 계속 그 길로 걸어와 성공의 길을 마치고, 실패의 길을 걸어오던 녀석은 실패의 길을 끝까지 가는 거지. 하지만 이 특이한 공간을 두 길이 엇갈리는 곳에 두면 좀 달라.”

“이 공간의 앞뒤에는 모두 문이 있어. 그들이 길을 걸어오다 문을 열고 이 공간으로 들어왔다가 반대편 문을 열고 나오게 되어 있지. 하지만 그들이 이 공간 근처로 들어올 무렵이면 세상의 불이 모두 꺼져서 그가 성공과 실패의 길 중 어디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나올 때는 말이야, 마치 자신이 성공한 사람인 것처럼 성공의 길에서 나오는 시늉을 할 수 있거든. 아니면 성공을 하고도 실패한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올 수도 있지.”

앨리스가 다시 대답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어서 그런 연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둘 다 성공의 환희와 실패의 좌절에 모두 길들여져 있어서 반대의 감정이 너무도 어색할 것 같아요.”

여왕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 연기하는 건 힘들 거야. 하지만 이건 진짜 마지막 기회야. 문에서 나오면서 그들의 운명이 정말 바뀔 수도 있거든.”

앨리스가 다시 물었다.

“그들의 운명은 처음 갈림길에서 결정된 것이 아닌가요? 마지막 교차점에서 뒤늦게 이런 문을 만드는 것이 과거에 선택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여왕은 다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여기 양자 나라에서는 말이야, 뒤늦은 선택도 역사를 통째로 바꿀 수 있단다. 한번 보려무나.”

여왕은 천 개의 동일한 세트에서 문을 나와 둘 중 하나의 길로 걸어 나오는 청년들의 모습을 찍은 천 개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이상한 상자가 없었을 경우에는 왼편 길에서 걸어오는 이는 항상 양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었고, 오른편 길에서 나오는 이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지쳐 보였다. 하지만 여왕이 만든 특이한 상자를 놓아둔 이번 경우는 달랐다. 성공한 사람만 보였던 성공의 길 막바지에는 요란스런 환호 속에 가득 찬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는 그저 작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우울하게 풀이 죽은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여왕은 사람들의 감정 표현 정도를 수치로 구분했다. 이를테면 아주 기분 좋은 사람, 적당히 기분 좋은 사람, 덤덤한 사람, 약간 우울한 사람, 침울한 사람으로 나누어 천 명의 사람이 각각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했다. 그런데 자료를 분석하고 나니 양쪽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 모두 감정적 성향이 파도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앨리스는 다시 여왕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여왕이 앨리스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추가한 문이 달린 상자는 일종의 양자 지우개 같은거야. 그들이 성공과 실패 중 어느 길에서 왔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든 셈이지. 그들의 지난 역사를 지워버린 거야.”

앨리스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처음 선택은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여왕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그들의 역사가 지워지고 나면 가정법처럼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대신 문을 나오는 그들이 지난 시절 어느 길을 걷다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어야 해.”

놀란 눈으로 앨리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이 문이 달린 공간으로 역사를 지우고 과거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건가요?”

여왕이 대답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많이들 오해하고 있단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냥 뒤늦은 선택과 양자 지우개의 결과라고 생각하렴. 대신 그들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삶이 파동처럼 ‘간섭’을 만든 셈이야. 이를테면 두 개의 다른 삶이라는 파동이 중첩되어 있는 거지.”

이중 슬릿 장치에서 각각의 양자 입자들이 두 개의 슬릿 중에 어디를 통과했는지 알면 스크린에는 간섭무늬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어느 구멍을 통과했는지를 조금 늦게 관측하면 어떨까? 즉, 슬릿을 이미 통과한 뒤 스크린에 닿기 바로 직전에 진입하는 각도를 통해 둘 중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비록 스크린에 거의 다와서 뒤늦게 측정해 입자라는 사실과 그 운동 방향을 통해 어느 슬릿을 통과해서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측정의 순간은 슬릿을 통과한 이후의 사건이다. 적어도 양자 입자가 슬릿을 통과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스크린 앞에서 ‘측정’하기 전까지 양자 입자는 파동의 특성을 유지한 채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지나왔을 것 같다. 따라서 스크린 앞에서 측정하는 것은 스크린의 간섭무늬를 사라지게 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 보인다. 일명 뒤늦은 선택 실험(Delayed choice experiment)으로 알려진 물리학자 휠러(John Archibald Wheeler)의 사고 실험이 몇 년 전 구현되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뒤늦은 선택이 마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처럼 ‘간섭’을 사라지게 한다.

반대 과정의 실험도 가능하다. 즉, 앨리스가 목격한 여왕의 이상한 공간처럼 갈림길 전에는 입자처럼 둘 중 하나의 경로를 지나오지만, 두 길이 교차하는 곳에 과거의 경로를 알 수 없게하는 장치를 추가함으로써 파동 같은 간섭현상을 얻을 수 있다. 즉, 입자가 파동이 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입자라는 과거의 정보를 모르게 함으로써 마치 처음부터 파동으로 이동해 온 듯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가 과거를 바꾼다는 표현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여전히 논란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분명 ‘인과론’과 ‘시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뿌리 채 흔들고 있다.

 

◇김광석 교수 :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나노물리학자 ▷양자점, 양자링 같은 인공나노구조물이나 나노소재에서 일어나는 양자광학적 초고속현상을 주로 연구하고 생체조직의 광영상기술도 개발한다. ▷10여 년간 과학영재 고등학생 대상의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칼럼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