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65)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②
대하소설 「신불산」(165)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1 07:00
  • 업데이트 2022.06.21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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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②

좌우간 <3대 불순>이니 <5대 불순>이니 하며 일기불순, 인심불순, 처녀들의 정조불순 따위를 들먹이는 논산훈련소의 연무대와 그 인근 군부대주변은 그야말로 채만식의 <탁류(濁流)>에 나오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고 그저 오종종하고 꾀죄죄하며 눈물 나게 거친 회색의 하늘과 들판이 맞 붙어버리는 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곳이었고 교관이니 조교니 기간병으로 불리는 터줏대감들도 하나같이 정나미 떨어지는 표독하고 악랄한 악질들이었다.

소위 군의 초급간부를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성을 개조한다면서 처음 1주일간은 석탄난로 탄가루가 펄펄 나는 막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을 깨워 수통꼭지에 대가리를 박거나 침상 사이에 한강철교를 놓는 기합에다 야전곡괭이 자루로 발바닥을 때리면서 잠도 재우지 않고 세수도 양치질도 하지 못 하게 하고 매점출입도 막아 그 한창 먹어야할 장정, 돌덩이라도 소화시킬 젊은이들을 졸졸 굶기다가 정작 식사시간에는 보행군기가 빠졌느니, 군가소리가 약하다느니 트집을 잡아 식당입구에서 한 시간 내내 기합을 주다 정작 배식은 단 2분을 남기고 시작해 금방 교육집합을 한다면서 식탁에 앉기도 전에 몽둥이를 휘둘러 배식을 받아 식탁을 향하면서 가면서 그 뜨거운 밥과 국을 손으로 우겨넣고 몽둥이에 쫓겨 잔반통으로 가며 또 우겨넣어야 했다. 그래도 아직 못다 먹은 밥과 국을 차마 쏟아 붇지 못하고 우물거리다 다시 얻어맞는 거지같은 추태를 날마다 벌여야했다.

또 한 가지 동작도 눈치도 약삭빠르지 못 한 열찬이로서는 그까짓 밥 부족, 잠 부족이야 모두들 같이 겪는 고통이라 그래도 견딜 만한데 그중 지랄이 바로 소총의 노리쇠나 벙어리장갑이나 모자 같은 관물을 도둑맞는 일이었다. 군대의 속성이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도둑을 맞으면 다시 보충 받는 것이 아니고 어디선가 요령껏 채워야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남의 것을 슬쩍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쪼그려 쏴 자세로 일을 보면 머리꼭지가 보일 듯 말 듯 한 야외변소에서 나오던 열찬이가 순간적으로 뭔가 허전해서 살펴보니 용무가 급해 무심코 변소문짝에 걸쳐둔 줄로 두 짝을 연결시킨 벙어리장갑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망연자실, 한참이나 허공을 바라보던 열찬이가 순간적으로 자기가 앉았던 칸막이 너머 방금 바지춤을 내리고 엉거주춤 앉으려는 후보생의 목에 감긴 벙어리장갑을 벗겨들고 사정없이 줄행랑을 놓았다. 멀찍이서 바라보던 마을친구 준권이가

“야, 열찬이 제법이네!”

손뼉을 치면서 웃었는데 그날 오후 학과출장 전에 벙어리장갑을 못 끼고 와 혼자 쪼그려 뛰기를 5분간이나 실시한 사람이 바로 그 목사지망생 준권이었다. 같은 하사관후보생끼리 화장실 앞에서 돌고 돌며 잃어먹고 훔치기를 반복한 끝에 마지막 분실자가 바로 그 목사지망생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그 준권이가 벙어리장갑을 보충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이튿날 오전 학과출장 때는 멀쩡한 것을 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초간부의 기본교육을 받는다며 굶주림과 기합 밖에는 아무 기억도 남지 않는 8주를 넘기고 열찬이네는 이번에는 멀리 경기도 성남시외곽의 남한산성군형무소가 있는 환성대의 육군종합행정학교로 옮겼다. 헌병, 부관, 군종, 정훈 등 특수주특기의 정병(精兵)을 육성하는 곳으로 열찬이가 바로 그 정치훈련이라는 정훈(政訓)하사관으로 차출이 된 것이었다. 이번에도 준권이와는 떨어지지 않고 동행을 했다.

그런데 일개 중대 36명의 중대원이 18명 2개 소대로 나누어 내무반을 배치 받고 관물을 정돈하다보니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껏 하사관학교과정을 함께 한 열찬이네는 모두 동부경남과 대구일원의 경상도 병력으로서 대체로 국문과, 영문과, 정치학과, 철학과 등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이었고 준권이 같은 고졸출신이 일부 섞인 정도였는데 거기서 합류한 나머지 18명은 우선 말씨가 8도 사투리가 다 뒤섞인 소위 짬봉부대였는데 그건 그들이 바로 전국에서 지원한 직업군인, 장기하사관후보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평균학력이 중졸 정도인 그들 중에는 겨우 국민학교를 나와 서울역 앞에서 구두를 닦거나 극장가에서 암표나 음화를 팔던 친구도 있었고 농사꾼, 목수, 어부출신도 있었고 심지어 뒷골목에서 좀 놀았다는 주먹장이도 있었다.

이 이질적인 두 개의 그룹을 섞어놓으니 여기저기 치고받고 분란이 일어나고 관물이 없어져 단체기합을 여러 번 받았는데 주로 사건을 일으키는 쪽은 지원병 쪽이었고 당하는 쪽은 차출하사관 쪽이었지만 시일이 좀 지나자 서울역에서 구두를 닦던 친구와 포항의 수산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친구가 간식으로 나온 빵을 두고 싸우다가 화해하고 나눠먹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차차 정이 들면서 그럭저럭 동화되어버렸다.

소위 환성대, 육군종합행정학교는 군대의 기본기능인 5개 기본병과인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은 물론 의무, 화학, 병기, 보급 등의 기술 분야를 제외한 아주 특이한 참모기능 즉 부관, 헌병, 군종, 정훈병과의 단과훈련을 가르치는 군사 학교였다.

연병장에는 E. E. C라고 부르는 헌병하사관후보생과정의 교통신호과정을 가르치는 호루라기소리가 종일 끊어지지 않는 가운데 실습장에는 행정보조 부관병과의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기관총사격음처럼 다닥다닥 호각소리에 보조를 맞추었다. 그 가운데 군종장교과정을 수료하는 교회의 찬송가소리, 기도소리도 간간히 들려와 어찌 보면 정중동(靜中動), 또 어찌 보면 동중정(動中靜)의 묘한 별천지였다.

ⓒ서상균

그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그중 특이한 것이 바로 열찬이가 소속된 정훈병과였다. 멀리 6.25 동란 당시의 종군기자와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문화선전대가 일선장병을 위문하여 사기를 앙양하고 심리전을 강화하는 기능에 기초를 둔 정훈훈련의 핵심은 크게 전우신문을 편집하고 병영방송을 운영하는 보도기능과 공산주의이론과 충무공정신을 배워 사상을 무장하고 애국심과 충성심을 기르는 두개의 과정이 그 기본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목표와는 달리 그 실무에 있어서는 고작 부대장의 이취임사를 쓰거나 구내방송의 멘트를 작성하는 일, 장병의 정신교육을 위하여 환등기를 돌리거나 사기앙양을 위하여 영화를 상영하는 영사기조작법, 또 <북진가>, <진짜사나이>같은 한국전당시의 비장한 톤에서 벗어나 명랑한 병영생활을 표방하는 밝은 톤의 진중가요이자 일종의 포크댄스인 <야전 쾌지나>등을 배우는 것이었다. 대학생도 있었지만 농사를 짓거나 구두를 닦다가 입대한 각양각층의 훈련병들에게 그야말로 귀신이 떡가루를 주워 먹는 형상의 별별 잡동사니기술을 다 가르치는 셈이었다.

거기다 그 난해한 공산주의이론의 바탕이 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레닌의 무장혁명론, 사회주의 혁명사와 심리전까지 영관급의 군종장교는 물론 서울의 유명 대학교수들이 출강하여 가르치니 기껏 중졸도 안 되는 장기하사지원병들은 프롤레타리아 같은 생소한 단어 하나를 외우기에도 급급한 판에 상품, 자본, 임금 등 사회에서 듣던 단어이면서도 접근이나 해석방법이 전혀 다른 전문이론과 잉여가치, 볼셰비키, 멘셰비키 같은 전문용어들이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만지기가 아니면 봉사 기름 값 당하기와 같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 생소하고 어정쩡한 인간조합과 교육과정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엉뚱한 병사가 바로 다름 아닌 이열찬하사관후보생이었다. 명색 인문과 출신이라 공산주의이론시간엔 그 내용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심도 있는 질문을 퍼부어 군종장교는 물론 외래강사로부터 대단한 관심과 총애를 받아 중령계급장을 단 어떤 교관으로부터 지금 당장 하사관이 아닌 장교로, 그러니까 정훈병과 장교과정으로 장기복무를 지원하면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권장받기로 했다.

현재 육본 정훈감자리에 장군이 단 한 명밖에 없는 그 장군 자리에 자신이 계급서열이 서너 번째라 불과 5, 6년이면 그 정훈감의 장군자리에 승진할 것이니 자네를 그야말로 호국의 간성으로 키워준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 교관은 과제물로 열찬이가 제출한 부대장이취임사와 구내방송멘트, 전우신문 편집 안(案) <오빠, 고향에 봄이 왔어요. 전선의 진달래는 얼마나 더 붉은가요?>를 보고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열찬이는 그 진지한 강권을 단호히 거절하고 말았다. 우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걱정처럼 행동이 굼뜨고 눈치가 없는 자신이 무한경쟁의 군대체질이 아니었고 또 일단 정훈장교의 길로 들어서면 소설가가 되려던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전선을 돌며 청춘을 허비하며 다시는 첫사랑 순영씨를 만나지 못 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열찬후보생이 정훈하사관 과정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모범생이냐 하면 엉뚱하게도 그 정반대일 수도 있었다. 그건 이론과 보도부분에는 성적이 가장 뛰어나지만 제식훈련과 총검술, 태권도에는 아주 젬병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손재주가 없어 보도부문에 속하는 환등기와 영사기조작에도 완전히 등신인데다가 진중가요는 곧잘 부르면서도 야전 쾌지나를 배우면 번번이 박자를 놓치고 발을 틀리는 고문관이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너무 잘 하고 어떤 부분은 너무나 못 하는 이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보다도 태권도였다. 제식훈련, 육군도수체조, 총검술은 비록 동작이 반듯하고 각(角)이 져 멋이나 박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암기력으로 그 순서를 완벽히 외어 연습을 거듭하니 그럭저럭 묻혀서 넘어갈 정도는 되었다.

문제는 태권도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그저 아버지의 농사일이나 돕고 책이나 읽고 공부만 하였지 누구랑 멱살 한 번을 잡아보지 못 한 순둥이가 명색 싸움기술인 태권도를 해 봤을 수도 없고 취미나 소질이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16주의 정훈병과 기술훈련을 마치고 하사관임관을 앞둔 시점에 마지막 관문인 하사관과정측정이 있는데 그 과목이 국군도수체조와 총검술, 제식훈련과 태권도의 네 과목이었다. 한 기를 이루는 중대원 전체가 36명이고 9명의 분대 2개씩으로 소대가 편성되었으니 그 몇 안 되는 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의 동작하나하나가 심사대에서 보면 마치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듯 하나도 빠짐없이 또렷하게 보일 터였다.

이미 12주가 끝나고 졸업측정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천지형, 단군형, 중근형, 의상형, 원호형에 도달해 거의 유단자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어야하지만 우리의 이열찬후보생은 여전히 중근형에 머물고 있었고 그것도 손목과 발꿈치, 발목과 무릎이 전연 돌아가지 않으니 관절이 돌아가면서 내는 폭발력이 기본인 태권도의 자세가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열찬이가 소속된 1소대는 물론 2소대를 포함한 36명 중대전원이 임관에 탈락할 위기가 닥친 것이었다.

당시 열찬이소대 구대장은 전역을 2개월 정도 앞둔 충청도 출신 단기하사였는데 굉장히 과묵했지만 늘 눈이 번쩍번쩍해 사람들이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인상이었다. 또 부산 출신의 2구대장은 아직 2년 가까이 군대생활이 남은 신참으로서 순간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덕이 심해 <무당 날구지>라는 별명이 있었다. 무당이 굿만 하면 비가 오듯이 구대장이 성만 나면 전 구대원은 물론 중대원전체가 잠을 못 잘 정도로 기합을 받아 땀이 아니라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그 두 구대장 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이 이론천재, 실기등신을 위하여 태권도 개인교습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우선 그 치명적인 구멍을 막아야만 중대원전체의 졸업측정탈락을 막고 나아가 말년하사 구대장의 제대에도 차질이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발된 조교가 목포 출신의 동기생 윤병철이었다. 가정형편이 악화되어 상업학교를 중퇴한 그는 덩치도 인물도 번듯하고 성격도 좋아 장기지원병 중에서 가장 자질이 뛰어나 차출병 대학출신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태권도 2단인 윤병철은 그날부터 일과시간이 끝나면 보초도 사역도 점호도 없이 오로지 이열찬후보생의 태권도실력을 앞으로 2주안에 거의 유단자에 가깝게 원효형, 의상형까지 마스터시키는 것을 임무로 부여받았다. 그렇게 해서 열찬이의 개인교수가 된 병철이는 일과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둘이서 부대 뒤의 식수대와 벤치가 있는 휴게시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태권도를 연습하다 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오면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찬이의 손목, 발목을 만져보고 주무르며 태권도동작하나하나를 가르치던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순서는 그렇게 정확하게 외울 수가 없었는데 도무지 네 개의 근육인 손목, 발목, 팔뚝, 무릎의 관절이 돌지 않으니 동작에 각도 없고 힘도 없고 더더욱 멋이 없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두 구대장이 열찬이의 태권도가 얼마나 늘었는지 따로 불러 동작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그날 밤 점호가 끝나고 열찬이가 혼곤하게 잠이 들 무렵 누군가가 내무반 밖으로 불려나갔는데 그게 바로 병철이었던 모양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두 구대장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빨리 점심을 먹고 막사 뒤로 열찬이를 데리고 간 병철이는 미안해서 고개도 못 드는 열찬이의 발목과 무릎을 한참이나 어루만지면서

“열찬아, 너는 남의 속에 든 공부도 잘 하면서 태권도가 그렇게도 안 되나? 너의 이 손목, 발목, 팔꿈치, 무릎이 안 돌아가면 우리 중대전체가 유급이다. 아니 그 보다 내가 구대장들 한테 맞아 죽는다!”

울상을 지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악연을 만나 고생을 하느냐는 표정 같기도 했다. 그날부터 열찬이는 보다 진지하게 반복해서 각종 동작을 연습했고 병철이는 쉴 때마다 열찬이의 손목과 발목을 주물렀다. 아무리 굳은 관절이라도 언젠가는 풀리고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럭저럭 약속된 2주도 3주도 다 지나고 이제 졸업측정이 나흘밖에 남지 않은 일요일 오후였다. 전처럼 무심히 태권도에 열중하는데 갑자기 병철이가 “어어, 어어!” 소리를 질렀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