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66)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③
대하소설 「신불산」(166)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2 07:00
  • 업데이트 2022.06.23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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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③

그럭저럭 약속된 2주도 3주도 다 지나고 이제 졸업측정이 나흘밖에 남지 않은 일요일오후였다. 전처럼 무심히 태권도에 열중하는데 갑자기 병철이가 “어어, 어어!” 소리를 질렀다. 방금 열찬이의 팔꿈치가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열찬이자신도 평소보다 팔꿈치가 좀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철이의 채근대로 다시 위로 막는 동작을 해보니 귀신처럼 팔꿈치와 손목이 돌아갔다. 신이 난 병철이가 다시 옆차기를 시켜보니 이번에는 무릎과 발목이 돌아갔다.

“열찬아, 열찬아, 니 몸이 돌아간다. 팔다리가 다 돌아간다!” 열띤 목소리로 다시 열찬이에게 천지형부터 원효형까지 차근차근 동작을 시켜보더니

“됐다! 꺾인다 팔다리가 다 꺾인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열찬아 고생했다!”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병철아, 고맙데이. 내 평생 안 잊어뿌꾸마. 고맙다!”

노란 계급장위에 빨간 줄을 덧댄 단풍하사둘이가 서로 어깨를 껴안고 울먹이고 있었다. 이어 병철이가 구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두 구대장과 전 중대원이 바라보는 가운데 병철이와 열찬이의 태권도시범은 성공리에 끝났다. 둘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한 두 구대장은 당번병을 불러 계란을 넣은 라면과 커피 한 잔씩을 상품으로 주었다.

하사관임관과 종합행정학교의 졸업을 이틀 앞둔 수요일 오후에 모든 학과를 끝낸 후보생들은 부대 뒤의 남한산성으로 견학을 명분으로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현장학습을 나섰다. 이미 필기시험이 다 끝나 성적순으로 하사관군번이 배정되었다고 하며 내일이면 연병장에서 부대장인 육군소장이 보는데서 태권도를 비롯한 네 과목의 측정이 끝나면 모래 금요일에 하사관에 임용되어 모든 계급장의 붉은 실을 때낸 명실상부한 하사가 되어 휴가를 떠날 것이었다.

남한산성에 이르도록 명색 군인이요, 훈련과정이라 수도 없이 군가와 구령조정을 하고 겨우 산성에 올라 서장대라는 누각에 올라 인솔교관의 병자호란에 대한 약간의 설명과 삼전도의 치욕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바로 휴식이 주어졌다.

 

때는 5월말. 산천엔 늦은 봄이 신록과 함께 무르녹고 하늘 가득한 아지랑이가 어질어질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더니 어느 듯 고향생각, 집 생각으로 몰고 갔다. 병철이와 준권이. 가까운 친구 둘과 천천히 성곽 위를 걷는 열찬이의 귓가에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는 서울계집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서울의 여고생들이 단체로 소풍이나 야외학습을 나온 모양으로 간식을 마친 여고생들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잔디밭에서 수건돌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멀리서도 그 얼굴빛, 눈빛이 하얗게 빛나 단번에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 순영씨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성을 한 바퀴 도는데 막걸리를 말채로 받아와 추렴을 벌이던 사내들이 ‘군인 아저씨들도 한 잔 하라.’며 술잔을 건네자 아주머니들이 우리 아들도 군에 갔다면서 파전을 집어주곤 했다. 목사지망생인 준권이는 먹지 않았고 병철이는 한 잔을, 술을 즐기는 열찬이는 두 잔반을 마셨다. 기분 좋게 일어서려는데 한 사내가 영판 군에 간 우리 둘째를 닮았다면서 다시 열찬이게게 막걸리 잔을 건넸다. 생각 없이 마셔대는 술잔 속에 순영씨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어른거렸다.

목이 타는 갈증에 잠이 깬 열찬이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구대장당번병의 눈길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야 했다. 찬물을 떠다주는 당번병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당번병은 잠자코 창문 밖을 가리켰다. 거기 전 중대원들이 두 명의 구대장에게 기합을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정말 화가 머리끝에 치밀었는지 사정없이 군화발로 차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열찬이 때문이라고 했다. 아까 남한산성에서 네 번째 막걸리잔을 비운 열찬이가 갑자기 핑그르르 돌면서 쓰러지더니 느닷없이

“순영씨를 데려오라! 내 첫사랑 순영씨를 데려오지 않으면 구대장이고 교관이고 부대장이고 다 죽여 버린다!”

소리를 질러대어 구경꾼들이 수도 없어 둘러쌌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열찬이는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윽고 기합이 끝났는지 동료들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침상에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면서 자리에 누운 열찬이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똥 뀐 놈은 팔자 좋게 누웠고 모진 이웃을 만난 자신들만 죽도록 곤욕을 치른 것이었다. 준권이와 병철이와 가까운 몇몇은 어쩌면 열찬이 혼자 임관에서 탈락될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정신이 멀쩡해도 차마 숨도 못 쉬는, 언양사람 말로 그야말로 <똥구멍으로 숨을 수는> 시간이 또 한참이나 지나 동료들이 모두 잠이 들었을 때였다. 누가 열찬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니 애인 순영씨가 정말 그렇게 이뻐?”

호랑이 구대장이었다.

“... 죄, 죄송합니다.”

“새끼, 태권도 배우느라고 신경이 쓰였다가 긴장이 확 풀렸던 모양이지.”

“...”

“푹 자고 내일 태권도 측정이나 잘 받아. 야, 당번병, 임마한테 커피 한 잔 타줘!”

“...”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열찬이 속한 정훈하사관반은 무난하게 졸업측정을 마치고 전원이 하사관으로 임관했다. 군번순서를 보니 전체 36명중 그가 두 번째, 2등을 한 셈이었다. 비로소 계급장위의 붉은 실 한 줄을 떼어내고 단풍하사에서 정식하사가 된 그들은 개인보급품이 담긴 W백을 메고 각각 꿈에 그리던 고향집을 향했다.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고된 하사관의 교육을 받고 임관 직후 떠나는 휴가를 <위로휴가>라고 불렀다. 그만큼 고된 과정이라 위로받아 마땅하다는 뜻이었다.

또 논산훈련소의 훈련병이나 D. M. Z에서 철책 선을 지키는 신병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첫 휴가를 가면 아버지어머니가 맨발로 달려 나온다.’ 하기도 했다. 첫 휴가란 병사나 가족모두에게 너무나도 목마르게 기다리는, 마치 가뭄속의 단비 같은 반갑고도 기쁜 일이며 특히 어머니와 아들사이의 그 간절한 기다림과 애틋함이란 어쩌면 첫사랑의 설렘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육군하사 가열찬의 첫 휴가는 아무도 맨발로 뛰어나올 사람도 없고 누구하나 고생했다고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다.

물론 어머니 명촌댁이 있었지만 이미 예순 길에 접어든 나이에 갑자기 들이닥친 가족들, 특히 너무나도 성격이 예민하고 폭발적이라 <불칼>이란 별명이 붙은 서른넷의 장남과 손에 흙을 안 묻힌다고 시집을 갔지만 마침내 다시 농사꾼의 아낙이 되어버려 볼이 잔뜩 부푼 며느리와 두 손주, 형제들과 뚝 덜어져 태어난 막내로서 동무도 말상대도 거의 없이 자라다 갑자기 들이닥친 새 식구로 혼란이 빠져 이제 덩치는 거의 다 자란 열여섯이지만 도무지 말이 없는 암울한 사춘기를 보내는 막내 백찬이가 있었지만 누구하나 드러내놓고 반기는 사람도 없었고 그간 고생했다고 닭 한 마리 고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 만큼 살림살이도 곤궁하고 집안분위가도 무거웠다.

ⓒ서상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귀향한 일찬씨의 농사가 완전한 실패한 것이었다. 평생 펜대만 잡던 손이 농사에 익을 리도 없었지만 그 보다도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나 허약한 체질이었고 삽질을 비롯한 들일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고된 스트레스였다. 거기에다 쟁기질, 써레질을 비롯한 큰일은 모두 남의 손을 빌려야했으니 놉을 대는 품삯이 따로 드는 것은 물론 일도 않고 논둑에 앉아 마시는 막걸리에 취해 자꾸만 울화통이 치밀어 나날이 눈빛이 사나워졌다.

속없는 이웃들이 언양바닥의 천재가 어쩌다 농사나 짓는 신세가 되었는가, 또 머리 좋은 천재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닌가 보다, 또 공부천재가 농사바보라면서 수군거리는 것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열찬이가 입대한 얼마 후 가을걷이를 하고 농사경비와 수확을 따져보던 일찬씨는 단번에 이제부터 농사를 포기하고 다시 공부를 해서 중등학교국 어교사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참고서 몇 권을 사들고 와서 두꺼운 국어사전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과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하다못해 인문과 고등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 전액국비의 서울체신고등학교 중퇴에 언양농업학교를 마친 학력으로 고등고시보다도 더 어렵다는 교원공채에 도전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일찬씨는 그냥 그날로 두문불출, 일도매진 책속에 빠졌다.

자연 살림살이가 문제였고 살림을 맡았던 명촌댁과 새로 살림을 맡은 김해댁의 고부간 두 여인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명촌댁은 나름 막내아들과 오순도순 살던 살림의 실권도 없어지고 용도마저 귀해진데다 성격이 불같은 장남의 서슬에 밀려 장남과 며느리, 머리통이 커진 막내와 두 손주의 틈바귀에서 속편하게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 며느리 김해댁의 고초는 곤란이 아니라 고난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해평야 가운데서도 하필이면 이름조차 이북면인 명동리 금음마을 깡촌의 가난한 농가의 막내딸로 나이 많은 올케언니의 눈치를 흘낏거리며 자라나 어떻게든 이렇게 골병이 들도록 고생하고도 늘 가난한 농사꾼의 아낙만은 면해보겠다는 기대를 가지던 중 마침 언양에서 이사 온 사돈 격의 총각을 거의 유혹하다시피 이룬 결혼의 결과가 이제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봐도 그 결혼이 얼마나 남녀의 격이 맞지 않고 난관이 많은 것을 거의 우격다짐 비슷하게 이루어낸 대단한 반전이었던가? 그러니까 큰언니의 동서인 언양댁의 남동생이 휴가차 들러 동갑인 작은오빠와 친구가 되고 자신과도 어찌어찌 말이 통하자 그녀는 마침내 생금산 기슭의 깡촌 금음리에서 무논에 모를 심고 오뉴월 땡볕에 콩밭을 매고 보리타작을 하느라 온몸에 보리 가시랭이가 들어가는 고생을 벗어나 수돗물을 먹는 도시인이 될 기회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제대가 일 년도 더 남은 그 군인이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거느린 가난한 농가의 장남이란 점도, 또 총각의 누나인 언양댁이 아주 지독한 기독교의 광신도로서 만사에 거침이 없이 속사포를 쏘아대는 언양방송국임에도, 단지 농협에 다닌다는, 따라서 결혼을 하면 한평생 농사꾼의 아내로서 볕에 그을리고 허리가 휘는 고생을 하지 않고 도시의 뒤뜰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어떻게든 가일찬상병의 관심을 끌러보려 갖은 수단을 다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용하기가 힘든 악조건은 손위 시누이가 될 언양댁이 내건 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기독교인이 되어야 된다는 조건, 남의 점을 봐주고 푸닥거리를 해주는 어미니, 언양댁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무당의 딸로서는 절대로 수용하기가 힘든 조건마저도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과 동시에 교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한 개종(改宗)의 조건까지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시집온 손에 흙 안 묻히는 도시생활이 결혼 5년도 안 되어 단숨에 무너지고 기어이 농사꾼이 되었으니 그게 바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그 농사꾼마저도 전지가 넓고 남편이 건장해 넉넉히 살아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먹고살 걱정은 없을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그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그 마저 아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들에 나가 다시 호미와 낫을 잡고 땡볕에 그을리는 것은 물론 세상물정에 어두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다 아직 중학생인 막내 시동생 백찬이에 자신의 어린 자식 우현이 숙현이남매를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조금만 일을 해도 쉬 녹초가 되어 막걸리 한 잔이면 술이 취해 논두렁에 앉은 채로 무지렁이 촌사람들이 알아듣기도 힘든 공자 왈 맹자 왈 문자를 늘어놓거나 그런 자신을 알아주지 못 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터뜨려 싸움을 걸거나 폭발해버리는 남편도 문제였다.

그 위에 문제는 이제 세상이 변해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보다는 돈이 되는 부업이나 특용작물, 경우에 따라서는 삼성전관 등 공장에 다녀 다들 나무를 때는 부뚜막을 헐고 연탄아궁이로 바꾸거나 석유곤로를 때는 판국에 세상과는 자신은 그 반대로 잘 다니던 도시의 직장을 팽개치고 농사를 짓는데다 다들 헐어버리는 아궁이에 나무를 해다 밥을 지어야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고 연탄아궁이로 바꾸자니 당장 부엌을 고칠 돈도 없었지만 고치더라도 연탄을 살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던 것이었다.

 

거기다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에 마을의 모든 아낙들이 성냥이나 비누, 치약과 칫솔, 메리야스나 신발을 사기위해 모처럼 나들이를 해서 형편이 좀 나은 집은 갈치나 가자미 같은 생선도 사고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두어 근 사며 은근히 밥술이나 먹는 자랑을 하고 느긋이 뜨내기 약장수가 벌이는 원숭이의 재롱이나 차력사를 구경하는 대열에 자신은 낄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