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6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⑥
대하소설 「신불산」(16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5 07:00
  • 업데이트 2022.06.2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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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⑥

됫병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올 때쯤 커다란 솥에 넉넉히 물을 잡고 칼로 큼직큼직하게 썬 닭고기와 무, 대파에 마늘과 풋고추, 고춧가루까지 고루 넣은 닭도리탕이 구수한 냄새를 온 등말리언덕에 풍기며 익어갔다. 마당에 편 멍석위에서 아이어른들이 모두 입가가 번들번들하게 배불리 먹고 물러나 앉았는데 마루의 수진씨와 열찬이 처남남매는 여전히 술추렴을 하느라 밥그릇이 그대로였다.

이윽고 새로 받아온 됫병도 반이나 날아가자 마당에 어둠이 깃들고 달이 떠오르고 박꽃이 피더니 모기불가에서 꾸벅거리던 아이들이 하나둘 제방에 자러가거나 멍석에서 잠이 들었다.

“그 처남남매간에 이약 엔간히 하고 밥 좀 잡수소. 당신이야 늘 그만그만이지만 열찬이는 군대 생활한다고 안 심들겠나, 잠 좀 재아야제?”

금찬씨의 말에

“열찬이처남이 어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손님이가, 달이면 달마다 오는 사람이가? 세상에 이렇게 귀하고 반가운 처남하고 술 한 잔도 안 마시는 인간은 사람도 아잉기라. 자, 처남 마시자!”

수진씨는 도무지 자리를 끝낼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마시자 마침내는 새로 산 됫병도 바닥이 났다.

“아들 자제? 그라면 당신이 구판장에 갔다 올 끼가, 아이면 내가 갈까?”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수진씨를 도로 자리에 앉히며

“딱 이번 뿐이요잉. 내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 해 놓았지.” 시꺼멓게 어둠이 내려앉고 와웅새웅 개구리가 울어대는 논배미를 더듬어 금찬씨가 소주 반병이 든 됫병을 찾아왔다. 큰아이 일식이를 시켜 미리 숨겨둔 것이었다. 그리고는 수북한 닭 뼈와 번들거리는 술상을 내고 개다리소반에 열무김치와 다래 순 나물을 안주로 새 술상을 차렸다. 제일 큰 장닭을 잡았지만 그 많은 식구 때문에 국물 한 방울 남을 것이 없었다.

 

굳이 평지도 아닌 산비탈의 가파른 계곡에서 울퉁불퉁한 바위와 웅덩이와 아름드리나무들을 온통 휘감고 올라가는 다래나무는 머루나무와 함께 산중에서 으뜸가는 과일덩굴이며 그 중에서도 이른 봄 노랗게 움트는 다래순은 나물 캐는 아낙은 물론 나무꾼이나 숯장수들까지 생으로 된장에 찍어 점심반찬으로 삼는 향기로운 별미이기도 하지만 특히 <다래순은 처음부터 묵나물로 돋아난다.>는 말처럼 가마솥 하나 가득히 삶아 말려 짚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묵나물로 말린 것이 가장 풍미가 깊은 산채(山菜)의 으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이름마저도 밝을 명(明)자가 아닌 울 명(鳴)자의 명촌(鳴村), 그러니까 어디선가 뻐꾸기나 두견새가 울고 가난한 시골처녀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들을 것 같은 명촌마을에서 자라 버든으로 시집가 명촌댁이가 된 어미나 그 버든 평리에서 어미의 친정 곳인 명촌으로 시집와 평천댁이 된 금찬씨나 손쉽게 대하는 찬거리요, 그 식구들도 즐겨먹는 편이라 두 사내는 향긋한 다래순의 질박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안주로 또 부지런히 술잔을 비워냈다.

이제 달이 중천으로 올라오면서 샛별은 동쪽으로 밀려나며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흐릿하게 두 사내의 머리꼭지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논배미의 어둠이 한층 짙어지면서 뚜루뚜루 우는 풀벌레 울음사이로 여전히 와롱새롱 목소리를 뽑던 수캐구리 하나가 갑자기 꾸욱, 꽥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 술이 취해 개슴츠레해진 수진씨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리게 했다. 아마도 암캐구리 짝을 찾으려고 밤새도록 사랑노래를 불러대다 뱀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황홀한 구애의 가락 속에서 숨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멍석 한 귀퉁이에서 이제나저제나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금찬씨의 마음도 개구리소리에 맞추어 점점 심란해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구비 몇 구비냐?>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이제 겨우 서른이 된 자신의 인생살이도 참으로 끝없는 고생과 아쉬움과 후회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농사꾼의 셋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 예사로 밥을 굶으며 동생들을 업고 키우는 고생이야 당시로서는 어느 집 딸이나 다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식을 낳아보지 못 해 참으로 생뚱스럽던 밀양이모집의 더부살이와 화가 난 아버지의 등에 업혀 신불산을 넘어오던 일, 부산 복천동 작은님이네에 얹혀살던 그 힘겨운 공장생활과 밀가루 풀대 죽으로 죽도 살도 못 하던 일은 무슨 팔자소관이었을까? 또 네 명이나 되는 딸들을 절대로 스무 살을 넘기지 않는다는 아버지 기출씨의 고집으로 엉겁결에 시집온 앳된 색시의 시집살이, 엔간하면 남의집식구가 된 시집살이만이라도 잘 살지는 못 해도 무난하기라도 하련만 가난한 층층시하에 철없는 어린 남편을 만나 군대에 보내면서도 쉼 없이 아이를 낳아 벌써 5남매가 되고 여전히 살림은 가난하고 남편은 술에 절어버린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비록 쇠 잘 치고 창 잘 하고 록사꾸라고 부르는 여섯 자가 넘는 훤칠한 아버지였지만 오랜 방황과 머슴살이로 일평생 술에 절고 가난에 절고 무딘 아내와 수많은 딸들, 머리는 좋지만 몸이 약한 장남에 대한 불안과 실망으로 단 하루도 갠 날처럼 살지 못 하고 금방이라도 억수로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살다간 아버지 기출씨, 내가 자라서 시집을 가면 설령 밥을 굶더라도 아버지 같은 술꾼은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던 다짐을 하다 정작 남편이라고 만난 사람이 아버지 기출씨를 뺨치는 술꾼인 수진씨, 그 수진씨와 함께 마주보고 술을 마시는 동생, 자신이 업어 키운 가장 애틋한 사이의 남동생 열찬이까지 아버지나 제 매형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술꾼이 되어 이렇게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또 한참이 지나 점점 짙어진 논배미의 어둠은 이제 마당에 환하게 켜진 알전구 주변으로 슬금슬금 밀고 들어오고 개구리소리는 점점 높아져갔다. 버든에서 농사를 지을 때 아버지는 해가 질 때부터 개구리가 세 번을 우는데 그 울음이 각각 깊은 뜻이 있다고 딸들에게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서산에 해가 기울 적에 우렁우렁 우는 첫 번째 개구리울음은 이제 곧 해가 진다는 신호이며 길어진 산 그림자 끝으로 해가 떨어지고 논밭의 벼나 콩 포기 밑으로 어둑어둑 어둠이 밀려들 때 우는 두 번째 울음소리는 이제 곧 어두워지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이며 그러고도 한참 뒤 사방이 깜깜해지고 나서 한껏 높은 목소리로 울어대는 세 번째 울음은 아직까지 돌아가지 않은 사람은 호랑이가 물어가거나 누가 잡아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소리라고 딸 부잣집 아비답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염려와 달리 네 딸들은 어둡기 전에 잘들 귀가했지만 대신 끈질기고 견딜 심이 많은 아내 명촌댁은 마치 귀가 어두워서 그런 것처럼 날마다 사방이 깜깜해져 비탈진 진장골짝의 논길에서 더듬거리다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하기야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집어 들면 또 한 도가리 작은 논이 나온다는 그 오룡골과 진장골짝의 천수답과 진장밭, 갱빈밭에 흩어진 하나같이 시원찮은 전답과 그나마 장날마다 전을 펴느라 들에 나가지 못 하는 농촌아낙이 제 시간 지켜 귀가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까짓 들에서 늦는 것은 약과, 금찬씨는 지금도 갓난애 백찬이를 업고 여덟 살 열찬이의 손을 잡고 웃 각단 대밭 뒤에서 어두운 마구뜰에 대고 “엄마 오나? 엄마 오나?”를 외치며 복숭아장사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하며 눈물이 솟았다. 그 어머니가 오빠가 귀향하면서 다시 막내 백찬이와 함께 마음고생이 심한 것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자주 가보지 못한 자신이 불효라는 생각이 날마다 가슴을 저몄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몸으로는 다 거두기도 힘든 네 아이와 술에 빠진 남편과 빨래와 설거지와 뒷밭의 지심과...

 

하늘 가운데로 지나 서천으로 빨려드는 반달을 따라 금찬씨의 상념도 구름처럼 아득한 지난날의 그늘 속으로 빠져드는데 술잔을 든 채 몸이 앞뒤로 왔다갔다 하던 수진씨가 갑자기 쿵, 소리를 내며 술상위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졌다.

“자, 자형요!”

깜짝 놀라 붙잡으려는 열찬이에게 금찬씨가 재빨리 눈짓을 보냈다. ‘가만 두어. 건드려서 다시 깨면 또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언제 잠들지 몰라.’ 입속에서 달막거리는 금찬씨의 말을 눈치 챘는지 이미 술이 만취된 열찬이가 한 손으로 멍석을 짚으며 겨우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마루를 향했다.

얼른 부엌에서 물 한 그릇을 떠온 금찬씨가 물그릇을 건네주며 손짓으로 잘 자리, 네 명의 사내아이가 이리저리 나뒹구는 아랫목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이미 밤이슬로 축축해진 멍석과 술상을 정리하고

“보소! 일식아아부지, 보소!”

상에 엎드린 수진씨를 깨우는데 방안에서는 벌써 나동그라진 열찬이의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상균

이튿날 새벽, 목이 끊어질 듯 갈증을 느끼며 잠이 깬 열찬이는 그 목보다 더 급한 방금 터질 것 같은 바지춤을 부여잡고 측간으로 향했다. 폭포처럼 터지는 물줄기의 시원함을 음미하며 낙동강 칠백 리처럼 기나긴 오줌발을 쏟아내는 열찬이의 무릎이 아직도 술에 젖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휘청했다.

“열찬이 깼나?”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열찬이에게 금찬씨가 한 양푼의 물을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엿 마지기 논에 물을 대듯이 한 양푼을 다 비운 열찬이 양푼을 건네주며

“자영은?”

묻자

“가만 놔나라. 안주 잔다. 그라고 쪼깨만 기다려라. 내 호박이파리 삶고 된장 찌져서 아침밥 주께. 보리쌀은 벌써 다 삶아 퍼자 놨다. 쪼깨만 기다려라.”

금찬이 대답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누부야, 물 한 그릇 더 주소.”

물그릇을 받아든 열찬이 이번엔 천천히 음미하듯 물을 마시며 뭔가 곰곰 생각하더니 축담에서 군화를 찾아 신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면서도 조심조심 마당을 가로질러 사광리마을을 지나 뛰다시피 열녀각으로 향했다. 매형이 깨어나면 또 다시 술을 마실 것이고 다섯 아이를 가진 누님만 더 골병이 들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국방색 런닝 가득 땀이 젖도록 시오리 길을 걸어온 열찬이가 삽짝문을 들어서는데

“데름 오네. 명촌서 아침 안 뭈제? 내 금방 밥 해오께. 쪼깨만 기다리소.”

역시 찬물 한 그릇을 떠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들큰한 고향집의 찬물 한 그릇을 마시며 열찬이는 또 깊은 상념에 빠졌다. 기다리던 휴가, 누구나 다 반가워할 첫 휴가지만 다들 살기 바빠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휴가가 벌써 반이 지나 내일모래면 춘천의 103보충대를 찾아가야만 했다.

단지 가난 때문에 서먹해진 가족들 대신 오늘 하루쯤은 연산3동동사무소에 가서 동료든 통반장이든 누군가와 하루쯤을 보내고 내일 낮쯤 초량의 여행장병안내소 T. M. O에서 군용열차를 타면 될 것이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이제 열여섯 살 제법 의젓한 총각이 되어 코밑에 노란 솜털이 송송한 백찬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밭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서 어릴 적처럼 푸푸거리며 세수를 하고난 그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물건들을 챙겨 W백에 담기 시작했다. 온 식구가 먹던 밥숟갈을 놓고 맨발로 튀어나온다는 첫 휴가가 그렇게 맨숭맨숭 끝나가고 있었다.

 

춘천의 103보충대는 소양강 바로 옆의 평평한 들판 한가운데에 있어 열찬이에게는 얼핏 고향 버든마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산을 비롯한 여러 훈련소에서 배출된 신병을 받아 자대(自隊)라고 부르는 강원도일대의 중부전선과 동해안의 전투사단에 충당하는 곳인 103보충대는 주로 서부전선에 병력을 충원하는 의정부의 101보충대와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충대였다.

가끔 커다란 포플러나무가 한둘 서 있기는 해도 그냥 펑퍼짐한 들판 한가운데 성냥갑처럼 네모난 막사들이 드문드문 세워진 그곳에선 날마다 반짝반짝하는 새 군화와 계급장, 아직 물 한 방울도 튀지 않는 생생한 국방색의 W백을 맨 이등병과 단기하사와 간혹 장교 또는 타 사단으로 전출 가는 사고 병들이 짧으면 2, 3일, 길면 1주일정도 특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 마치 시집가는 색시처럼 전방부대의 군용트럭에 다소곳이 실려 가는 곳이었다.

이미 휴전이 된지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북한의 특공대가 청와대를 침입하려한 1. 21사태와 가로수를 전정하는 미군을 무참하게 살해한 판문점도끼만행사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도발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판국이라 보충대의 신병들은 아버지세대가 겪은 6.25나 삼촌이나 형님세대가 겪은 철책선 경비부대 보초병의 고초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최전방으로 팔려가지 않기만 바라며 전방의 군용트럭이 들어올 때마다 혹시 자기이름이 불릴까 걱정하고 후방지역의 차량이 들어오면 제발 자신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 곳이기도 했다.

팔도강산의 온갖 잡동사니가 잠간 모였다 흩어지는 그곳에서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단연 <인제 가면 언제 오노? 원통해서 못 살겠네>였는데 이는 백두대간의 뼈대에 해당되는 높고 험한 산악지대로서 겨우내 무릎이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철책보초와 제설작업으로 한세월을 보내는, 그래서 지명마저 키다리 기린의 발굽이라는 뜻을 가진 강원도 인제(麟蹄)와 인근의 원통에 있는 부대로 팔리지 않으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103보충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관은 하루 세끼 식사가 끝나면 임시막사의 소대별로 줄을 지어 소양강에 양은식기를 씻으러 가는 일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