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1)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⑧
대하소설 「신불산」(171)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7 07:00
  • 업데이트 2022.06.28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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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⑧

아닐까 다르랴, 문 병장의 전역특명이 떨어진 이튿날부터 몇 명의 노파가 위병소로 외상술값을 받으러 나타났고 간신히 노파들을 돌려보낸 문 병장이 그날 저녁 PX로 이열찬 하사를 불러내어 통사정을 했다. 자신은 제대하면 형이 사는 서울 하월곡동으로 돌아가 을지로의 귀금속상에서 시계를 팔거나 고치는 일에 종사할 것이라 늦어도 첫 월급을 타는 일 개월 안으로 갚아드릴 테니 세 곳의 술집에 남은 외상값을 대납해 달라는 것이었다. 합이 당시의 하사월급 4,000원에 조금 모자라는 3,750원이나 되었다.

열찬이 웃으며 내게 그런 여윳돈이 어디 있나 내 월급 4,000원도 가끔 야외교육 시에 받아다 먹는 강냉이술값에다 소대대항 축구시합에 질 때 사인을 해야 하는 PX생과자 값을 제하면 돈 천원 남짓 남는 형편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대납이 아니면 대신 책임을 진다는 사인만 해주면 되고 그 위에 내무반장님을 위해 자견대에 근무하는 양오길 월남병장에게 산 정글화 한 켤레와 정글복 한 벌도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가열찬은 허허 웃으면 넘기려 했지만 문병장은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다며

“내무반장님, 아니 형님, 이 하사님 고맙습니다!”

넙죽 절을 하기까지 했다.

 

이튿날 야외교육 중에 틈을 낸 배대복 병장이 눈짓으로 가열찬을 숲속으로 불러내었다. 단도직입 문 병장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서울의 뒷골목에서 놀았다는 문 병장은 졸병들을 괴롭히기를 무슨 취미처럼 좋아하는 데다 특히 갓 전입한 신병이나 휴가를 다녀온 졸병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해서 같이 외출외박을 나가 술대접, 심지어 사창고개의 아가씨대접까지 받는 것은 물론 빌려달라고 받아 단 한 번도 갚은 일이 없으니 그야말로 강탈이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자신이 군대생활을 2년 정도 한 상등병시절에 휴전으로 갑자기 월남에서 철수해 새끼 밴 암캐를 관리하는 자견실의 양오길 병장을 협박해 파월용사의 상징인 정글화와 정글복을 빼앗았다고 했다. 그 양오길 병장이 천성이 너무 순해서인지, 아니면 군사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달러로 받는 군인봉급을 더 받기위해 너무 속성으로 단 10개월에 병장으로 진급시킨 탓인지, 자기보다 계급은 낮지만 나이와 군 경력이 긴 당시 문 상병을 갈구지 못해서 그런지 빌려달라는 대로 순순히 내어주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빌린 군화와 군복을 이튿날부터 자기가 제대하면 준다고 여기저기 잡히면서 돈을 빌려 썼다는 것이었다.

그런 배병장에게 잘 알았다고 하면서 순간 열찬이는 아마도 자신은 이번 일에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마침내는 돈을 책임지고 받지 못해 대신 물어야만 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럼 어쩐단 말인가? 돈을 빌려주면 떼이고 빌려주지 않으면 문 병장이 제대하지 못 하는데 내무반장인 내가 어쩐단 말인가? 울며 겨자 먹기로 떼일 줄 알면서도 빌려줄 수밖에...’ 혼잣말을 하다 문득 배 병장이 들었을 줄 몰라 움찔하고 말았다.

예상한 대로 제대한 문 병장은 한 달 내로 연락을 하고 첫 월급을 타 빚을 갚는다는 말과 달리 두 달이 넘도록 전화 한 통이 없었다. 부대 안에 마음 약한 이 하사가 문 병장에게 보기 좋게 속았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열찬이는 모르는 척 했다. 이어 가을이 이울어 남쪽 바닷가와 달리 너무 일찍 첫눈이 내리는 11월 중순 전방에 파견을 나간 병력들도 돌아오고 단 한 명이던 고참 단기하사 이정수 하사는 귀대한 이튿날 이 군가가 빠진 양아치 같은 부대의 고참 병장들 사이에서 고생이 많다면서 혀를 끌끌 차더니 아직 제법 쓸 만한 군복과 모자, 군화 한 켤레씩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전역을 해 대구로 떠났다.

이어 첫눈이 시작되자마자 밤낮으로 내리는 눈으로 연병장과 도로는 물론 그 넓은 견사까지 밑도 끝도 없는 제설작업에 병사들이 조금씩 지쳐갈 11월 말 직접 넉가래를 드는 일이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감독만 하던 2소대 내무반장 가열찬 하사는 비로소 제대로 된 25일짜리 휴가를 받았다.

ⓒ서상균

그러나 누구나 다 부러워하는 이 긴 휴가가 가열찬 하사에게는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며느리에게 주권을 뺏기고 맥없이 늙어가는 어머니와 늦깎이공부에 칼끝처럼 날카로워진 형님과 오로지 돈 한 푼을 위해서 동분서주 하지만 늘 빈손인 형수, 거기에다 도무지 호흡이 맞지 않는 세 사람, 어머니와 형님과 형수가 맞물려 폭풍전야의 분위기가 감도는 고향집의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느 구석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 하루 세 끼 밥을 얻어먹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물론 누구하나 잡비 한 푼을 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었다.

<길을 두고 뫼로 갈까?>라는 속담이 있지만 휴가병 가열찬 하사가 들린 장촌, 명촌 두 곳의 누님 댁을 찾는 것은 특별히 오라는 사람도 없는 판에 그나마 찾아갈 수 있는 궁여지책에 가까웠지만 그로서는 더 이상의 선택은 있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 막 하사로 진급한 짧은 위로휴가 때 명촌에서 매형 수진씨와 소주 서되 반을 마시느라 비몽사몽(非夢似夢)간을 헤매다 끝 난 지라 이번에는 장촌의 넷째 누님 집을 먼저 찾았다.

열찬이가 삼남면사무소를 끝내고 부산으로 진학할 무렵 아버지 기출씨가 돌아가신 덕분에 갓 스무 살이면 여지없이 시집을 보내버린 위의 세 언니와 달리 벌써 어영부영 스무네 살이나 먹은 넷째 덕찬이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당시 농협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농사나 지으며 정착하려던 일찬씨로서는 이미 장성한 두 동생 중 열찬이는 부산으로 진학해 떠나보내고 마지막 남은 막내 누이에게 중매가 들어오자 얼씨구나, 무조건 시집을 보내고자 했다. 사실 막내 덕찬씨가 인물이 반반하거나 손끝이 야무진 것도 아니고 무슨 기술을 베우지도 않은 데다 중학교마저 나오지 않은 판에 혼담이 들어왔으니 반갑기가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글자도, 세상물정도 거의 몰라 십년 넘게 교회에 다녀도 단 한 마디 ‘할렐루야’외에는 용어가 익혀지지 않아 크리스마스도 히루꾸마스라고 부르던 명촌댁이 불각 중에 그 귀한 혼담에 제동을 걸어왔다. 어디서 들었는지 장촌에 사는 고씨성을 가진 총각이 이미 나이 서른이나 되는 노총각인 데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그 나이에 언양파출소에 방위근무를 하다 지난달에 제대했다고 하니 필시 몸이 약하거나 눈이 어둡거나 하다못해 집이 가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젊은 나이에 영장을 받고 도망친 기피자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6.25당시 평소 얼굴도 보지 못 했던 남편의 생질하나가 빨치산이 되는 바람에 남편이 도망을 가고 자신이 지서의 순사에게 남편의 숨은 곳을 대라고 추궁 받다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아 어깨까지 내려앉은 아픈 기억이 있는데다 마을의 수많은 청년들이나 시집간 딸들의 남편들이 군에 가서 죽거나 기피자가 되어 패가망신한 사례를 여러 번 본 탓에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다 된 판에도 그 악몽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결국 면사무소에 다닌 공무원 출신인 열찬이 그 내막을, 그러니까 어머니 명촌댁의 말로는 이명고명을 알라오라는 책임을 맡아 언양면사무소에 임시직으로 있는 국민학교동창을 찾아가 호적부와 병적원부까지 열람하게 되었다. 우선 주민등록표의 사진에 얼굴의 절반이 코로 보이는 반듯한 용모의 총각은 마을에서 당당하게 중농으로 꼽힐 만큼 전답도 넉넉했지만 단지 차남으로 태어난 열찬이자신처럼 장남을 공부시키기 위해 국민학교만 나오고 농사를 지은 바람에 학력이 낮아 보충역이 되었을 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실한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단지 유일한 흠이라면 어릴 적에 생모가 병사하여 새엄마 밑에서 자란 것인데 그마저도 친부모, 친자식 이상으로 서로가 잘 따르고 보살피고 배다른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넉넉한 집안의 잘 생긴 청년이 외모나 학력, 하다못해 친정의 살림살이마저 변변찮은 덕찬이누나를 왜 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척되었는데 근 30년이나 지난 후에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다른 것은 특별히 볼 것이 없었지만 일찬이, 열찬이 두 처남 감이 공부를 잘해 언양바닥에서 머리 좋은 집안으로 소문난 것 때문이라고 했다.

키는 자그만 해도 몸매가 튼실하고 말수가 적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다부진 막내 자형 고차대씨는 신혼 초에 분가하지 않고 부모님이 주무시는 큰방과 연결된 아래채에 살면서 집안전체의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 몫으로 약간의 논밭을 밭고 마당 한 구석에 닭장을 지어 서른 마리 정도의 닭을 쳐 언양장날마다 몇 꾸러미의 달걀을 팔아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또 당시 농촌개발운동인 4H운동, 새마을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두엄장과 측간의 메탄가스를 호스로 연결해 부엌에 땔나무가 아닌 가스로 조리를 한다거나 참나무를 베어 그늘에 세우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청년지도자로서 벌써부터 적잖은 저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착실한 자형이기는 하나 성품 자체가 그 우뚝한 코처럼 단정하고 흔들림이 없어

“처남 왔는가?”

정도로 안부를 묻고 소주를 사다 달걀을 지져 술과 밥을 대접하고는 더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처가에도 명절에만 그저 안부 차 들릴 뿐 셋째이면서도 막내사위보다 한 살이 적은 명촌자형 수진씨처럼 밤새 술을 마시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큰소리를 빵빵 치기도 하는 그런 친밀한 사이가 되지 못해 겨우 하룻밤을 자고나면 도망치듯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는 수 없이 다시 마구뜰을 걸어 남천내공굴을 건너고 방천묵을 돌아 부리시봇디미를 넘어 천전뜰, 이불뜰을 지나 열녀각을 거쳐 등말리 금찬이누님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자형 수진씨는 이번에도 뛸 듯이 반가워하며 우선 암탉부터 한 마리 잡으며 아홉 살이 된 큰아이 일식이, 둘째 차식이 더러 어서 칼치못의 낚싯대에 붕어가 몇 마리 물렸는지 보고 없으면 몇 마리 낚아서 오라고 엄명했다. 심심한 농촌에서 휴가병 처남이 왔으니 술 먹기에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잔뜩 신이 난 수진씨는 닭털을 뽑자말자 배를 갈라 간과 염통, 콩팥을 꺼내 열찬이와 함께 너덧 잔, 그것도 보통 잔이 아닌 간장종지 잔으로 마셨고 전처럼 닭 창자를 다듬어 골탕을 만들면서 아이들이 잡아온 서너 마리의 붕어와 그전에 낱마리로 잡아온 붕어로 회를 떠

“자, 처남, 소애회로 술 한 잔 해 봐. 소주안주는 뭐니 뭐니 해도 소애 회만 한 것이 없지.”

입맛을 다셨다. 이상하게 언양에서는 붕어를 송어라 불렀고 그게 구개음화(口蓋音化)현상으로 소애라고 들렸다. 하긴 노파들은 마을아이들의 화옥이란 이름을 화왝이, 순옥이를 순왝이라고 부를 정도니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둘이서 소주를 반 되쯤이나 마셨을 때 솥에서 구수하게 닭 익는 냄새가 풍겨오자 사내아이 넷이 침을 흘리며 모여들었다. 아버지와 외삼촌, 다음 맏이부터 넷의 닭볶음을 그릇에 담으니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그 매운 국물을 그 어린 것들이 잘도 먹어댔다. 세 살짜리 넷째에게 고기를 발라주는 금찬씨를 바라보던 열찬이의 눈이 동그라졌다.

“누부야, 니 또 아아 가짔나?”

“내가 아나? 니 자형한테 물어 보라머.”

금찬씨가 수진씨를 흘낏 쳐다보면서 웃자 수진씨가 허허 웃으며 먼 산을 보았다. 마흔이 훨씬 넘어 둘째딸 순찬씨와 동시에 막내 백찬이를 임신했을 때 오랜만에 집에 온 장남 일찬씨가 ‘엄마는 우짤라꼬 또 아아를 가짔노?’ 물었을 때 명촌댁이 무심하게 던진 ‘내가 아나? 너거 아부지한테 물어봐라.’를 흉내 낸 것이었고 수진씨도 그 내막을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누고? 명촌댁이 딸 아이가? 아아 아홉 낳은 명촌때기 큰딸 신평새이는 너이, 둘째 김해새이는 다섯이를 놓았으니 나도 다섯 정도는 놓아야지. 그건 그렇고 장촌에 덕찬이는 아아가 안 생겨서 큰일이다.”

오히려 남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난 번 첫 휴가 때 서 되 반을 마시고 열찬이도 힘들었지만 수진씨도 며칠이나 일을 못 할 정도로 고생을 해 이번에는 금찬이누님이 술을 철저히 통제해 한 되 반을 마시고 나자 단호히 공급을 끊었다.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던 수진씨는 이윽고 밤이 깊어 젖먹이를 뺀 아이들 셋이 다 자러가자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남매가 호젓이 마주보고 앉게 되자

“열찬아, 니 서울에 귀찬이새이 소식 들었나?”

생판 낯선 이야기를 꺼냈다. 아아, 귀찬이 4촌누님, 우리집안 딸들 중에서 얼굴도 가장 희고 콧날도 오똑해 촌에 살기에는 아깝다던 얼굴, 일찍이 서울물을 먹고 고향에 다니러 와 건들건들 허풍쟁이 김태업 씨에게 속아 아이를 가지고 식도 못 올리고 그 집에 들어가 표독한 시어미에게 온갖 고초를 겪고 아이마저 죽어버리자 다시 서울로 떠나버린 귀찬이누님...

“귀찬이새이가 서울에서 결혼해서 아아를 서이나 놓고 잘 산단다. 신랑은 식모 살던 부잣집 사장 밑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먹물도 들었고 인물도 훤하단다. 단지 이북사람에 나이가 좀 많아서 탈이지.”

“나이가 많다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확실히는 몰라도 근 이십 년 차이가 난단다.”

“아이구 얄궂어라. 부모 택 아이가?”

“남녀 간에 정분이 나면 나이 차이는 별문제가 아니란다. 봐라! 벌써 아아를 서이나 놨지? 서이다 가시나들이지만 저거 아부지가 이뻐서 죽는단다.”

 

열찬이의 눈앞에 처녀 몸으로 아이를 배어 만삭이 되자 무서운 오빠를 피해 그나마 어질고 인정 많은 작은 엄마 명촌댁을 찾아와 울음을 터뜨리며 아랫방에 몸을 풀면서 아버지 기출씨가 몇 며칠을 혀를 끌끌 차게 하던 얼굴이 하얗다 못해 창백하던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