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3)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⑩
대하소설 「신불산」(173)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⑩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9 07:00
  • 업데이트 2022.06.30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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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⑩

어디로 가서 무얼 먹을지 물어오는 장완준 상병에게 그는 배가 고프니 우선 아무데나 가자고 했다. 아까 오면서 봐둔 싸구려 짜장면 집에서 열찬이는 곱배기를 시키고 장완준상병은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도 보통하나를 시키더니 나무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비벼 날름날름 잘도 먹었다. 하도 배가 고파 양파와 단무지 한 점까지 쓸어 담 듯 식사를 마치고

“값싼 거 이건 내가 내꾸마.”

모처럼 포식감에 한껏 얼굴이 펴져 나오는데

“내무반장님 이번엔 어디로 모실까요?”

정중하게 묻기는 했지만 뭔가가 수상쩍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서 귀대하자고, 자신이 좋은 데로 모시고 가서 한 잔 잘 대접하겠다고 하고서 왜 자꾸만 어디로 갈지를 묻는 것이 미심쩍은 것이었다.

“아무데나 장 상병이 좋다고 한 데로. 내사 마 서울지리나 사정을 아나?”

다시 시장골목을 걷는데 통닭을 굽는 냄새, 오징어를 튀긴다고 솟아오르는 김, 갖가지 튀김을 튀기는 타닥타닥 기름이 튀는 소리에 금방 자장면 곱배기를 먹었음에도 열찬이는 다시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장 상병, 저기 통닭 한 마리 먹으면 안 될까? 진로소주 한 병 끼워서 말이야?”

“그럽시다.”

이외로 순순했지만 목소리는 시큰둥했다. 서울 오면 뭐든 다 해줄 것 같은, 말하자면 입에 물린 혀처럼 하겠다던 말하고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지만 부대 안에서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와 누가 깍쟁이고 누가 고문관이란 이야기가 나누다 어느 새 하월곡동에 산다는 문 병장 이야기가 나오고 장완준 상병이 자기가 길을 안내할 테니 주소지로 한 번 찾아가자는 것을 열찬이가 말렸다. 빌린 돈을 갚을 마음이 있거나 그럴 형편이 되면 어련히 갚을까, 괜히 찾아가 서로 마음만 더 상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한 잔 두 잔 주고받다 어느 새 소주병이 비어 다시 한 병을 자 또 한 병을 추가했다. 처음에 닭다리와 날개를 맛있게 먹던 장완준 상병은 이제 배가 부른지 남아있던 닭의 갈비뼈, 가슴살과 목과 터벅터벅한 엉덩이 살은 쳐다보지도 않고 소주잔 한 두 방울씩 깨작거리고 있었다. 그렇건 말건 ‘이 닭 가슴뼈를 계륵(鷄肋)이라고 해서 삼국지의 조조가 말하기를 말이야 먹기는 성가시고 버리기도 아깝다고 했지만 가난하고 배고픈 자에겐 그저 맛만 좋지.’ 젓가락으로 갈비뼈 사이를 후비며 열찬이는 부지런히 소주를 마시다 또 한 병을 추가했다. 마침내 접시에 닭 뼈만 수북하게 남자

“진정한 식객이라면 이렇게 뼛속까지 발라먹어야 제대로 닭 한 마리를 먹는 거지.”

닭 무릎 뼈에 붙은 너덜너덜한 물렁뼈조각을 떼어먹고 그 뼈를 이빨로 으깨어 뼛속의 자줏빛 핏줄까지 발라먹으며 열찬이는 부지런히 장완준 상병의 눈치를 살폈다.

음식 값이 꽤 될 것 같은데 도무지 낼 기미가 없었다. 아니, 서울에서 만나면 자기가 한 잔 잘 낸다고도 하고 작은 돈이기는 하지만 명색 상급자인 자신이 먼저 자장면 값을 이미 내었는데도 말이었다. 서울사람 속에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인 구미호가 몇 마리가 들었는지 야들야들 부드러우면서 간사하기 짝이 없는 보리경사 쓰는 서울사람을 조심해라, 깊이 상종하지 말라고 입대회식을 벌일 때 어느 유지영감이 하던 말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소주잔만 찔끔거리는 장 상병을 보며

“사람이 닭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지 알아? 보통사람들은 맛있는 닭다리나 날개부터 먹지만 그건 아니야. 가장 맛없는 엉덩이 살이나 닭 가슴살부터 맨 먼저 먹고 가장 맛있는 닭다리를 맨 나중에 먹어야 되는 거야.”

일부러 넉살을 부려보았지만 도무지 어떤 움직이나 기미마저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셈을 치렀다. 흘낏 남은 돈을 가늠해보니 그럭저럭 춘천까지 갈 버스비는 될 것 같기도 했다.

“잘 먹었습니다, 이 하사님. 이번엔 어디로 모실까요?”

“...”

어안이 벙벙해진 열찬이

“아니, 귀대 길에 서울서 만난다면 좋은데 모시고 간다고 했잖아?”

불만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말하자

“아하, 그렇지. 그렇지만 아가씨 집에는 해가 져야 가는데요. 자, 가만 있자. 그렇지, 내무반장님 그럼 우선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술이나 좀 깨고 해가 좀 기울면 종로나 청량리 쪽으로 천천히 가십시다.”

 

둘이서 다시 공원으로 올라가고 우선 화장실에 나란히 서서 길고긴 물줄기를 뽑아내었다.

술도 깰 겸 둘은 다시 30분도 더 걸었다. 군인들 농담에 휴가병이 친구와 길을 가면 <군인 한 사람에 민간인 한 사람>인데 영판 그 꼴로 세련된 서울 사람 하나와 새까만 얼굴의 경상도 군바리가 길을 걷는 셈이었다. 문득 말만 들었던 광화문과 서울시청이 나타나고 그 유명한 남대문과 서울역을 지나 또 한참이나 걷더니 꼬불꼬불한 골목이 길게 펼쳐진 입구의 작은 술집 앞에 발을 멈추었다.

“장 상병, 여기가 어디야?”

“종로3가. 내무반장님은 그 유명한 종로3가 그 종삼이란 말도 못 들어봤수?”

그렇다면 여기가 새벽에 들렀던 용산역전과 비슷한 곳이구나 생각하는데

“자, 들어갑시다!”

입구의 조그만 술집으로 능숙하게 그를 밀고 들어갔다. 골목입구에 가득한 수상한 아줌마들이 둘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쉽사리 길을 비켰다.

“아줌마, 여기 찹쌀 동동주 한 되! 그리고 오징어회랑 빈대떡에 아가씨도 두 명!”

잘 아는 집인지 장 상병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오랜만에 왔네. 낯선 손님도 모시고.”

오십대의 주모가 은근히 웃으면서 맞이하더니 테이블을 쓱쓱 닦는 동안 금방 술과 안주가 차려졌다. 아까 마신 낮술이 겨우 좀 깨는 판에 갑자기 동동주가 사발 째 들어가니 우선은 배가 불룩 솟는 느낌이었지만 머리가 띵하며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자, 이제 마음 놓고 한 잔 하십시다. 내무반장님, 그 허리띠도 좀 풀고 천천히 한 사발씩 마십시다.”

잔을 창 부딪치는데 술잔이 넷이었다. 옆에 앉은 아가씨가 군인아저씨, 어서 마시라는 바람에 거푸 서너 잔이나 마시고 장 상병에게 잔을 건네는데

“아이고, 우리 내무반장님 잘도 마십니다. 자, 아줌마 요번에는 제육무침 하나에 동동주 한 주전자!”

장 상병이 호기롭게 소리치고 옆자리의 아가씨가 다시 사발을 들어 건배를 하자며 챙, 부딪혔다. 부딪히는 사발위로 번쩍 번갯불이 지나갔다.

ⓒ서상균

거기까지였다. 동그란 어항 속에서 황금빛 지느러미를 가진 금붕어를 따라 둥근 곡선을 그리며 황홀한 유영(遊泳)을 하는 고요함처럼 아득히 깊고 화사한 상념의 밑바닥에서 수없이 많은 색색의 물방울이 피어올라 둥둥 떠다니다 갑자기 쾅 터져버리는 것 같이 문득 사방이 수런거리는 소음에 정신을 차린 열찬이가 고개를 들어보니 이번엔 검고 흐릿한 달덩이 하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어느 순간 반짝이는 두개의 빛으로 쏘아오며

“아이고, 군인아저씨 이제 깨어나셨네.”

“...”

가뜩이나 작은 눈을 찌푸리며 한참이나 바라보니 마침내 좀 전에 동동주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던 술집아가씨란 기억이 떠올랐다.

“어어, 이기 우째 된 일이요?”

이마가 깨어질듯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기억을 가다듬어

“그 사람, 장, 장 상병은 어디 갔어요?”

“아, 그 오빠요? 오빠가 곯아떨어지자 다른 친구를 만나러 잠깐 갔다 온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이제 곧 올 때가 되었겠네.”

“아니에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걸요. 며칠 전에도 어떤 친구와 같이 와서 오늘처럼 잠시 나갔다온다더니 끝내 오지 않았어요. 마지막엔 다른 친구가 술값이 모자라 시계를 풀어주고 갔지만...”

“그으래?”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가 된 열찬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얼마 안 남은 돈으로는 술값이 턱도 없이 모자랄 것이었다. 큰일 났다, 싶은 생각과 함께 겨우 참던 오줌이 방금이라도 터질 것 같으면서 뱃속까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군인아저씨, 그 인간은 다시 오지 않아요. 괜히 애태우며 기다리지 말고 계산하고 가세요.”

술집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의 말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철렁하며

“아니에요. 곧 올 겁니다. 우리는 그럴 사이가 아니지요. 내가 바로 그 사람과 같이 근무하는 내무반장이니까요.”

“아이구, 하사님 순진도 하시군요. 그 인간은 내무반장 아니라 중대장이나 사단장, 아니 제 애비라도 속일 사람이지요. 세상에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아니 멀쩡한 우리 장 상병을 두고 왜 그리 험담을 하세요?”

“멀쩡하다고, 하하하 상판대기는 그야말로 멀쩡하다 못해 훤하지. 아주 흉년에 개가 핥아먹은 죽사발처럼. 그러나 그러면 뭐 하노? 하는 짓이 개차반인데...”

“저, 아주머니 잠, 잠깐만!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화, 화장실은요?”

충격을 받아서 방금이라도 아래위로 똥오줌이 쌍 나팔로 터질 것 같아 허리춤을 잡고 일어서는데

“오빠, 이리 오세요.”

화장실로 안내하던 아가씨가

“오빤 참 큰일이네. 좌우간 그 얼굴만 멀쩡한 오빠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사건을 만든단 말이야. 순진한 친구들 데리고 와서...”

혀를 끌끌 찼다.

불편한 심기보다 더 꿀렁꿀렁 불만에 넘치는 뱃속이 더 급해 무슨 태풍이라도 몰아치듯 일을 보고 언양촌놈의 말로 시원하다 못 해 깨곰하다고 해야 할 측간을 돌아오는 얼굴은 여전히 우거지상이었다.

“좌우간 그 인간과 엮이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생긴 것은 허여멀쑥 기생오라비 같으면서도 말야...”

숙자라고 불리는 아까 그 아가씨와 이야기를 시작한 땅땅한 주모가

“자, 군인아저씨도 그렇게 죽을상을 하지 말고 이리 앉아 좀 들어봐요.”

이러고 시작된 이야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원래 장 상병의 아버지는 조선시대 역관인가 약관(열찬이 짐작으로는 의관)인지를 지낸 중인의 집안으로서 대대로 이곳에 터 잡고 살던 토박이였는데 해방이 되고 전쟁이 나면서 어찌 된 셈인지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왔음에도 그 좋은 학벌을 조금도 좋은데 쓰지 못 하고 오로지 술과 계집에 빠져 그 많은 조상의 재산을 다 날리고 마지막엔 중풍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었다.

생모마저 가출해버리고 골목시장 길바닥에 나 앉아 무, 배추를 다듬어 파는 채소장사로 전락한 할머니의 손에 자라나면서 대장간 집 아들은 나자말자 눈 깜빡이부터 배운다고 중학생이 되자말자 방과 후엔 이곳저곳 극장 앞을 돌아다니며 음화를 팔다 간혹 파출소에 잡혀가기도 하면서 못 된 친구들과 사귀더니 기어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 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조그만 술집이나 기웃거리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래 뵈도 이 마을 토박이 장 아무개 역관의 종손이야!”

괜한 트집을 잡고 술값을 떼먹거나 용돈을 타가는 제대로 된 깡패도 아닌 골목대장 노릇을 하다 십칠팔 세가 되어 키가 크고 애비를 닮은 인물도 훤해지자 어느 듯 종삼골목안의 아가씨들과 사귀고 어떤 때는 그 아가씨들의 잔돈푼을 얻어 쓰며 더부살이하는 기둥서방노릇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한참 흐른 후 한동안 안 보인다 싶었더니 군에 입대했다는 것이었고 휴가 중에 가끔씩 낯선 군인들을 데려와서 자기가 살듯이 술과 안주를 양껏 시키고 나중에 슬그머니 내빼기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 가서 만날 수 있느냐, 다시 만날 수 있느냐는 열찬이의 물음에 아마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고 귀대하기 전에는 만나기도 힘들 것이라고, 입대 전에 같이 지내던 전라도 어느 섬 출신의 맹한 아가씨와 얼마 전에 티격태격 싸우더니 그 아가씨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려 다시 나타나지는 않아 아마도 청량리나 용산 역전 같은데서 또 다른 아가씨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술값이 얼마냐고 물으니 무려 3,500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수중에 겨우 2천 몇 백 원뿐이라 열찬이는 수중의 돈을 몽땅 꺼내놓고 팔목에 찬 시티즌 시계도 풀어놓았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