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5)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⑫
대하소설 「신불산」(175)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⑫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7.01 09:53
  • 업데이트 2022.07.0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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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⑫

점심을 끝내고 설거지를 마치자 아이들을 마당으로 놀러 보낸 뒤 귀찬이누님은 구석에 밀어두었던 소쿠리를 당겨 낚시 바늘에 비닐 끈을 매달기 시작했다. 이쑤시개에 비닐테이프를 감거나 실에 구슬을 꿰는 것처럼 서울, 부산 할 것 없이 달동네의 아낙들이 벌이는 가정주부들의 부업거리중의 하나였다. 아이를 셋이나 기르면서 그 귀찮고 돈도 안 되는 일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만큼 누나의 사정이 곤궁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열찬아, 니 너거 자형사진 첨 보제? 얼굴에 나와 있듯 나이는 좀 들어도 성격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비록 이북사람이기는 해도 속에 먹물도 좀 들었고...”

그렇게 운을 뗀 누님은 여전히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 저간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열찬이가 이제 세상살이에 눈을 뜨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추석에 잠시 다니러 왔다가 마을의 허풍장이 김태엽에게 꼬여 아이를 배고 오빠들이 무서워 열찬이네 작은 방에서 몸을 풀고 오갈 데가 없던 중 마을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당차고 거침이 없는 순찬이누나의 담판으로 당시 구장의 누나이자 마을에서 표독하기로 유명한 김태엽의 홀어미에게 승낙을 받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간신히 시가로 들어갔다는 열찬이도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아닐까 다르랴 그날부터 그 표독한 시어머니는 뼈대도 없는 상놈의 집안에서 배우지도 못 하고 식모살이나 하던 년이 명색처녀로 제 몸 하나도 간수 못 하고 덜렁 아이를 배는 맹한 년이 어디 있느냐고 아예 드러내놓고 구박을 하기 시작했단다. 부끄럽고 두려워 마음이 상한 누님이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젖이 잘 안 나와 아이와 어미가 시름시름 앓아도 시어머니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계속 욕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악담을 해대면서도 민망해서 말도 붙이지 못 하는 자기아들 태엽이에게는 단 한 마디도 욕을 하거나 나무라는 법이 없이

“어느 사내가 공으로 치마끈 풀어주는 계집을 마다하랴?”

은근히 두둔했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애비 김태엽이도 점점 철면피가 되어 귀찬씨에게 미안하다거나 수고한다는 기색도 없이 모자가 한 편이 되어 딴청을 부리며 별로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귀찬씨가 모진 감기에 젖몸살까지 걸려 며칠이나 밥을 제대로 못 먹이고 아이의 젖도 못 주는 지경이 되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퍼지자 상남댁, 명촌댁 두 동서가 필히 아이를 낳고 조리를 못 해서 피가 맑지 못 해서 그러리라 생각하고 읍내 장에서 마른 홍합인 열합과 미역을 사들고 찾아갔을 땐 귀찬씨는 이미 말을 잘 못 하고 덜덜 떨기만 할 정도였고 아이는 그날 오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연지곤지 찍고 말 타고 가마타고 시집장가 간 사이도 아닌데 이미 아이까지 죽고 나니 그 따위 무책임한 바람둥이사내나 표독한 시어머니와 더 살 이유도 없어진지라

“가자!”

하염없이 죽은 아이를 안고 울던 누님은 숙모 명촌댁의 한 마디에 이상하게도 죽기 한 나절 전부터 자꾸만 무서워 보이던 아이의 시체를 던져버리고 아랫각단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없이 무시당한 험한 꼴을 보았으면 네 명이나 되는 오라비들이 대밭에 불이 나듯 요란하고 사생결단 일어나련만 어찌 된 셈인지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큰 오라비 동찬씨는 읍내에서 청소부로 일하기는 했지만 성격이 너무 천치 같아 도무지 성을 낼 줄 몰랐고 둘째 정찬씨는 한집에 살면서도 그저 일 안 하고 하루하루 편안히 지내며 자기일신에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는 편이라 역시 오불관언이었다.

당시 언양의 방앗간에 다니던 셋째 상찬씨는 그 중 부지런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며 눈치나 세상살이에 밝았지만 그 역시 친구인 구장의 누나나 그 생질에게 모진 말을 할 배짱이 부족했다. 그래도 바로 손위오빠인 종찬씨가 머슴살이를 하던 삼동에서 새파란 낫 한 자루를 갈아들고 어릴 때 같이 자란 친구이긴 하지만 오늘 못 된 인간 하나 죽여 버린다고 마을에 나타났을 때 소문을 들은 김태엽이는 뒷길로 도망쳐 부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말았다고 했다.

그 후 간신히 몸을 추스른 귀찬씨가 다시 서울 가회동의 전에 식모 살던 집으로 찾아가니 이미 새 식모가 들어왔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했다. 집안 식구도 식구지만 당시 바깥어른의 청부업이 한창 호황이라 날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도 많고 그 많은 손들에게 일일이 밥을 먹여 보내야 하던 시절이라 손끝이 야무치고 눈치가 빠른 자신이 쓰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했다.

ⓒ서상균

그렇게 얼마간 세월이 흐르고 누나의 몸에 다시 살이 오르고 얼굴에 자르르 기름이 흐르기 시작할 때쯤 웬 노총각 하나가 누님의 곁을 빙빙 돌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바로 조형록 씨였다.

함경도 원산에서 제법 알아주는 유복한 집안으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해방 후에 부모가 지주계급으로 몰려 고통을 당하자 여기저기 피해 다니다 단신 월남해 한참 후에 만난 여동생 하나와 살다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혼자 사는 마흔이 넘은 홀아비였다.

특별한 기술이 있기보다는 공사비를 받으러 관공서나 거래처에 찾아다니거나 자질구레한 말썽으로 회사에 찾아오는 난감한 손님을 만나 처리하고 사장이 미처 참석하지 못 하는 애경사에도 참석하고 긴급할 때는 공사현장에서 숙식을 하며 경비 겸 관리를 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또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글을 아는 지라 여기저기 입찰을 다니며 공사를 떼어오고 구청이나 세무서의 실무자들과 만나 술밥을 먹으며 절충도 하며 아직 본격적인 회사 체제가 잘 발전되지 않았던 시대에 전무도 상무도 아니고 비서도 경비도 경리도 아닌 묘한 보직이었지만 주종관계를 떠나 사실상 한 가족과 다름없이 지내던 사람이었다. 평소 술은 좀 마시는 편이었지만 대체로 과묵하고 성실해 사장 댁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그 형록씨가 귀찬씨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들은 사장은 단숨에 둘의 혼인을 밀어붙였다. 둘을 붙여놓으면 평생을 한 식구처럼 지내며 온갖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이가 거의 부모뻘이라 망설이는 귀찬씨를 설득해 마침내 마흔 넘은 노총각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혼인서약을 하기에 이르렀고 한 사내에게 버림받아 아이까지 죽어버린 처녀 아닌 처녀 귀찬씨도 마침내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었다.

또 신혼 초엔 그 옛날 조선의 정승판서나 살았다던 그 넓은 저택의 방 한 칸을 신혼집으로 내어주고 숙식을 같이 하다 아이가 생겨 몸이 불편하자 좀 쉬기도 할 겸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주며 부부가 같이 드나들며 숙식을 하고 출산 후에도 아이를 업고 출입하게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랄까, 당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새마을운동이 정착되자 박정희정권은 사회질서를 확립한다며 이승만정권의 적폐를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부패한 건설업자들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조형록씨가 모시는 사장이 바로 거기에 해당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평화롭던 집안에 그늘이 덮치면서 제일 먼저 물고(物故)를 당한 사람이 바로 입찰을 보고 공무원들을 접대하고 세금문제를 취급하던 형록씨였다. 이미 딸이 셋이나 태어나 그 막내가 돌이 다가오던 어느 날 회사사무실에서 형사들에게 갑자기 연행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는 귀찬씨에게 주인마님은 바깥어른이 호형호제(呼兄呼弟) 잘 아는 판검사나 국회의원이 한둘이 아닌 만큼 금방 빼줄 것이라고 했고 귀찬씨도 그리 믿었건만 형록씨가 풀려나기는커녕 이번에는 바깥주인마저 신문에 대문짝만 한 기사가 나면서 잡혀가고 말았다. 이후 온 집안은 폭풍전야의 불안에 휩싸였고 이미 전 재산을 차압당한 입장이라 수일 내로 집달리가 올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그 즈음 주인아낙이 자신의 다이아반지 하나를 팔아 귀찬씨에게 주며 어디 변두리에 가서 조그만 셋방이라도 하나 구해 형록씨가 나오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자신도 언제 가재도구를 집행당하고 길거리로 나앉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다시 좋은 날이 돌아올 때까지 잘 참고 기다리다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불광동에 들어온 지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형록씨는 석방되지 않고 아이 셋을 낚시 바늘을 꿰어 먹여 살리는 처지로서는 면회 한 번 가기도 쉽지 않다며 울먹였다.

 

“그래 금찬이는 요새 우째 사노?”

“자형이 제대해서 그럭저럭 산다. 아아가 벌써 너이다. 그것도 머시마만 말이다. 그저 막걸리나 미시고 놀기 좋아하는 자형은 그래도 아아 만드는 재주는 좋은 지 휴가 올 때마다 하나씩 안 만들었나?”

“아아가 너이면 고생쪼마이겠구나. 나는 서이도 키우기 힘든데 농사짓고 시어른들 모시고 거기 보통 고생이 아이겠구나. 그래도 우리 금찬이는 다구져서 잘 할 끼구만.”

“그렇지 뭐. 그저 자형이 술이나 좀 덜 마시고 농사나 부지런히 지았으면 좋겠다.”

“그라고 막내 덕찬이는?”

“그 누부는 잘 산다. 막내 자형 고 서방이 얼마나 부지런코 야무친지 자기 앞으로 논 서마지기 밭 두 마지기와 작은 초가집을 받았는데 결혼한 지 5년 만에 벌써 논밭을 새로 샀다 안 커나? 내 올 때 보니 배가 부르던데 곧 알라가 태어나겠지.”

“그렇구나. 그럭저럭 다들 살아가는데 지금은 우리 집이 제일 힘 드는 모양이다. 어서 너거 자형이 나와야 될 낀데...”

잠시 낚시 바늘을 내려놓는 귀찬씨의 눈가에 또 물기가 반짝였다.

 

결국 여기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본가 7남매에 큰 집 6남매, 유복자 아버지는 노모까지 모시고 글도 모르고 셈도 빠르지 않고 생각조차 깊지 않은 형수 상남댁과 아내 명촌댁에다 무려 13남매를 거느리고 두 집의 농사를 짓고 두 집의 땔나무를 하고 장날마다 시장에서 시골아낙의 닭을 뺏는 닭 장사를 하고 닭싸움을 붙이다 못해 조카 상찬이와 숙질간에 같은 집에 머슴살이까지 하면서 그렇게 살아오고 길러냈지만 왜 그 열세 명 자식들 중에 제대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없을까, 잘 사는 것은 둘째 치고 대구에 식모살이를 가서 세상물정을 알만 하자 제 짝을 찾아 연락을 끊고 사는 사촌 큰누나에다 평생 성치 않은 몸으로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 하는 동찬이큰형님에 또 누구는 게으르고 용맹이 없고 누구는 목매기송아지처럼 여기저기 펄떡거리고 돌아만 다니기만 했다. 그 중에 딱 한 사람, 작은 아버지를 따라 꼴머슴을 살기도 하고 화물차조수로 따라다니기도 하며 착실히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지금은 커다란 방앗간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셋째 상찬이형님이나 제대로 풀렸을 뿐 공부 잘 한다던 일찬이형님마저 하루 종일 방안에서 책장이나 넘기면서 신경질을 팍팍 부리는 판이라 그저 속 편하게 하루 세끼를 먹고살 만 한 집도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야야, 우리 종방 간은 와 다 사는 기 이럴꼬? 내가 알기로 돌아가신 우리 키 큰 할매도 어질고 우리 아부지, 작은 아부지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카던데, 그다 우리 엄마, 작은 엄마는 또 얼마나 진국이고?”

“누부야, 너무 낙심하지 마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살다보면 조금씩들 다 형편이 피고 누부야도 조서방 자영만 나오면 무슨 걱정이 있겠노?”

“글키 말이다. 인자 불 끄고 자자. 니도 집 찾는다고 힘들고 아아들 하고 놀아 준다꼬 되제?”

“아이다. 내사 머...”

 

열찬이 라디오볼륨을 최대한 줄여 듣던 고교야구중계방송을 껐다. 귀찬씨가 불을 끄자 아랫목에서 잠든 세 아이의 새끈새끈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이나 지나도 여전히 잠이 못 들어 뒤척이던 귀찬씨가 어느 순간 훌쩍 코를 삼키며 후우 한숨소리를 냈다. 어둠속이지만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을 눈물이 열찬이의 눈에 선해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오래 묵새기며 쉬어갈 데는 못 된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달랑 하룻밤만 자고가면 누님이 섭섭할까봐 열찬이는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아침 상머리에서 오늘은 삼촌이 뒷산에 데려가 꽃도 꺾어주고 귀뚜라미랑 여치도 잡아준다는 말에 아이 셋이 금방 환호성을 질렀다.

아침을 먹자말자 열찬이는 아이 셋을 데리고 뒷산을 향했다. 아이 셋이 서로 손을 잡으려는 걸 막내만 업었다가 걸리기를 반복 하고 첫째, 둘째는 앞장 서 걷게 하다 구멍가게에서 없는 돈을 털어 라면땅 세 봉지를 사서 하나씩 안기나 ‘삼촌 최고!’라고 기뻐하는데 막내는 혀짜래기소리로 짬쫀, 짬쫀을 연발했다.

등산로 옆의 낮은 언덕에 올라 큰애에게 막내를 보게 하고 풀 섶을 뒤져 금방 베짱이와 송장메뚜기를 잡아 보이니 모두들 신기해하면서도 무섭다고 만지지 못 해서 날려 보냈다. 이어 하얀 구절초와 자줏빛 달개비 꽃, 빨간 까치밥이 다닥다닥한 덤불찔레줄기를 꺾어 하나씩 나눠주니 아이들은 또 ‘삼촌 최고!’를 연발했다. 이어 누구라 할 것 없이 산토끼노래를 시작하는데 막내도 어느 새 ‘찝또끼, 찝도끼’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이어 큰놈 효숙이가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를 꺼내 셋이 합창을 하더니 둘째 효경이가 또 다른 노래 <작은 별>를 시작하는데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큰놈 둘은 제법 유창했고 막내는 시종 ‘반딱 반딱’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