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⑮
대하소설 「신불산」(17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⑮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7.04 07:00
  • 업데이트 2022.07.05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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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⑮

겨우 용기를 내어 한마디 하자

“이 놈,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넘은 햇병아리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나 초혼이 우리 한국인의 애잔한 정서를 잘 나타낸다고 하나 그래 가뜩이나 가난한 민족에게 괜히 한층 서글픈 마음만 더 하게 할 뿐이지. 그래 그 시에서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리고 한 수 더 떠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시작되는 <초혼>이란 시처럼 죽은 사람의 이름이나 부르며 울부짖으면 그 사람이 돌아올 것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어떠한 예술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문학 특히 시나 소설은 공연히 사람의 서글픈 마음을 일으키고 엉뚱한 공상을 하거나 망상에 빠지게 할 뿐 인생의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란 말이야.

또 대영제국이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식민지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너도 알겠지만 그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4대 비극이라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가 비록 인간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왕의 자리나 부(富) 또는 미인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과 질투와 배신을 다룬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그에 비해 뉴턴의 만유인력, 와트의 증기기관차,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얼마나 우리 인류를 편리하고 안락하게 변화시켰는가? 그게 바로 인류의 행복을 위한 참다운 인류사랑, 참다운 사내의 길, 남아의 길인 거지. 생각해봐. 그 발명가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종이를 발명하고 활자를 발명하고 나침반을 발명하고 또 통조림과 예방접종백신과 전기와 라디오와 사진기와 텔레비전을 발명한 사람들과 그들의 공로를 말이야.”

“외삼촌, 그렇지만 한 개인이나 인류 전체가 꼭 실생활에 필요한 양식과 기술, 그러니까 과학과 공학만 가지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 농부가 농악을 즐기듯이 가만히 있거나 일을 하면서도 저절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비롯하여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예술도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또 남아 다 하는 결혼도 마다하고 스님이 되고 신부가 되어 인간세상 자체가 너무 혼탁하거나 개인지향이 아닌 사회지향, 미래지향이 되도록 사는 그런 성직자도 필요하고 말입니다.”

“어어, 이 녀석 좀 보아, 나름 국문과라고 소설책이나 읽고 말솜씨가 여간이 아니네. 하긴 그렇기도 하지. 그렇다고 나도 문학을 영 싫어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 이래봬도 나도 한때 러시아문학, 특히 러시아소설에 심취한 적이 있었지.”

뜻밖에도 상진씨가 한 발짝 물러서며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이 문학에 빠졌던 젊은 날이라도 상기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소월의 시나 셰익스피어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비롯해 피카소의 그림과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겠지. 그러나 예술이 단순히 예술 그 자체로서 그치는 예술지상주의 또는 표현주의, 찰나주의라면 너무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자칫 게으르고 방만한 퇴폐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러므로 예술이란 예술 그 자체의 섬세하고 심오한 인간의 심리파악이나 감성자극으로 인간의 사고나 행동을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지. 말하자면...”

 

외삼촌이 잠깐 쉬어가는 동안 공학도라는 선입관보다는 생각보다 훨씬 깊이 예술의 각 분야, 아니 전 방위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놀란 일찬이가 뚫어질듯 상진씨를 바라보는데

“우리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대동아전쟁의 전운이 한창 감돌던 어둡고 불안한 시절에 동경제대, 와세다대학의 학생을 비롯한 젊은 지식인들은 한창 러시아의 소설에 빠져있었는데 그것도 지금 세대들이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이나> 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따위가 아니었어. 물론 <부활>의 카추사처럼 인류 모두에게 가엽고 안타까운 여인이란 느낌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톨스토이를 셰익스피어를 뛰어넘는 대문호라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너무 귀족적이고 신앙적인 그의 소설은 가진 자, 배운 자가 가난한 농민이나 하인계급을 다분히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향도 있어 자칫 너무 교조적이거나 위선적인 느낌도 피할 수가 없지.

반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특히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나오는 어둡고 우울하며 칙칙한 하층인간의 세계, 마치 하수도위에 피어나는 독버섯 같은 욕망과 몰락과 절망을 나타내는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문학성에 있어서는 한수 위라는 이야기도 있어. 물론 톨스토이도 <안나카레이나>처럼 당시로서는 통념을 뛰어넘는 대담한 자유연애, 즉 간통을 표현한 인간적인 작품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아니, 외삼촌, 제가 가만히 들어보니 외삼촌은 제가 겪어본 여느 국어교사나 교수보다도 문학적 소양 즉 소설을 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국문가나 문학도를 백안시하는지 모르겠군요?”

열찬이의 질문에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한참이나 생각하던 상진씨는

“혹시 내 이야기가 당장은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좌우간 잘 듣고 기억하면 언젠가 이해될 날이 올 것이야. 당시에 어떤 소설을 읽었든 우리가 캠퍼스에서 가장 많이 대화에 올리는 소설은 바로 고골리의 소설 <어머니>와 <만토>였지.”

“아니, <어머니>는 읽어봤어도 <만토>는 처음 듣는 데요?”

“아, 그렇구나. 일본말로 만토는 왜 요즘 사람들이 망토라고 하는 거 오바같은 거, 그러니까 한국어로는 <외투>로 번역이 되었겠구나.”

“아아, 저도 읽어본 것 같아요. 가난한 월급쟁이가 어렵게 돈을 모아 비싼 외투를 사 입고 기뻐하다 그 고가외투를 탐내는 강도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그렇지, 그게 바로 물질문명, 즉 부의 축적과 타락을 경계하는 사회주의적 성찰이지. 그리고 <어머니>는 직접 볼세비키혁명의 도화선이 될 정도로 잠자는 노동자, 농민과 행동이 결여된 파리한 지성인들 깨워 일거에 혁명의 광장으로 이끌었지.”

“아니, 그럼 외삼촌은 공산주의자가 아닌가요? 지금의 이 폭압적 군사정권, 암울한 유신정국에서 함부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허허, 이 녀석이 천생 군인, 애국자로구먼. 그렇지만 사람의 머리에 든 사상, 즉 이념적 가치를 어떻게 정부가 간섭을 하겠는가? 하여간 그 시대의 지식인이란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지. 그렇지 않고서는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 했지. 동반문학, 동반작가라는 사회성이 높은 작품과 일련의 작가들이 있었지. 물론 <메밀꽃 필 무렵>처럼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서정적 작가인 이효석이 설마 다소 이념적이고 사회개혁적인 동반작가라고 생각하기에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가장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작가 이효석마저도 현실의 세계, 사회적 불평등의 인식과 그 불평등의 해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그 어려움을 풀어가는 것이 바로 행동하는 지성이며 세상을 보다 잘 살고 편리하게 만들려는 과학과 기술과 공업이 이루어야할 과제인 것이지.”

ⓒ서상균

그럭저럭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벌써 세 병째 진로 병이 바닥이 난 테이블을 치우고 걸레질을 하면서

“휴가 온 아이한테 무슨 이야기가 그리 심각하나요? 열찬이 피로하겠어요.”

외숙모가 끼어들자

“그래, 이제 들어가 자거라. 내 이야기가 너무 길었구나. 결론만 다시 말하면 남자는 우선 과학과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이고 문학이나 예술보다는 시대가 당면한 사회문제에 무심하지 않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또 니가 아까 나를 걱정했지만 이제 나는 늙어 그런 생각은 해보지만 바로 거리나 광장으로 뛰어나갈 용기는 없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들어가 쉬게.”

그렇게 외삼촌과 첫 번째의 대화가 끝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하고 쾌적한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외사촌 용백이와 한방이었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핏줄이 통했는지> 과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밤새 외삼촌 내외간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다들 출근하고 등교한 뒤 두 사람만 남자 외숙모가 봉투를 하나 주면서 서울구경도 하고 야구장도 가보라고 했다. 무려 5천원. 거금이었다. 그 돈으로 경복궁과 남산도 가고 신세계백화점도 구경하고 봉황대기 고교야구를 결승전까지 다 보았다. 평생을 두고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간간이 용백이의 공부를 도와주었지만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그러니까 외삼촌이 실망을 할 법도 했다. 반면 다리 저는 막내 수자는 꽤 머리가 좋은 듯해 열찬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잡비도 거의 떨어져 갈 때쯤 귀대 날이 다가왔다. 외사촌들과도 많이 친해지고 숙질간의 대화도 두 차례나 무난히 넘겼다. 입대하는 날 외숙모가 또 봉투를 주었는데 3천원, 꽤 큰돈이었다. 춘천까지 버스비를 하고 소대원에게 줄 선물로 술과 담배와 안주 <맛동산>을 사고도 남아 사창고개의 아가씨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