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 - 시련의 고참하사①
대하소설 「신불산」(17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 - 시련의 고참하사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7.05 07:00
  • 업데이트 2022.07.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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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 - 시련의 고참하사①

다시 부대에 들어온 열찬이는 또다시 갑갑하고 맹맹한 군대생활, 별것도 아니면서 엄청나게 성가신 내무반장의 역할에 빠져들었다.

이미 전쟁이 끝난 지가 20년이 지났지만 계급관념이 엄청 심해 구타나 기합이 예사인 데다 설령 부대 안에서 맞아죽더라도 무엇하나 항의마저도 못 해보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논산훈련소로 상징되는 입대, 아직도 군에만 가면 굶어죽거나 맞아죽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돈푼이나 있는 집 아들들이 논과 소를 팔고 빽을 동원해 입대를 피하거나 기피자로 숨어버리는 악습이 계속되었다.

이를 간파한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돈산이라고 불리던 복마전 논산훈련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돌입, 가장 청렴하고 강직한 정봉욱소장을 훈련소장에 임명하고 악습에 젖은 장교와 조교들을 사정없이 군법에 회부하거나 영창에 보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 훈련병들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훈련소의 막사에서 취사장과 화장실, 목욕탕 등을 현대식으로 짓고 쌀은 물론 고기와 양념 심지어 라면스프까지 절반 이상을 떼어먹는다는 급식에 대한 감찰을 확인, 매끼 정량급식과 일식삼찬, 즉 쌀을 빼돌리자 않고 넉넉히 밥을 지어 국과 김치와 생선이나 나물이 추가되는 세 가지 반찬을 곁들이도록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그러나 문득 월남전이 터지고 이역만리에 파병되어 적잖은 전사자도 생기면서 대부분의 사병들이 꽤 많은 목돈을 벌어 금의환향하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판이라 다시 군대의 분위기는 붕붕 뜨면서도 뭔가 산만하고 무질서했고 열찬이가 근무하는 특수부대 군견훈련소는 더욱 심했다.

기껏해야 개새끼에 불과한 세퍼드를 이름만으로도 부족해 견번(犬番)이라고 부르는 군번까지 붙여주고 하루 두 끼 밥에 더운 날은 찬물에 샤워까지 시키면서 수색과 추적기술을 가르쳐 일 년에 한 두 번 있는 출동에 대비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단순한 개 당번, 잘 봐주면 개사육자인 군견병을 무슨 대단한 생명의 위협이라도 받는 것처럼 과장하여 철책선 안의 수색대원에게 해당되는 생명수당까지 지급하고 파견생활과 외출외박이 잦으니 자연히 군기가 문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열찬이가 배치되기 몇 달 전에는 무단히 용돈상납을 요구하는 병장을 상등병이 총을 난사해서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배꼽 옆으로 총알이 관통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육사 출신으로 매우 엄격한 부대장이 배치되어 온 판이었다.

그렇다고 평생 그런 식의 부조리와 눈감고 아옹에 익숙한 늙은 하사관, 주임하사와 인사계를 비롯한 소위 말뚝을 박은 장기복무자들의 행태가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절구통처럼 뚱뚱한 주임하사는 매일 퇴근 때마다 취사장에 들려 쌀과 쇠고기나 닭고기, 심지어 고춧가루나 쇼팅이라 불리는 식용유까지 도시락에 담아가는 판이라 별명이 <부식수령>이 되었고 점잖은 척 말수가 적은 인사계도 위로휴가, 정기휴가는 물론 특박이나 외박을 나가는 경우에라도 소주 됫병이나 담배보루가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휴가증, 외출증의 그 쯩(證)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소대의 내무반장인 이열찬 하사는 부대원들이 좀체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연구대상이었다. 먼저 하사는 하사지만 하사관학교를 나온 만큼 행동에 절도가 있거나 위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말이 내무반장이지 어떤 소대원도 윽박지르거나 기합을 주거나 때리는 일이 일체 없었는데 이는 그 자신이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는 하사관학교, 육군종합행정학교의 비인격적이고 악랄한 기합과 구타에 질려 하사관에 임용하던 그날 자신은 제대하기까지 절대로 누구를 구타하거나 모진 기합을 넣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보통의 내무반장이 하는 당번병을 시켜 늘 군화를 반들반들하게 닦거나 군복을 주름이 빳빳하게 다려서 입는 일도 없었고 식당에서도 당번을 시켜 담 너머 민가에서 파는 사제 김치를 사오게 하는 일도 없었다. 상병이나 병장쯤만 되어도 짬밥은 이제 질렸다며 사제김치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물론 괜히 페치카당번에게 라면을 끓여오게 하거나 야외훈련 때 남의 집 고추를 따다 국에 넣는 까탈을 부렸지만 이열찬하사는 찬이 많든 적든, 맛이 있든 없든 단지 멀건 뭇국 한 그릇 뿐이더라도 그냥 주면 주는 대로 잘도 먹는 것이었다.

그러자 배식을 하는 취사반장 병장은 참 식사량이 많으시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저들끼리 이열찬 하사는 명색 대학 출신 하사관인데 먹고 입는 것은 농촌 출신 이등병이나 다름없다면서 웃어댔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자 그런 열찬이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는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슬쩍슬쩍 고추장을 갖다 준다거나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나오는 날은 일부러 왕건이라고 부르는 건더기를 듬뿍 담아주기도 했다.

ⓒ서상균

귀대하여 만난 장완준 상병은 ‘내무반장님이 골아 떨어졌을 때 마침 친구가 골목에 지나가 둘이 친구네 단골집에서 한 잔 하고 오니 내무반장님이 안 보여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시치미를 뗐다. 물론 술값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으면서.

열찬이는 ‘그랬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장 상병이랑 하월곡동 문창성 병장을 찾아가려고 했지. 난 부산 촌놈이라 서울사람들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야,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데 딴은 마음에 찔리는지 잠시 눈이 번쩍하더니 다시는 입을 떼지 않았다.

일개 상병이 이 모양이니 소대의 고참병장들이 내무반장인 열찬이를 겁낼 이유가 없었다. 점호나 행군 때 일을 시키거나 구령을 붙이면 ‘예, 예’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마지못해 움직였지만 성의도 없고 긴장감도 없었다. 계급은 낮았지만 열찬이보다 나이도 한 두 살 많고 쨤밥수도 많아 열찬이도 건드리지 않았고 그네들도 최소한이 복종으로 건성건성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해서 2소대 전체의 군기가 빠지거나 무질서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소대원이 착하고 순하던 시절이라 이미 전역특명을 받은 최 고참병들이 그런 열찬이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 순해빠진 내무반장을 두고 떠나기가 찝찝해 자기들이 제대를 하더라도 잘 모시라고 단단히 당부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병사들이 그런 순한 내무반장을 존경하고 잘 따르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열찬이가 단순히 기합이나 구타를 않는 것을 넘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저녁식사 후 자유 시간에 고향의 부모님께 편지 쓰는 법이나 간단한 생활한자를 가르쳐주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고맙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부대에는 한 동안 옛날의 부모자식간의 편지서두인

-부주전상서(父主前上書). 귀체 일향후 만강하시오며-
-이제 곧 엄동설한이오니 부디 옥체만강하시옵기를-
-가아(家兒) 보아라. 몸성히 잘 지내는가? 집안은 다 무탈하고 누렁이가 송아지를 낳았다.-
-가돈(家豚) 보아라. 시절이 풍년이라 동지 전에 내 누이를 여의려하니 휴가를 내어 오도록 하고 힘들다면 내가 관보를 칠 테니 그리 알거라.-

양반행세의 효자와 엄부(嚴父)행세를 하며 다소 가식적인 문구로 시작하던 한 세대전의 관행을 알려주니 너무나 신기했던지 서로 간에 가아, 가돈, 이 돼지새끼야, 를 부르며 놀리며 웃기도 했고 편지의 봉투에도 차마 아버지의 이름을 제 손으로 쓰지 못 하고

-부산 영도구 봉래동 1가 3번지 임정택 본가입납-

이렇게 에둘러 쓰기 시작했다. 또 행정반에서 이런 내용들을 게시판에도 써 붙이니 재미사마 봉투에는 ‘본가입납’ 서두에는 ‘부주전상서’로 오가는 편지도 생겼다. 그들의 부모들도 목숨이 오고가던 6.25전쟁시절 자신들의 애절하고 절박한 군사편지와 그 문틀이 생각나면서 어느 새 훌쩍 커버린 자식들을 발견한 것 같으면서 대견하기가 그지없었던 모양으로 심지어 부대원들이랑 외출을 나와서 고기라도 실컷 먹으라며 송금을 해주는 부모님도 다 있다고 했다.

이어 교양 있는 젊은이로서 어느 정도는 알아야 될 문학적 소양을 가르친다며 세계문학사의 주요소설의 줄거리와 주제를 설명한다는 것이 어릴 적 할머니의 품에서 듣던 것처럼 내무반장 열찬이가 이야기를 하고 내무반원들이 손자들처럼 비잉 둘러앉아 듣는 모양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교출신이나 반듯한 고등학교를 나온 어느 정도 문학적 소양을 갖춘 병사도 간혹 있었지만 심심산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 공장에 다니거나 자전거방, 이발소에서 일하다 온 국졸, 혹은 중학교중퇴자들도 많아 설명의 수준을 가장 쉽고 단순하게 해야만 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문학이란 말자체도 이해하지 못 하던 국졸자들도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아주 비장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자못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어 톨스토이의 <부활>을 이야기하자 병사들은 막연히 알던 <카츄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를 들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에이 동키호테 같은 놈아!’라고 놀리면서 좋아했다. 그들도 동키호테 같은 사람이 바로 군에서 말하는 고문관과 같다는 것을 귀신같이 꿰뚫었던 것이었다. 이어 나치독일포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삶을 마감한 감수성 강한 유태인 소녀 <안네의 일기>를 이야기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병사들이 서로가 울보라고 놀리기도 했다.

 

다음 한국문학은 주로 김소월과 박목월의 시를 중심으로 <진달래꽃>, <초혼>, <나그네>등을 이미 외우고 있는 병사들의 즉석 낭송을 겸해 이어갔는데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며 울진의 대학생출신 배대복병장이 암송하자 농사짓던 한 병사가

“내무반장님, 저는 술이라면 밀밭에도 못 가는데요!”

라고 소리쳐 와아 웃기도 했는데 또 대구에서 자전거방을 했다는 병사가

자갈마당 건너서
술집골목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골목은 외통수
술집, 색시 집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고 둘러대자 병사들은 <나그네>의 박목월시인은 시인이 아니고 초뺑인갑다, 하기야 경주에는 쪽샘이라는 기생이 있는 안방술집도 있지만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처럼 금오산기슭에서 어디 노래만 불렀겠냐, 경상도 촌놈들은 노래를 하기 전에 반드시 술이 들어가야 된다면서 왁자지껄 떠들기도 했다.

이어 다음 주에는 엔간하면 모두 외출을 나가서 내무반장 모시고 춘천 사창고개에서 술도 마시고 똥치집도 가자고 낄낄거리고 어떤 병사들은 굳이 춘천시내까지 나갈 것도 없이 술은 삼거리에 있는 구멍가게와 식당을 겸한 함흥상회에서 마시면서 이제 한창 물이 오르는 그 집 막내딸의 손이나 엉덩이를 슬쩍슬쩍 더듬자고 하기도 했다. 이어 그 아이는 춘천헌병대의 어떤 중위가 찍은 애라 잘못 손대면 영창가기 십상이나 술이 얼큰히 취하면 함흥상회 앞 벌판의 외딴초가집 신도하숙에 가서 숙자, 영자 둘 중에서 골라잡기만 하면 된다고 또 웃어댔다.

 

이렇게 그럭저럭 시간을 보낸 열찬이도 이듬해는 당당한 파견대장이 되어 군견 두 마리에 병사 둘을 거느리고 백골부대로 유명한 철원의 3사단 민통선을 지나 철책 선 바로 앞에서 텐트를 쳤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