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0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⑧
대하소설 「신불산」(20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⑧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03 07:00
  • 업데이트 2022.08.04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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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⑧

그런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 가을날 등말리언덕에 뜻밖의 손님이 나타났다. 삼남면 들내, 그러니까 가천리 강당마을의 이장이 본 마을 명촌이장을 앞세우고 조동댁을 찾아온 것이었다.

전쟁 내내 이웃 간에 거의 출입이 없었지만 일단은 귀한 손이라

“끝필아, 뒤양깐 술독에서 우선 웃물을 한 주전자 뜨고 나서 걸러오너라!”

조동댁이 신이 났다. 구장이 낯선 영감을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아마도 끝필이의 중매가 들어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빙긋이 웃는 조동박손도 모처럼 향기로운 웃물(淸酒)에다 막걸리를 넉넉히 마실 생각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술상을 내면서도 눈치 빠른 조동댁은 점점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구장이나 손님이 끝필이가 아닌 또생씨를 자꾸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아직도 정신이 흩어져 온전찮은 모습이 이상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혼기에 찬 끝필이에게는 도통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수인사를 끝내었건만 조동댁이 술상을 들고 갈 무렵에 조동백손과 가천구장은 다시 정중히 맞절을 하며

“아, 그렇다면 아무개의 장군의 몇 대 손이시구나!”

“아, 그렇다면 녹두장군 나올 시절 언양 현감과 아전들의 부정을 순무사에게 진정하다 오히려 옥살이를 하고 천석꾼 재산이 다 흩어졌다는 그 유명한 의흥백씨네로군요?”

주객 간에 서로가 상대방을 추어주면서 은근히 자신들의 뼈대를 자랑하느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러다가 금방이라도 벽장속의 먼지 묻은 족보라도 꺼내 와서 상에다 받쳐놓고 남의 조상께 인사를 드린다며 세삼 세수를 하고 절이라도 할 태세였다.

그렇게 서로가 한참이나 상대를 추어주기를 기다리다 짜증이 난 명촌이장이

“아, 그건 그렇고 오늘 삼동, 삼남일대에서 제일 들이 넓고 물이 좋은 부촌 들내의 가천이장께서 왜 오신고 하니-”

서둘러 본론을 끄집어내자 멈칫해진 주객이 자세를 바로잡는데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조동백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짙어져 이리저리 마당귀를 돌아보며 또생이를 쳐다보다 또 조동댁을 쳐다보다

“야, 끝필아, 니 에미 여기 좀 오라캐라!”

혼자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조동댁이 옷매무시를 추스르며 조신하게 다가와 앉더니 역시 금방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해졌다. 이야기는 누군가 또생씨를 데릴사위로 달라는 혼담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끔 자다 가위에 눌리거나 혼자 산과 들을 쏘다니다 온몸이 가시에 긁히고 얼굴에 거미줄을 산발하듯 뒤집어쓰고 들어와 혼자 하늘을 쳐다보고 히죽거리는 또생씨를 말이었다. 도무지 무슨 의욕도 없고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으며 더더욱 농사일이나 가사 일엔 손끝하나 얄량하지 않으려는 그 실상을 깊이는 모르더라도 하다못해 지나가는 처녀들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저 아이를 사위로 데려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란 말인가?

방문자 강당이장의 마을은 신불산 아래 넓디넓게 펼쳐진 들내뜰 즉 가천리의 북쪽 꼬장산 아래 큰 가천, 들내이고 그 앞 삼남면 사무소 가는 길의 야트막한 야산자락에 묘하게 생긴 바위구멍이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네들이 공깃돌을 굴리며 비는 공알바우(孔岩)바위가 있는 마을이 소가천 공암부락이고 길 건너 넓디넓은 신안리 새뜰을 마주하고 펑퍼짐한 벌판을 드넓게 펼치다 신불산의 가장 넓은 골 금강골 금강폭포에서 흘러내린 장자꼴 못을 지나 옛날 향교가 있었다는 부산 가는 국도에 붙은 마을이었다.

또 그 뒤로는 나는 새도 울고 간다는 넓고 거친 100만평의 허허벌판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로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과 오갈 데가 없는 원호가족이나 귀환동포들을 그 곳에 정착해 살게 하고 60여 호의 정착민에게 각자 몇 천 평의 땅을 나누어주고 알아서 개간해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며 살게 한 한 주축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좀체 보지 못한 사방이 바둑판처럼 반듯하고 울타리에 향나무나 편백나무가 심어진 활동사진에서나 보는 그런 난데없는 전원도시 하나가 들어선 그 주축마을에 입주한 나이든 한 귀환동포가 또생이를 데릴사위로 점찍은 것이었다.

 

강당이장의 말로 이미 환갑을 지난 함경도 출신의 그 귀환동포는 어릴 때 원산의 가난한 농가의 수많은 형제자매 중에서 어렵게 자라다 단신 도일(度日)해 낯선 땅에서 온갖 괄시와 수모를 견디며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했다.

천성이 성실하고 정직한 바람에 자기가 몸담았던 어느 여관주인의 무남독녀, 일본여자와 결혼해 장인의 재산을 물려받기는 했으나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마흔이 훌쩍 넘어 간신히 딸 하나를 얻고 해방이 되자 일본의 재산을 처분하고 귀국하려고 별렀다고 했다. 그러나 호젓한 온천지역에 몇 안 되는 여관이라 매기가 없어 몇 년이나 지난 뒤에 간신히 처분하고 부산항으로 귀국하자말자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전쟁이 터져 피난민이 아닌 피난민으로 부산의 산꼭대기 판자촌을 여기저기 떠돌다 어찌어찌 주축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부부가 외동딸을 데리고 언양장에 나왔다가 우연히 장터골목에서 또생씨를 마주치자 외동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는 것이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이라는데 여관집 딸에다 사위인 내외가 그 의미를 모르랴? 조심스레 총각을 바라보며 슬금슬금 따라가는데 키가 훌쩍하고 등이 길쭉하며 반듯한 몸매에 하얀 얼굴과 깊숙한 눈빛이 어디하나 나무랄 데 없는 귀공자였다.

뉘 집 자손인지는 몰라도 총각 하나 정말 헌헌장부로 잘 길렀구나 생각하며 따라가는데 우시장에서 목물전으로 돌아 나오던 총각이 어디서 한문글자가 가득한 신문지 한 장을 줍더니 남천내공굴의 한 귀퉁이에 앉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읽더니 먼 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싯귀(詩句)라도 읊조리듯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 훤한 풍신에 먹물까지 제대로 들었단 말인데 순간 노부부는 무남독녀 우리 딸이 마침내 배필을 만났구나,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며 단골인 떡과 국수를 파는 가게주인에게 총각의 거처를 물어 오늘 매파를 보낸 것이었다.

ⓒ서상균

아직 병이 완쾌되지 않은 못난 자식에게 딸을 주겠다니, 그것도 무남독녀외동딸에 먹고살 양도가 되고 남을 넉넉한 논밭과 집까지 얹어 데릴사위로 모셔간다니 조동댁내외에게는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과분한 소식이었다.

사람 좋은 조동백손이 저쪽이 누구인지 아직 얼굴은 못 보았지만 필시 식견과 경륜이 높은 데다 살림이 넉넉하고 인품이 훌륭할 것이 눈에 선하고 또 그 귀한 외동딸을 준다는 것이 너무나 반갑고 분에 넘치게 고맙지만 단지 우리아들이 아직 군에서 얻은 병(病)인지 증(症)인지를 다 고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조동댁이 재빨리 화난 눈빛을 쏘아대자 멈칫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너무 갑작스런 일이니 신중히 생각해볼 말미를 달라면서 일단계의 만남을 마무리 했다. 일이 어떻게 전개가 되더라도 자신들이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는 이 덩굴째로 굴러들어온 복을 도로 차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간 지 사흘 뒤엔 강당이장이 문제의 귀환동포 영감님을 모시고 등말리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전번보다 더 정중한 맞절과 서로간의 집안을 추켜올리는 공치사가 오래오래 계속된 뒤에야 술상에 마주 앉았다. 오래 일본에 살아서 한국말이 서툴고 간간이 일본말이 튀어나오는 방문객은 정말로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공손하다 못해 황송한 표정으로 정중히 아드님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벌집처럼 다닥다닥한 좁은 주축마을을 나와 인근 강당마을에 먹고살 만한 농토를 사 불민한 자기 딸과 데릴사위를 한 평생 먹고살 걱정 없이 만들어놓고 분단이 길어져 다시 38선 너머 원산 고향으로 갈 수가 없다면 딸이 사는 이곳 언양을 제 2고향으로 하고 기꺼이 신불산자락에 묻히겠다고 했다.

그 청혼의 자세가 너무나 공손하고 애절한 지라 저도 모르게 마음이 동한 조동백손이 아무 걱정을 마시라고 입을 떼려는 순간 이번에도 영락없이 새매처럼 매서운 조동댁의 눈길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혼인이란 원래 인륜지대사이니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해보겠다며 자리를 마무리한 조동댁은 손님들이 돌아가자 영감님은 이번 일에 있어 자신이 하는 일을 그저 바라보고 따르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 할 테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러자 근래 뜻밖의 손님과 함께 뜻밖의 맑은 술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조동백손은 느긋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용의주도한 조동댁은 곧바로 명촌구장을 내세워 당사자 처녀가 무슨 남모를 병이 없이 신체가 건강한지, 또 여자로서 맵시가 훤칠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면추(免醜)라도 되는지, 사람 됨됨이는 여성스럽게 차분하고 손끝은 야무친지 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세히 알아보게 한 것은 귀국동포에 이북나기영감인 처녀의 아버지가 과연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졌는지 또 주축마을을 나와 과연 먹고 살 만큼 땅은 넉넉히 사 대농소리를 들으며 살 건지를 알아보게 했다.

그런데 돌아온 소식이 놀라웠다. 성이 선(宣)씨인 선영감내외가 여관을 팔아 귀국할 때 금붙이로 바꿔온 재산이 상당해 이미 아랫마을 강당에 문전옥답 서마지기가 딸린 3간 겹집 초가 한 채와 인근의 좋은 밭 1,200평을 구입했고 집 뒤로 펼쳐진 1정, 즉 3,000평이 넘는 밋밋한 황무지를 사들여 거기다 딸과 사위가 살 집을 짓고 그 땅을 개간해 사과나무 배나무랑 고구마를 심을 넓고 넓은 농장을 이룬다며 벌써 그 땅을 다 구입했고 추가로 또 다른 땅을 사고 딸 내외가 살 새집을 지으려고 벌써 제재소를 다니며 대들보와 기붕, 서까래의 목재를 알아본다는 이야기였다.

조동댁의 눈이 반짝했다. 당사자인 또생씨도 모르게 일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어 금방 등말리의 매파가 강당마을의 선노인네로 찾아가고 이어 사성(四星)이 가고 마침내 신부 댁에서 택일통지를 해왔다. 그렇게 또생씨가 장가를 들게 된 것이었다.

 

장가를 들라는 말에 또생씨가 어리둥절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조동댁이 아니었다. 냉혹한 눈빛으로 금방 잡아먹을 듯이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울어도 시집은 가야된다.’는 속담처럼 버젓한 사내인 또생씨가 울어도 장가는 가야된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식민지의 젊은이로 한창 나이 스물 남짓에 고향 원산을 떠나 일본 땅에 들어가 천신만고 끝에 내지인 아내를 만나 딸 하나를 얻어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했지만 전쟁 통에 가보지도 못 하고 휴전으로 영원히 실향민이 되고만 원산 출신 선 영감은 처가, 일본과 가까우면서도 반도의 동남쪽 사철 꽃이 피는 따뜻한 땅 언양에서 번듯한 양반 집안에 인물까지 훤한 사위를 보게 되자 비로소 자신이 이 새로운 땅에 뿌리를 박고 정착한 것처럼 뿌듯하기가 여간이 아니었다.

달리 친척이 없으니 수시로 강당이장과 만나 술밥을 함께하며 웬만한 일을 다 상의하며 마치 형제처럼 살갑게 지냈다. 그는 우선 이 곳의 혼인풍습이 어떤지 물어보고 시부모의 침구와 옷은 물론 그 많은 다섯 명의 시누이와 그 남편, 또 그 자녀들에게 까지 다만 양말 한 켤레가 돌아가더라도 빠짐없이 예단을 마련하고 이전에 잠시 머물었던 주축마을의 이웃은 물론 강당이나 가천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사람들은 빠짐없이 잔치마당에 초대했다.

몹시도 피폐하던 시절에 모처럼 서른 관(112,5kg)이 넘는 돼지를 잡아 마을사람들이 실로 오랜만에 돼지수육을 맛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봉꼴산 밑에 터를 잡고 가을에 잠깐 뱀을 잡기는 해도 주로 장바닥이나 인근마을 잔칫집을 돌며 밥을 빌어먹는 땅꾼마을사람들도

“와, 돼지시역이다!”

“에라이 무식한 것, 돼지시역이 아이고 돼지시옷이라 캐야 된다!”

며 입가가 번들번들해지도록 포식을 시켰다.

그렇게 잔치가 끝나고 또생씨는 강당마을 처가와 마당을 같이 쓰는 새집에 신방을 꾸렸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색시는 키가 좀 작기는 했지만 통통한 몸집에 동그란 얼굴, 말간 눈빛을 가진 매우 착하고 순진한 여자였다.

물론 다섯 살의 나이차이가 있긴 했지만 매사에 ‘하이!’나 ‘쓰미마생!’을 입에 달고 마치 부모나 스승을 대하듯 공손하기가 짝이 없었고 자신보다 스물 댓 살이 더 많은 일본인장모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새 식구를 맞이한 선영감네나 신혼집에는 좀체 밝게 웃거나 웅성거리는 활기가 돌지 않았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