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0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⑨
대하소설 「신불산」(209)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⑨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04 07:00
  • 업데이트 2022.08.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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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⑨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새 식구를 맞이한 선영감네나 신혼집에는 좀체 밝게 웃거나 웅성거리는 활기가 돌지 않았다.

문제는 급한 대로 뼈대만 세우고 우선 신접 방만 넣은 새집에 담을 쌓고 부엌을 넣고 마당을 고르고 측간을 짓는 자잘한 공사에 또생씨가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 역시 그런 남편의 눈치만 살피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쳐도 소스라치게 놀랄 따름이었다.

아직 사위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장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서 새집공사를 마치고 따로 밥을 끓여먹도록 독립시키겠다는 선 영감의 계획은 영영 수포로 돌아가고 처갓집에서 네 식구가 별로 말이 없는 어색한 밥상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 삼천 평이 넘는 구릉지를 덩치 좋은 사위로 하여금 일부는 논으로, 일부는 밭으로 개간해서 딸네의 양도(糧道)를 자급시키려는 선 영감의 계획은 아예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선 영감이 밥상머리에서 은근히 내일부터는 구릉지에 풀과 나무를 베고 개간을 시작하겠다고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애가 탄 장인이 솔선수범 직접 낫과 톱을 들고 나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선 영감이 마을의 젊은이 7, 8명씩을 품으로 사서 근 보름을 구릉을 개간했지만 역시 소매 속에 두 손목을 깊숙이 찌르고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그 젊은이들이 ‘세상에 명촌서 장가온 저 백 서방만큼 복 많은 사람은 다시없다, 우선 아내가 얼굴이 하얗고 복스럽고 상냥하며 순종적인 반쪽바리에다 돈 많은 장인이 또 저리 너그럽기도 하니 사람은 다 제 나름의 복대로 살기마련이라고 했다. 사시사철 등골이 휘는 자신들과 달리 저 멀쩡한 인물 하나로 그저 젊은 색시와 밤 방아만 찧고 살아가는 행운아라고 수군거리는 말이 선 영감에게도 훤히 들리는 것이 목청 큰 경상도사내들이어서기보다는 일부러 선 영감이 들으라는 비아냥거림인지도 몰랐다.

공사가 시작된 지 한 보름이나 된 어느 날 손에 보랏빛 쑥부쟁이 한 가지를 꺾어든 또생씨가 모처럼 개간현장에 나타나 선 영감과 인부들에게 목례를 했다.

마침 신평 양조장에서 한 말들이 나무통에 든 탁주를 받아와 먹던 참이라 젊은이들이 또생씨에게 한 잔을 권했더니 잔을 받아든 그는 마지못해 입에 대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오만상을 찌푸리며 도로 내려놓고 말았다. 젊은이들은 또다시 ‘우리 같은 가난뱅이 농군들은 없어서 못 마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것이 같이 농촌마을에 사는 주제에 호강에 받혀 요강에 똥 싸는 꼴’이라고 흉을 보았다.

그러나 마을젊은이들이 말하는 그 어리고 예쁜 색시와 밤 방아만 찧는다는 비아냥거림마저도 헛말인지 신방을 차린 지 벌써 몇 달이 되었건만 그 숫기 없는 새댁은 도무지 입덧을 하거나 배가 불러올 기미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애가 타는 사람은 장인 선 영감이었다.

무엇보다도 어서 아이가 태어나야, 그것도 사내아이가 태어나야 천지간을 떠돌다 이 따뜻한 마을에 정착한 자신의 성(姓)을 받지는 못해도 핏줄만은 끊어지지 않고 저 웅장한 신불산에서도 가장 골이 깊은 금강골 아래 강당마을에 뿌리를 내릴 텐데 도무지 기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도 답답해 일인 아내를 통해 슬쩍 알아보라고 시켜 또생씨는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할 일본말로 딸에게 물어보니 새색시를 독수공방시키지는 않는 모양인데 도무지 그 횟수도 적고 열정도 뜨겁지 않다고 했다.

속담에는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했는데 이 경우엔 하늘을 볼 수는 있어도 자주 흐리고 구름이 끼고 별이 있긴 있어도 아주 드물고 희미하여 거의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런데 또생이댁의 수태를 목이 빠지게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산 너머 시오리나 떨어진 곳 등말리의 조동댁이었다. 이 경우엔 보통 아들을 장가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다리기 마련인 손자소식과 달리 뭔가 훨씬 더 절실한 것이 바로 손자가 태어나 비로소 선영감네의 사위로서 빼도 박도 못하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해야만 그 많은 처가의 재산이 확실히 자신의 아들인 또생이 몫으로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도 뭔지는 몰라도 상당한 떡고물이 떨어지리라는 기대에 부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욕심 많은 두 노인네들의 기대와는 달리 첫서리가 내린 황량한 구릉에 사정없이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동지가 되기 전에 신불산꼭대기에 하얗게 눈이 덮여 하루하루 눈발이 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딸의 회임소식이 없고 게으른 사위가 일손을 잡을 기미도 도무지 없는데다 일본인아내마저 말이 통하지 않아 도무지 바깥출입을 않고 방안에서 지내며 가끔 눈물을 찔끔거려 이래저래 속이 상한 선영감은 저녁마다 가천이장, 강당이장과 30분도 더 걸리는 신평으로 나가 막걸리 잔이나 마시고 아리랑이나 도라지타령을 흥얼거리며 돌아오는데 간간 걸음걸이가 흐트러지거나 휘청거리는 경우도 생겼다.

그렇게 돌아와서 도무지 기백이라고 없는 아내와 몇 마디 말을 부쳐보다 그냥 쉽게 잠에 떨어지는 날도 있었지만 어쩌다 잠을 놓치면 운문고개 넘어 경주 쪽에서 불어와 들내뜰 너른 바닥을 한 바퀴 돌아 금강골과 영취산을 넘어가는 차갑고 사나운 바람소리에 오들오들 떨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내가 어쩌다 이 낯선 곳, 낯선 바람소리를 들어야하는지 한심하고 그 불편한 심기와 무거운 불안감 한가운데에 멀쩡하게 잘생긴 사위 백 서방이 히죽거리며 떠올랐지만 달리 어쩔 방법도 없었다.

ⓒ서상균

점점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물기가 있는 흙바닥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며칠 뒤면 얼음 박힌 땅바닥전체가 돌덩이처럼 굳어지면 개간도 끝날 판이었다. 해가 바뀌기 전에 단 한 평이라도 더 밭을 일구어 봄이 오자말자 씨를 넣으려는 일념에 선 노인은 자주 조바심을 내었고 양지쪽에 둘러앉아 막걸리 참을 마시면서 가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가천이장, 강당이장과 신평 저자로 나갔고 얼큰히 취해 흥얼거리며 들어와 잠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제 내일이면 공사를 마치고 임금을 지불하겠다던 저녁에 선 노인은 으슬으슬 몸이 떨려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밭으로 가서 임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 노인은 도무지 일어설 기운이 없이 기침만 점점 심해졌다.

정오가 지나도 선 노인이 나오지 않자 무슨 일인가 싶어 인부들이 선 노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을 보면서 선 노인이 또생씨를 불러 손짓으로 장롱서랍을 열게 하고 돈뭉치와 인부들의 임금장부를 꺼내게 했다. 알아서 인부들의 임금을 쳐주라는 말이었지만 또생씨는 그 상태에서 또 천장만 쳐다보고 말이 없었다. 선 노인이 인부 하나에게 강당이장을 불러오게 했고 이장이 노임을 지금하자 인부들은 몸조리 잘 하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들이 돌아가고 아무래도 선 노인의 기침소리가 심상찮다고 생각한 강당이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나서려는데 마침 나이 든 인부 서넛이 다시 마당에 들어섰다. 그들도 뭔가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 것이었다. 무언가 몇 마디를 주고받던 그들은 어디서 소달구지 하나를 끌고 와 핫이불로 돌돌 만 선 노인을 태웠다.

이미 점점 기침이 잦고 숨소리가 커지며 헐떡거리다 진정되는 간격이 짧아지는 선 노인을 보며 그들은 마음이 급해 연신 쇠등에 채찍을 휘두르며 서둘렀지만 사위 또생씨는 한참이나 쳐져 유유자적하게 걸어왔다. 한 시간이 좀 더 결려 마침내 덕천고개를 넘고 남천내공굴을 건너 물문거리에 들어섰을 때 선 노인의 기침소리가 잦아들고 숨소리가 희미해졌다.

간신히 읍에 하나뿐인 김태진병원에 들어서니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를 뒤뚱거리며 진찰실로 들어온 의사는 눈을 뒤집어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숨은 붙어있지만 눈이 완전히 풀리고 맥이 빠져 소생할 가망이 없으니 도로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선 노인과 끔찍하게 정이 든 술친구 강당이장이 ‘아니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하다못해 주사라도 한 대 놔봐야 되는 것이 아니나?’며 따지는 사이 ‘딸깍’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사람들은 노구에 젊은이들을 감독하느라 너무 무리한데다 저녁마다 가천이장, 강당이장과 술을 마시다가 감기가 길어져 그렇게 되었다고 수군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른 관이 넘는 돼지를 잡은 부잣집초상이 끝날 때까지 무려 닷새 동안 술과 밥과 돼지수육을 넉넉히 먹었고 주방을 보는 어미를 찾아오는 척 아이들도 아귀아귀 양껏 먹고 얼굴이 번질번질 기름기가 돌더니 모처럼 먹은 기름기를 이기지 못해 모조리 측간을 들락거리며 소위 오토바이를 탄다는 소리도 요란한 집단설사를 은근히 즐겼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장 신이난 사람은 바로 강당이장이었다. 또생씨가 멈칫대는 사이에 상사일을 도맡은 그는 양껏 술을 마시고 슬쩍슬쩍 떡고물을 챙기는 한편 마치 친형님이 돌아가신 듯 서럽게 울면서도 하루 종일 술기운이 벌건 얼굴에 알 듯 말 듯 미소가 감돌았다.

아무리 인생일장춘몽이라 해도 이렇게 허무하고 어이없이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비록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라 해도 명사십리 해당화 피는 아름다운 원산 바닷가에서 태어난 순진한 소년이 무슨 야망으로 그 살벌한 낯선 땅 내지로 들어가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달고 싱겁기만 한 그 곳에서 얼음이 둥둥 뜨는 개고기냉면 한 그릇도 못 먹으면서 긴 세월을 일본인의 심부름꾼이 되었을까? 마침내 일녀를 얻고 딸을 얻어 재산을 일구고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끝끝내 분단조국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 하고 언양 신불산아래 이 밋밋한 허허벌판에서 생을 마감한단 말인가? 비록 숫기 없는 외동딸이지만 사대풍신 멀쩡한 데릴사위를 얻어 오순도순 늙마를 즐기려했건만 집도, 농장도 이루지 못 하고 외손자마저 보지 못 하고 말았으니...

이 낯선 땅에서 소리죽여 우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두 모녀가 시신이 안치된 빈소에서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기만 하다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제를 지내느라 이장이 채근하면 몸을 못 가누고 비척거리며 겨우겨우 절을 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의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몸을 받쳐주는 양이 어미와 딸이 키도 몸피도 우는 모습도 하도 닮아 뒤에서 보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상주인 또생씨는 마치 남의 집에 문상이라도 온 듯이 여전히 덤덤하기만 했다.

마을의 아낙들이 저래서 남의 자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수군거려도 못 들은 척 했고 이장이 도가에서 받아온 술값, 돼지를 잡은 비용, 제수용 조율이시와 봉황무늬의 문어다리, 상복을 지은 포목상의 삼베 값과 수공(手工)비를 적은 장부를 좀 읽어보라고 해도 이장님 알아서 하라는 양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이장이 서둘러 마을청년들을 불러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개간이 한창이던 구릉의 양지바른 곳, 막걸리 새참을 먹던 자리에 산역(山役)을 시켜 장지(葬地)를 마련하고 짚으로 띠를 만들고 모녀에겐 따뱅이라고 부르는 똬리를 틀어 씌웠다. 또 세 사람 모두에게 새파란 대나무 작대기를 짚게 하고 사위 또생씨에게 굴건제복을 잘 갖추어 입혔다.

모처럼 배가 부른 마을아낙들이 틈틈이 수군거리는 것은 주로 죽은 선 영감이 불쌍하고 남은 모녀가 어찌 살지 걱정이라는 것과 저 허우대만 멀쩡한 백 서방, 하도 척박해 하루 종일 낱알 하나 못 주워 먹은 새들마저 울고 간다는 저 명촌등말리의 백 서방만 호박이 넝쿨째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선말도 제대로 못 하는 저 모녀는 이제 살아도 산송장인데 저 백 서방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무표정하게 말은 없어도 부산의 저자바닥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심지어 파출소 순사 밑에서 심부름까지 한 지라 속에는 열두 벼슬을 하고도 남을 것이 뻔해 물려받은 처가재산을 팔아먹거나 작은마누라를 얻어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의심 겸 시샘을 주고받았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저승길이 멀다해도 삽짝앞이 저승이네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

 

마침내 만장을 펄럭이며 상여가 대문 앞을 벗어났다. 지방의 풍속이 아녀자는 장지에 참석하지 못 하는 법이라 모녀는 집밖을 벗어나지도 못 하고 바로 저지당해 마당귀를 서성거리며 울었고 상여는 어제까지만 해도 개간이 한참이던 구릉지를 천천히 올라갔다.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