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1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⑩
대하소설 「신불산」(21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⑩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05 07:00
  • 업데이트 2022.08.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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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⑩

마침내 만장을 펄럭이며 상여가 대문 앞을 벗어났다. 지방의 풍속이 아녀자는 장지에 참석하지 못 하는 법이라 모녀는 집밖을 벗어나지도 못 하고 바로 저지당해 마당귀를 서성거리며 울었고 상여는 어제까지만 해도 개간이 한참이던 구릉지를 천천히 올라갔다.

단 한명의 상주였지만 또생씨는 누가 보다도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단 하나의 상주는 좀체 울지를 않았다. 그저 가끔 멍하니 하늘을 우르는 눈가에는 울거나 눈물을 흘린 흔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 표정이 하도 미묘해 무어라고 말하기조차도 힘들었다.

부잣집초상이라 노잣돈을 듬뿍 빼낼 양으로 상두꾼의 우두머리가 구릉을 돌아가는 작은 구비나 물이 찌질하게 고인 작은 도랑을 건널 때마다 상여를 세우고 가느니 못 가느니 소동을 벌였지만 단 하나의 상주인 또생씨는 어서 가자고 사정을 하거나 돈을 꽂아줄 엄두도 내지 않고 그저 상두꾼과 먼 하늘을 차례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바람에 모든 상두꾼들이 맥이 빠져 발이 맞지 않아 비틀거리며 서로 발을 밟는 형국이 되자 선소리꾼도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어화홍 어화홍 어화넘차 어화홍

아무 감정도 없고 사설도 없는 맹물처럼 밍밍한 어화홍만 반복했다. 보다 못 한 이장이 나서 ‘이 사람들아 조용조용 가면 내가 자네들 막걸리 값, 담배 값은 알아서 받아줄 터이니 그리 알게!’ 하며 채근했지만 돈도 돈이지만 밀고 당기는 풍습과 걸쭉한 상여노래에 길들여진 상여꾼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장지에 도착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하관을 하고 평토제를 지내자 건성으로 봉분을 다졌는데 상두꾼들의 목소리도 지치기도 하였지만 막걸리 통 밑바닥의 찌꺼기에 목이 막혀 꺽꺽거렸다.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또생씨에게

“이 사람아, 우짜겠노? 이미 당한 일인 것을. 돌아가신 내 막역지우 선영감이야 그렇다 치고라도 이젠 백서방자네가 힘을 내어 가사를 돌보고 집안을 다독거려야지.”

마치 처삼촌이라도 되는 듯, 그 보다도 제 사위처럼 간곡히 당부했다. 여전히 묵묵부답 하늘만 보는 또생씨에게

“홀로 된 장모님도 잘 모시고 안식구도 살뜰히 챙겨 어서 후손도 보고 그래야지.”

“...”

“이제 내려가면 초상경비를 계산하세. 그리고 후에라도 가사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이야기하시게. 내 막역지우를 생각해서라도 만사를 제치고 도와줌세.”

“...”

‘예, 그저 이장님만 믿습니다. 앞으로도 제 장인어른이 살아계셨을 때처럼 늘 보살펴주십시오.’

천치바보라도 이 정도는 해야 될 말마저 또생이는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제 속셈이 있어 벌써 경계를 하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생씨의 무반응이 이장은 몹시 아쉬웠다. 만약에 또생씨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사를 처리하면 자신의 좋았던 시절도 끝이 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산역이 끝나 한 외로운 실향민을 바람 부는 억새밭에 던져두고 상여꾼들은 꺽꺽 목이 갈라진 상여가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왔다.

 

자주 흐리고 샛바람이 부는 어둑한 하늘에 잿빛 구름 사이로 누리꾸리 곯은 참외처럼 노란 햇살 한 줄기가 가까스로 뻗어 나오다 이내 새까만 갈가마귀 떼에 덮여 일순에 암흑천지가 되면서 수천, 수만 개의 울음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유독 이 고장에만 찾아오는 수많은 갈가마귀 떼들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저 남쪽 어느 땅에서 날아오는지는 몰라도 범서면 선바우에서 울산읍내로 들어가는 태화강 십리대밭에 진을 치고 태화강 70리의 물길이 이어진 구석구석의 손바닥막한 논배미까지 뒤지며 떨어진 나락과 연한 벼 뿌리까지 먹어치우는 대식가들이 한번 새까맣게 앉았다 구름처럼 떠올라 사라지면 들녘은 금방 초토화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갈가마귀 떼는 그까짓 추수가 끝난 들판을 휘젓는 것보다는 어딘지 마음이 허전하고 기분이 스산해지면서 짜안하게 불안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수만 마리의 갈가마귀 때가 며칠이나 넉넉히 먹고 가는 그 넓고 그친 황토벌판과 구릉에 이젠 저 운문고개를 넘어오는 차디찬 바람이 서리가 하얗게 내린 논도랑의 억새꽃을 흔들며 밀어닥쳐 금강골을 가득히 채워 취서산을 짓쳐 가면 이내 영축산에서 신불산을 거쳐 간월산에 이르는 칼날 같은 능선너머 억새밭에는 발이 푹푹 빠지도록 내려 숯 꾼들마저도 오르내리기를 삼가는 하얀 눈밭이 펼쳐지고 음력설이 지나면 밤마다 어김없이 능선을 따라 불에 달군 철사처럼 빨간 불빛을 내면서 타오를 것이었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이야 누군가가 날마다 산불을 지르는가 보다 하고 나이 든 어른들은 산이 크고 숲이 짙으면 가끔씩 마른 나뭇가지끼리 부딪혀 자연히 산불이 나고 그 산불이 숲과 억새풀을 태워 화전꾼들이 곡식을 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실은 화전민들이 곡식을 심을 땅도 문제지만 너무나 빽빽하게 우거진 억새와 싸리와 진달래덩굴이 길을 막아 길이 있는 능선을 따라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겨울에서 초봄까지 어김없이 능선을 빨갛게 달구는 그 불덩어리를 바라보며 산 아래 언양이나 상북, 중남사람들은 천불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상북면 이불마을 강가엔 한 여름 장마철에 가지산골짝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홍수에 실려 오는 토사와 뻘 위에 여뀌풀, 돼지풀을 비롯한 온갖 풀들이 우거져 벌레를 잡기 위한 불을 피워 늘 검은 연기로 덮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간월산 하늘 불에 짝지어 땅 불이라 부르고 마을이름마저도 지화(地火)라고 썼다. 아무튼 그 간월산, 신불산 능선의 산불이 얼마나 사납고 질기게 타올랐는지 언양의 농부들은 무언가 일이 풀리지 않고 마음속에 불만이나 불안이 가득해지면 속에 천불이 난다고도 했다.

ⓒ서상균

그렇게 신불산능선에 첫눈이 내리고 하얗게 눈발을 뒤집어쓴 억새밭에 밤새 불이 발갛게 타오르고 마침내는 그 산불이 휘젓고 간 능선을 따라 울다 그친 아이의 눈가처럼 희뜩희뜩 잔설(殘雪)이 번들거리면서 어느새 가는 봄바람이 신불산의 드넓은 품 금강골, 장제골 가득히 혀끝에 닿기만 하면 달짝지근 절로 침이 나오게 하는 맛있는 배뱁추를 가득히 싹 틔우면 봄 양식이 달랑거리는 아낙들이 부지런히 나물을 뜯었다.

그 겨울 내내 또 봄이 오면서 그야말로 속에 천불이 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는 강당이장이었고 또 하나는 명촌 등말리의 조동댁이었다. 하나는 이웃이었고 하나는 어미였지만 다 같이 강당마을의 천하태평 또생씨에게 엄청난 보골(부아)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 겨울 내내 또생씨는 강당이장의 기대를 보란 듯이 저버리며 꼼짝 않고 집안에만 칩거했다. 제기나 사람 같으면 급사한 장인어른의 무덤이나 돌보며 도래솔이나 백일홍도 심고 축대를 쌓고 상석을 놓거나 하다못해 읍내 돌 공장에 알아보거나 아니면 이장인 자신에게 이런저런 의논이나 부탁이라도 하려만 삼우제 때 단 한 번 산소를 다녀온 후 아직 잔디도 자리잡지 못한 무덤위에 눈이 하얗게 덮이든 그 눈이 녹아내리든 일체 출입도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날마다 선 영감이랑 신평바닥을 돌아다니며 탁배기에 절어 살던 호시절도 끝나고 초상 때 일을 봐주면서 이래저래 짭짤하게 챙긴 떡고물로 한동안 혼자 신평의 살짝곰보주모의 치마폭에 묻혀 정종에 문어다리깨나 죽이고 세월을 보냈는데 그 모든 것이 허사였다.

또생씨가 산소를 손보거나 개간하다만 구릉을 다시 일구며 일꾼을 쓰면 자신에게 이래저래 떡고물이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신평의 살짝곰보주모를 찾으련만 무슨 소나무 죽은 귀신도 아니고 도무지 기미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등말리 조동댁의 차마 입 밖에도 내지 못 하는 은근한 조바심에 비하면 강당이장의 부아는 보골도 천불도 아니었다. 또생씨를 이 바닥에 피붙이 하나 없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의 함경도 출신 귀환동포 알부자의 데릴사위로 줄 때부터 비록 며느리나 안사돈이 한국말도 서툴고 물정도 어둡다고는 하지만 일단은 호박이 덩굴 째 굴러온 것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아무튼 무남독녀의 데릴사위로 집안에 들어가 자식이라도 낳게 되면 그래서 그 외로운 영감이 그 여린 외손자의 방글거리는 웃음과 보드라운 살갗에 까뿍 넘어가기만 한다면 그 많은 처가의 재산과 실권은 당연히 자기의 아들에게 넘어오고 그렇게만 되면 자신에게도 결코 만만찮은 고물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이치였다.

그런데 도무지 기다리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이게 무슨 사단인가, 혹시 평소에 말만 없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여자, 특히 한창나이인 막내여동생의 친구들이 오빠, 오빠! 를 부르며 멀겋게 잘 생긴 자기얼굴을 올려다보며 슬쩍 손을 잡거나 눈만 한번 주어도 대번에 가슴에 쓰러질 것처럼 애절한 눈빛마저 본 동 만 동하던 터라 혹시 제 아들이 여자를 모르는, 아니 그런 힘이 없는 고자가 아닌지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가천바닥에 그런 소문은 없다고 하니 단지 부부간의 궁합, 특히 자식 궁이 맞지 않거나 며느리의 아기집이 약해서 그런가 보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모든 걱정을 단숨에 쓸어가듯 느닷없이 바깥사돈 선 영감이 횡사해버리니 하루아침에 그 많은 재산이 자기 아들의 몫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짓다만 집이건 일구다만 땅이건 뭘 챙기고 가꾸거나 하다 못 해 논문서, 집문서, 금융조합의 저금이라도 챙겨야 하련만 도무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저 있는 양식으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죽인다니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사든지 팔든지 무슨 움직임이 있어야 고물이 떨어질 텐데 도무지 움직임이 없으니 조동댁의 은근한 기대는 그야말로 그림속의 떡이었다.

 

일구다 만 구릉은 다시 억새가 우거지고 그 우거진 풀 섶에 봄에는 노고지리가 알을 낳고 여름엔 고라니가 뛰어놀고 가을에는 갈가마귀 떼가 덮쳤다.

한여름 장마로 마당귀의 흙이 쏠려 내려가고 태풍으로 지붕이 한 쪽 날아가고 서까래가 드러나도 고칠 생각을 않았다. 그러나 선 영감이 많은 일꾼들을 먹이려 양식이며 간장, 김치를 넉넉하게 비축한 덕에 게으른 세 사람이 한두 해 버티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집안에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은 겨우 또생씨의 장모가 몇 개의 난초화분에 물을 주고 마당귀퉁이에 약간의 푸성귀를 심는 정도였지만 과히 반찬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유심히 들으면 간간이 모녀가 주고받는 일본말은 들려도 또생씨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들판 한 가운데 일본사람이 한 집 외로 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마치 노름꾼들 사이에 ‘양산장꾼 안 헤어지면 다 내 돈’이란 말처럼 그런 두 사람의 아쉬움을 단번에 풀어주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침내 키도 작고 말도 없지만 얼굴만은 올망졸망 인형처럼 예뻐 오모짱이란 별명이 붙은 또생씨의 아내가 아이를 배었다는 소식이 등말리 조동댁의 귀를 번쩍 띄게 했고 강당이장 역시 그 즈음에 갑작스런 또생씨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었다.

“아이구, 이게 얼마만인가? 원산어른집 박 서방이 우리 집에 다 오시고?”

이장이 뛸 듯이 반기며 맞았지만 죽은 장인 선 영감의 고향이 원산이라고 졸지에 일본에서 낳은 아내가 원산때기가 되고 자신은 원산어른이 된 또생씨는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니게 고개를 숙이는 듯 마는 듯 하고는 한참이나 이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 엄동설한은 잘 지냈는가? 우째 그래 식구 셋이 그렇게도 출입이 없는지 마실사람들은 인자 원산떡 가는 길을 모르겠다고 하더구만. 하도 길이 묵어서 말이야.”

“...”

“개간공사도 마무리하고 선 영감님 산소도 좀 손보고 하다 못 해 집안의 채전 밭에 다문 열무라도 좀 심어야 될 것 아이가?”

“...”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던 또생씨가 이장의 잔소리가 지칠 때쯤 입을 열었다. 개간하다 만 구릉의 땅을 좀 팔아달라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겼는가 물어보려다 이장은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이 글은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