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권두칼럼】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 조송현
【시민시대8-권두칼럼】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 조송현
  • 조송현 기자 조송현 기자
  • 승인 2022.08.08 08:00
  • 업데이트 2022.08.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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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현 인저리타임 대표

우리 머릿속에 그려진 세상의 그림은 누가 그려줬을까?

“그야 물론 내가 그렸지, 내 머릿속의 그림을 내가 그리지 누가 그려주겠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례 하나를 들어본다. 대선을 2주일쯤 앞둔 시점에 양산의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반찬을 내오면서 후보자 품평을 시작했다. 한 후보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욕’을 해대고, 다른 한 후보에게는 이런 저런 근거를 대며 칭찬을 했다. 내가 동조할 것이라고 믿는 투였다.

“할머니 후보들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왜 모르겠어, 저기 텔레비전에서 종일 이야기하는데.” 할머니가 당당한 표정으로 종편TV를 가르키며 한 대답이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 할머니의 머릿속에 그려진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할머니 자신일까, 아니면 TV일까? 답은 명확하다. 할머니는 스스로 밝혔듯이 후보자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TV를 통해 얻었고,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기자시절 월터 리프먼과 그의 대표 저서 'Public Opinion 여론' 표지  

‘우리 머릿속의 그림은 언론이 그려준 것이다.’

이 명제는 미디어 효과 이론의 ABC로 통한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 1922년 발간한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처음 주장했다. 리프먼은 “언론은 우리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을 연결하는 창이며, 세상에 대한 그림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렇게 그려진 사람들의 그림이 모여 여론을 형성한다.

언론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언론은 대중으로 하여금 ‘무엇을 주목할 것인가’를 지정해줄 뿐 아니라 특정 이슈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까지 알려준다. 이건 지난 한 세기 동안 언론과 언론학자들에 의해 확인된 사실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란 주권자인 국민의 권력을 위임할 대표자를 뽑는 행위다.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 체제가 작동하기 힘들다. 유권자가 적합한 인물을 뽑기 위해선 충분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이를 제공하는 게 공론장, 곧 언론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유권자인 대중은 적합한 인물을 선택할 수 없고 따라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언론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부산민언련이 제8회 지방선거 부산지역 방송보도 모니터 보고서를 최근 냈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대하고 크다. 유권자가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후보자와 정당의 정책과 공약을 전달하고, 지역의 장점과 현안을 발굴하고 조명하며, 공정선거를 위해 선거를 감시하고 선거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일 등이 지역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기간 부산지역방송은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산민언련의 총평이다. 공천․경선 보도는 갈등을 부각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후보 보도는 구도․승패에만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선거운동 보도는 후보자의 행보․전략만 좇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판세와 여론조사 보도가 주를 이루고, 정책보다 정당 중심의 보도로 오히려 정책선거를 저해하는 보도행태도 많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산지역언론은 특히 ‘유권자 행동’ 관련 보도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선거보도 말미에는 어김없이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를 강조한다고 부산민언련은 꼬집었다.

유권자가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게을리하면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강조하는 것은 언론의 직무유기이자 역할 떠넘기기에 다름 아니다.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후보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게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을 언론인은 상기해야 한다.

<인저리타임 대표,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강사>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