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16)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16)
대하소설 「신불산」(216)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16)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11 07:00
  • 업데이트 2022.08.11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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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16)

인사를 하고는 부지런히 아기손가락크기의 솎은 무와 배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주로 다섯 가지 홀수로 무치는 제사상의 나물인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미역과 함께 오르는 나물은 김장배추에서 솎은 연두 빛의 부드럽고 고소한 포랑나물이 올라야 제격이었고 언양지방에서는 가늘고 긴 고사리보다는 굵고 돌돌 말린 고치미를 상품으로 쳤는데 손끝이 야문 금찬씨는 그 바쁜 틈에 어느 골짜기에서 고치미를 캐는지 제사상마다 고치미를 올려 파젯날 벌건 고추장을 듬뿍 넣고 나물밥을 비비는 시고모들에게 손끝이 야물다는 칭찬을 듣기가 일쑤였다.

“야들아, 내 말 잘 들어라. 근근이 시간을 내서 왔는데 내말대로 돼야 집안도 편코 니도 졸 끼다.”

“야.”

“수진아, 니 아무 토 달지 말고 할매한테 빌어라.”

“빌기는 와 빌어요? 내가 뭐 잘못 한 기 있능교?”

“그래 할매 하고 니 하고 한집에 살긴 살아도 서로 감정이 많아 평생을 물고 뜯고 싸운 거 나도 다 안다. 이거 참 질부 앞에 꺼내기도 부끄럽지만 할매가 니를 보고 본 데 없고 배운 데 없고 눈치 없고 물체 느린 더러운 년의 궁가리에서 나온 자식이라고 개가 닭 보듯이 하는 건 원래 사람이 찹고 욕심이 많고 심청궂어서 그렇다 치고라도 니는 또 지 어매 쫓아내고 찾아가지도 못 하게 단속하는 할매한테 무슨 정이 있었겠노? 그렇지만 아랫사람이 어른을 일일이 다 갋으면 우짜노, 지난번에 니가 질부한테 살림을 넝구라고 한 일로 할매가 지금 골이 나도 단단히 났다. 니도 알제?”

“거기 와 잘못 된 깅교? 어른이 나이 들고 밑에 사람이 커 올라오면 당연한 거 아잉교?”

“그래도 거기 아이다. 여자가 젤 놓기 싫은 기 집안을 다스리는 것, 도장방 쇠때를 안 내놓은 거라 안 카나? 그래서 할매가 골이 안 났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동안 무 배추를 다 다듬은 금찬씨는 멍하니 칼치못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못 둑의 활짝 핀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하늘 가득히 날아오른 고추잠자리 중의 몇 쌍은 방금 수면의 물풀 위에 한 놈은 꼬리를 꼬부려 알을 낳고 또한 놈은 붕어나 가물치가 다가올까 봐 금방금방 교배 중인 암컷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동나무장롱의 쇳대처럼 생긴 자세, 망측하기보다는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아른거리는 코스모스 뒤로 누렇게 익어가는 볏논들이 풍요로웠고 대밭머리의 바람도 상쾌했다.

이렇게 좋은 날 우리는 왜 또 저렇게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문득 아무도 신경을 써주는 사람도 없고 말동무도 없던 밀양이모집과 아버지의 등에 업혀 배내고개를 넘어오던 일, 보수동 식모살이와 복산동 판잣집에 살면서 방직공장에 다니던 시절의 밀가루 풀데기가 떠오르더니 일찬이오빠가 정신이 맑지 못해 입원한 병원에 반찬도 없는 밥 소쿠리를 이고 가던 일이며 어린 열찬이를 업고 웃각단 대밭에서 깜깜한 마구뜰에 대고 ‘엄마 오나! 엄마 오나?’를 외치던 고달픈 순간들을, 또 ‘니는 손끝이 야물어 형제간 중에 그중 잘 살 끼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야야, 질부야, 와 우노? 하긴 눈물도 나겠다. 나도 여자고 내 친정이지만 니 만큼 시집살이 고생 많은 사람이 조선천지에 어딨겠노? 층층시하에 시고모가 많은 것은 둘 째 치고 우리 엄마 성질이 보통 고약하고 팩하나...”

“아, 아입니더.”

눈물을 훔친 금찬씨는 다시 칼치 못에 놓아둔 통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을이면 살이 올라 이름마저 가을추자가 들어간다고 추어탕을 유독 좋아하던 시할아버지가 말하던 미꾸라지와 붕어가 통발에 가득히 들면 비록 추석제사상에는 못 올리더라도 이튿날 시고모네 식구들이 오면 가마솥 가득 추어탕을 끓여 손님접대하기가 한결 쉬우리라. 또 뜻밖에 커다란 잉어나 붕어를 잡으면 미나리와 방아 잎을 듬뿍 넣고 잘 익어 발그레한 풋고추를 썰어 넣고 찜을 하면 시고모부들이 핥고 빠는 술안주가 될 것이고...

 

그 사이 절대로 내가 여기 오거나 귀띔을 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다짐을 받은 큰고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불같이 성을 내는 수진씨는 물론 금찬씨가 들어도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고모가 들려준 이야기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일본의 고모가 자기가 나고 자란 친정집을 말끔한 기와집으로 고쳐지어 대대로 제사를 모시게 하고 또 하나는 그 친정집과 제사를 이어갈 종손을 위해 약간의 제우답(祭位沓)을 살 돈을 보내겠는데 한일협정 세부결정이 자꾸 늦어도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들고 오기보다는 추석을 쇠고 바로 보낼 테니 추수가 끝나면 집도 고치고 땅도 사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번 살림을 넘겨간 일로 단단히 삐친 할머니가 선뜻 그 돈을 수진씨에게 넘겨줄 생각을 않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아 의중을 떠보니 그 돈을 수진씨 대신 둘째아들 또생씨에게 넘기고 자신도 의논이 안 맞는 수진씨보다는 작은아들 집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는 소리 아잉교? 제사건 살림이건 장남이 아니면 장손에게 넘기는 것이 원칙이고 또 엄마가 이적지 수진이에게 의지해 살았으면서 무슨 엉뚱한 이야깅교?”

큰 고모가 항의했지만 할머니는

“그 본 데 없고 배운 데 없고 눈치 없고 물체 느린 더러운 년의 궁가리에서 나온 자식은 우선 간에 집도 있고 논밭도 있고 지 몸도 성하고 마누라도 성하고 자식들도 많아서 그냥 두어도 그럭저럭 살겠지만 니 동생을 봐라. 그 멀쩡하던 사람이 군에 가거 얼마나 맞았는지 뭘 보고 놀랬는지 아무 일도 못 하는 반 벙거지에다 조선말도 모르는 오모짱 지 마누라도 병이 들어 바깥출입을 못 하고 하나뿐인 자식 가을이 그년도 부산인가 어디로 나가 근 십년이 되도록 소식조차 없지 않다 아이가? 열 손가락 찔러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그 병들고 힘든 자식을 이럴 때 부모인 내가 거두지 않으면 뒷산에 야시가 거둘 끼가, 누가 거둘 끼가?”

완강하게 나오는 것을

“어무이, 말은 그럴 듯해도 거기 아이지요. 조선 천지에 집안의 분란은 가장이 첩사이를 두거나 에미가 원질인 장남이 아닌 지차나 딸을 감싸고 돌 때 생기는 법이지요. 꼭 차남이 맘에 걸리면 일본서 올 돈의 일부를 떼서 우선 간에 밥이나 먹도록 땅마지기나 사주고 나머지 집짓고 땅 넓히는 건 모두 장손인 수진이에게 삼분지이는 주어야 마땅하지요.”

조목조목 설명해도

“치아라! 이 시근 없는 년아! 니는 마 아가리 다물고 잔주코 있거라.”

장터가 떠나갈 듯 소리치는 할머니는 기어이 밀어붙일 기세였고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기보다는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둘러 선 사위와 딸들이 다 말을 아끼자 할머니는 더욱 의기양양했고 마침내 눈치가 빠르게 자기 잇속을 잘 챙기는 길천의 둘째딸이 엄마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맞장구를 치고 사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모, 그 기 말이 되는 소리요? 내 안 되면 집구석에 불을 확 질러뿔 끼요.”

“아이지. 그렇다고 자네가 그렇게 하는 기 아이지. 지금도 늦지 않네. 할매한테 니가 빌어라. 제발 성질 좀 버리고 빌어라. 내 일본 새이가 나타나 큰딸도 아이지만 제발 친정일로 신경 좀 안 썼으면 좋겠다.”

“고모, 나는 못 하요!”

 

추석전날 제사를 지내러 온 또생씨는 조동댁과 여섯 딸이 벌이는 꿍꿍이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엌의 금찬씨가 차려온 호박떡과 정구지찌짐에 막걸리 한 사발을 천천히 마시고는 몸이 곤하다면서 그냥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넘게 늘어지게 자고난 그는 기가 막히게 저녁시간에 맞춰 일어나 저녁밥을 비우더니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한지 어언 이십 몇 년. 그간 장가를 들고 장인장모와 아버지와 형이 죽고 딸이 태어나 객지로 나가 소식이 없건만 무엇 하나 답답한 것도 없이 그저 멀건 죽이나 먹으면서 어진냄이 순냄이처럼 그저 먹고 자고, 자고 먹기에 이골이 난 모양이었다.

밤이 깊어 수진씨가 사과와 배를 깎고 문어다리와 오징어에 칼금으로 무늬를 넣고 오랫동안 물에 불린 밤도 다 치고 이제 이미 메밥을 올린 부엌에서 삶은 달걀을 받아 껍질을 벗겨 도라지꽃 모양의 빗금을 넣을 때쯤 슬며시 일어나더니 푸석한 얼굴을 손으로 한번 스윽 훑고는 옷매무시를 고쳤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자는 척 무심한 척 모든 것을 꿰뚫으면서 그저 자기몸 하나 편한 데로 공연히 시비에 말리고 책임질 일이 생기는 일에 끼어들지 않고 억지로 편해도 편하면 제일이라는 심사인지도 몰랐다.

ⓒ서상균

추석날 아침 제사를 모시고 술과 안주를 챙겨 뒷산으로 성묘를 가는데 수진씨 혼자 술 주전자와 안주소쿠리와 돗자리까지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느라 낑낑거려도 도무지 거들 생각을 않아 “잔아부지!” 정색을 하며 돗자리를 건네자 아무 표정 없이 받아들었다.

아직 돌아가신지 일 년도 안 되는데다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수진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목이 메는데 어찌 된 셈인지 또생씨는 제 아버지나 형의 무덤 앞에서도 그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성묘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자말자 가까운 길천의 둘째 고모가 영감과 막내딸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일찍도 왔네. 니는 제사도 안 모시나? 그라고 니 사우들이 오면 우짤라꼬 집을 비우고 왔노?”

“어데 우리 사우 우리 딸만 처가에 오고 내하고 우리 영감 윤 서방은 친정 오고 처가 오면 안 되나? 할 수 없이 내일쯤 사우들이 오면 처조모도 볼 겸 몽땅 등말리로 오라캤다. 애미가 친정 오면 지도 외가에 오면 되는 거지.”

“아이구,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안 하지. 아주 청산유수로구나.”

하면서도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래 잘 왔다. 윤 서방, 마루로 올라가자. 그라고 야야, 손부야 너거 고모부 오셨다. 어서 술상 올려라.”

하고 또생씨와 윤 서방이 술판을 벌리는데 몇 순배 돌기도 전에 삽재의 큰딸내외와 궁근정, 못안의 딸들이 들이닥치고 보름달이 떠오른 한참 뒤에 배내의 셋째 딸도 허위허위 숨을 몰아쉬며 도착했다. 장정걸음으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산길을 넘어 오려면 아마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출발해 이제야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수진씨와 금찬씨 내외는 이제 고모들이 다 왔으니 일본의 고모가 보내준 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수진씨 내외와 또생씨, 또 혹시 무슨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다섯 딸과 사위들에게 이명고명 설명을 하고 의논을 하여 매듭을 지을 것이라고 바짝 긴장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또생씨와 고모부들이 술판을 벌리고 조동댁과 다섯 딸이 비잉 둘러앉은 큰방과 마루에선 그저 허허거리거나 까르르 웃는 남녀 간의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정지 기둥을 잡고 귀를 쫑긋하는 금찬씨나 괜히 물그릇이나 접시들을 들고 정지에서 마루로 좁은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진씨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통지도 없었다.

 

밤이 깊어 수진씨 내외와 아이들이 한 방, 나머지는 마치 목욕탕에 들어가듯 다섯 사위와 또생씨가 또 한 방, 마지막으로 조동댁과 딸들과 손녀가 한 방으로 나뉘어 잠이 들었는데 아침밥상에서 조동댁이 수진씨 내외를 불러 하는 이야기는

“밤에 자면서 니 고모들 하고 의논을 했다. 우선 일본에 선필이가 나타나 큰딸자리를 찾으니 삽재고모도 이적지 큰딸로 불리다가 졸지에 둘째딸이 되고 둘째는 셋째가 되는 식으로 쭈욱 밀리니 도무지 정신이 없어 여기 한국에 있는 딸들은 지금까지 부르던 대로 하고 일본의 선필이는 첫째둘째가 아닌 일본딸, 일본언니로 부르기로 했으니 너거도 그런 줄 알고 그냥 일본고모로 불러라.”

이건 뭐 초상집에서 창가(唱歌)하는 것도 아니고 전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이어

“잘 들어 봐. 또 하나는”

하고 조동댁이 말을 멈추자 이제야 말이 나오는가 싶어 수진씨와 금찬씨는 귀가 번쩍 뜨이는데

“너거 할아부지하고 아부지 제삿날 말이다. 원래 양반집에는 초상, 소상, 대상을 치러 삼년상을 하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카지만 시대도 바뀌어 양반상놈이 다 없어진 판에 그 기 다 낭비고 또 불과 한 달 사이에 두 번의 상사니 일일이 챙기다간 기둥뿌리 뽑힐 판이라 일본에서 온 돈으로 집수리를 마치고 한데 뭉쳐서 간단히 하기로 했다.”

말도 조리 있고 이치는 맞지만 이 역시 진주 사천으로 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격이었다. 그런 수진씨내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 국 식는다. 어서 밥 묵자. 그라고 손부야, 니는 고모부들 해장술이나 한 주전자 올리거라.”

하고는 다들 식사에 여념이 없는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