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21)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1)
대하소설 「신불산」(221)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1)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16 09:49
  • 업데이트 2022.08.1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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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21)

필시 무슨 곡절이 있나싶어 아낙을 데리고 장터를 다시 가로질러 닭 전에서 목물전을 가로질러 버든에서 장에 오는 첫 집 백손댁 앞에서 방천모퉁이로 올라가 둘이 나란히 앉았다. 오랜만에 남천내 건너 친정집의 대밭과 감나무가 보여 가슴이 뭉클해진 금찬씨가 애써 진정시키며

“자, 사형요. 무슨 이야기든지 다 해주소. 내가 알아야 우째 해 볼 끼 아잉교?”

다가앉으니 다시 긴 한숨을 내쉬면서 아낙이 입을 열었다.

“내가 뭐 존 일도 아니고 남의 이약을 함부로 할 처지는 아이지만, 그래도 우리 큰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집안의 종부택인 사영한테 이바구를 하기는 해야지요.”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금찬씨가 늘 걱정하던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었다.

 

금찬씨와 수진씨가 늘 궁금했던 것은 길천고모와 조동댁이 언양농협에 가서 만들어온 일본에서 송금되어 온 돈의 액수였다. 우선 종가에서 밥걱정이나 있어버리고 제사라도 갖추어 지내라며 논 몇 마지기를 살 돈을 보낸 것으로 엿들었지만 그 정확한 액수는 몰랐고 다음 등말리의 생가를 고쳐지으라고 추가로 돈을 보낸다고 했으니 적어도 상답으로 서너 마지기는 사고도 남을 돈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천이모의 조카딸인 강당의 백 얌생이집, 그러니까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아넨이라 부르는 양유를 짜는 용도의 흰 염소를 키우는 사형의 말로는 사실 그렇게 큰돈이 온 것도 아닐뿐더러 그 돈마저 며칠 안에 절단이 나고 말았다고 했다.

강당마을 뒤의 한 귀퉁이에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 웅크린 황량한 집, 금방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이상한 집의 키가 껑충하고 눈이 움푹 들어간 사내 또생씨가 일본에서 떼돈을 번 고모로부터 어머니를 모시면 한 밑천 단단히 준다는 조건으로 명촌등말리의 모친을 모시고 온다는 소문이 돌자 가을걷이가 끝나고 별로 바깥출입도 없이 어항 속처럼 갈아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주축마을 뒤 구릉을 휩쓸어 금강골에 누런 흙먼지를 피워 올리는 차디찬 겨울바람이 지배하는 그 스산한 마을에 아연 뭔가 들뜨고 울렁거리는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조동댁으로부터 얼마간의 돈을 받은 또생씨가 강당마을 입구에서 당당하게 두 시간에 한 번씩 부산에서 언양을 왕복하고 무심 날에도 장사를 하는 저자껄이라고 부르는 구 장터골목에서 그동안 생각만 간절했지 십년 가까이 먹어보지 못 했던 은빛 비늘이 싱싱한 갈치며 미역과 광어, 쇠고기 두 근에 외간장과 근래 새로 나왔다는 닭고기냄새가 나는 국수, 삼양라면에다 조동댁이 덮을 요이불과 내의에 이제 너덜너덜 다 떨어져 다시 깁기도 힘든 아내 일본댁의 속옷까지 사서 버스에 내리자말자 깜빡 잊었던 소주를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버스정류장 앞의 점방에서 사들고 모처럼 편안한 얼굴로 느긋하게 걸어갈 때였다.

“보소, 또생이아재, 아니 등말리 백 서방요!”

누가 불러 돌아보니 젊은 가천이장이었다. 장인 선 영감과 막역한 술친구로 또생씨네 거간을 맡았던 영감이 죽자 시골에서는 드물게 중학교를 나온 이장의 아들이 대를 이었는데 나이는 또생씨보다 너덧 살 작았지만 유들유들한 성격이 아버지와 판박이로 역시 대를 이어 또생씨의 거간을 맡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소식을 들었지요. 복 많은 과부는 자빠져도 고추밭 아이면 가지밭이라더니 아제는 참 복도 많소. 뒷골 야시가 돌보는지 아니 돌아가신 선 노인이 돌보는지 그렇게 이십년 넘게 손끝하나 얄랑 안 하고도 굶어죽기는커녕 돈벼락을 맞으니까 말입니다.”

뜻밖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또생씨에게

“내일 밝은 낮에 집으로 갈 테니 그간 갖다 쓴 돈하고 그 이자하고 농협에 융자금부터 좀 해결하이소.”

비수 같은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섰다. 가슴에 바윗덩이가 떨어진 것처럼 답답해진 또생씨가 울상을 짓고 집으로 돌아와 드러누워 버리자 처음에는 너무 피로해서 그런 줄 알고 모처럼 구경하는 귀한 장거리를 조동댁이 직접 갈치를 지지고 쇠고기를 넣어 미역국을 끓이고 들기름을 발라 김을 구워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띄운 외간장과 함께 상을 차려와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야야, 와 이라노? 무슨 일이 있나? 어서 일나서 밥 좀 무라!”

소리쳐도 대답을 않는지라

“와? 김에 참기름이 아이고 들기름을 발라서 들내가 나나? 니 벌씨러 이라면 나는 도로 갈란다. 와 그라는지 말이나 좀 해 봐라. 사람 복장 터져 죽겠다.”

재삼 소리치며 금방이라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저어 어무이 그 기요...”

어렵게 운을 뗀 또생씨가 이리저리 빚이 저서 그 이자가 붙고 융자금은 연체이자가 나오면서 올 연말이 지나면 집은 물론 겨우 500평 정도 남은 밭도 몽땅 넘어갈 판이라고 자초지종을 말하자

“아이구, 내 팔자야. 내 눈까리 내가 찔렀지. 내 속으로 나온 자슥이 내 복지이를 이렇게 디빌 줄 몰랐다. 관세음보살!”

한숨을 푹 쉬며 평소 절에도 안 다니는 관세음보살을 주절거리더니

“하기사 와 안 그라겠노? 사나기집이 하나같이 깨알밪아 빠져서 이십 몇 년을 열 손 재배, 손가락하나 까딱 안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내 가을이년이 집에 올 때마다 송편에 떡에 알빰에 보리쌀에 하다하다 지렁장까지 똘마가는 것을 모른 척 했지만 해도 해도 이렇게 못 살 줄은 몰랐다. 하긴 이적지 안 굶어죽고 살아남은 것도 장하지만...”

또 한 번 큰 한숨을 쉬고는

“자, 봐라. 이기 다다. 이 돈이면 빚은 다 갚는가 봐라!”

쭈뼛거리며 통장을 들여다보던 또생씨가

“쪼금 남겠네요. 한 반에 반쯤...”

“그래 눈이 빠져도 그만하기 다행이라더니 죽는 것보다야 망하는 기 낫지. 내일 빚을 전부 청산하고 모래는 내캉 언양장에 가자. 내 아직도 니를 보면 물가에 아아를 세워놓은 것 같으니 같이 가서 일본에서 니 누부가 다음 돈 보낼 때까지 버틸 양식하고 소금이라도 사자!”

또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더니 또생씨가 사온 요를 깔기 시작했다.

ⓒ서상균

이튿날 이장과 농협직원에 이끌려 농협에 가서 그간의 빚을 모두 청산하고 겨우 돈 몇 만 원만 남기고 쌀과 소금과 간장 같은 생필품을 사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담 너머 뭔가 흘낏 스쳐가는 것 같아

“누고?”

조동댁이 삽짝을 열고 나가자 마흔이 좀 넘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며

“여가 박또생씨 댁이 맞지요?”

묻는데 아무리 봐도 여염집여자는 아니었다.

“야야, 여 나와 봐라. 니 찾는 손님, 아니 웬 안들이 왔다.”

방안에 짐을 부리던 또생씨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헉!”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아버렸다. 사태를 대충 짐작한 조동댁이

“일단 들어와 보소. 사람 집에 사람이 왔는데 무신 말인지 들어나 봅시다.”

이렇게 들어본 이야기는 여자는 현재 한창 공사 중인 주축마을 아래에서 방터에 이르는 60만 평의 공장을 짓는 삼성전관공사장의 하청업체인부에게 밥도 해주고 막걸리와 국수나 라면 새참도 파는 함바집여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외상술값이 적잖이 있기 마련이구나 싶어 그 액수를 물으니 제법 큰돈이었다. 겁을 먹었는지 민망해서인지 어제부터 방을 바꾸어 제 아내가 웅크린 아랫방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엎드린 또생씨를 찾아가 그게 사실이냐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조동댁이 남은 돈에서 술값을 쳐주고

“인자 됐제? 그만 가보소.”

나가라는 눈치를 줘도 도무지 일어나지 않고 밍거적거리던 여자가

“저어 술값 말고도 몸값도 받아야 됩니더. 일본서 목돈이 오면 방 한 칸 얻도록 넉넉하게 준다면서 서방 죽고 근 십년을 아들형제를 키우면서 조신하게 사는 아낙네를 살살 꼬셨다 아닙니껴?”

배시시 웃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것이었다.

“뭐라꼬? 이 방정맞은 안들을 봤나? 여가 어데라꼬 못 된 행구지를 하고 있노!”

소리치며 머리채라도 잡으려던 조동댁이 갑자기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하기사 찝적거린 내 자슥 잘못이지 안들 니가 무슨 죄가 있노? 사나아가 눈을 이상하게 맨들어서 하자하자 덤비면 누가 전디겠노? 그 짓이 여자한테도 꼭 싫은 것도 아이고...”

말을 끊고 또 박장대소를 터뜨리더니

“하기사 저렇게 말귀도 못 알아듣는 여펜네를 데리고 사는 사내치고 어느 남정네가 바람이 안 날꼬? 무단히 내 자슥만 욕할 것도 아잉 기라. 오히려 내 자슥이 불쌍한 거지.”

하더니

“이 더러분 종내기야, 그래 저 안들 말이 맞기는 맞나? 그래 깨알밪은 기 너무 여자 건드릴 맘은 우째 다 묵었노?”

하며 또생씨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자, 이거면 됐제? 바람은 어데 사나만 피우나? 니도 서방 죽고 십년 만에 임재를 만냈구나. 우리 아들이 아주 활인(活人)을 했구나. 아주 경사가 났구먼.”

하면서 다시 껄껄 웃었다. 마침내 여자가 돌아가고 삽짝을 닫고 온 조동댁이

“문디자슥! 꼴에 사내라고?‘

측은한 듯 또생씨를 바라보더니

“아나! 이기 다다. 이거 애낀다꼬 집 사고 땅 살 것도 아이고 걸배이 떡 본 짐에 제사지낸다고 이 돈 가주고 술을 처묵든지 기집질을 하든지 니 맘대로 해라. 그렇지만 돈은 독 씻고 밑 씻고 이기 마지막이다. 알아서 해라.”

남은 지폐 뭉텅이를 던져주더니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다.

 

“아이구, 그 참 우짜겠노? 우리 조모님이 속이 많이 상하싰겠네. 복장터져죽는다고 드러누웠겠네.”

긴 한숨을 내쉬며 금찬씨가 이마가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앉으며

“도대체 무신 일이 또 있단 말잉교”

혀를 끌끌 차는데

“글키 거기 말이요, 그 뭐라 커더라, 집안에 액운이 닥치면 한 분에 그치는 기 아이라 뭐 화불단행인가 이불단행인가 물물이 화가 닥친다 안 카등교? 집에 작은 집이 꼭 그 모양이 아잉교?”

“아이구, 속 터져라. 자꾸 뜸만 들이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좀 해보소.”

“야. 그러니까 그 집에 시삼촌인가 등말리 백 서방이 집에 시조모가 주는 마지막 남은 돈을 쥐고 집을 나가 며칠간이나 돌아오지 않자 처음엔 삼성전관 함바집 한 귀퉁이에서 그 방정맞은 여편네의 치마꼬리나 잡고 늘어진 줄 알고 집에 시조모는 느긋이 기다렸는데 근 보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마침내 그 함바집을 찾아갔다 카데요.”

“그래 우째됐는데요?”

“여자가 처음에는 안 왔다고 딱 잡아 띠다가 집에 시조모가 다 알고 왔는데 와 자꼬 잡아띠노, 정 그라면 니가 또 다른 샛서방이라도 봐서 우리 아들을 해꼬지해서 종적을 모른다고 내가 중남지서에 신고를 할 끼라고, 조사하면 다 나오고 니 년 콩밥묵는 거는 시간문제라고 을러댔다는 거 아잉교? 집에 할매는 참 대도 차지요. 치마를 둘렀다 뿐이지 어지간한 사나들 보다 낫지요.”

“야. 거기사 글타 치고 그래 우리 시삼촌이 우째 됐단 말잉교?”

“그러자 그 맹랑한 여펜네가 몇 번인 우물거리다 말하기를 한 보름 전에 와서 사흘을 자고 오랜만에 부산에 가본다고 갔다고 했다 카데요.”

“부산에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금찬씨의 눈앞에 식모살이를 하던 보수동의 할머니와 거제리의 방적공장과 복산동 산꼭대기의 판잣집과 맨날 밀가루풀데기죽으로 연명하던 분옥이아지매와 식구들, 특히 그 등이 터지도록 가난한 가운데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을 잘 따르던 금분이의 얼굴이 선 하게 떠올랐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