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23)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3)
대하소설 「신불산」(223)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3)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18 07:00
  • 업데이트 2022.08.18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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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23)

“야야, 우리 강당에 엄마 보고 오는데 야야, 큰 일이 났다. 할마시가 죽기 생깄다.”

마침내 큰고모가 입을 열자 수진씨는 젓가락을 놓고 빤히 올려다보고 사람 좋은 큰 고모부는 말없이 맞은 편 벽만 응시하는데

“말이 씨가 된다 카디마는 꼭 수진이 니 악담하던 데로 그래 돼뿠다. 무신 일인지 일본 큰새이 돈도 송금이 끊어지고 가지고간 돈은 그간에 진 빚을 갚고 남은 것도 없단다. 거기다가-”

“거기다가요?”

수진씨는 얼굴만 더 벌게지며 말이 없는데 사정을 잘 아는 금찬씨가 자신도 모르게 관심을 보이자 조동댁에게 옷이랑 생선을 보낸 이야기를 들었는지 큰고모는 금찬씨에게 눈을 한번 찡긋하고는

“일이 거서 그치기만해도 밑져야 본전인데 세상에 야야, 니 작은아부지가 부산에 가본다카고 나가서 지금 석 달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단다. 처음에는 자기가 젊었을 때 댕기던 구둣방이나 여관집에 가보거나 가을이년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도 묵고 몸도 부실한 사람이 객지에서 무슨 봉변이나 안 당하는지, 몸이나 성한지 할마시가 걱정이 태산이라 잠도 잘 못 잔단다.”

“....”

“옳다쿠나! 내 그럴 줄 알았지!”

“야야, 니 말이 와 글노? 암만 그래도 그라는 거는 아이다!”

하면서 큰고모는 다시 이미 알고 있는 숙모가 바람이 지나가 입이 돌아가고 할매가 대추나무가지를 입에서 귀로 걸어도 낫기는커녕 도로 악화되어 반신불수가 되고 다 늙은 시조모가 죄 없는 더러운 궁가리까지 들먹이며 가리 느까 병든 며느리에게 밥을 해 바친다는 이야기가 줄줄이 쏟아냈다.

그러다 가끔 ‘아이구야!’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꼭 금찬씨가 걱정하던 그대로

“옳치러. 내 그럴 줄 알았다. 알고말고. 경우 없이 돈만 챙겨 나가는 할마시나 그 할마시를 데꼬 가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 무신 큰 복을 받을 끼라꼬? 하늘에 해가 바로 박힜시믄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옳치러, 벌을 받아야 싸고말고!”

영판 금찬씨가 예상하던 그대로 막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래서 부부가 만나서 서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기를 숨 쉬면 식성이나 습관, 생각까지 같아진다고 했던가. 그래도 맘을 다잡은 금찬씨가

“보소, 고모님이 말씀하시는데 그라문 안 되지요. 우쨌기나 당신 할맨데 한 분 가보기는 가 봐야 안 되겠능교?”

조심스럽게 쳐다보자

“봐라, 니 방금 뭐라캤노? 내 지금 고모부만 안 계시면 마누라고 나발이고 아주 요절을 낼 낀데. 니는 마 남편이 하는 말에 아무 토도 달지 말고 잔주코 있어라!”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라리더니

“고모가 할매를 걱정하는 거를 내가 뭐라카겠능교? 누가 뭐라 캐도 부모자식간인데. 그렇지만 나는 안 됩니더. 그 때 내가 돈을 다 안 주고 쪼깨만 주더라도, 난주게는 아주 안 주더라도 가지마라고 할매를 안 잡았덩교? 평생 정이라꼬는 파랭이 뭐 만큼도 없는 할매를 말입니더. 그라고 삼촌한테도 그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애원을 했지만 삼촌은 할매고집이 세서 자식된 도리로 자기는 우짤 수가 없다고 주춤주춤 물러서서 할매를 데리고 가서 돈은 다 딲아 쓰고 사람은 팽개치고 집을 나갔단 말잉교? 우째 됐든동 나는 모림더. 내발로는 가지도 못 하고 우리 집에 데꼬오지도 못 함더. 고모가 그래 걱정하는 거 와 모리겠능교? 그라고 평소 말씀이 없는 큰 고숙님이 이렇게까지 오싰는데 지가 참 죽일 놈입니더. 죄송합니더.”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고모부에게 꾸뻑 인사를 하더니 저벅저벅 마당을 건너 삽짝문을 나섰다. 아마도 철봉씨를 만나 산전이나 언양 어디라도 가가서 밤새 술을 마실 모양이었다.

아랫방에 고모부의 이불을 깔아주고 온 큰고모가

“질부야, 고맙데이. 니도 아들 데꼬 묵고살기가 심들 낀데 우째 그런 마음을 다 묵고 엄마내복에 버선과 털신까지 다 사 보넸노? 그라고 칼치에 바람초가 어데고? 고맙데이. 니가 자식인 내보다 났다. 니도 후제 알겠지만 지 자식이 출가를 해서 두 불 새끼, 손자, 손녀가 생기면 정말로 지 부모 생각할 정신이 없다. 암만 내리 사랑이라캐도 내가 불효다. 니 보기 부끄럽다. 우릴 백가 집안, 아니 울엄매 그 심청궂은 조동댁이 피를 받은 사람은 하나도 사람 같은 사람, 어질고 경우 바른 사람이 잘 없는데 그 쑥시기 집안에 그래도 니가 하나 들어오이 근근이 맥은 안 끊기는 거지. 고맙데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몇 번이나 치하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클 때 어머니 명촌댁으로부터 잔정을 받아보지 못한 금찬씨가 눈물이 핑 도는데

“질부야, 내 오늘 니캉 이방에서 자면 안 되겠나?”

하더니 치마저고리를 벗기 시작했다. 금찬씨가 불을 끄고 속옷차림으로 눕는데 덩치 큰 큰고모가 슬며시 팔을 벌리자 조그만 금찬씨의 몸이 속 안겼다. 아이가 넷이나 있는 금찬씨가 마치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어깨를 들썩이자 큰고모가 천천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침상을 물리도록 수진씨가 돌아오지 않자 혀를 끌끌 차던 큰고모부가 장짐을 둘러메자 따라 나서던 큰 고모가

“야야, 질부야, 우짜든동 중간에서 니가 잘 해야 집안이 되고 후제에 뒤가 있데이. 니가 안자 우리친정 지둥뿌리 아이가? 우짜든동 잘 참고 지내래이.”

신신당부를 하면서 바들못 앞 길천마을을 지나갔다.

ⓒ서상균

음력대목장날에는 지난 동짓날 앞처럼 젓갈이나 미역, 김 같은 조리하기 쉽고 먹기 쉬운 반찬거리를 사 시조모에게 보낼 작정인 금찬씨는 평소 장에 내는 쌀 말고도 수진씨 몰래 지난봄에 뒷산에서 따서 삶아 말린 묵나물과 고치미에 도라지까지 준비하고 평소 조동댁이 좋아하던 무짠지도 따로 담았다.

그런데 장날 하루 전에 둘째 아이가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형제 셋이 모조리 옮아 밤새 콜록거리고 기침을 해대고 젖먹이는 밤새 울어대더니 아침밥도 제대로들 먹지 못 했다.

장에 갈 짐을 챙기던 금찬씨는 등에 업은 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을 느끼며 일손을 놓고 방에 아이를 누이고 수건에 물을 축여 이마에 얹었다. 이어 펄펄 김이 나게 물을 끓여 벽장에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꿀단지를 꺼내 바닥을 박박 긁어 꿀물을 타 셋은 한 그릇씩 나눠주고 막내를 떠먹이면서

“보소, 일식이아부지, 천상 당신이 장에 갔다오소. 괴기랑 과일 같은 제물을 구색을 갖추되 양은 너무 많이 사지마소. 그라고 제발 술 좀 덜 잡숫고.”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이미 그럴 줄 짐작하고 더운물로 비누거품을 내어 턱을 문지르던 수진씨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래, 암만 캐도 당신은 안 되겠제? 세상에 아아들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딨노?”

말하고는 자기도 멋쩍은지 꿀물을 먹고 나란히 누운 아이 넷의 이마를 한 번씩 쓸어주고 장짐을 챙기더니 마루에서 담배를 빼어 물었다.

“갈라커면 쌔기 가소. 해빠지기 전에 들어와야 고기 손질하기도 수월코 또 사람이 안심이 되지요.”

하는데도 또 빙긋이 웃더니

“어서 온나!”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삽짝 앞에 역시 쌀자루를 둘러맨 철봉씨가 나타난 것이었다.

“제수씨, 갔다올 끼요.”

기분 좋게 나서는 둘을 보며 오늘 저녁에도 둘이 술잔이나 마시겠구나, 송대성당 지나서 인적이 드문 옹기굴 앞에서부터 부리시봇디미 건너고 열녀각 지나서 사광리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유정천리>, <가거라 38선>에 <하룻밤 풋사랑>에 이르기까지 노래깨나 부르겠구나, 그렇더라도 장짐은 안 빠트리고 잘 가져 와야 될 낀데 금찬씨는 또 걱정이 태산이었다.

 

구색을 갖추다보니 음식의 가짓수는 똑 같아도 그 많던 시고모들의 식구들이 오지 않을 거라 양도 절반이하로 줄었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조목조목 잔소리를 늘어놓던 시조모가 없으니 아직도 콧물을 조금씩 흘리는 아이를 업고해도 일은 금방 끝났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네 살짜리 셋째까지 4부자가 나란히 서서 절을 하고 아침을 먹는데 산적과 생선을 썰던 금찬씨는 문득 가슴이 뭉클했다. 쇠고기나 돔배기 같은 맛있는 산적을 다 놔두고 오직 열합만 좋아하고 생선 중에서는 유독 민어만 챙기던 시조모 조동댁이 생각나서였다. 명절만 되면 그렇게 오랜만의 포식을 하고 다섯 딸과 사위들이 먹을 떡과 강정과 생선을 챙기느라고 분주하던, 그렇게 챙긴 음식들을 딸과 사위와 외손자들이 먹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던, 아니 좋아하기를 넘어 세상사는 재미나 보람으로 알던 조동댁이었던 거였다.

한겨울 치고는 바람도 잦아지고 볕이 따스해 아들 셋을 거느리고 칼치못 지나 뒷산의 선산을 다녀온 수진씨가 모처럼 막내를 안고 늘어져 낮잠이 든 금찬씨를 깨우더니

“오뉴월 개 팔자라 커디마는 우리마누라 금찬씨가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나?”

빙긋이 웃으며 마루에 앉더니

“우리 또식이는 인자 몇 살이고?”

“일곱 살!”

“옳지. 우리 외식이는 몇 살이고?”

외갓집에서 낳았다고 외식이라 이름지은 아이를 바라보자

“네, 네 살!”

“아이다. 인자부터 다섯 살이다. 알았제?”

하고 몇 번이나 연습을 시키더니

“할마씨가 없으니 세배 올 사람도 없고 개쌍놈소리 듣기 싫어서 아랫마실 세배 갈 일도 없고 고모네들 안 오니 손 칠 일도 없고 그라고 보이 나도 오뉴월 개 팔자로구나.”

씩 웃더니

“금찬씨 당신, 이런 말 아나?”

“무신 말?”

“시어마시 죽고 나니 방 넓어 좋고?”

“세상에 그거 모리는 며느리가 어딨노? 나도 층층시하 시집살이께나 한 사람인데 완전히 빠삭하지. 시어마시 죽고나니 방 넓어 좋고, 꼬장단지 내차지, 도장새때 내차지.”

“아따, 잘 하네. 지난번에 집안 살림 능가도라 카다가 울산사람 서 발 줄 욕을 다 얻어 묵디마는 인자 속이 시원하제?”

“속이 시원하기? 나는 집안이 다 훌빈하고 찬바람이 부는 겉다. 사람이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고 그래도 집안에서 제일 상 어른 아이가?”

그까짓 방이 좁아도, 고추장단지, 꿀단지에 손을 못 대게 해도 또 곡식도 많이 없는 광에 못 들어가게 해도 시조모가 있을 때는 얼마나 의지가 되었던가, 설 아래처럼 아이들이 감기라도 들면 ‘아이구, 내 새끼들 다 죽는구나!’ 남이 보면 심술이 줄줄 흐르는 새파라동동한 얼굴에 걱정을 가득 담고 아이들을 챙길 할머니였다. 순간

“보소, 우리 설 씨고 강당에 한 분 가봅시더. 사정 봐서 데꼬오고 말고는 둘째 치고 해가 바뀠는데 얼굴이나 한 분 봐야 안 되겠능교?”

금찬씨가 무심코 말하자

“당신 지금 뭐라캤노? 보자, 보자카이 못 할 말이 없네! 이 사람이 뭐 정초부터 뭐 못 묵을 거로 묵었나. 미친 개고기를 묵었나!”

담배를 비벼 끄던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마침내 재떨이를 쾅, 마당바닥에 던져버렸다. 아이들의 표정이 일순에 얼어붙고 젖을 빨던 막내도 젖꼭지를 놓고 와아, 울음을 터뜨렸다.

“에이 지게미! 정초부터.”

얼굴이 시뻘게진 수진씨가

“남바가치는 어딨노? 집안에 뭐 지대로 붙어있는 기라고는 없네!”

두리번거리더니 쾅, 쇠죽솥 뚜껑을 나무바가지로 한 번 내려치고는 쇠죽을 퍼기 시작했다.

 

그 날 오후였다. 해가 기울도록 찾아온 단 하나의 손님 철봉씨와 술상을 마주하고 ...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