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부산, 울산, 경남을 연결하는 부울경 메가시티[이하 메가시티]가 담론 수준을 넘어서, 특별연합의 공식 사무 개시와 중앙정부로부터의 예산 확보 등 실행에 돌입하기 직전에 있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 이후 새롭게 선출된 민선 8기 울산시장과 경남도지사가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관련 뉴스에 따르면 전체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메가시티로 인해 울산과 경남이 부산에 흡수될 가능성, 즉 경제 침체나 인구유출이 더 심해질 수 있는 현상을 우려한다는 것이다[국제신문.7.2. “부산에 흡수될라”… 메가시티에 신중한 경남․울산].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메가시티 논의의 출발점은 초광역 경제권이다. 지방소멸을 막고, 수도권에 대항하는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국가균형발전의 취지이지만, 경제 발전을 중심에 두다 보니 이로부터 새로운 위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메가시티 발전 전략을 보면 경제공동체 이외에도 생활공동체, 문화공동체, 행정공동체의 기반 마련이 같이 제시되고 있지만, 중요한 목표 지점은 산업․경제 발전에 있다.
문화공동체의 목표도 들여다보면, 국제도시 브랜드 구축이나, 광역관광벨트 형성, 장소 마케팅 등 문화적인 측면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효과적인 성과 도출을 위해 대도시 기능이 집중되어있는 부산을 중심으로 더 많은 예산이 투자되는 구심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울산, 경남의 우려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부울 문화정책의 방향설정이 더욱 중요하다. 부산, 울산, 경남이 협력하려는 이유는 각 지역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동력을 갖추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작 전부터 흔들리는 이유는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나, 기업 유치와 경제적 이익의 창출, 광역 교통망 등 물리적인 인프라 조성 등을 발전의 방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문화적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화적 목표는 단일한 하나의 공동체, 혹은 문화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지역이 공존하고, 각 지역의 문화적 자원을 널리 공유하고 서로 함께 가꿔나가는 방향으로 설정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지역 문화와 더 나은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동의 인문정신에 기초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형성이, 협력의 가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문화의 측면을 보자.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지역 문화의 발전은 대개 경쟁을 위한 ‘차별화’에 기초해 왔다. 국비나 국가 시설을 확보하기 위하여,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다른 지역과의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역 문화 발전에 접근해 온 측면이 크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은 지역민의 자발적인 지역 문화의 창조와 향유보다는 당장에 결과가 뚜렷한 대형 이벤트 개최나 관광시설 건립 등에 집중해왔다. 이 과정에서 지역 간 뚜렷한 구별도 만들어졌다. 예컨대 시민과 예술인들은 자유롭게 지역을 오가지만, 각 지역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은 해당 지역의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경부울 문화적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역 문화 정책은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지역민이 스스로 가꿔나가고 그 가치를 확산할 수 있는 문화적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우선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 생활권 단위의 문화예술 사업 지원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법정 문화도시 사업이 좋은 예이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있지만, 시민 스스로 문화예술을 지역사회의 성장 동력으로서 만들어가는 좋은 사업 모델이다. 문화도시 사업 모델을 메가시티에서 기초 읍면동 등 생활권 단위로 추진한다면 다양한 지역 정체성이 공존하며 연합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문화예술 지원의 지역 경계도 더욱 허물어져야 한다. 메가시티 계획에서는 영화제나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축제 간의 교류를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실행된다면 그 효과가 높을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교류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파급력이 높지 않을 수는 있어도 개별 단위 예술인/단체의 교류 지원 확대도 중요하다. 예컨대 울산에서 교육받은 청년 문화 전문인력이 경남의 지원을 바탕으로 남해의 어느 마을에서 생활문화 사업을 펼칠 수 있다면. 경남의 생활문화동아리가 부산 바닷가에서 공연과 전시를 펼친다면. 부산의 노동 콘텐츠를 주제로 하는 문화예술교육단체가, 울산의 산업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본다면. 경남의 고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부산의 미디어아트 전문가, 경남의 국악인, 울산의 연극인이 함께 협업하여 창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예술인들이 오가는 것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문학관, 작은 미술관, 소규모 공연장, 문화원, 생활문화센터, 카페형 문화공간 등 기초 단위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을 이해하고, 문화적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건강한 지역 문화생태계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공동의 인문정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하나의 단일한 지역 정신, 정체성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메가시티 단위에서, 세계시민으로서, 가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경부울의 뿌리와 역사 속에서 공유 가능한 정체성을 발굴하고 가꿔나가는 지역학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함은 분명하다. 현재의 삶의 터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역 소멸, 기후 위기, 해양 오염, 고령화, 사회적 고립, 문화 다양성, 차별과 편견 등 미래세대가 살아갈 터전에 대해 공동의 문제 제기와 고민이 시작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예컨대, 부울경 메가시티의 출발은 지역자치와 분권이라는 공동의 의제를 설정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 출범한 <경․부․울 문화연대>는 창립 취지에서 ‘부울경이 온전한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적 차원의 통합 이전에 지역민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문화적 연대가 선결되어야 한다. 문화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매개체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물론 편리한 교통 인프라 구축,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 유치, 광역 관광권의 형성 등 물리적인 기반 시설을 잘 갖춰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경부울의 시민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면서 소통하고 교류하며 공동의 의제를 설정해가는 민주적인 과정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치권이나 행정의 의지가 아닌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부터 비롯되는 자치와 협업, 연대의 정신적 기반을 갖출 때 비로소 자율적으로 자신의 지역 정체성에 토대를 두고 문화적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민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포럼이나 토론회 등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공론장을 꾸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꼭 거창한 주제를 설정하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만이 소통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 해양 오염을 주제로 순회 전시와 공연, 축제나 여행 프로그램과 같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또한 시민들의 소통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부산문화재단의 부울경 비치코밍 투게더 프로그램을 참고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부울경이 힘을 합친 공동의 프로젝트로 추진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행복하게 살고, 더 나은 사회를 가꾸어나가기 위해서는 경쟁을 넘어서는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공유를 목표로 하는 경부울 문화정책이 필요한 때다.

◇ 송 교 성
▷문화예술 플랜비 지식공유실장
▷前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사무국장
<magsimin@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