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①
대하소설 「신불산」(24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05 07:05
  • 업데이트 2022.09.0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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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①

정석이가 네 살로 올라가는 음력설을 쇠러 버든의 생가를 찾아가던 열찬씨와 영순씨가 삽짝 앞에서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섰다. 큰 채의 지붕이 새까맣게 그을린 것이었다. 불이 났다면 몽땅 타 내려앉거나 최소한 한쪽 귀퉁이는 무너져야하는데 희한하게도 집채는 그대로 있고 지붕만 새까맣게 그을린 것이었다.

옛날 버든동네에서 키도 제일 크고 힘도 좋던 아버지 기출씨가 언양사람들이 새패기밭이라고 부르는 신불재 위의 신불평전의 억새를 베어 이엉을 엮어 지붕을 이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억새지붕이었다. 추수가 끝나면 집집이 노란 새 볏짚으로 이엉과 용마름을 엮어 지붕을 이는데 열찬이네처럼 억새로 지붕을 이고 추녀끝부분에 삼 껍질을 벗긴 대궁이 재랍때기이엉으로 마감을 하면 3년, 5년이 되어도 다시 지붕을 이을 필요가 없는 반영구지붕이었다. 한 살 위의 개구쟁이 영호가 새를 잡는 화살을 만들자며 열찬이를 꼬드겨 마른 삼대로 만든 추녀 끝의 마감재 재랍대기를 뽑아 지붕의 끝이 참새 집처럼 새까만 구멍이 뚫려 혼이 난 일이 있기도 했다. 다리 힘이 좋은 기출씨만이 이을 수 있는 특별한 지붕으로 아랫각단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지붕이었다.

“어무이, 집이 와 저렇소? 눈도 어두운 사람이 조심하지 우짜다가 불을 냈능교?”

“몰라. 내가 아나?”

어머니 명촌댁이 좀체 말을 할 눈치가 아니라 마침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백찬이에게

“야야, 지붕이 와 저렇노?”

“형님. 묻지 마소. 내사마 골치가 아파서...”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던 백찬이가

“어무이 지들 왔심니더.”

방금 들어 닥치는 큰형수 김해댁과 현우, 현숙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도 모리겠심더.”

입장이 곤란한지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우애비는 와 안 오노?”

“설날이 학교숙직날이라서 못 왔심더.”

“암만 그래도 장남이 설날제사에 안 오면 우짜노?”

 

고부간에 서로 못 마땅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현우, 현숙이 남매는 모처럼 만난 4촌동생 슬비와 정석이를 안아주고 업어주며 한창 금방 한 덩어리가 되어 신명을 내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열찬씨가 슬그머니 골목으로 나와 큰집으로 향했다.

“이, 이기 누고 열찬이 아이가?”

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체머리를 흔들던 큰엄마 상남댁이 인기척에 눈을 뜨며 반색을 하는데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가 듬성듬성하게 빠져 추석 때보다 훨씬 더 늙어보였다.

“아재 오싰능교?”

제가끔 인사를 하는 용우, 용화, 용자, 찬우들을 흘낏 쳐다보고 열찬이는 부엌을 향해

“형수, 형수님요!”

정찬씨의 후처 수남댁을 불렀다. 열찬이가 군에 가 있을 때 들어와서 같이 생활해본 적도 없어 친하지는 않지만 성격이 깔끔해 전처자식 넷에 자신이 데리고 온 딸,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여덟 식구를 늘 깨끗한 옷을 입히고 집안을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청소하여 동네에서 칼클타고 소문이 난데다 맺고 끊고 셈까지 분명해 어떻든 사건의 내막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줄 것만 같아서였다.

“야, 부산대름 왔능가베. 내일 제사 모시러 오면 되지 작은설에 우짠 일잉교?”

타월로 손을 닦으며 나오는데

“형수는 알지요?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이럴 줄 알았지. 대름도 참 딱하지, 집에 작은 어무이도 있고 망내이 백찬이대름도 있고, 아이지, 그 잘난 너거 형수 현우엄마, 아니 내 새이 일찬이대름한테 물어보지 와?”

“어무이하고 백찬이하고는 당최 말을 안 하고 형님은 학교에 숙직한다고 안 내려오고 형수는 슬슬 피하는 눈치라 어데 물어볼 데가 있어야지요.”

“뭐, 숙직이라꼬? 숙직 아니라 암직도 아일 끼다. 좌우간 니 새이는 당분간 버든걸음을 못 할 끼다.”

짧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우선 요 좀 앉으소.”

머리에 쓰던 타월도 마루 끝을 닦아주며

“좋든 싫든 내라도 이야기를 해 조야지 누가 말을 하겠노? 참, 부산서 오던 길이면 시장하겠네. 내 뭐 좀 가오 께.”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굽고 있던 두부전과 쌀가루를 납작하게 구운 꿉은 떡을 접시에 담아 나오더니

“참, 술도 한잔 해야지. 심란할 낀데.”

몇 년 사이 버든에서 맛좋다고 소문난 수남댁의 주특기인 노란 동동주를 한 주전자 들고 왔다.

ⓒ서상균

사촌형수 수남댁의 이야기는 이랬다.

일찬씨가 지난 해 3월 밀양의 사립에서 경북 영주의 공립중학교로 옮겨 이사를 한 뒤 김해댁은 영주에 방을 얻는다, 집을 산다면서 부지런히 버든의 논밭을 팔아치웠는데 추석이든 설이든 올 때마다 큰집과 담이 붙은 조일아재(지리산 곰쇠의 둘째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땅을 사려는 임자만 나타나면 두말도 않고 깎아달라는 대로 다 깎아주고 대깍대깍 팔아서 돈뭉치를 안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시아버지 명촌가손이 남의 집 머슴을 살아가며 작은 집, 큰 집 열 명도 더 되는 자식과 노모를 봉양하며 그렇게 힘들게 일군 살림인데 어떻게 그렇게 수월하게 팔아 가느냐고 혀를 찼다. 그것도 생전의 명촌어른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살림밑천 갈배기 서마지기와 진장골짝 서마지기부터 돈 되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팔아가다 못해 한창 과수원과 축산 붐이 일어 논 값보다도 더 비싼 진장밭 400평짜리 두 뙈기도 그렇게 단번에 팔아 가는지 그 많은 돈으로 영주에 빌딩이라도 사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또 조일김손 김상득씨도 한평생 이웃에 살며 같이 농사짓고 같이 나무하고 같이 풍물을 치고 같이 상여를 매고 무덤을 다지던 고종형 기출씨가 그렇게 아끼던 땅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자국자국 기출씨의 피땀과 얼이 배인 땅들을 그 까짓 구전 몇 푼 얻어먹는 재미로 온 언양바닥에 소문을 내어 재깍재깍 팔게 한다고 흉을 보았다. 영주에 거처를 마련하려면 어느 정도 땅을 줄였으리라는 짐작은 했지만 벌써 그렇게나 많은 땅 을 팔았다는데 깜짝 놀라

“그 기 진짱교?”

열찬이 묻는데

“데름 니는 알 수가 없겠지. 구시골에 오모짱집이 김해댁이의 부산 큰언니의 손위동새 아이가, 또 김해에 이사 간 김서방네 순찬이가 오모짱하고 동서간이고. 그래서 니 누부 김서방네가 어디서 듣고 하는 말이 가관이더라.

땅을 가만 놔두면 언제라도 동생들이 도라칼까 싶어서 또 망내이 백찬이가 장개라도 가면 틀림없이 순찬이액씨가 나서 전에 남가 둔 망내이 모가치를 내노라 칼까 싶어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저렇게 허겁지겁 땅을 팔아간다고 말이다.

또 그 땅 판 돈을 누가 단돈 십 원이라도 도라칼까 싶어서 시어마시한테는 땅 팔았다 말도 안 하고 망내이 백찬이한테도 천 원짜리 하나 안 주고 똘똘 뭉쳐서 가는데 열차를 탈라고 부산에 가면서도 대름 너거 집에 가면 돈 보따리가 표가 나고 혹시라도 니가 돈이라도 도라칼까 싶어 초량에서 밥집 한다는 지 언니 집에서 자고 너거 집에는 절대로 안 간다카더라. 이건 대름 니만 모르지 버든사람이라면 세 살 묵는 아아들도 다 안다.”

“아이구, 골이야!”

형수의 성격이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는데

“땅 팔아 묵는 기 진짜, 가짜가 문제가 아이고 정작 지붕에 불을 지른 건 열찬이대름 니때문이 아이가?”

“예에? 내사 땅 판 거도 아무 거도 모르고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요?”

“하여간 들어나 보소.”

 

열찬씨의 빈 잔에 동동주를 채우고 자신도 한 모금 마셔보며 오만상을 찌푸리며 수남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두 달 전쯤 영주의 일찬씨 내외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어머니명촌댁을 보러왔는데 사실은 소작을 준 논의 도조로 받은 나락을 팔아 돈을 챙기고 지난번에 판 진장밭의 잔금을 마저 받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 백찬이까지 네 식구가 저녁을 먹는데

“야야, 저 나락 방아 찍어 팔기 전에 부산에 너거 동생 쌀 한 가마이 조라. 아직도 셋방에 사는 데다 전에 아 어마이가 아파서 얼매나 돈이 마이 들었노?”

소문으로 이제 논도 거반 다 팔리고 다시는 마루에 나락가마니 쌓아 둘 일도 없겠다싶어 마지막으로 열찬씨에게도 쌀이나 한 가마니 주라고 한 말이었다.

“뭐, 뭐라꼬요?”

일찬씨의 얼굴빛이 확 바뀌면서 숟가락을 탕 소리가 나게 상에 놓았다.

“와? 내가 어데 그린 말을 했나? 니 한창 공부시킨다고 날수금 빚내러 댕길 때 니 동생 열찬이는 그 땅들 안 팔아 묵고 지킬라꼬 병든 너거 아부지하고 얼매나 열심히 농사를 짓고 나무를 했노? 학교에 댕기면서도.”

“그래서 지 대학교갈 때 송아지 팔아서 등록금 대준 거 아잉교? 그걸로 살림 내 준 것으로 하고 평생 손 안 내밀기로 하고 말임더. 그라고 또 지 장개갈 때 돈 십 만원 빚내서 조시문 됐지 무슨 살림을 내주고 또 내주고 한단 말잉교? 가아도 나가 서른인데 내가 언제까지 내가 믹이살리야 된다 말잉교?”

“믹이살린다꼬? 있는 논에 쌀 한 가마이 준다꼬 미기 살리는 기가? 그라고 장개갈 때 숟가락 몽디 한 개 안 사주고 지렁장도 한 병 안 내주고 뭐 살림 내준 기라꼬?”

일찬씨가 얼굴이 시뻘개져 가쁜 숨을 몰아쉬자 김해댁이 안절부절 덜덜 뜨는 손을 잡아주고 숟가락을 놓은 백찬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또 해마다 스무 가마니도 넘는 나락을 도조(賭租)로 받아도 동생 한 톨 주기는커녕 명절마다 딸네들도 찾아오고 마을의 손도 오는 어머니명촌댁과 백찬이가 먹을 양식마저도 추수전이면 달랑거릴 정도로 야박하게 남기고 몽땅 팔아가는 것이 그 동안 마음에 걸렸던 명촌댁이

“암만 경우가 없다캐도 또 욕심이 똥끝까지 찼다캐도 저렇게 나락가마이 마루에 처동개 놓고 지 동생 쌀 한 쪼가리 안 주는 사람은 첨 봤다. 연놈이 똑 같으이 그렇지, 하나라도 지 정신 백이시면 그렇겠나? 우짜다가 내가 저런 하늘대앙꼬 같은 욕심쟁이를 낳았는지 내 배속으로 낳았지만 나는 니가 무섭다!”

사정없이 퍼붓자

“뭐라꼬요!”

일찬씨가 발로 판을 쾅 밀어내며 바깥으로 나갔다.

“우현이아부지, 숙현이아부지!”

황급히 따라 나가는 형수 김해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찬이가 이러다가 필시 무슨 큰일이 나겠다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불이야! 불이야!”

어디선가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라이터로 짚단에 불을 붙인 일찬씨가 지붕에 던져버린 것이었다.

“부부부, 불이야! 불!”

명촌댁도 백찬이도 김해댁도 입속에서 말만 뱅뱅 돌 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 둘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불이야! 불! 불이야! 불!”

오른 쪽으로 담이 붙은 상천엄손과 그 뒷집의 까꾸리쟁이 화잠짐손, 떡장사미짱엄마와 이까리장사 수동엄손, 옴말댁 큰아들로 웃각단의 귀남이와 결혼해 평촌박손이 된 주택씨가 바께스를 들고 들이닥쳤다.

왼쪽으로 담이 붙은 사람이 좀 모자란다고 소문난 경주댁이도 뻐드렁니가 드러난 합죽한 얼굴이 울상이 되어 자기 집 잿간 채에 불이 넘어갈까봐 동동 발을 구르고 있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