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42)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②
대하소설 「신불산」(242)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3장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②
  • 박기철 박기철
  • 승인 2022.09.06 07:00
  • 업데이트 2022.09.07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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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촌댁 기둥뿌리 빠지다②

왼쪽으로 담이 붙은 사람이 좀 모자란다고 소문난 경주댁이도 뻐드렁니가 드러난 합죽한 얼굴이 울상이 되어 자기 집 잿간 채에 불이 넘어갈까봐 동동 발을 구르고 있었다. 어디서 흘러 온지 몰라도 혼자 된 새말댁 큰 딸 희준이엄마가 살던 집을 사 이사 온 영감, 할멈도 죽고 자식도 없어 혼자 끓여먹으며 날마다 머리를 감아 상투를 틀어 올리는 상투쟁이영감도 처형장에 실려 가는 녹두장군 전봉준과 같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눈빛만 형형한 동그란 얼굴로 나타났다.

순간

“안 됨더! 이건 집안일인데 아무도 들어와도 안 되고 불을 꺼도 안 됩니다. 내 이 노무 귀신 나올라카는 집을 오늘 완전히 불싸질러뿌고 말 끼요!”

일찬씨가 삽짝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시뻘건 불꽃이 훨훨 춤을 추는 지붕을 바라보면서 평소 차분하고 사람 좋고 말없기로 소문난 옆집의 상천엄손이

“이 사람이 와 이라노?”

일찬씨를 확 밀치자 힘 좋은 수동엄손과 평촌박손이 길을 내어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붕에 물을 뿌렸다. 순식간에 불을 잡고 한숨을 돌리는데 왱왱 싸이렌소리가 들렸다. 언양소방서에서 소방차가 온 모양이었다. 순간 상천엄손, 수동엄손, 평촌박손들이 눈을 맞추더니

“불 다 껐는데 집에 안 가고 뭐 하능교? 누구라도 누가 불질렀다고 말하면 버든동네서 몬 사는 줄 아소. 우짜든동 명촌댁이가 정지서 밥하다가 불똥이 튄 기라. 알았지요.”

하면서 키가 팔대장승 같은 구장 부뜰이애비를 앞세워 소방차로 갔다.

절대로 불을 낸 것이 아니고 나 많은 노인네가 불을 때다가 불티가 날았다고 사정사정해서 소방차를 보내고 나서였다. 하마터면 자기 집에 불이 옮길 번 한 상천엄손이 화가 단단히 났는지

“아니, 조일형님은 명색이 집안의 5촌 아재에다 논 팔고 밭 팔고 구전 묵는 거는 그래 잘 하면서 형수집에 불이 났는데 와 말 한마디도 몬 하능교?”

가시 돋친 한 마디를 던지자 뜨끔한 조일김손 상득씨는

“내, 내가 놀래서, 정신이 없어서...”

얼버무리다 잽싸게 집으로 내뺐다. 이제 구장과 상천엄손, 수동엄손형제, 평촌박손 이렇게 넷이 남았는데

“일찬이자네, 내 하고 이약 좀 하세. 그리고 동생하고 구장하고 인도아바이도 같이 좀 앉게. 누구 말이 맞는지 누구 말이 경우가 아인지 다 같이 알아야 될 꺼 아이가?”

상천엄손이 일찬씨와 세 사람을 마루에 앉게 하더니 자기는 선채로

“내 수십 년 옆집에 살면서 친형제같이 잘 지내던 명촌형님을 생각해서 여간 기분이 상하고 미나쁜 일이 있어도 참고 살았는데 인자 한 마디 해야겠다!”

단단히 벼렸든지 평소와 다른 격앙된 어조로

“니는 너거 집만 불 지르면 단 줄 알았나? 옆에 붙은 우리 집과 경주땍은 우짜란 말이고? 또 불길이 담을 넘어 온 동네가 잿더미가 되면 우짜란 말이고?”

“...”

얼이 빠진 핼쓱한 얼굴로 일찬씨가 대답을 않자

“니가 학교에 댕기면서 천재라고 소문이 났을 때 우리는 명촌형님이 사람이 좋아 잘난 자식을 놓고 인자 팔자를 고치겠다고 생각하고 동네에 큰 인물이 나서 마실에 큰 혜택이라도 돌아올 줄 았았다. 그런데 이기 뭐꼬? 온 동네를 불이나 질러뿔라 카고?”

“...”

“니가 중간에 몸이 아파 학교도 못 댕기고 정신이 없을 때 마실사람들이 얼매나 걱정을 하고 또 아깝다고 얼매나 앙통해 하고.”

“...”

“머리가 좋으면 뭐 하노? 성질이 좋아야지. 지 성질 하나도 못 이기는 기 무슨 큰 사람이 될 끼고? 목소리 크고 아무데나 끼어들어 왈왈거리는 대동땍이를 사람들이 속사포라카는데 니는 속사포보다 더 한 불칼이라칸다면서? 그래 불칼소리나 듣고 지 식구는 물론 온 동네를 발칵 뒤집는 기 니는 재밌나? 내가 보기에 니는 불칼이 아이고 생파리 조때가리다. 생파리 조때가리!”

“...”

“그래 백 분 양보하고라도 말이다. 나도 장남이지만 장남이라고 전 재산 다 가져간다고 쳐도 그래 있는 양식에 몬 사는 동생 쌀 한 가마이 주는 기 그래 아깝나? 옛말에 시전재산 욕심내고 형제간에 우애 끊어서 잘 되는 사람이 없다 캤다. 니는 그 고생하고 돌아가신 너거 아부지가 안 무섭나? 니가 이래 니 맘대로 생파리 조때가리에 하늘대앙꼬 짓을 하라고 그렇게 벌벌 떨고 조선고생을 다 하면서 니만 쳐다보고 살았겠나?”

“...”

“나도 장남이지만 말이다. 니 이야기 들었제? 우리 아부지가 진장 조부자집 과수원 일을 봐주고 근근이 밥이나 얻어 묵고 살 때 우리 집에 불이 났다 아이가? 내가 열서너 살, 망내이 수진이가 다섯 살인가 될 때 아이가, 안 묵고 안 쓰고 근근이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한창 훌찡써리 밭가는 일을 배우는 중소가 되었는데 불이 나자 울아부지가 처자식은 둘째고 송아지가 급해서 마구간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불이 활활 붙어 급한 데로 소 꼬랑대기를 잡고 확 땡기니까 소는 이미 불에 타서 죽고 바깥쪽의 꼬랑대기만 툭 떨어져 나오더라 안 캤나?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다시 알거지가 된 우리 우부지가 실망을 해서 진장땅을 떠나 지금 집 변손땍에 세를 들었다가 인자 우리 집이 되었지.”

“농사꾼 자식이라면 내남 할 것 없이 어릴 때 가난하고 고생하는 거는 똑 같다. 내 그렇게 어렵게 살아도 우리 3형제가 살림가지고 싸운 일은 한 번도 없다. 밥 한 그륵이라도 같이 노놔 먹는 기 얼마나 좋던지, 오죽하면 열다섯도 안 된 동생 수뱅이, 앞에 사람 놓고 말하기가 그렇지만 이 동생 수뱅이가 그 나이에 이까리장사를 다 했겠노? 그라고 니보다 너댓 살 많은 수진이동생, 그러니까 엄수진선생은 또 얼매나 고생해서 공부한 줄 아나? 양식도 없는 집에서 우째 월사금을 내주겠노? 그 아아는 니 동생 열찬이 맨시로 학교 갔다 오면 잠시도 안 쉬고 농사일을 도왔다. 또 지 명의로 달구새끼 몇 마리를 사서 모이대신 개구리를 잡아믹이서 재랄을 빼서 모아 장에 내어 돈을 모으고 저 각골로 어데로 댕기며 알밤을 주워서 팔고 진장골짝, 장심배기골짝 웅덩이란 웅덩이는 다 퍼내고 시북이란 시북은 다 뒤집어 미꾸라지를 잡아서 월사금을 냈다 아이가? 장정들도 발이 푹푹 빠져서 못 들어가는 시북에 그 쪼매는 기 들어가서 날마다 얼굴이 뻘좃이 되어서 돌아왔지, 밥도 굶은 채로...”

이야기를 하는 상천엄손도 동생 수봉씨도 마음이 짠한데 어떤 반성의 기미도 아무 미동도 없는 일찬씨를 보던 상천엄손이 다시 화가 솟구치는지

“이 봐라, 자네는 그래도 명색이 학교선생, 교사가 아이가? 내 동생 수진이는 지가 학교선생이라고 지 형수들은 물론 조카들한테도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잘만 하던데 니는 우째 곡식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언양바닥천재라고 소문난 니는 우째 배울수록 더 대가리를 독새대가리, 아니 하늘대앙꼬 처럼처들고 지랄이고? 그라고 또 욕심은 와 그래 많노? 내가 보이 그 고생하고 큰 열찬이한테 쌀 한 가마이가 아이라 논밭이라도 한 자리 떼주겠던마는 니는 우째 그래 욕심도 만 부리노? 옛말에 동생 줄 물건은 없어도 도둑놈 훔쳐갈 재산은 있다카디마는 니가 꼭 그 맞잽이구나?”

“...”

핼쓱한 얼굴의 일찬씨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다.

“선생이 성질머리가 그래서 우짜겠노? 아무데서나 괌을 지르고 집에 불도 지르고 동생들은 숟가락몽디 하나 주지마라고 가르칠 끼가?”

순간

“에이, 썅!”

열찬씨가 팔짝 뛰며 일어서더니 단숨에 우물가로 달려가며

“아무도 잡지 마소! 내는 그마 빠져죽을 끼요! 이 씨 더러운 세상...”

그대로 뛰어들 태세인데

“일찬아!”

힘이 장사인 구장 부뜰이애비가 달랑 들어 올리자 일찬씨는

“노소! 노소!”

바동거리고

“우현이아부지! 숙현이아부지!”

김해댁이 울부짖으며 일찬씨의 팔에 매달리는데

“일찬아, 야 이 사람아!‘

그나마 마을에서 일찬씨와 가장 친한 세 살 많은 사촌형 종찬씨가 달려오더니

“그래, 죽자! 니 죽으면 나도 죽는다!”

구장의 품에서 계속 바동거리며 뻗대는 일찬씨를 떼어 방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며 흩어졌다.

ⓒ서상균

정월 스무사흘 날 아버지 명촌이손의 제삿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토요일 일과를 마친 열찬씨는 느긋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버든의 집으로 향했다.

“어무이 계시능교? 우리 슬비하고 정석이 왔심더.”

지난번 일찬씨가 불을 지른 시꺼먼 큰 채 지붕이 너무나 스산해 열찬씨가 일부러 큰소리로 소리치자 안채가 아닌 아래채의 방문이 열리고 명촌댁이 조글조글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이 주름살이 늘고 또 깊어진 메마른 얼굴에 눈가가 짓무르고 듬성듬성 머리칼이 빠진 백발이 서글퍼보였다.

“늙게이, 끍게이, 잘 있었등교? 아픈 데도 없고 아무 별일이 없지요?”

일부러 쾌활한 척 동생 백찬이와 둘이서 기분이 좋을 때 어머니를 놀린다고 늙은이 대신 쓰는 끍게이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별일이 없기는 너거 엄마 다 죽게 생겼다!”

꽈당 문이 열리면서 난데없는 순찬씨가 튀어나왔다.

“열찬아, 그라고 동생아댁아, 내말 좀 들어봐라. 세상에 우리 집이 팔맀단다. 오늘 제사를 지내고나면 당장 집을 비우고 엄마하고 백찬이는 영주로 올라가야 된단다. 세상이 아무리 번갯불에 콩 꿉어 묵는 시대라 해도 이 기 말이 되나 이 기!”

벌써 입가에 하얗게 침이 말라 붙어있었다. 어머니와 장시간 열변을 토했거나 찬송가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기도를 드렸는지도 몰랐다.

“집이 와요? 가만히 있는 집이 와 팔맀단 말잉교?”

“이 사람아, 집이사 언제나 가만히 있지. 문제는 욕심 많은 너거 형님하고 형수가 가만 안 있고 부모재산 몬 팔아묵어서 그렇지. 아니 동생들 주라카기 전에 몽땅 몬 챙기서 가만히 안 있고 지랄발광, 환장을 하는 거지.”

“암만 그래도 설에 왔을 때 까딱없던 집이 우째 팔맀단 말잉교? 별난 집 머슴들조차 나무도 안 하고 열손제배하고 노닥거리는 이 정초에 말임더.”

“욕심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정초가 어딨노? 결국 버든 땅에 땅 한 쪼가리 안 남을 때까지 땅 안 팔면 급살(急煞)이라도 맞을 듯이 팔아처묵는 거지. 그 보다도”

“그 보다도?”

“너거 형님, 형수는 욕심이 많아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조일아재다. 지가 암만 천하에 용빼는 도깨비재주를 부린다캐도 천리만리 영주땅에서 무슨 언양땅을 팔아묵겠노? 구전 몇 푼 얻어 묵는 재미로 사촌형수야 길에 나앉든, 객지로 쫓겨 가든 왜정 때 순사앞잡이처럼 거간꾼 노릇을 하는 조일아재가 문재지. 인자 나는 조일아재나 아지매 보면 인사는커녕 아는 척도 안 할 끼다!”

 

순찬씨로부터 들은 내막은 이랬다.

<계속>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